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동 이발사(펌)최종완결
[집중인터뷰]진짜「효자동이발사」朴秀雄씨의「곱슬머리」朴正熙추억

『영화에나온건다엉터리…그분은아들뻘되는나에게반말도안한사람』 -朴志晩머리깎아주다가청와대行
-陸여사가머리감을물데워주기도
-朴대통령은『그렇게큰집에살면부끄럽지않나』,『국수나한그릇먹고가면되지뭐』,『고속도로는잘닦았는데인부가많이죽었다』고말하는사람

<효자동이발사朴秀雄(오른쪽)씨는어린志晩군의머리를깎아준것이인연이되어朴正熙대통령의이발사로16년간일하게됐다.>

『영화는순엉터리』

대통령의이발사라는특이한소재를다룬영화「효자동이발사」가개봉2개월만에관객200만명을동원한뒤6월10일현재점유율0.6%로순위경쟁에서밀려났다.「효자동이발사」에대한평가는극과극으로나뉜다.「억압적인시대의父情(부정)을잘그렸다」는평에서부터「정면도전하지않고우화적으로그려아무것도말하지못했다」는혹평까지….필자의경우시대상황을억지스럽게반영하려는시도보다는최고권력자인대통령과소시민이발사의우정을진솔하게그렸더라면훨씬좋은영화가되지않았을까하는아쉬움이들었다.

「효자동이발사」의실제모델朴秀雄(박수웅·67)씨를만나기전아무런선입견없이영화를봤을때,영화속의대통령은惡의이미지와善의이미지로선명하게대비되었다.대통령이라는공인은인권을탄압한독재자로부각되는반면,개인적으로는이발사를술자리에초대하여술을권하는매우인간적인사람이었다.

서울강남구에위치한朴正熙대통령의아들志晩씨가운영하는(주)EG의李光炯(이광형·55)사장사무실에서朴秀雄씨를만났다.朴씨는지난5월「효자동이발사」가개봉된뒤여기저기서인터뷰요청이빗발쳤으나모두거절했다.영화를보고너무화가나서아무말도하기싫었다고한다.

『영화에나온게다엉터린데,거기나오는이발사가내가아닌데만날필요가없지요.내용이순엉터리라』

경남김해출신인朴秀雄씨는극심한경상도사투리를구사해경상도출신인필자도가끔씩알아듣기힘들정도였다.朴씨의관람평은한마디로『기가차더라』는것.영화첫자막에『이내용은실제사실과관련이없다』고나오지만,朴正熙대통령시절15년간청와대에서대통령의이발사로일한사람은朴秀雄씨밖에없으니,그의분개는이해할만했다.

『영화에보니효자이발소를썩은이발소로만들어놨데요.효자이발소는경무대와같이지은최고로좋은이발소였는데,2층이었고타일을다붙여서얼마나좋았다고』

朴秀雄씨는처음부터영화에대한불만을가득털어놓았다.그는지난해여름「효자동이발사」제작사청어람의관계자를만난일이있다고했다.

『月刊朝鮮기사를읽고영화만들겠다고해서하지말라고했지요.그런이야기로돈벌생각하지말라고.내가지금하고있는보물발굴사업이성공하면내가진짜잘만들생각인데….시나리오를갖고와서한번읽어보라고하기에동작동국립묘지에가서읽었어요.내용이순엉터리여서이상한부분에표시를해지난해10월26일朴대통령기일때朴槿惠한나라당총재비서중의한사람에게전했어요.그러면그쪽으로전해지겠지하고.그러고나서는잊어버리고있었는데영화가나왔데요』

「朴」자만나와도우는사람들

月刊朝鮮2001년11월호에朴秀雄씨인터뷰기사가나간후,그기사를보고영화관계자들이기사를바탕으로영화를만들고싶다는연락을月刊朝鮮으로해왔다.「효자동이발사」를감독한임찬상씨는한신문과의인터뷰에서『이발사는상상의인물이지만시사종합지에실린실제대통령이발사의인터뷰등도참조했다』고밝혔다.

朴秀雄씨는1964년부터朴正熙대통령의이발을담당하여1979년朴대통령이서거한이후,崔圭夏대통령의이발을담당하다가1980년8월崔대통령이하야할때청와대를떠났다.朴秀雄씨는그동안청와대근처에는가지도않았다고한다.지난해10월26일,청와대를떠난이후처음으로동작동국립묘지에서朴槿惠씨와朴志晩씨를만났고,朴正熙대통령생각에눈물을쏟았다고한다.

朴秀雄씨와잠시얘기를나누고있을때(주)EG의李光炯사장이사무실로들어왔다.朴대통령의부속실에서근무했던李光炯씨는「효자동이발사」영화를안봤으며앞으로도볼계획이없다고말했다.

