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회장님도5·16주체세력인데경호실차장으로일하다가초기에그만두고사업을하셨지요.지금나이가여든이다되신어른이에요.나만보면「李동지,令息(영식·朴志晩)잘부탁해」라고말씀하시더니,어느날令息을좀데려오라는겁니다.朴志晩회장은이분을잘모르지요.
한국야쿠르트가근년에강남신사동사거리에빌딩을새로지었어요.지난해11월에그사무실에갔을때尹회장님이선채로朴회장의두손을잡더니그냥통곡을하시는겁니다.5분도넘게눈물을줄줄흘려서민망할정도였어요.
한참우신후朴회장을껴안더니소파에앉히더군요.손을잡고한시간반을눈물을글썽이며얘기를나눈다음朴회장에게「나랑약속해.朴대통령혈손을잇는다고약속해」라고하시더군요.요즘도尹회장님이전화하셔서「朴회장언제결혼하느냐」고물으십니다』
朴秀雄씨는李사장이얘기할때손수건까지꺼내들고눈물을닦았다.李光炯사장은『朴대통령얘기만나오면눈물을흘리는사람들이많아요.나도각하얘기만나오면눈물이납니다』라며애써눈물을참았다.朴秀雄씨는혼잣말처럼『인정이얼마나많으신분인데』라며또눈물을흘렸다.李光炯사장은朴대통령에대해이렇게얘기했다.
『TV드라마등에서朴대통령을냉혹하고무서운사람으로그리고,말도딱딱끊어서하는것처럼연기하는데그렇지않습니다.중요한회의를할때소리지를때도있지만보통때의모습은진짜경상도시골의어른처럼다정다감한모습입니다.
제가27세에청와대부속실에들어가서33세에나왔어요.朴대통령마지막집권시기에제가모셨지요.朴대통령과저의나이가서른살정도차이났는데한번도반말을안하셨어요.「李군,이것좀해주게」라고하셨죠.아주젠틀하고인정이많은분이었습니다.
항상손을잡아주면서말씀하셨죠.「바쁘다고핑계대지말고공부게을리하지마」라고하셨지요.집안의어른이자녀나손주에게하듯다정다감한말투였어요』
李光炯사장의목소리도자꾸잦아들었다.
『인정이많아서뭐있으면자꾸주셔요.자식에게주듯이주고싶은거예요.손에들고와서「李군,이거한번써보게」하면서브라운전기면도기를주셨는데,아직도갖고있어요.우리나라전기면도기가나오지않았을때,외국갔다온사람들이선물한걸나에게주셨어요.만년필도주시고볼펜도주셨어요.매일새벽6시에인터폰하셔서「李군,운동하자」그러시면빨리단장하고나갑니다.배드민턴도하고뛰기도했지요.나와체격이비슷하셨어요.하루는팔에다뭘걸고내려오셔요.「李군,이거내입던건데자네한번입어봐맞을거야」하시며청색트레이닝복을주셨어요.참인정이많았어요』
李光炯사장은『청와대에근무할때「이순간이어른을위해목숨을바칠수있다면,그건영광스러운일」이라는심정으로일했어요.「새마을운동을통해조국근대화를이루는大역사의한부분에서일했다는게내생애와내家門의영광」이라는생각을했습니다』라고말했다.
李사장은최근에인터넷에서화제가된「육사교장의편지」를자녀들에게읽어주다가목이메어한참을울었다고한다.
『朴대통령과서독광부들,간호사들이그렇게고생한걸대학생인아들들이몰랐다고하더군요.나에게「아버지,아무도가르쳐주지않았어요」라고했습니다.당시모두들순수한충성심을갖고일했어요.이권개입을하거나밥얻어먹은적이없어요.밖에나가서친구를만나도청와대에근무한다는말을하지않았어요.그게충성하는길이라고생각했습니다.朴대통령이종이한장을아끼고절대돈을못쓰게하니다들본받아서그랬지요.근검하고소박한분입니다』
李光炯사장은朴대통령이언제나모범을보였고,자신은일거수일투족을배우려고애썼다고말했다.
