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낙엽 안되기.
마른낙엽은산들바람에도날아가지만,
젖은낙엽은그게어디든한번들러붙으면좀처럼떨어지지않는다.
그래서웬만한빗자루로는쓸어내지못한다.
일본의주부들은직장에서정년퇴직한후집에죽치고들어앉는남편들을’젖은낙엽’
이라고부른다.
그의미에서이명칭은대단히부정적이다.
쓸어내고싶기는한데,도무지착달라붙어떨어지지않는존재,그러니까그만큼
부담스러운존재라는얘기다.
그렇다면젖은낙엽인남편쪽은어떤가.
괴롭기는그쪽도마찬가지다.
얼마전,
고위공직에서정년퇴직한인사한분이에세이쓴것을읽어본일이있다.
정년퇴직하고집에들어앉으니하루아침에갈곳도없고,전화오는것도없고,찾아
오는사람도없다.
식구들도자기를대하는태도가전같지않고부담스러워하는눈치다.
그래서스스로좌절감을느끼며지난세월이허망하다는생각을하게되니우울증
까지생긴다는것이다.

사실,젖은낙엽문제는일본만의일은아니다.
사정은그쪽이나이쪽이나매한가지다.
최근들어친구들집을다녀올때마다안사람들의표정과태도가전같지않다는것을
느껴왔고,’황혼이혼’이결코먼나라얘기가아닐수도있다는생각을했다.
가정주부나자녀들의경우남편과아버지는아침에나갔다저녁에돌아오는존재다.
남편이출근하고,애들학교보낸후주부들에게는소중한’자기만의시간’이있다.
평생을그렇게살아왔는데어느날갑자기남편이하루종일집에있는’낯선상황’이
시작된것이다.
서로가준비가없었다면이건사실보통일이아닌것이다.
게다가하루세끼식사준비해야하고잔소리까지듣게된다면미상불일은나쁜쪽으로
급속히발전할수밖에없다.
집에함께사는성장한자녀들에게도같은상황이되는것이다.
생활패턴의근본적인변화는그래서반드시사전준비가있어야한다.
그래야모두가부드럽게적응할수있다.

이미은퇴한사람들은더말할것도없고,
지금현역에있는거의대부분의남자들도’젖은낙엽’후보생들이다.
예외는극소수일것이고거개는비슷한문제와맞딱뜨리게된다.
일이그지경이된다음에는수습이어려워지기때문에미리미리그’변화’에
적응하는준비와훈련이필요하다.
우리부부의경우,
‘젖은낙엽’은없다.
아내도,나도24시간이모자랄정도로규칙적이지만바쁘게살기때문이다.
그리고시간적,공간적구획이뚜렷하기때문에상대적으로서로가’짐’이되지
않으며피차’간섭’할이유도없게된다.
젖은낙엽이안되는처방은사람마다다를것이다.
그리고그게옳다.
똑같이나는나대로내생각을얘기하는것이기때문에상대적인것이다.
여러대안중하나일뿐이지만그래도10여년의은퇴생활에서터득한경험과지혜는
있는것이니처방전하나끊는다고나무랄사람은없을것이다.
그저참고하면되는것이다.
‘선병자의원’이라고하지않는가.

무엇보다중요한것은,
자기의현실적’처지’를인정하는것이다.
그래서’어제’와는단절해야한다.
(나는정년퇴직하는날,휴대폰을쓰레기통에던져버렷다.그리고지금까지전혀
불편없이살고있다.단절은그정도로과격해야한다.)
지금의자기가누군지를제대로알면일은다풀린것이나마찬가지다.
그게어렵기때문에계속문제가생기고있다.
다음은,
공간에서구획돼야한다.
아무리부부라도하루종일같은공간에있다는것은사람을지치게한다.
그래서’서재’는필수중필수다.
그크기와형태에관계없이자기만의’공간’이확보돼야비로서자기생활이가능하다.
그서재에는,
자기전용의텔레비전,컴퓨터세트,오디오세트,전화기가반드시갖추어져있어야한다.
한지붕아래에는있지만’보이지않는시간’이꼭필요하기때문이다.
보이지않는시간이있어야’소중’해지는법이다.
서재의문을닫고자기일에몰입할수있다면결코젖은낙엽은되지않는다.
오히려더발전하고성숙해지는생활이있을뿐이다.

평생직장생활을한다는것은책상에서일했다는의미가일차적이다.
그런데놀라운것은집에자기책상이없는사람들이뜻밖에많다는사실이다.
가정주부로서자기책상이없는사람은더많다.
사람이’자기책상’을가진다는것은자기일을하고있다는살아있는증거다.
서재는공간개념이우선이지만,
책상은’학습개념’이우선이다.
공부가무엇인가,
계속해서배우는것이다.
은퇴후의공부가사실은진짜공부다.
자기가좋아하는분야,늘연구하고싶었던분야,흥미를느끼고있던분야에대해
관련서적을구입하고컴퓨터로자료들을검색하고,그내용들을글로정리해보는
일련의정신작업은사람을언제나젊게살게한다.
나처럼악기를좋아하는사람은자연히서양음악사와문화사를공부하게되고
‘음악’자체에대해서도심도있는공부를하게된다.
새로운것을알게되고깨달아가는과정의즐거움은그어느것과도비교할수없다.
자기일이있으면식구들도남편과아버지를대하는태도가달라진다.

