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무섭다.
얼마전.
사회학분야를전공하는학자들의토론모임이있었다.
그것은이미고유한전통에서크게벗어난현대한국사회의‘공동체적위기’의
핵심적인내용을도출해보려는시도로서의학구적탐구를위한것이었다.
오랜시간저마다발제와설명,그리고진지한토론이있었지만유감스럽게도결론에는
이르지못했다.
결론의학문적도출에실패한것이다.
비로서참가자들은우리가가지고있는‘위기’의깊이가생각보다깊고넓다는것을
실감했고,
그것이어떤간단한도식으로함축할수있는사안이아니라는데의견이모아졌다.
성과가있었다면,
지금우리사회의위기는지금까지우리가가지고있는어떤‘틀’로는정의할수
없다는것이며그것은그만큼심각하고위험한수준에육박해있다는발견이었다.
학자들이이렇다면보통사람들이야더말할것도없겠다.

과거를알아야현재를성찰할수있고내일을예측해낼수있다.
어제와오늘을반드시비교해야하는당위는사실절대적인과제이기도하다.
지금의우리사회공동체는현재만있을뿐과거가희박하고내일은생각지도않는다.
학자들이모여‘위기’의내용을도출해내지못한것은지금의위기가과거와
미래에대해연계성이부족하기때문이다.
역사가중요한것은오늘과내일때문이다.
오늘만있는사회는성숙해질수가없다.
어제라는‘바탕’이없기때문이다.
하나의사회공동체가정상적으로발전해나가기위해서는반드시어제를알아야
하고그바탕에서내일에대한예측을바르게할수있어야한다.
지금은모두가오늘만살것처럼뛰어다니고있다.
무엇때문에바쁜지도모르는채빨리빨리살고있다.
그래서위기는더커지는것이며그것이파악도안된채점점우리의생활을벼랑
으로몰아가고있는것이다.

사람이다른사람을향해‘안녕하세요?’하면그게인사다.
인사는人事다.
사람이마땅히해야하는일이라는뜻이다.
그래서인사는가장기본적인‘사회적인간관계’다.
결국모든사회공동체는사람과사람사이의관계로형성되는조직이기에그렇다.
더부연해설명하자면,
사회는,사람이다른사람을‘배려’하는관계에서출발하는인간조직이다.
배려하고,배려받는관계,그게인사다.
개성적인것과이기적인것이다른게그이유다.
배려의반대가해(害)를입히는것이다.
그래서인간의공동체는이를제어하기위해모두의약속인‘법’을만든것이며
다른사람에게해를끼치는인간에대해법으로제재하게된다.
타인에대한배려가크게정착된사회가선진사회이며,
그반대가후진사회다.
그리고타인에대한배려는강제에우선해서‘교육’으로형성되는문화적인
정서이기도하다.

나는연령적으로어제와오늘을비교할수있는구세대다.
그리고오늘을성찰하면서내일을예측해볼수있는나이이기도하다.
어제는,그게본래우리의모습이기에아주중요하다.
어제를알면오늘의변화가가지는내용이발전인지타락인지가늠할수있다.
그래서이미언급했던얘기를다시하려고한다.
1950년6.25전쟁때,
엄친께서는전투에참가했고,자당과우리삼남매는시골로피난,아무연고도
없는시골농가에얹혀살았다.
큰부락은아니었지만그댁은제법농사가컸고사람들도무던했다.
어느날그집에먼곳에서손님이왔고,
논에서일하고있는주인에게그소식을전하기위해나는뛰어갔었다.
서둘러집에돌아온농부는먼저얼굴과손발을깨끗하게씼은후방에들어가
두루마기까지갖춘한복으로갈아입고사랑으로나갔다.
그다음장면을나는평생잊지못한다.
그렇게강열하게뇌리에각인된것이다.