『TV에서리뷰하는걸봤는데영화를완전히코미디로만들었더군요.사실적으로그렸으면제대로보고평을하겠지만,설정자체가잘못되었고,드라마일뿐인데볼이유가없지요』

어떤장면이실제와다르냐고물었을때李사장과朴秀雄씨의의견이거의일치했다.대통령앞에서경호실장과비서실장이싸우는장면은「몰라도한참모르는소리」라고한다.그런일은있을수없다는것이다.

영화에서대통령이이발할때경호실장이뒤에버티고서서이발사를지켜보고있는것도잘못됐다는것이다.朴秀雄씨는『이발하는데뒤에왜서있어.영화를얄궂게만들었다』며개탄했다.

朴대통령이이발할때가끔陸英修여사가와서물을떠줄때는있었지만대개의경우朴대통령혼자왔다고한다.영화에서이발사의아들이대통령의아들을넘어뜨리는장면이나오는데,그런일이생길소지는아예없다고한다.영화라곤하지만억지스러운장면들이너무많다는것이두사람의의견이었다.

영화에서이발사성한모가대통령과술을세번이나마시는장면에대해,朴秀雄씨는『그런게어디있어,택도아닌소리지』라며한심해했다.

『이발하는놈이어데서술을마셔.그앞에서물도한잔못먹는데.내가수차어르신을따라다녔지만항상바깥을돈다고.사진에혹시비칠까싶어서』

朴秀雄씨는朴正熙대통령이지방나들이를할때면가보고싶어서기자들차에동승하곤했다.

영화후반부,이발사가점쟁이의지시에따라대통령초상화의안구부분을면도칼로긁는장면에대해朴秀雄씨는『말할가치조차없는일』이라고일축했다.李光炯씨는기가막히는설정이라고했다.

『朴선생님은작년에나를만나자마자손을붙잡고한참을울었어요.이분은朴대통령「朴」자만나와도우는분이에요.충성심이나보다더한분입니다.영화에나오는그런일은있을수없지요.

올해초朴선생님이EG금산공장에연락도안하고불쑥나타났어요.사무실에들어오자마자우는겁니다.그저朴대통령아들이운영하는회사라는사실에감격해서.朴대통령에대해100%충성심으로똘똘뭉친분입니다』

「朴」자만나와도울고아직도100%충성심을갖고있는이유가궁금했다.李光炯사장은이런분들이많다며한국야쿠르트尹德炳(윤덕병)회장과의일화를들려줬다.

『반말을하지않는朴대통령』

『尹회장님도5·16주체세력인데경호실차장으로일하다가초기에그만두고사업을하셨지요.지금나이가여든이다되신어른이에요.나만보면「李동지,令息(영식·朴志晩)잘부탁해」라고말씀하시더니,어느날令息을좀데려오라는겁니다.朴志晩회장은이분을잘모르지요.

한국야쿠르트가근년에강남신사동사거리에빌딩을새로지었어요.지난해11월에그사무실에갔을때尹회장님이선채로朴회장의두손을잡더니그냥통곡을하시는겁니다.5분도넘게눈물을줄줄흘려서민망할정도였어요.

한참우신후朴회장을껴안더니소파에앉히더군요.손을잡고한시간반을눈물을글썽이며얘기를나눈다음朴회장에게「나랑약속해.朴대통령혈손을잇는다고약속해」라고하시더군요.요즘도尹회장님이전화하셔서「朴회장언제결혼하느냐」고물으십니다』

朴秀雄씨는李사장이얘기할때손수건까지꺼내들고눈물을닦았다.李光炯사장은『朴대통령얘기만나오면눈물을흘리는사람들이많아요.나도각하얘기만나오면눈물이납니다』라며애써눈물을참았다.朴秀雄씨는혼잣말처럼『인정이얼마나많으신분인데』라며또눈물을흘렸다.李光炯사장은朴대통령에대해이렇게얘기했다.

『TV드라마등에서朴대통령을냉혹하고무서운사람으로그리고,말도딱딱끊어서하는것처럼연기하는데그렇지않습니다.중요한회의를할때소리지를때도있지만보통때의모습은진짜경상도시골의어른처럼다정다감한모습입니다.

제가27세에청와대부속실에들어가서33세에나왔어요.朴대통령마지막집권시기에제가모셨지요.朴대통령과저의나이가서른살정도차이났는데한번도반말을안하셨어요.「李군,이것좀해주게」라고하셨죠.아주젠틀하고인정이많은분이었습니다.

항상손을잡아주면서말씀하셨죠.「바쁘다고핑계대지말고공부게을리하지마」라고하셨지요.집안의어른이자녀나손주에게하듯다정다감한말투였어요』

李光炯사장의목소리도자꾸잦아들었다.

