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似而非.
종교의가장큰적은반종교적세력이아니라’사이비종교’다.
적은그주장이분명하기때문에반론도그만큼구체적이고논리가정연해질수있다.
반대가있음으로서오히려종교자체의체질을더강하게할수있다.
역사적으로도그랬다.
그러나’사이비’는그렇지가않다.
사이비-似而非는겉으로봐서는그것과같아보이지만실제로는전혀다르거나아닌것
을이르는말이다.
겉으로봐서같아보인다는것은그만큼’속임수’가능하고사람들이거기에현혹될수
있다는뜻이다.
사이비종교는그목적에서본래의종교와는사뭇다르다.
건전한종교가’인간구원’을위한것이라면사이비종교는물질이위주다.
여기에인기,명예,부까지따라오기때문에역사상모든종교옆에는언제나사이비
종교가함께존재해왔다.
지금한국종교의사이비성도그맥락에서는같은역사적속성을가지고있다.

기독교의경우,
이사이비성은아주초기에서부터존재했음을복음서의기록으로알수있다.
마태공동체는이문제에대해아주구체적인경고를기록하고있다.
그만큼사이비의문제가심각했었다는얘기다.
같은내용의경고가최초의복음서인마가에는없다.
그것은마가가자기의복음서를만들기위해자료들을수집할때에는이문제가크기
않았던지아니면전혀문제가되지않았을수도있다.
그러나마가를텍스트로하는마태의기록은시기적으로마가보다나중이기때문에
그때에는이문제에대한교회차원에서의경고가필요했다는뜻이된다.
마가를텍스트로한누가에서도형식은주인과종의관계로설정했지만내용에서는
같은경고가말해지고있다.
내용의일상성에서볼때누가쪽이더사실에가까울것이다.

사이비에대한경고는,
마태7:21-23절부분에기록돼있다.
그요지는,
‘나더러주님,주님하고부른다고모두가하늘나라에들어가는것은아니다.
아버지의뜻을실천하는사람들이어야들어갈수있다.
그날에많은사람이
우리가주님의이름으로예언하고,마귀를쫓아내고,많은기적을행했다고말하지만
악을일삼는자들아,
내게서물러가라,나는너희를도무지알지못한다고말할것이다.’이다.
같은내용의병행구는누가13:25-27절에기록돼있다.
따라서사이비문제는,마가는비켜갔지만마태와누가는진지하게취급하고있는것
이며교회가경고를말해야하는수준에있었다는뜻이다.

주님의이름으로예언하고,
주님의이름으로마귀를쫓아내고,
주님의이름으로많은기적을행했다면,이는칭찬받아마땅한일이다.
그런데도주께서는,
‘이악한일을일삼는자들아’하셨다.
여기에서악-惡은,
anomian으로불법(不法),무법(無法)을뜻하는말이다.
마태공동체의입장에서볼때주님의이름을사칭하는그사이비들은교회의원칙,
교회의법을어긴사악한무법자들인것이며예언도,마귀를구축하는일도,기적도
모두가자기들을위한이기적인행위로규정하고있다.
그래서’물러가라’고경고한다.
교회,주님의이름을빙자하지말라는경고다.

다음이,
‘나는너희를도무지알지못한다’이다.
교회공동체는그사이비들을전혀인정할수없다는뜻이다.
같은병행구인누가13:26-27절에는,
자기들을내치는주인에게종들이말한다.
‘저희가먹고마실때에주인님도같이계시지않았읍니까.’
그러나주인은,
‘너희가어디서온사람들인지나는모른다.
악을일삼는자들아물러가라.’
우리가이두부분에서주목할것은마태와누가가똑같이시편6:8절을인용하고
있다는점이다.
이는본래의원형이하나의소스였다는증거다.
마태는예수의말씀으로,
누가는주인과종의관계로각각각색한것이다.

때로는사이비가진짜보다더어필한다.
그만큼진짜처럼보이도록속이는것이고그능란함이사람들을사로잡기때문이다.
마태와누가공동체가이문제를심도있게다루는것은이미그때사이비의세력이
상당한수준에있었다는것을의미한다.
어떤의미에서교회의역사는한편으로사이비의역사이기도하다.
교부(敎父)시대이후,
수많은신학논쟁들은사실상사이비들과의싸움이었다.
가장유명한것이,헬라어알파벳의가장작은글자인’이오타-i’싸움이다.
homousia와homoiusia,이오타i가있고,없고에서그뜻이전혀달라지는문제
때문에정말피나는싸움을했다.
성부와성자의관계에서’동일한본질’과’유사성’의신학논쟁이바로그것이다.

