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종교-宗敎라는말은,
근본(根本)을가르친다는뜻을함축하고있다.
근본은뿌리,기초,바탕을이르는말이다.
예를들어,대단히잘설계되고시공된아름다운건물이있다고하자.
그건물이아름다운모습을가지고땅위에세워져있는것은그건물의바탕,
즉보이지않는부분의‘기초’가떠받치고있기때문이다.
더구나그기초가아주튼튼하기때문에아름다운건물은가장안정적으로땅위에
서있는것이다.
만약그기초가부실하거나보이지않는땅밑에있기를거부하고자기를드러내기
위해땅밖으로나오려한다면그아름다운건물은곧금이가고,기울어지고,결국은
무너지고만다.
근본이되는기초는그정위치가변함없이보이지않는땅속이다.
그기초가제자리에서제몫을다할때아름다운건물도제몫을할수있다.
이러한이치를가르치는곳이바로교회다.
교회는현란하고가변적인세속적사안이아닌‘기초’라는근본에대해서만
가르쳐야하기때문이다.

동서고금을막론하고‘종교의기능’은변한게없다.
보이는세계에서보이지않는뿌리와기초로서의‘선한기능’이바로그것이다.
이기능은기독교로좁혀도마찬가지이며교회의순기능역시‘기초’의문제임은
더말할것도없다.
‘기초’는보이지않는곳에위치한다.
집을짓기위해먼저땅을깊이파고모래와자갈,그리고시멘트와철근등으로기초
공사부터하는것은그기초가없이는어떤건물도지을수없기때문이다.
기초는그렇게중요한제1차적인의미를가진다.
‘종교’가근본을가르치는것이라면모든종교인-신앙인은‘기초’의자리에
있어야하는대상이다.
스스로‘기초’이기를거부한다면,보이지않는곳에서의기능이아니라자기를
드러내려는‘탐욕’이앞선다면그사람은이미신앙인이아니다.
거짓종교인인것이다.
지금의기독교-개신교-교회가‘개독교’라는욕을먹고있는것은기초의정위치를
떠나세속화됐기때문이다.
‘가치를지키는집단’에서‘값을추구하는집단’으로의변질이일어난것이다.
가장큰이유는그내부가부패했기때문이다.

해마다‘부활절연합예배’행사가있다.
특히2006년부터는한기총과교회협의회가합동으로이를추진하고있으며
새벽시간수만명이한곳에모여예배를드린다.
2007년7월8일,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열린‘2007한국교회대부흥기념대회’는10만명이운집
했다.
2010년6월22일,
같은장소에서‘6.25기념평화의기도회’가7만명이모인가운데미국의부시
전대통령까지참석했다.
어떤개교회는잠실체육관에서수만명이모여‘창립기념집회’를가지기도했다.
국내28개장로교단은‘장로교의날’을선포하기위해3.7000여교회,
9백10만명의교인들이7월10일장충체육관특설무대에모이라고광고하고있다.
왜이렇게거대한‘집회-군중’이필요한것인가.
그건한마디로‘세-勢’를과시하기위해서다.
그리고더깊은이유는이러한규모-물량-세를통해‘사람들’에게서인정받으려고
하기때문이다.
유명해지고,메스컴타고,인기를얻게되니세속적성공은떼논당상이나마찬가지다.
오늘날교회의대표적인변질과부패가바로여기에있다.
종교가인간에게인정받으려고하는것이다.

