교회 의 사명.
사명(使命)은’맡겨진일,임무’를뜻한다.
그리고사명감(使命感)은그일을이루려는기개(氣槪)나책임감이다.
어떤일,임무(任務)가맡겨졌다는것은그일을이룰수있는자격과능력이있기
때문이다.
능력이없는사람에게는일이맡겨지지않는다.
그리고맡겨진일에대해사명감-책임감을가지는것은그일의의미와자기가감당할
노력에대한이해가있을때가능하다.
일의의미를제대로모르고자기가무슨역할을해야하는지를이해하지못하고있다면
그사명은이루기가어렵다.
사명을완수하지못하는사례들이그래서생기는것이다.
아무리고귀한사명이라도해도이루지못하면없는것이나마찬가지다.

어두울수록빛은더욱빛난다.
그게아주작은빛이라도그렇다.
낮에는보이지않던작은빛들이밤이되면드러나는게그이치다.
지금은분명히어두움의세계다.
대낮에도어두움이지배하는시대다.
어두움의사악한세력들이빛의자녀들을포로로잡고온갖악행을저지르고있다.
대표적인것이사람들의’인간성’이나쁘게변한것이다.
인격적존재로서의인간이기보다동물적,물질적조건에더부합하는,
본능에따라사는인간들이늘어나고있는시대다.
상상할수도없었던엽기적인범죄와심화되는부패와퇴보는정산적인카테고리로는
분류조차하기가어렵다.
말-언어가망가지고있으며인간의행동에서동물적민첩함을볼수있는무서운시대에
우리가살고있다.
그래서두려운것이다.
사위가어둡기때문이다.

전세대로부터물려받았던소중한가치들이mammon에의해대체되고인간을
인격적존재가되게하는도덕규범들이’낡은것’이되어폐기되는세상에서우리들이
살고있다.
자라나는애들의’망종’을보면이일들의깊이를알수있다.
세상이언제나그러하듯나빠지는것은순식간이지만그걸회복하는데는긴시간이
걸린다.
지금의우리사회가전세대에비해얼마나나빠졌느냐하는기준은절대상대적인것이
아니다.
상대적인것이라면그건기준이될수없다.
절대적인것이상대적인것이되어휴지처럼버려지는게우리의오늘이다.
‘권위’와’권위주의’를구분못하는무지와치기가불러온게지금의혼란이다.
배가가라앉으면모두가죽는데도제것이라고널조각을뜯어내는어리석음을무엇으로
개우칠수있겠는가.
그래서희망이보이지않는다.
지금우리는절망의시대를살고있다.

유대인들에게는613개의크고작은율법이있다.
한율법교사가예수의속을떠보려고질문했다.
‘선생님,율법에서어느계명이가장큰계명입니까.’
주께서는유대인으로유대인에게대답했다.
‘네모든것을다해주너희하나님을사랑하라.’
‘네이웃을네몸같이사랑하라.’
신명기6장5절과레위기19장18절말씀으로대답하신것이다.
그리고거기에자기의해석을덧붙인다.
‘이두계명이모든율법과예언서의골자다.’마태22:34-40.
613개라는물량과그것을암송하는게중요한것이아니라그중심이되는의미를
알라는얘기다.
골자는중심을잡는’고리’라는의미다.
주하나님을사랑한다는것은무엇인가.
인간이신을사랑한다는것은가능한가.
그뜻은,
복종이다.그의말씀을따라살라는것이다.
그게곧’신앙’이다.

하나님에대해믿음을가지는’신앙인’이되는게먼저라는말씀이다.
‘이웃을네몸같이사랑하라.’는말씀은,
행위로옮겨지는,일상안에서실천되는산믿음에대한것이다.
인간과인간의관계속에하나님에대한사랑이녹아있지않으면안된다는설명이다.
율법종교인유대교의교조적인병폐를집어낸말씀이다.
이말씀의뜻을뒤집으면,
이웃이없는,이웃을사랑하지못하는신앙은,하나님을사랑하지않는거짓신앙이된다.
하나님을진정으로사랑하면이웃도사랑할수있지만하나님을진정으로사랑하지
않으면이웃도사랑할수없다.
미신이무서운것은이웃이없는탐욕때문이다.
미신은오직이기적인탐심뿐,내것을내주어나누는이웃은없다.
이웃자체가존재하지않는다.

우리들의이웃에대한사명에대해주께서는가장간단한,그러나핵심을찌르는
말씀을주셨다.
‘너희는세상의소금이다.’
‘너희는세상의빛이다.’마태5:13-16.
하나님의부르심을받은교회공동체가세상에대해무엇인지를가장분명하게보여주신
부분이다.
교회의정체성(正體性)이정해지는말씀이다.
따라서교회공동체의사명도따라나오는중요한말씀이다.
소금과빛,
인간의일상에서가장요긴한것들이다.
고대사회에서는더욱그랬다.
교회공동체는언제어디서나소금과빛처럼모두의소용에닿아있는요긴한존재여야
한다는말씀이다.
그래서교회공동체는예수그리스도의몸된교회가되어그소용에쓰여지는,자기를
소모하는사명을가진다.
가장대표적인상징이십자가다.