갑바도기아-Cappadocia는,
지금의터키동부의산악지대에위치해있다.
약3백만년전,큰화산폭발과대규모지진으로잿빛응회암(凝灰岩)이이지역을
뒤덮었으며오랜기간을통한풍화작용과침식을거쳐아주특이한암석군이나타나게
되었다.
멀리서보면흡사버섯처럼생긴암석들이그수를셀수도없을만큼많이서있다.
그장관때문에전세게관광객이끊이지않는곳이며정말몇번을가봐도대단한
장관임에틀림이없다.
기원전6세기,이곳은페르시아의지배를받았으며,
기원전190년로마가마그네시아전투에서승리를거둔후11세기까지동로마제국의
보루로서중요한역할을했다.
실크로드의중간거점으로많은대상들의교역로로서크게융성했었다.
성경에서소아시아라고부르는이지역은지금도수천개의동굴교회,주거지,수도원이
그흔적을뚜렷하게남기고있으며예배실로썼던작은방들에는아주원시적인
프레스코벽화들도남아있다.
기독교초기로마의탄압을피해이곳으로온기독교인들이큰집단을이루었었기때문
이다.

첫오순절,성령충만한제자들이여러지방의방언으로예수를증거할때,
그설교를듣는사람들중에갑바도기아에서온사람도있었다.(행2:6-11)
더중요한것은,
인근지역에있는’궤레메’와’데린구유’의지하동굴교회들이다.
최소지하5층까지형성되었을것으로추축되는이곳이현재지하3층까지발굴돼있다.
큰돌로막아놓았던입구를지나안으로들어가면카타콤보다더한미로와수많은
작은공간과무덤들이그엄청난규모를짐작케한다.
계시록의일곱교회와함께소아시아-지금의터키는이방교회가크게융성한초기
기독교지역이기도했으며이곳을징검다리로복음이유럽으로전해진것도사실이다.
지금의터키가아랍국가가아니면서도회교국이된것은역사의아이러니이기도하다.
이스탄불을동서로가르는,좁은보스포러스해협만이그이유를알것이다.

마태와누가가언급하고있는’사이비’가예루살렘을중심으로하는팔레스타인의
형편이라면,
바울의기록은이방교회의’사이비’에대한고발과경고다.
‘어리석도다.갈라디아사람들아.
예수그리스도께서십자가못박히신것이너희눈앞에밝히보이거늘누가너희를
꾀더냐.
너희가이같이어리석으냐.
성령으로시작하였다가이제는육체로마치겠느냐.'(갈.3:1-7)
성령으로시작한믿음이육체로마친다는게무슨뜻일까.
그들이할례를받으려고했기때문이다.
이는근본적인,본질적인변질이라는얘기이며그게그들을꾄,유혹한자들의정체를
알게해주는표현이다.
율법주의자가바로그들인것이다.
성령의역사처럼꾸며보여주지만실은육체의일이도모되고있다는경고다.
사이비는어디에서도사이비이며그사악한기능도마찬가지다.
오직믿음으로의롭게된자들이율법이요구하는할례를받는다는것을바울은결코
용납할수없었다.

지난7월3일오후,
천주교에이어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소속목사들이예배집례때착용하는흰까운을
입고미국산쇠고기고시철회,재협상요구,이명박탄핵이라는정치구호를외치면서
시국기도회를가졌었다.
성직자도공민권을가진시민으로서,개인의정치적입장도가질수있고,그것을말할
수도있고,시위도할수있다.
그러나교회의’성직자’로서는그렇게드러내놓고,예배를빙자한정치적활동은
할수도없고,해서도안된다.
그런데왜실제로그런일이일어났는가.
그들이바로’사이비’이기때문이다.
진정한의미의성직자라면개인의정치적입장,행동과’예배’는분리해야옳다.
그사이비성직자들이지금의개신교를깊이침식하고있는게현실이다.
‘기독교사회주의자’임을자처하는성공회신부도있지않은가.
세상이얼마나못쓰게됐는지를알수있는사례들이다.
변하지말아야할것들이변질된,놀라운세상에우리가살고있다.

사이비교회도,
주님의이름으로예언하고,
주님의이름으로마귀를쫓아내고,
주님의이름으로많은기적을행한다.
그럼에도불구하고주께서는그들을향해
‘악한일을일삼는자들’이라고한다.
가짜이기때문이다.
진짜처럼보이는가짜가그것이다.
자고로가짜가더근사하기때문에사람들이쉽게넘어간다.
그렇다면사이비-진짜같은가짜를식별하는방법은무엇일까.
그런방법은처음부터없다.
자가가안에가지고있는것이많을때,
그리고그것들이온전한것일때느낄수있을뿐이다.
평소성경을찬찬히읽어자기것이되게한사람들은금방사이비를알아볼수있다.
그러나성경은덮어놓고,귀동냥과카타르시스로예수믿는사람들은이구분을
못한다.
광신-狂信도그중하나다.
그래서그끝이’게헨나’인줄도모르고사이비를열심히쫓아간다.
어리석은믿음도처음부터있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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