사람들은예수에게물어봤다.
‘모든계명중에어느것이첫째가는계명입니까.’
가장큰계명,가장중요한계명을가려내고싶은마음은‘신앙내용’의단순화가
요구되기때문이다.
그게보통사람들의바램이기도하다.
이질문에대한예수의대답은‘새것’이아니었다.
이미주어진것을떠올리게했을뿐이다.
그게Shema다.
유대인의신앙고백이며의미는‘너희는들으라’다.
신명기6장에있는말씀으로‘네모든것을다해네하나님을사랑하라’는것이다.
그게이미주어진가장큰계명이라고했다.
다음은레위기19장에있는말씀으로,
‘네이웃을네몸과같이사랑하라’는것이다.
그리고단정적인결론을내린다.
‘이두계명보다더큰계명은없다.’
하나님을사랑하는것은그분을진심으로경외하고믿는다는뜻이다.
어떤인간도먼저하나님을사랑하고,그분에대한신앙심없이이웃을아가페의
사랑으로대할수없다.
이웃을내몸처럼사랑한다는것은인간적으로는불가능한일이다.
하나님에대한사랑과믿음,헌신과희생의정신없이는실천할수없는신앙적
요구인것이다.

교회가가르쳐야하는사회공동체안에서의순기능에대해주께서는이미놀라운
말씀을했다.
‘자선을베풀때에는위선자들이칭찬을받으려고회당과거리에서하듯이스스로
나팔을불지마라.
나는분명히말한다.
그들은이미받을상을다받았다.
자선을베풀때에는오른손이하는일을왼손이모르게하여그자선을숨겨두어라
그러면숨은일도보시는네아버지께서갚아주실것이다.‘
오늘날개신교교회들의세-勢과시는하나님이아닌인간들에게인정받으려는
가장큰변질이다.
교회가변함없는‘가치집단’으로서사회공동체의기초로남아있다면,사람들
에게는보이지않지만하나님은모두보고계신다.
교회의목표는인간이아니라하나님에게서인정받는것이다.
자기를드러내는것은스스로나팔을불어대는것이며왼손이하는일을오른손에게
알리는행위다.
이미상을받았다면앞으로받을상은없다는뜻이다.
하나님으로부터버림받았다는게그깊은의미다.
왜냐하면같은사안에대해상은한번뿐이기때문이다.

한국의개신교가가장자주듣는비판가운데하나는,
‘기독교인들은상식이부족하다’는것이다.
상식(常識)이무엇인가.
보통사람이가지고있는,또는가져야할지식이나판단력이다.
상식이부족하다는말은더쉽게말하면삼류(三類)라는얘기다.
말하자면기독교인의평균이사람들의본(本)이되지못한다는말이다.
개신교예배의핵심은케리그마-말씀의선포-설교다.
문제는그설교안에‘상식적교육’이부족한데있다.
가장큰이유는거개의설교자자신이상식이부족하기때문이다.
운동장에수만,수십만이모이는집체성은,그자체가반기독교적인인간의
‘행사’다.
총론(總論)엔거대한파도처럼강해도각론(各論-상식적신앙생활실천)에서는
가장취약한게한국의기독교다.
하나님을사랑하고그분에게인정받기위해건실한신앙생활을해왔다면
지금처럼부패하고변질되지는않았을것이다.
가치집단이값을추구하고‘기초’의자리를떠났을때‘딴것’이되는것은
너무나자명한일이다.

크리스챤에대한예수의주문은크게두가지다.
빛과소금의기능이그것이다.
빛은어두움을몰아내는기능이있는데당시어두움은악이며죄였다.
물론지금도마찬가지다.
소금은맛을내고부패-썪는것을막는기능이있다.
이두가지기능은예나지금이나어디에서도있어야하는‘기독교인들의상식적
역할‘에서비롯된다.
교회는사회공동체의보이지않는기초다.
드러나지않지만그기초가없으면사회는무너진다.
지금의우리사회가지극히혼란스럽고위험한것은기초가제자리를떠나
인기속으로움직이기때문이다.
우매한교인들을충동질하는사악한성직자들은그래서용서받지못한다.
개인의출세와영달을위해교회까지이용하는그악이어찌처벌받지않겠는가.
목회성공을위한목사들의경쟁은기독교의본질을훼손하는수준이며성공한
사이비를모방하는일에서슴치않는다.
일신의영달을위해교인들에게영합하는것은정치표퓰리즘보다더무섭다.
더비관적인것은이러한변질과부패를지적하고막을수있는기독교자체의
자정능력이없다는점이다.
생각해보면실로무서운일이다.

