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말-언어는내용의이미지이며생각의상징적기호(記號)이기도하다.
그기호인말-언어는그것이담고있는내용이변질되면함께부패하고타락한다.
본래의자기를상실하는것이다.
특히말-언어는시간의흐름과함께전혀다르게쓰이는속성을가지고있다.
예를들어‘공갈(恐喝)’은,
공포를느끼도록을러메는행위로서,그협박성은형사입건될수있는범죄다.
불과한세대반전만해도그랬다.
그러나지금그말-언어는애들도일상으로쓰고있는전혀다른말이되고말았다.
‘공갈하지마.’
‘그건공갈이야.’할때는공갈은단지‘거짓’이라는뜻으로만쓰인다.
본래‘공갈’이가지고있던공포와협박성의내용이단순한‘거짓’으로대체
되면서다른말-언어가돼버린것이다.
이런사례는우리주위에얼마든지있다.
기독교용어중그본래의의미가변질된대표적인말이‘교회-敎會’다.
그리고그잘못됨이교정되지못한채시일이지나면서이제는전혀딴뜻을
가지는말-언어가되고말았다.
종교용어가변질된다는것은그신앙적인이유때문에도심각한문제가된다.
믿음의내용이본래의것이아닌,딴것이되는것이며이는기독교신앙의
정체성문제이기도하다.
구원과은혜라는대표적용어에대한설명을제대로하는신자는거의없다.
똑같이‘교회’가본래무엇이며지금그것이어떻게변질되었는지를
똑바로알고있는신자도거의없다.
분명한것은변질된내용은잘못된신앙이될수있다는위험성이다.
잘못인도되어딴길로가고있다면그끝은‘구원’이될수없다.
‘교회’라는말-언어도신앙적인내용을담는그릇이다.
그래서그내용도계속해서관찰돼야하고,검증받아야하고,정체성을벗어나지
않도록지켜져야한다.
이건결코쉬운일이아니다.
교회라는용어는,
같은종교를믿는사람들의조직체이며,그집회장소로서예배당,성당이사전적
의미다.
이때의사전-事典은,
사물을나타내는말들을모아일정한순서로배열한후해설을붙인책이다.
말하자면안이아닌‘겉’이기준이되는것이다.
그래서‘교회’도안과밖을한데엮어평면적으로설명하고있다.
‘교회’라는말은,종교로서의기독교라는분류보다더깊은뜻을가지는신앙적
용어다.
신앙생활의시작과끝이이말속에있으며기독교신앙의정체성도이용어속에
함축돼있다.
이중요한말-언어가반드시처음부터가지고있는‘의미’를견지해야하는
이유도바로거기에있다.
이용어는절대로변질되면안된다.
세상천지가다변해도‘교회’는본래의‘교회’로남아있어야한다.
모든크리스챤은실로그교회를통해서자기의신앙생활을영위하기때문이다.
교회이외의것으로신앙생활을한다면그건교회가아니라‘인간적수단’이될
뿐이다.
교회와인간집단은그근본에서같을수가없다.
추구하는것이전혀다르기때문이다.
‘교회’의본래이름은,
에클레시아-ekklesia다.
‘부르심을받은사람들-무리’라는뜻이다.
같은종교를믿는사람들의조직체라는풀이는그래서맞는말이다.
예배당이나성당은부르심을받은사람들이자기들을부르신분을예배하는
‘보이는공간’이다.
집당(堂)자를쓰는이유가그렇다.
그공간은곧‘건물’이며시간과공간을통해건축양식이발전해온것도사실이다.
이세상에서인간의손으로지은최고의건축물은모두가성당이나예배당이다.
대표적인것이바티칸에있는성베드로성당이다.
그러나,그럼에도불구하고‘예배당’은‘교회’가아니다.
교회는처음부터끝까지‘부르심을받은사람들’이다.
교회와예배당만제대로구분해도지금과같은‘변질’은막을수있었을것이다.
공갈이‘거짓’이되듯,
지금‘교회’는부르심을받은사람들은간곳이없고오직‘예배당’만남아
교회의자리를차지하고있다.
