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의 인재등용, 즉 관리를 선발하는 기준은 身,言,書,判 이었다.
身은 용모와 풍채를 뜻한다.
용모는 글자그대로 사람의 얼굴모습이다.
얼굴이 추하거나 지나치게 못생겨도 결격이었다.
풍채는 드러나 보이는 사람의 겉모양이다.
그 겉모습이 준수해야 했으며 장애는 처음부터 배제됐다.
다음이 言, 말씨와 언변이다.
말씨는 말하는 버릇과 태도이며
언변은 구변이라고도 하며 사람들 앞에서 말을 막힘없이 잘 하는 능력이다.
書는 글재주와 글씨를 쓰는 솜씨다.
글재주는 문장력, 즉 표현능력이며 글씨쓰는 솜씨는 지필묵으로 단련된 한문의
쓰기능력이다.
관리가 되기위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능들 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기능은 서책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마지막이 判,
사물에 대한 정확하고 예리한 판단능력이다.
판단력은 사물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능력이며 이는 분명한 기준과 근거로 시비를
가리는 능력이기도 하다.
사또가 되어 동헌에 높이앉아 백성들의 시시비비를 가려야하는 막중한 책무를
감안할 때 判은 가장 중요한 관리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관리가 되어 나라와 백성을 위해 일할 때 핵심적인 기능은 書와 判이다.
그런데도 우선순위에서는
身과 言이 앞서있는 것은 ‘안’ 보다는 ‘겉’을 더 중요시 하는 가치관 때문이다.
身과 言이 부족해도 書와 判에서 우수하다면 문제가 없다.
겉을 먼저 취하는 것,
겉을 안보다 더중요시 하는 이 왜곡된 정서는 이미 선대에서부터 우리의 국민적
정서속에 녹아있는 전통이기도 하다.
지금의 우리사회가 실력보다는 ‘간판’을 우선시 하는 잘못된 가치관의 뿌리가
그러하다.
그만큼 고치기가 어려운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
인간이 그 기본적인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물리적 조건이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그것을 ‘衣,食,住’ 라고 표현한다.
옷과 음식과 주택이 그것이다.
이 순서는 현실적으로 잘못돼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먹는것-음식-식량’ 이다.
그게 무엇보다 중요한 생존조건이다.
그런데도 衣가 제일앞에 나와 있는 것은 ‘옷이 날개’ 이기 때문이다.
겉모습이 가장 중요하다는 가치관의 표현이다.
이 순서를 현실에 맞게 조정한다면,
‘食,住,衣’ 가 돼야한다.
먼저 먹을것과 거처가 있고 그다음이 옷이다.
그게 현실적이고 실리가있는 순서다.
왜 衣, 옷-겉치레가 앞서있을까.
체면문화-體面文化-가 그것이다.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가가 내가 누구인가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
이다.
정말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양반은 얼어죽어도 겻불은 쬐지 않는다’ 라는 말이있다.
체면문화의 가장 극단적인 표현일 것이다.
양반(兩班)은 조선시대 문반(文班)과 무반(武班)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사족(士族)
전체를 그렇게 불렀다.
말하자면 그 시대의 귀족인 것이다.
겻불은 겨를태우는 것이며 겨는 벼,보리,조같은 곡식을 찧어 벗겨낸 껍질을 뜻한다.
겻불은 상것들이 쪼이는 것이며 사대부-양반은 숯불을 쪼여야 체면이 선다는 의미다.
체면은 남들을 대하는 관계에서
자기의 입장이나 지위로 보아 지켜야 되는 위신이다.
겻불을 쬐고 추위를 이겨 살아남는것과 양반이어서 겻불을 멀리하고 얼어죽는것중
어느것이 더 실리적일까.
항차 겻불이 뭐길레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가.
잘못되고 왜곡된 가치관은 인간의 생명까지도 앗아갈수 있는 독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의 대표적인 국민정서는 예나 다름없이 외화내빈(外華內貧)이다.
화려한 겉치레와 빈약한 속이 그것이며 대표적인 표현의 하나가 ‘속빈강정’이다.
강정은 한과의 하나로 찹쌀을 기름에 튀긴 유과인데 기름에 튀길 때 부푸러 오르면서
속이 비게된다.
속빈강정이란 실속은 없이 겉만 그럴듯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금을 기준한다면,
백만백수가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겉은 곧 ‘간판’ 이다.