『인정이많아서뭐있으면자꾸주셔요.자식에게주듯이주고싶은거예요.손에들고와서「李군,이거한번써보게」하면서브라운전기면도기를주셨는데,아직도갖고있어요.우리나라전기면도기가나오지않았을때,외국갔다온사람들이선물한걸나에게주셨어요.만년필도주시고볼펜도주셨어요.매일새벽6시에인터폰하셔서「李군,운동하자」그러시면빨리단장하고나갑니다.배드민턴도하고뛰기도했지요.나와체격이비슷하셨어요.하루는팔에다뭘걸고내려오셔요.「李군,이거내입던건데자네한번입어봐맞을거야」하시며청색트레이닝복을주셨어요.참인정이많았어요』

李光炯사장은『청와대에근무할때「이순간이어른을위해목숨을바칠수있다면,그건영광스러운일」이라는심정으로일했어요.「새마을운동을통해조국근대화를이루는大역사의한부분에서일했다는게내생애와내家門의영광」이라는생각을했습니다』라고말했다.

朴志晩,『우리아저씨』

李사장은최근에인터넷에서화제가된「육사교장의편지」를자녀들에게읽어주다가목이메어한참을울었다고한다.

『朴대통령과서독광부들,간호사들이그렇게고생한걸대학생인아들들이몰랐다고하더군요.나에게「아버지,아무도가르쳐주지않았어요」라고했습니다.당시모두들순수한충성심을갖고일했어요.이권개입을하거나밥얻어먹은적이없어요.밖에나가서친구를만나도청와대에근무한다는말을하지않았어요.그게충성하는길이라고생각했습니다.朴대통령이종이한장을아끼고절대돈을못쓰게하니다들본받아서그랬지요.근검하고소박한분입니다』

李光炯사장은朴대통령이언제나모범을보였고,자신은일거수일투족을배우려고애썼다고말했다.

『청와대에장조카박재홍씨외에어떤친인척도못오게했어요.박재홍씨에게집안의모든것을보고받은뒤밥먹고살기힘든사람을도와주라고지시했죠.

朴대통령이친인척관리를철저히하는모범을보였습니다.朴正熙대통령을,2004년의잣대를놓고평가하면안됩니다.그당시국민소득과정치·문화·교육수준을감안해서객관적으로평가해야지요.필요에따라자신들의입맛에맞추어朴대통령을평가하면안됩니다』

李光炯사장은「효자동이발사」가코미디물이긴하지만걱정되는부분이있다고했다.

『「실미도」라는영화를1000만명이봤습니다.완성도가있기때문에영화를많이봤겠지요.대부분의사람들이당시실정을잘모릅니다.그러니그영화를보고「진짜저랬구나」하고믿더군요.영화를보니결정적순간에아닌게많았습니다.「효자동이발사」를보고젊은사람들이「아,저때저랬구나」하고믿어버릴까봐걱정이죠』

대화를하고있을때朴志晩회장이사무실에들렀다.어릴때부터머리를깎아준朴秀雄씨의손을잡고『우리아저씨』라며친근감을표시했다.朴秀雄씨는깍듯하게예의를지켜朴志晩씨에게인사하다가또눈물을지었다.

다음날朴秀雄씨를광화문에서다시만났다.그는「효자동이발사」때문에여전히심기가불편했다.그가영화에대해말할때가장자주쓰는말은『택도아닌이야기』,『얄궂은사람들』이라는것이었다.

1937년생인그는고향경남김해에서야간고등학교를졸업하고마땅히할일이없어제주도로건너갔다가거기서8개월동안이발기술을배웠다.서울에올라와서이발소에취직하려고여러군데다녔지만도통자신을받아주는데가없었다.

경무대구경이나하자는생각으로청와대근처에왔다가청와대코앞에있던효자이발소에들렀고,그곳에취직이되었다.1960년4·19가일어나기직전의일이다.이발소와얼마떨어지지않은국민대학교야간부에다니면서대학을졸업할때까지만할요량으로이발사로일했다.

志晩어린이이발하다청와대와인연

1964년에朴正熙대통령이청와대로입성한다는소식을듣고그는효자이발소직원들에게흰가운을입혀연도에도열시켰다.그날그는「대통령의이발사가되고싶다」는생각을했다.

얼마후어떤아이가보호자와같이머리를자르러왔다.머리를자를때잠시도가만히있지않는그아이를위해동화책을외워서얘기해주었고,아이가이야기에열중할때순식간에머리를잘랐다.