그리고모두가그게제대로된일인줄알고있다.
예배당만있는기독교는이미기독교가아니다.
내용이사라진껍데기일뿐이다.
영어알파벳은,
그리스알파벳이그모체이며이는페니키아로까지거슬러올라간다.
이집트의바로들은어려운상형문자로는이방인이나노예들을부리기가어려워
상형문자를간소화했는데이글자들이페니키아인들에게영향을줬다고한다.
최초의문명인수메르의설형문자-쐐기문자는그분류에서전혀다른문자체계다.
지금의영어알퍼벳에는오-O가하나지만,
그리스알파벳에는둘이었다.
지금사용하고있는O는Omicron이며,오메가시계의로고로사용하고있는,
밑변이벌어진오는Omega였다.지금은쓰지않는글자다.
micron의의미는1000만분의1을나타내는최소치의기호이며,
mega는거대(巨大)하다는뜻이다.
최근우리사회에서는‘megachurch’라는말이부정적인뉘앙스를풍기면서
언론에회자되고있다.
2000년기독교역사에서한국의개신교100년은일천하기그지없는기간이다.
그런데도세계적인개신교의‘거대교회’다섯은모두한국서울에있다.
사실놀라운일이아닐수없다.
물량(物量)에서는그어떤나라도한국교회를따라오지못한다.
한국의개신교는세계개신교선교역사상유래가없는,
‘폭발적인발전’을해왔으며그기폭제는모두가아는대로‘심령대부흥회’였다.
결과적인얘기이긴하지만선교방법에서‘심령대부흥회’는한국인의종교심성
(宗敎心性)에딱들어맞는형식이었다.
사실,그건이름만바꾼‘굿’이었다.
이화여대한국학과의최준식교수의얘기를들어보자.
‘한국인들은외국에서종교를받아들일때에도그근본에는무교(巫敎-무당-굿)를
두었다.
그래서외래종교는그전개양상이항상무교와습합되어나타났다.
(습합-習合은,철학,종교등에서서로다른학설이나교리를절충하는것)
그런가하면불교도든,그리스도교도든한국인들이그종교를신봉할때에는매우
타율적이고구복적인신앙으로나타나는데이것도무교와관련이있지않을까
한다.
그중에서도한국의개신교도들은유독열성적인기도와방언이중시되는부흥회
같은집회를좋아하는데이런성향도한국의무교에서발견되는모습과그리
다르지않게보인다.
외국에서들어온종교들이한국고유종교인무교를자기화하려고했지만결과는
반대로자기종교가무교화되는양상을보였다.
예를들어초기개신교의선교사와신도들이무교를주적대상1호로지목하고
그것을정복하려고온갖애를썼지만결과는개신교가무교화되는양상이된게
그것이다.‘
무교-무당-굿을연구해온최교수는한국의개신교가무교-무당-굿으로변했다고
지적하고있는것이다.
1970-80년대는한국이경제적으로‘압축성장’한시기다.
이때의화두는물량-物量이었다.
‘총동원주일’로시작된교회의물량화는‘목회성공’의보이는업적으로이어져
양(量)이질(質)을희석시키는함정에빠졌다.
불과100여년의일천한한국의개신교가세계5대교회를가지게된배경이그렇다.
그리고지금은‘기복-祈福’의바람이거세게불고있다.
‘신년축복대성회-新年祝福大聖會’가대유행이며,
피자집전단과함께그집회광고가가정에까지파고든다.
가히‘종교의상업화시대’가열리고있는것이다.
물론주상품은한국인들이죽고못사는‘福’이다.
교회를‘예수그리스도의몸된교회’라고부른다.
그교회에는변질될수없는몇가지원칙이있는데물론그근거들은모두가
성경에있다.
하나님에대한온전한예배가그하나다.
하나님을,나의모든것을다해사랑하는것이곧예배의본령이다.
다음이예수그리스도의‘말씀’이선포된다.
그말씀을복음이라고부르며케리그마라고도한다.