그렇다면교회는교인들에게무엇을가르쳐야하는가.
그하나가국가정체성에대한신앙적입장에대해서다.
자유민주주의와자본주의시장경제체제가대한민국의정체성이다.
진보-좌파-친북좌파세력에대해교회는그신앙때문에그들에게동조할수
없으며그들을반대해야한다.
사회주의-공산주의이데올로기는유물사관(唯物史觀)에근거하고있다.
유물사관은무신론적세계관이다.
그근본에서하나님-신을거부하는이념이다.
교회와좌파는같은배를탈수가없다.
이점을분명하게가르쳐야한다.

세계경제10위권안팎에있는우리는,
너무사치스럽고낭비가심하다.
‘전기는국산이자만기름은수입합니다.’
전기만알고외화를주고수입하는기름값을모르면안된다.
이점을가르쳐야된다.
검소,검박한생활은기독교의오래된전통임을가르쳐야된다.

‘법’은좁은지역에많은사람이모여살때서로가편히지내기위해만든약속이다.
그래서그것을어기면불편해지고누군가가피해를입게된다.
전국장애인207만명중80%가후천적장애인이며그대부분이교통사고때문이다.
도로교통법을지키지않아발생한후유증인것이다.
기독교인은그누구보다솔선해서법을지키는수범을보여야한다.
‘원칙과상식이통하는사회’를만드는게교회의목표가돼야한다.
그점을교육해야한다.

‘남자며느리가웬말이냐’
보수단체가신문에게재한‘동성애연속극’비판광고다.
성경은신,구약을통해동성애를‘죄’로엄하게규정하고있다.
그건하나님의창조섭리를어지럽히는일이기때문이다.
교회는점점막장으로기울어지고있는우리사회의‘문화일반’에대해혹독한
비판자가되어야한다.
그걸가르쳐야한다.

‘은총의선물은여러가지지만그것을주시는분은같은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는각사람에게각각다른은총의선물을주셨는데그것은공공이익을
위한것입니다.
성령께서는당신이원하는대로각사람에게각각다른은총의선물을나누어
주십니다.(고전12장)
사교육의폐해(弊害-폐단과손해,병폐)를막는믿음의지혜가이말씀안에있다.
모든아이들에겐하늘이나누어주신천부-天賦가있다는것,서로다른성령의
탈란트가있다는것을제대로알면지금같은무모한쏠림현상은피할수있다.
자라나는세대에게가장잘하고,좋아하는길로나아갈수있도록진로지도를
해야한다.
진정교회는이비밀을교육해야한다.
모두가똑같다면아무것도아닌것이다.
최고와일류는천부에서만나온다.
결코학원이해결할수있는사안이아니다.
서로다른애들을같은줄에몰아세우는것은처음부터무리다.

원로목사한분은지금의한국교회를이렇게개탄했다.
‘한국교회는소금은많은데짠맛을잃었고,
등잔은많은데불이꺼진채기름은없고심지만남았다.‘
한마디로종교로서의기능을상실했다는지적이다.
왜기능을잃었는가.
‘기초’의자리를떠났기때문이다.
보이지않는곳에서보이지않게기능하는교회의일상적역할이죽었기때문이다.
수만,수십만이모여세-勢를과시할이유가무엇인가.
소금은자기를녹여없어지면서기능하고,
촛불은자기를태워빛을만들어어두움을쫓아낸다.
예수가가르친기능이바로그것이다.
이제한국교회는일상안에서,가장작은일에서빛과소금이되는교인들을교육하고
훈련해야한다.
그러기위해서는지금의드러난자리를과감히떠나보이지않는‘기초’의본래자리로
돌아가야한다.
수만,수십만이모이는행사-세가아니라교인한사람한사람이보이지않는곳에서
빛과소금의기능을하는것이진정한기독교이며교회다.
예수의가르치심이바로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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