사랑방에서,
주인과손님은서로마주선후,
정중하게엎드려맞절을했다.
그건정말아름다운장면이었다.
그리고서로가상대방가족에대한안부를물었다.
그손님은집안의혼사문제때문에온것같았으며두사람은오랫동안신중한
자세로얘기를나눴다.
특별히고등교육을받은사람들도아닌,평범한시골의농부들이었지만사람이
사람을대하는기본에서그들은예의(禮儀)가분명했다.
그때의우리사회가그러했기때문이다.
예의가무엇인가.
사회공동체의질서를유지하기위해사람들이함께지켜야할인사-예절이다.
예의는남에게폐(幣)가되거나실례가되지않으려는마음가짐이며자세다.
그래서예의-예절이분명한사회는빈부의문제를떠나모두가‘안정적’으로
살아갈수있다.
상대적인배려가모든사람을감싸안고있기대문에‘불안’이없는것이다.
우리의어제가그러했다.
그래서우리를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고불렀던것이다.

내가자라면서가장많이들었던말은,
‘겁이없다’는것이었다.
실제로,갑자기큰소리가나거나가까이에서무엇이무너지는경우대부분의
사람들은놀래고소리까지지른다.
그럴때,나는이상하리만치침착해지고더냉정해진다.
그건아마도타고난성품일것이다.
그런데,
요지음나는겁이나고,무서운일들을자주만난다.그래서가급적외출을삼가려고한다.
은퇴생활을하기때문에내가싫으면외출을안할수도있다.
현역이었을때는내가싫어도해야할일이있으니피할수없었지만지금은선택
할수있기때문에두려운일들과마주치지않으려는것이다.
내가느끼는두려움,겁나는일들은어떤특정한개인이나조직에대한것이
아니다.
예의가붕괴된자리에독버섯처럼솟아난사람들의‘무례(無禮)함’이그것이다.
함께살고있는사람들의‘사회적분위기’가두렵고무섭다.
너무각박하고,살벌하고,전투적이고,무례하다.
풍선과송곳끝처럼첨예하고,칼끝이부딪히는날카로운소리로가득차있다.

내친구들이자주내게하는말이있다.
‘관찰력이예리하고기록성이뛰어나다’는것이다.
사실내게그런면이있는것이사실이다.
어떤면에서나는‘독서광이자메모광’이기도하다.
메모용카드와필기구는항상지참하고다니는게습관이다.
그리고그게어디든관계없이필요하다면현장에서메모한다.
때문에지금처럼많은글을쓰면서도풍부한자료들을가지고있는것이다.
그렇게기록했던자료중에서이제소개하려는에피소드들은지금의‘위기’를
설명할수있는현실적인방편이될수있을것이다.

우리가살고있는아파트의엘리베이터를이용하면서,
바닥에음식물쓰레기의국물이흘러서보기에도좋지않고고약한냄새를풍기는
경우가잦았다.
그러던어느날현장에서장본인을보게됐다.
젊은주부가들고있는음식물쓰레기그릇에서고약한냄새의국물이계속바닥으로
흘러내렸다.
그런데,본인은완전무표정이었다.
그뻔뻔한얼굴은인간의얼굴이아니었다.
모두가함께쓰는공공재(公共財)를더럽히면서도그게왜잘못인지를모르는,
더불어함께살수없는인간형이그랬다.
얼마나두렵고무서운얼굴인가.
그것은이웃이아니라단지두려운존재일뿐이었다.

대중음식점은대표적인공공의공간이다.
서로가상대방을특히배려해야하는‘식사하는장소’이기도하다.
그런데그리넓지도않은식당안을천방지축으로뛰어다니는애들이있다.
의자에앉아있는사람들을건드리게되고달리다넘어져울기까지한다.
그런데도애들의젊은부모는그망종들을전혀제어하지않는다.
또,어떤아낙들은,
의자위에서책상다리를하고앉는다.
그래서누군가는그더러운발바닥을봐야한다.
그런자세로앉으면반드시누군가는식사하면서그발바닥을보게된다는
사실을모르는것이다.
방석에앉아야하는식당에서,
새일행이들어왔을때멀쩡하게생긴사람들이식탁밑의방석들을꺼내
건너편일행이앉을자리에던져놓는다.
옆에서이미식사하고있는사람들까지그먼지를마셔야하는데그게왜나쁜지를
모르는것이다.
나는정말이런사람들이두렵고무섭다.