모두가선포되는그말씀을듣고그말씀대로일상을살아야하는것이다.
그리고교회에는코이노니아-koinonia,즉‘친교-교제’가있어야한다.
장로가자기교회집사를알아보지못하는‘규모’는그래서반교회적이다.
교회는세상에대해빛과소금이돼야한다.
봉사와헌신이그것이다.
인구의20%이상이크리스챤인나라가지금과같은혼란과어려움을겪는다는
것은‘실천하는믿음’이없기때문이다.
성경에는‘행함이없는믿음은그자체가죽은것’이라고했다.
한국의개신교는‘심령대부흥회’를통해교세-敎勢를키울줄만알았지가장
중요한‘신앙의내면화-內面化’에는실패했기때문이다.
신앙은지극히개인적인세계다.
한인간이하나님앞에서바르게살기로신앙적인결단을하는것이다.
그러나물량화,집단화는이귀중한영적세계의구축을가로막고있다.
그래서물량,mega는그자체가반종교적이다.
최근,사랑의교회예배당신축문제가언론을통해큰논란을불러오고있다.
지하철서초역부근에12-13층높이의‘사랑,글로벌미니스트리센터’를
짓는다는것이다.
‘지구적목회센터’를짓는다는계획이다.
부지2278평의구입비1174억원,건축비900여억원등2000여억원을들여
6000석의지하예배당을비롯,체육관,카페,콘서트홀을갖춘다는것이며
등록교인8만,출석교인4만5천의거대교회가새‘공간’을짓겠다는것이다.
‘교회와예배당’에서이루어지는핵심적인종교적행위를‘목회-牧會’라고한다.
다른말로는‘목양-牧羊’이라고도한다.
목자가양떼를돌보는것이목회다.
예수는자기를‘선한목자’로비유하곤했다.
한사람의목자-목사가제대로돌볼수있는양떼는몇마리가적정선일까.
전통적인신학은,가장이상적인숫자를300으로설정하며보조자가있는경우
최대500으로제한한다.
그런데왜유독한국의개신교는거대교회-megachurch를선호하는것일까.
국민성이物量-勢를좋아하기때문이다.
그리고거기에소속되기를희망하고있다.
체육관과카페,그리고콘서트홀은교회와는무관한세상의시설들이다.
그건당연히교회밖에위치해야한다.
언론이한개교회의예배당신축문제를부정적으로거론하는것은,
그기능이죽은거대집단에대한질타인셈이다.
‘내가한말을듣고도실행하지않는사람은모래위에집을짓는어리석은사람과
같다.비가내려큰물이밀려오고또바람이들이치면그집은여지없이무너지고
말것이다.‘-마태7장.
빛과소금의기능이죽은것은그집이무너졌기때문이며그원인은‘행함이없는
믿음‘때문이다.
모래위에지은집이무너지고있는게오늘의현실이며개신교인의감소가그신호다.
이제교회는‘신년대축복성회’가유행하는기복-祈福의전당으로전락해가고있다.
‘축복’이라는상품만이고객을유치할수있기때문이다.
‘샬르트성바오로수녀회’는1888년7월한국에진출한,
국내에서가장역사가오래된천주교수녀회다.
지난2월2일,명동성당에서는12명의새수녀들이종신서원(終身誓願)하는감사
미사가있었다.
황인국몬시뇰이이들에게묻는다.
‘여러분은지상의모든재물을포기하고가난하신그리스도를따르며물질적재산을
공유할뿐아니라형제적사랑과사도적생활에서도같은정신으로살기를원합니까?‘
종신서원자12명은한목소리로
‘예,원합니다.’하고대답했다.
그들은몬시뇰의말씀처럼부자예수가아니라가난한예수에게자기의일생을헌신
하는서원을했다.
가난한예수는스스로‘머리둘곳도없다’고했다.
청빈(淸貧)인것이다.
진정그를신앙고백하고따르는사람이라면物量-勢와는무관하게살아야한다.
megachurch는‘인간의인간집단’이지예수그리스도의몸된교회는될수없다.
그안에예수가없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