소금과빛의가장큰공통점과속성은그기능을다하기위해서는자기를희생하는것이다.
소금은녹아없어져야하고,초는자기를태워빛을발한다.
교회공동체가사회안에서가지는사명에는이러한자기희생적인속성이따르게된다.
지금의한국교회가기능이없는,죽은교회가된것은이속성을버렸기때문이다.
그결과가아무데도쓸데가없어밖에버리워져사람들에게짓밟히는처지가된소금이다.
우리사회는교회에대해냉소적이고반기독교적이다.
반기독교단체까지조직돼있고그활동의내용도대단히치밀하고집요하다.
신학자들과의이론적대결도마다하지않는다.
근자에는교회와신자의숫자도줄고있다.
거기에는분명그렇게될수밖에없는이유가있다는것을알고인정해야한다.
이대로가면소금과빛이될수없다는위기감을함께가져야한다.
교회공동체가딴것이되면구원은없다.
단지인간의인간적집단이될뿐이다.
겉으로는더화려해지지만그속엔아무것도없는껍데기가되는것이다.

지난6월2일,
한국프레스센터에는국내30여개대학교의신학자140명이모였다.
‘성경을통한재정향(再定向-Re-Orientation)’을선언하기위해서다.
그들이주장하는골자는,
‘한국교회는성경으로돌아가거듭나야한다.’는것이다.
‘무엇보다도우리는그동안성경을전체가아닌부분으로읽어왔다.
이같은부분적성경읽기는시대적상황과현실이데올로기에따라성경의읽기범위와
이해의방향을임의로결정하게함으로서성경이시대적상황해석에도구화되는
폐단을낳았다.’
기독교의경전인,유일한기준이되는말씀을성경으로읽은게아니라자기의이기적
필요에의해도구로썼다는얘기다.
보이지않는것을추구해야할교회가보이는것을추구하는변질이생긴원인이그것이며
그대표적인왜곡이교회를덮고있는미신적기복신앙이다.
이것은본질이변한,가장큰왜곡이다.

지금우리사회는전에볼수없었던혼동과혼란속에빠져있다.
가장큰이유는구심점(求心點)이없기때문이다.
중심을잡아줄,’가치관’이상실된것이다.
인성교육(人性敎育)을무시한,입시위주의도구화교육이인격적존재인’사람’을배출
하지못했기때문이다.
분별력의부족은무지에서비롯되는것이다.
하나만알고하나를외치는것과백을알고하나를말하는것은전혀다른것이다.
물이말라그시커먼바닥을드러낸,말라버린강바닥의처참한모습이지금의우리
사회다.
지금과같은혼동과혼란이개선되지못하고계속된다면우리에게희망은없다.
그래서,
지금우리시대,우리사회는교회의긍정적기능을절실하게필요로하고있다.
갈증에고통받는사람들에게생수처럼필요한게그기능이다.
그리고교회공동체는그렇게할수있는내부의힘을가지고있는조직이기도하다.
2000여년동안지속되었다는것은그속에이기능이있었다는결정적증거다.

우선정체성-Identity을찾아야한다.
그근거가성경이다.
자기의탐욕을위해필요한부분을뽑아부풀리는악에서헤어나와야한다.
성경이주시는말씀의전체를읽어야한다.
이일을선도해야할책임이성직자들에게있다.
교회의가장큰문제는성직자들의평균적인수준이사회의평균수준에미치지못하고
있는점이다.
거개가그자질과실력에서평균치미달이다.
이문제의해결보다더시급한것은없다.
지금그들은전혀우리사회의향도(響導-길을인도하는사람)가될수없다.
극소수의우수한성직자들만으로는교회의사명을감당할수가없기때문이다.
다음은,
모든교회는그교인들에게상식(常識)을가르쳐야한다.
지금우리사회는그야말로상식이크게부족하다.
온갖몰상식과무지가생활전반을덮고있다.
인간과인간관계에서,인간과물질의관계에서상식이없다.
학교가상식교육을포기했다면교회가이를맡아야한다.
인간이상식이부족하면축생처럼살게된다.
지금우리사회의일반적인형편이그렇다.

‘너희는세상의소금이요빛이다.’
이게우리의사명이다.
이사명을다하는길은소금이녹아없어지듯,
촛불이자기를태워소모되듯,우리의희생과봉사가있어야한다.
미신적인기복신앙으로는접근자체가안되는세계다.
참신앙은,
소금과촛불이되어자기를세상에내어줄때주께서우리에게가장귀한것으로보상해
주심을믿는것이다.
‘네가오늘나와함께천국에있으리라.’
십자가형틀에달린,회개한강도가들은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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