『청와대에장조카박재홍씨외에어떤친인척도못오게했어요.박재홍씨에게집안의모든것을보고받은뒤밥먹고살기힘든사람을도와주라고지시했죠.朴대통령이친인척관리를철저히하는모범을보였습니다.朴正熙대통령을,2004년의잣대를놓고평가하면안됩니다.그당시국민소득과정치·문화·교육수준을감안해서객관적으로평가해야지요.필요에따라자신들의입맛에맞추어朴대통령을평가하면안됩니다』
李光炯사장은「효자동이발사」가코미디물이긴하지만걱정되는부분이있다고했다.
『「실미도」라는영화를1000만명이봤습니다.완성도가있기때문에영화를많이봤겠지요.대부분의사람들이당시실정을잘모릅니다.그러니그영화를보고「진짜저랬구나」하고믿더군요.영화를보니결정적순간에아닌게많았습니다.「효자동이발사」를보고젊은사람들이「아,저때저랬구나」하고믿어버릴까봐걱정이죠』
대화를하고있을때朴志晩회장이사무실에들렀다.어릴때부터머리를깎아준朴秀雄씨의손을잡고『우리아저씨』라며친근감을표시했다.朴秀雄씨는깍듯하게예의를지켜朴志晩씨에게인사하다가또눈물을지었다.
다음날朴秀雄씨를광화문에서다시만났다.그는「효자동이발사」때문에여전히심기가불편했다.그가영화에대해말할때가장자주쓰는말은『택도아닌이야기』,『얄궂은사람들』이라는것이었다.
1937년생인그는고향경남김해에서야간고등학교를졸업하고마땅히할일이없어제주도로건너갔다가거기서8개월동안이발기술을배웠다.서울에올라와서이발소에취직하려고여러군데다녔지만도통자신을받아주는데가없었다.
경무대구경이나하자는생각으로청와대근처에왔다가청와대코앞에있던효자이발소에들렀고,그곳에취직이되었다.1960년4·19가일어나기직전의일이다.이발소와얼마떨어지지않은국민대학교야간부에다니면서대학을졸업할때까지만할요량으로이발사로일했다.
1964년에朴正熙대통령이청와대로입성한다는소식을듣고그는효자이발소직원들에게흰가운을입혀연도에도열시켰다.그날그는「대통령의이발사가되고싶다」는생각을했다.
얼마후어떤아이가보호자와같이머리를자르러왔다.머리를자를때잠시도가만히있지않는그아이를위해동화책을외워서얘기해주었고,아이가이야기에열중할때순식간에머리를잘랐다.그때종로경찰서경사가데리고다녀부잣집아이로만알고있다가어느날『뉘집아이입니까』라고물었고,그제야그아이가경복유치원에다니는朴대통령의아들志晩이라는사실을알았다.
1964년5월쯤,지프차가한대오더니이발할사람이있다며청와대로가자고했다.데리러온사람은陸英修여사의운전기사인구인서씨였는데,청와대에가서어떻게해야한다는주의사항을준일이없다고한다.그저높은사람이머리를자르려나보다생각했다.청와대2층의작은사무실에가니경대하나와허름한의자두개가놓여있었다.경대에美製중에가장싼로션과스킨이놓여있었다.잠시후朴대통령이들어왔고그는「각하」라는말이생각이나지않아얼떨결에『안녕하십니까』라고만인사했다.
―영화에서경호실장이『용안에상처를내면안된다』고주의를주는장면이나오던데떨리지않았습니까.
『그런말한사람도없고옆에지키고있는사람도없었어요.순엉터리라.대통령께서는워낙동작이빠르셔서순식간에자리에앉으셨고일절말씀이없으셨어요.나도한번하는건데뭐떨것도없고해서재빨리잘랐지.내가뱃심이얼마나좋은데.내이발의특기는속성으로자르는거라.영화에보니까목을베서피가나오던데그런게어딨어.면도를속성으로잘했지요』
머리를자르고나자비서실에서돈을받아가라고했다.그는『대통령이발을한것만해도영광인데,돈은무슨돈이냐』면서그냥돌아왔다.하지만대통령이외상이발을할수없다며청와대에서사람을시켜돈을보내왔다.
그날로부터열흘에한번정도청와대에가서대통령의이발을담당하게되었다.그전에는대연각호텔의여자이발사가대통령의이발을했었다.하지만여자이발사가드나드는것을달갑게생각하지않은陸英修여사의작전에의해朴秀雄씨가청와대에입성하게되었다고한다.
―대한민국에이발사들이많은데,실력이있으니청와대까지가신거아닌가요.
