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사람의 수명이 획기적으로 길어지면서 인구의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섭생, 위생, 의료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긍정적 결과이기도 하다.
내가 어렸을때인 1940-50년대에는 환갑도 아주 드물었다.
그만큼 평균수명이 짧았다.
그때 집안에 ‘환갑잔치’ 가 있다는 것은 정말 대한한 경사였다.
온동네가 며칠씩 잔치를 하곤했다.
통계청이 지난 7월25일에 발표한 내용을 보면,
65세이상 인구가 662만 4000여명으로 전체인구의 13.1%에 해당된다.
1990년에는 5.1%, 2000년에는 7.2%, 2010년에는 11%였다.
90대의 노인들도 15만7000여명으로
2010년에 비해 67.6%나 급증했으며
100세 이상의 노인도 3.159명이나 된다.
전체인구에서 고령자의 비율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는 수치들이다.

우리사회에서 ‘노인문제’ 는 이제 눈앞에 다가온 현실적 숙제가 됐다.
이 문제는 사람에 따라 객관적일수도 있고 당사자가 될수도 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사람은 그 누구라고 반드시 늙는다는 사실이다.
아무도 그 거대한 섭리를 거역하지 못한다.
때문에 엄격히 말하면 노인문제 앞에서는 모두가 당사자가 되는 것이다.
오늘이 지나 내일이 되면 바로 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노인에 대한 정의도,
노인들을 위한 복지제도의 개선도,
그리고 그복지의 현실적 실행도,
모두가 당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되는 이유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우리는 아직도 노인복지에서는 후진국 수준이다.
은퇴노인들의 절반이상이 빈곤층으로 추락하고 독거노인의 70%가 정부의 기초적인
보조가 없으면 생존할 수가 없다.
노인빈곤율, 노인자살율에서 0ECD회원국가중 우리가 가장 높다.
시급히 어떤 대책이 있어야 하는 소이이다.

일차적으로 노인문제는 ‘가족문제’ 로 압축될 수밖에 없다.
더 구체적 으로는 부모와 자식의 문제가 된다.
시대가 변해서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어났다면 사는 방법도 바뀌어야 하는건 당연
하다.
나이든 부모가 은퇴후 건전하고 건강하게 노후를 살기 위해서는 우선 가족-자식들이
상당한 역할을 해야한다.
그 첫째가 부모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장성한 자식들이 빨리 독립해서 사는것도 하나의 방법이며,
뭔가 일을 벌려놓고 부모에게 손 내미는 일도 없어야 한다.
겨우 근근히 어렵게 준비한 노후 자금을 자기사업에 끌어다 쓰면서 날려버리거나,
노구를 의지하고 사는 부모의 집을 담보나 보증으로 사용, 차압당해 노부모를
길바닥에 나 앉게하는 불효도 비일비재하다.
상당액이 요구되는 결혼비용도 스스로 조달하거나 간소하게 치러 부모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
결국 경제적으로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 사실은 이게 가장큰 효도일 것이다.
젊은이들은 다시 돈을 벌수있지만,
나이든 부모는 한번 잃으면 보충할 길이없으며 그노후는 악몽이 되는 것이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게 무슨소린지 모른다.

지금 우리사회가 가지고있는 노후자금의 대표적 방법이 ‘국민연금’ 이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국민연금은 퇴직하고도 한참지나야 받을수 있으며
그 액수도 일상을 살기에는 크게 부족하다.
은퇴노인들의 절반이 빈곤층이 되는것도,
독거노인의 70%가 정부지원 없이는 생존할수 없는것도 ‘노인복지’ 의 빈곤 때문이다.
지금의 노년층은 한강의기적이라 불리는 산업화시대의 주역들이다.
그들이 흘린 땀과 노력에대한 보상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수준이다.
노인복지는 결국 모든국민이 받아야 하는 보편적 혜택이 돼야한다.
따라서 그런개념으로 ‘노인복지’ 가 계획돼야하고 맞춤형으로 발전해야 한다.
상당수 노인들이 퇴직과함께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나라가 선진국이 될수는 없다.
노후가 불안한 국민이 행복할리도 없다.
이제 우리모두는 지혜를 모아 가장 효율적인 ‘노인복지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국회가 해야할 중요한 기본임무중 하나이기도 하다.

세상이 변하면서 크게 훼손된것중 하나가 부모자식간의 관계다.
삼대가 한집에 살던 시대에서 1인가구가 2인가구를 앞지르는 세상으로 변했다.
드디어 ‘효도계약서’ 라는게 등장했다.
부모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조건으로 정기적으로 부모를 방문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은행 상속증여센터에 의하면,
금년 상반기중 이런 효도계약서가 32건이나 작성됐다고 한다.
효도(孝道)는 부모를 잘 섬기는 도리다.
자식이 그 어버이를 정성껏 잘 섬긴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효도를 ‘효도계약서’로 강제할수 있을까.
강제된 효도를 효도라고 할수 있을까.
세상이 살벌하게 변한 것이다.
부모-자식간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자발적이고 정이 담겨있어야 한다.
우리가 끝까지 상식적이고 건전한 인간으로 남아있기 위해서는 부모,자식이라는
천륜(天倫-부자, 형제사이에 마땅히 지켜야할 떳떳한 도리)에서 벗어나면 안된다.
그게 하늘이 정해준 인간의 길이다.