젖은낙엽이안된는또하나의조건은,
‘건강’해야한다.
병들면본인도괴롭고,아내와식구들까지고통스러워진다.
큰’짐’이되는것이다.
‘긴병에효자없다’는격언은진실이다.
부부지간이라해도마찬가지다.
간병은사람을지치게하고그기간이길어지면남이된다.
부부야본래부터가혈육이아닌,무촌의남남이아닌가.
건강은전적으로자기의책임이다.
그리고건강관리는건강할때시작해야한다.
대표적인것이자기에게알맞은운동을지속적으로하는것이다.
나는단연코걷기운동을권한다.
정말걷기운동보다좋은건없다.
문제는걷기운동은’다리’가하는것이아니라’의지’로한다는점이다.
그걸이해해야한다.
‘산책’이걷기운동인줄로착가하는사람들이뜻밖에많다.
나는14년동안목동아파트에살면서13층까지매일,반드시계단으로걸어서
올라갔다.
자동차가많이다니는길옆보도에서조깅하고,탁한공기로가득찬실내체육시설
에서운동하는무지하고우매한일은당장그만둬야한다.
그건오히려건강을망치는일이다.

나이들어자기가쓸용돈조달을스스로못하면진짜젖은낙엽이된다.
사실사람이나이가많아지면돈쓸일도줄어든다.
웬만한건거의장만되었기때문에돈쓸일도별로없다.
그래도자기용돈은자기가조달하는구체적방법은강구해놓아야한다.
사람은경제에서독립하지못하면모든일에서’종속적’이된다.
가족도마찬가지다.
지갑에서돈이나갈수있어야대우를받는게현실이다.
따라서수입이있을때’노후의용돈’을적립해야한다.
내경우,제일큰지출이책값이다.
그리고영화DVD,약간의음반이전부다.
그래도그비용을스스로조달할수있기때문에물리적으로,정신적으로
‘독립적’이다.
그만큼떳떳하게사는것이다.
어영부영하다세월다지나가고정년이되어빈손들고소파에앉으면그게바로
‘젖은낙엽’이아니고무엇인가.
그누구라도이문제만은깊이생각하고미리미리철저히준비해야한다.
지금은기대수명이길어져서은퇴하고도30여년을더살아야하는세상이다.

어떤남자,남편이가장환영받을까.
그게’요리하는남자’다.
가족뿐아니라주변에서도긍정적으로평가한다.
‘젖은낙엽’때문에동창들모임에도전처럼자주나가지못하고,하루세끼식사준비를
해야한다면불평안할주부가없다.
만약동창회에서,또는다른모임과외출에서늦어져도식사준비걱정을안할수
있다면그게어떤아내이든남편에대해고맙게생각할수밖에없다.
나는은퇴한후아내를부엌에서자유케하기로결심했다.
지금나는적어도10가지이상의반찬에서는프로수준이다.
‘밥’은누구보다도맛있게짓는다.
매주토요일이면수퍼에서일주일분의장을직접봐온다.
이제는더신선한물건을고르는안목까지생겼다.
아내는내게수십권의요리책을물려줬지만내가유용하게쓰는요리책은
한복려씨의레시피들이다.
다음이김수미씨의’전라도음식’.
이두분의레시피만있으면사실천하무적이다.
그리고내요리를먹어본모든사람들이똑같이하는말이있다.
‘손맛이좋다.’

이렇게적어놓고보면쉬운게하나도없다.
그래서가족들의도움이필요해진다.
특히아내들의노력은절실한것이다.
부부가함께공개적으로이문제에대해얘기할수있는분위기가되어야한다.
외면하거나회피한다고해결될일이아니기때문이다.
그중에서도’서재’의준비는아주중요하다.
고등교육까지받은사람들도서재가없는경우는허다하다.
정말이해하기어려운일이다.
한인간이자기의’서재’만가질수있다면그일상은전혀다른것이될수있다.
돈이많은것과제대로된서재를마련하는일은전혀다른문제다.
거기에는의지,결단,안목,수준,선험학습,학문에대한열정,연구하는자세등이
갖추어져있어야하기때문이다.
제대로된서재만있으면절대로’젖은낙엽’은되지않는다.
개인적으로권하고싶은것은그게무엇이든악기를하나배우라고말하고싶다.
그건전혀다른세계의문을여는일이며한번도맛보지못한’즐거움’을만나는
길이기도하다.
그게어떤분야든,가장즐기는것은언제나’아마추어들’이다.

하루종일소파에앉아리모콘을들고있는아버지와
식사후자기서재에들어가자기일에열중하는아버지는같을수가없다.
시간과공간에서’자기것’을가진아버지는결코식구들의젖은낙엽이되지않는다.
그리고아내를포함,식구들의식탁을손수준비하는남편과아버지라면그건
젖은낙엽이아니라집안에생기를불어넣는상록수인것이다.
결국,모두가자기하기나름이다.
그래서그렇게할수있는조건들을미리미리갖추라는것이다.
내가제안한것들은지극히협소한것일수있다.
그러나그것이’경험’에서나온얘기인것만은인정해야한다.
다른한가지는나는지금의내노후생활에대해만족하고감사하는마음을가지고
있다는점이다.
그건저절로주어지는것은아니다.
그만큼준비하고노력한대가인것이다.
늘감사하는것은아직도’호기심’에서는변한게없다는점이다.
호기심은인간을앞으로밀어주는놀라운힘이있다.
호기심이없다면그건나이와관계없이이미’젖은낙엽’이됐다는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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