『실력은무슨.志晩어린이를잘해주니까그냥부르신거지.내가좀못해도사모님이이발사를바꾸기위해「아저씨참이발잘하신다」고하셨어요.2층사무실이간이이발소가된거라.사모님이더운물과찬물을섞어서머리감도록가끔도와주셨지.내신원조회도안해보고부르셨다니까요』
청와대에자주가게되자대통령의이발사가된자신이어떻게처신하는게좋을지고민이됐다.그래서효자이발소고객인농림부차관출신의김종대씨에게조언을구했다.
『그분이「그안에서어르신하고얘기했던거남들에게말하지말고,그안에서들었던이야기밖에나와서하지말고,그안사람들에게그안의사정을묻지도말게.그저맡은일만묵묵히하게.참어려운일을맡았네」라고하시더라고.그분이말씀하신걸늘가슴에새기고그대로지켰지요』
朴秀雄씨는김종대씨의조언처럼밖에서자신이청와대이발사라는것도말하지않았고,청와대에서일어난일도일절얘기하지않았다.
朴秀雄씨는朴正熙대통령을「각하」,「어르신」이라고부르고,陸여사는「사모님」이라고불렀다.청와대안에서는다들그렇게불렀다고한다.
朴대통령내외분이워낙금슬이좋았다고한다.朴대통령이이발할때가끔陸여사가와서대화를나누기도했다.어느날陸여사가『결혼할때는곱슬머리가아니었는데왜그동안곱슬머리가됐느냐』고의아해했다.朴대통령이陸여사가곱슬머리인줄몰랐던비결을말해주었다고한다.
『옛날에「찌꾸」라는게있었어요.소기름처럼시커멓고냄새도안좋은데예전에포마드가없어서그걸발랐어요.대통령되시기전에군대에서찌꾸를바르고참빗으로머리를뒤로싹빗어넘겼답니다.그러니까머리가쫙펴졌지.얼마나당겨빗었던지눈썹이막딸려올라갔답니다.각하께서그얘기를하시자사모님이웃었지요』
朴秀雄씨는『陸英修여사가저기서오시면복도가다환해질정도로기품이있었어요.그런인물이없지.근혜총재도인물이좋지만엄마못따라가요』라고회상했다.
朴秀雄씨는고향에다녀오면서시골집에서딴단감을비서실에선물했다.
『두접이넘었을겁니다.며칠후에사모님이나를보시더니시골에서가져온감을잘먹었다고하시는겁니다.그러더니중국담배하고술하고해서한보따리를집으로보내주셨어요.내가마치단감을선물한것처럼되었어요.나는그냥비서실직원들먹으라고준건데』
朴씨가청와대이발사가되자효자이발소주인신모씨는청와대에서번돈을나누자고했다.그는청와대에서받는돈의액수를공개할수없어서아예효자이발소를그만두고1965년에인근에북악이발소를차렸다.
朴秀雄씨는청와대에서일하면서부터다니던국민대학교도그만두었다.일국의대통령이발사가되었으면성공했는데,다른걸생각할필요가없다고생각되어서였다.
청와대에드나들때깔끔하게차리고가야한다는생각에서인사동가구점에서가방까지맞추었다.오동나무에옷칠을하고자개를박아만든007가방형태의나무가방을1만원을주고만들고,다른사람들은5000원에사입는흰가운도1만원을주고맞추었다.
朴秀雄씨는북악이발소를1년정도운영하다가청와대의부름에전념하기위해처분해버렸다.朴正熙대통령은보통열흘에한번정도이발을했으나울산에비료공장을건설할때는29일만에朴秀雄씨를찾은적도있다고한다.한번은밤에이발을하러갔는데朴대통령이이발을하다가잠이들었다.
『울산에한비사카린사건났을때였는데너무피곤하셨던거라.이쪽을다잘랐는데깨울수도없고난감하더라고.근데조금있으니까알고고개를돌려주셨지요.얼마나일을열심히하셨다고』
처음에는면도하는것이어렵지않았으나나날이면도하는것이민망했다고한다.게다가朴대통령은수염이한쪽으로만난게아니라엇갈려서나는스타일이어서면도하기가힘들었다.
『어르신도수염이깎기힘들게났다는걸아셔요.갈수록어려워서안전면도라는걸구해서「이걸로직접하시지요」라고말씀드렸더니혼자해보시더라고.안전면도라고일회용면도기였는데그때만해도국산은그런게없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