모든 대인관계에서도 기술이 필요하듯 부모를 섬기는 일에도 상당한 기술이 있어야
한다.
자주 찾아뵙지 못해도 이 기술이 있으면 자주 찾아가는 것 이상의 효과를 얻을수
있다.
그 첫째가 전화하기다.
일주일에 한번, 혹은 이주에 한번이라도 정기적으로 문안전화를 드리면 모든 노인
들은 자식이 아주 가까이에 있는 것으로 느낀다.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큰 효과를 얻는 기술이다.
다음이 방문하는 일이다.
월1회정도가 가장 이상적 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울수도 있다.
최소한 모든 명절에는 반드시 방문해야 하며 분기별로도 찾아뵈야 한다.
또 하나는 선물하는 기술이다.
부모를 위해 음식을 장만하기도 하고 모시고 나가 외식도 한다.
건강식품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으며 비타민등의 의약품도 있고 효도여행도 있다.
그러나, 단언컨대 부모-노인들이 가장 기뻐하는 선물은 ‘현찰’ 이다.
절대로 잊으면 안되는 최고의 기술이다.
두툼한 ‘금일봉’을 능가하는 선물은 달리없다.

노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게 ‘건강’ 이다.
오복의 하나가 고종명(考終命)이다.
제명대로 살다가 제집에서 편히 죽는 것이다.
중환자실에서 주사바늘을 주렁주렁 달고있는 식물인간이 안 되려면 건강해야한다.
그 건강은 노인이 되면 자식들이 더 살피고 챙겨야 한다.
갑자기 말수가 적어지지 않았는가.
전과달리 집안에 먼지가 많아지지 않았는가.
옷입는 매무세가 흐트러지지 않았는가.
TV볼륨이 너무 커지지 않았는가.
자주 휘청거리고 앉고 일어서기에 힘들어 하지않는가.
음식을 씹는시간이 너무 길어지지 않았는가.
모두가 중요한 체크포인트들이다.
가장 나쁜 것은,
늙은 부모에게 애를 보게하는 일이다.
나이많은 사람에게 애 보는일은 벅찬노동이다.
빨리늙고 병들고 일찍죽게된다.
아마도 이보다 더 큰 불효는 달리없을 것이다.
애를 봐 달라는 자식이나 애를 봐주는 부모나 크게 어리석기는 마찬가지다.

생각이 있는 자식이라면 반드시 부모의 장례를 미리 준비해야 옳다.
상조회에 가입하는 것은 기본이고 장례방법도 미리 부모와 상의해야 한다.
매장할것인가, 화장할것인가 아니면 자연장을 할것인가등 그 방법에 대해 부모의
뜻을 알아두어야 한다.
일을 당해 당황하기보다는 장례식장도 미리 알아보고 연락해야할 사람들의
명단과 전화번호도 미리 작성해 두는게 좋다.
또 하나는 부모가 상배하는 경우다.
아버지나 어머니 어느 한쪽이 먼저 돌아가시면 남는 부모에 대해서는 상당히
구체적이고 세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상배하는 경우 40%이상의 노인들이 짧은기간내에 사망한다.
따라서 가까이에서 자세히 관찰하면서 수발을 들어야 한다.
부모를 ‘독거노인’ 이 되게하고 임종도 못한채 죽게한다면 이는 천벌을 받아
마땅한 죄임을 알아야 한다.
그 죄는 하늘이 용서하지 않는다.

시대가 변했으니 부모와 자식사이의 관계도 그 형식에서 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본질과 핵심은 변하면 안된다.
혈육이 그것이며 부모와 자식이라는 천륜이 그것이다.
인간이 축생이 아닌 인격적존재인 이유가 그안에 있다.
고려장(高麗葬) 이라는게 있다.
늙고 쇠약한 부모를 산에 버리는 옛장례풍습니다.
늙은모친을 산에 버리고 돌아서는데 같이갔던 아들이 지게를 챙긴다.
-그건 버리고가지 왜 챙기냐,
-가지고 갔다 이담에 써야죠.
그 말에 화들짝 놀랜자식이 모친을 다시 집으로 모시고왔다는 설화가 있다.
애들은 말은 안 들어도 행동은 닮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자기 부모가 어떻게 하는지를 지켜보는게 애들이고
그대로 반복되는게 세상의 이치다.
그래서 세상이 공평하다고 말해진다.
바야흐로 노인을위한 나라를 만들때가 되었다.

거짓사랑은 혀 끝에 있고 참사랑은 손 끝에 있다.-yoro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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