실력과수준은 어찌됐든 ‘대학졸업’ 이라는 간판이 중요하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원칙까지 뛰어넘는 왜곡된 발상이 비약된 것이다.
지금도 백수는 해마다 끊임없이 양산되고 있으며 그들 대부분은 다시 늙은부모를
파먹는 캥거루족이 되고 있으며 가치관을 바꾸지 않는한 5포자가 되어 백수로
늙을 것이다.
‘체면이 먹여살리지 못한다’ 는 간단한 원리를 모르기 때문에 치르는 가혹한 대가다.
나는 미국인들과 10여년, 일본인들과 다시 10여년 도합 20여년을 그들과 같은
사무실에서 일해본 특이한 경험이 있다.
서양인과 동양인 이라는 차이는 있었지만 근본에서 그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체면이 아니라 실리를 챙기는 지혜다.
우리에게는 학력과 직급, 월급의 액수가 중요하지만 그들은 자기일에 대한 세계적
수준의 전문성과 근로의 내용과 강도가 먼저였다.
그들에게는 ‘간판’은 통하지 않는다.
어떤경우에도 최종평가는 전문성과 실력, 그리고 효율이었다.
우리는 출근해서 신문보고, 차 마시고 잡담하면서 10시간 넘게 일하지만 그들은
외부의 사적인 전화는 받지도 않고 7시간 일하고 칼퇴근한다.
그래도 일의 생산성에서 우리는 그들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 차이의 뿌리는 身,言,書,判 과 外華內貧 에 있다고 생각한다.
선진국과 일류국가는 선천적 외모보다는 후천적 전문성과 실력이 평가받기 때문에
앞서는 것이다.
우리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알게해 주는 대목이다.
우리가 이 약점을 극복하지 않는한 선진국 진입은 어렵다고 판단된다.
취업포털 ‘사람인’ 이 지난 5월 구직자 334명을 대상으로
‘구직자 취업준비 비용’을 조사한결과 이들이 1년여간 취업준비 과정에서 평균
528만원을 쓰고 있었다.
이제 그돈의 사용비율을 분석해 보면,
자기소개서 24만원,
면접 56만원,
자격증취득 84만원,
어학시험 86만원,
외모관리 278만원 이었다.
가장큰 비용이 소요되는 외모관리는,
옷 구입비, 운동등 몸매관리, 헤어 메이크업, 피부관리, 치아교정, 이미지컨설팅 등
이다.
놀랍게도 身이 먼저다.
지금도 여전한 외모우선, 외모집착증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수 없다.
외모능력주의는 병리적인 현상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다른 능력과 기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외모가 떨어지면 본연의
능력과 기능이 제대로 평가받기 어렵다.
OECD국가중 성형수술이 1위인 이유도 그것이다.
외모능력주의, 외모집착증이 심화되고있는 방증이기도 하다.
정말 깊이 우려해야할 현상이다.
하나의 사회공동체는 ‘집’ 으로 비유할수 있다.
잘 지은 집 한 채가 있다.
한눈에 봐도 돈이 들어간, 값비싼주택임을 알 수 있다.
그 겉모습은 아주 아름답고 색조도 뛰어나다.
안에는 값비싼 가재도구들로 채워져 있으며 살고있는 사람들도 혈색이 좋다.
그러나 이 집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숨겨져있다.
그게 안보이는 기초공사다.
기초공사가 부실하다는 것은 깊이가 설계보다 얕고 철근의 규격과 양이 부족하고,
자갈과 시멘트의 혼합비율도 속임수 때문에 강도가 떨어진다.
부실한 기초위에 세워진 이 집은 기후변화에 따르는 환경요인에 견디지 못한다.
처음에는 벽이 갈라지고, 다음은 집이 기울고 결국엔 무너질 수밖에 없다.
결정적인 ‘외화내빈’ 의 케이스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길은 겉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안을 다지는 것이며 명분이 아니라
실리를 챙기는 지혜다.
결국 가치관의 문제인 것이다.
왜곡된 가치관이 현대생활에 맞게 변해야 한다.
이 문제는 올바른 교육이 아니고는 바로잡지 못한다.
붕괴된 공교육을 살려야 하는 다급한 이유가 그것이다.
첩경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감옥은 생각의 감옥이다.-yoro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