어느날아침,
주차공간에서시동을건후밖으로나가기위해출발했지만곧그자리에서고
말았다.
내앞에승용차한대가서있었고운전자는창문을내리고차옆에선사람과
얘기하고있었다.
내생각엔,그리고내기준으로는곧얘기를끝내고그차가출발할줄알았다.
그러나그게아니었다.
얘기는끝없이계속되었고,나는기다릴수밖에없었다.
그들의긴얘기가끝나고차가출발하면서도미안하다는어떤표시도없었다.
뒤에서오래동안기다리는타인의차는안중에없는것이다.
더심한경우는,
자기가편하기위해간선도로의횡단보도에차를세우고볼일보러가는경우도
있다.
어떤경우엔진행하다도로중앙에차를세우고사람이내릴때도있다.
다른차,다른사람을전혀배려하지않는,타인은그안중에도없는이런원시인들이
나는두렵고겁난다.
정말그들은칼을든강도보다더두렵고무서운존재들이다.

병원의환자대기실.
요지음은병원마다경쟁이심해대기실의의자도고급화됐고분위기도좋은
편이다.
그런데몸이아파진찰순서를기다리는대기실에서10분에서20분이상
큰소리로휴대폰통화를하는무지하고무례한사람들이있다.
어떤환자는견디다못해자리를뜨기까지한다.
그통화내용도‘잡담과수다’수준이다.
그런인간들은다른사람들이눈에보이지않는정신적장애가있는사람들
이다.
세상에자기만있다고생각하기때문에그런망종이되는것이다.
모두가자기차례를기다리는긴줄을보면서도새치기하는사람들,
차선을바꾸기위해신호를넣어도절대공간을내주지않는꼬인사람들.
익명성이라는성채뒤에숨어온갖악담을쏟아내는악플들.
실내용슬리퍼를끌고거리로나서는무지하고천박한여자들,그리고그들이
계단에서내는귀를찢는소리들,
모두가함께살수없는,남에게해악을끼치는무섭고두려운반사회적존재들인
것이다.

그런데,
그들한사람,한사람을개인적으로만나보면나쁜사람이거의없다.
착하고,정이많고,이해력도빨라말귀를쉽게알아듣는다.
그렇다면무엇이그들을그렇게못쓰게만들었는가.
사람과사람사이의인사하는법,예의와배려를배워주지않았기때문이다.
대입도구과목인국,영,수에매달려있는동안‘인간’이되기위한도덕,윤리교육을
받지못한것이다.
배우지않았는데어떻게알수있겠는가.
나쁜줄알면서일부러나쁜일을하는사람은없다.
있다면그건범죄자일뿐이다.
더무서운것은,
그들이가정에서키우는다음세대들이다.
십중팔구상황은지금보다더나빠질것이다.
더무섭고두려운사회가될것이며그런사회에서인간이어떻게인간적으로,
인간답게살수있겠는가.
생각하면모골이송연해지는일이다.
지금대한민국의진정한위기가바로그것이다.
경제가아무리발전해도인사-人事가없으면그게정글이다.
과연누가이일을바로잡을것인가.
그래서국가리더십이절실한때가바로지금이다.
이미소는잃었지만다음세대를위해외양간을고쳐야하기때문이다.

2005년통계청자료에의하면,
인구의228%인1.073만여명이불교도이며,
18.3%인863만여명이개신교신자다.
그리고10,9%인515만여명이로마카톨릭이다.
실로전체인구의52%가종교를가지고있는셈이다.
(2005년이후의자료는부풀린부분이많기때문에신뢰할수가없다.)
그종교들이살아있어순기능을했다면지금의우리사회가이지경은되지
않았을것이다.
발복(發福)과기복(祈福),그리고엄격한조직의냉담함으로미신화되고변질
되었기때문에그기능이죽어버린것이다.
짠맛을잃은소금이되어길에버려진채사람들에게짓밟히고있는게지금의
한국종교다.
종교가그본래의순기능을다한다면우리사회는달라질수밖에없다.
‘대자대비’와‘사랑’은곧다른사람에대한‘배려’이기때문이다.
누구보다먼저종교지도자들이대오각성하고회개해야한다.
우리의사회공동체가이대로가서는절대로안되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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