그때종로경찰서경사가데리고다녀부잣집아이로만알고있다가어느날『뉘집아이입니까』라고물었고,그제야그아이가경복유치원에다니는朴대통령의아들志晩이라는사실을알았다.

1964년5월쯤,지프차가한대오더니이발할사람이있다며청와대로가자고했다.데리러온사람은陸英修여사의운전기사인구인서씨였는데,청와대에가서어떻게해야한다는주의사항을준일이없다고한다.그저높은사람이머리를자르려나보다생각했다.청와대2층의작은사무실에가니경대하나와허름한의자두개가놓여있었다.경대에美製중에가장싼로션과스킨이놓여있었다.잠시후朴대통령이들어왔고그는「각하」라는말이생각이나지않아얼떨결에『안녕하십니까』라고만인사했다.

머리감는물을데워준陸여사

―영화에서경호실장이『용안에상처를내면안된다』고주의를주는장면이나오던데떨리지않았습니까.

『그런말한사람도없고옆에지키고있는사람도없었어요.순엉터리라.대통령께서는워낙동작이빠르셔서순식간에자리에앉으셨고일절말씀이없으셨어요.나도한번하는건데뭐떨것도없고해서재빨리잘랐지.내가뱃심이얼마나좋은데.내이발의특기는속성으로자르는거라.영화에보니까목을베서피가나오던데그런게어딨어.면도를속성으로잘했지요』

머리를자르고나자비서실에서돈을받아가라고했다.그는『대통령이발을한것만해도영광인데,돈은무슨돈이냐』면서그냥돌아왔다.하지만대통령이외상이발을할수없다며청와대에서사람을시켜돈을보내왔다.

그날로부터열흘에한번정도청와대에가서대통령의이발을담당하게되었다.그전에는대연각호텔의여자이발사가대통령의이발을했었다.하지만여자이발사가드나드는것을달갑게생각하지않은陸英修여사의작전에의해朴秀雄씨가청와대에입성하게되었다고한다.

―대한민국에이발사들이많은데,실력이있으니청와대까지가신거아닌가요.

『실력은무슨.志晩어린이를잘해주니까그냥부르신거지.내가좀못해도사모님이이발사를바꾸기위해「아저씨참이발잘하신다」고하셨어요.2층사무실이간이이발소가된거라.사모님이더운물과찬물을섞어서머리감도록가끔도와주셨지.내신원조회도안해보고부르셨다니까요』

청와대에자주가게되자대통령의이발사가된자신이어떻게처신하는게좋을지고민이됐다.그래서효자이발소고객인농림부차관출신의김종대씨에게조언을구했다.

『그분이「그안에서어르신하고얘기했던거남들에게말하지말고,그안에서들었던이야기밖에나와서하지말고,그안사람들에게그안의사정을묻지도말게.그저맡은일만묵묵히하게.참어려운일을맡았네」라고하시더라고.그분이말씀하신걸늘가슴에새기고그대로지켰지요』

朴秀雄씨는김종대씨의조언처럼밖에서자신이청와대이발사라는것도말하지않았고,청와대에서일어난일도일절얘기하지않았다.

朴秀雄씨는朴正熙대통령을「각하」,「어르신」이라고부르고,陸여사는「사모님」이라고불렀다.청와대안에서는다들그렇게불렀다고한다.

곱슬머리朴대통령,『너무자르지마래이』

朴秀雄씨가처음청와대에갔을때朴正熙대통령은이마의머리카락이목뒤에닿을정도로길었다.곱슬머리여서그런머리스타일이별로어울리지않는다고생각한朴씨는갈때마다조금씩짧게잘랐다.그러면朴대통령은『머리너무자르지마래이』라고주의를줬다.

朴대통령내외분이워낙금슬이좋았다고한다.朴대통령이이발할때가끔陸여사가와서대화를나누기도했다.어느날陸여사가『결혼할때는곱슬머리가아니었는데왜그동안곱슬머리가됐느냐』고의아해했다.朴대통령이陸여사가곱슬머리인줄몰랐던비결을말해주었다고한다.

『옛날에「찌꾸」라는게있었어요.소기름처럼시커멓고냄새도안좋은데예전에포마드가없어서그걸발랐어요.대통령되시기전에군대에서찌꾸를바르고참빗으로머리를뒤로싹빗어넘겼답니다.그러니까머리가쫙펴졌지.얼마나당겨빗었던지눈썹이막딸려올라갔답니다.각하께서그얘기를하시자사모님이웃었지요』

朴秀雄씨는『陸英修여사가저기서오시면복도가다환해질정도로기품이있었어요.그런인물이없지.근혜총재도인물이좋지만엄마못따라가요』라고회상했다.

朴秀雄씨는고향에다녀오면서시골집에서딴단감을비서실에선물했다.

『두접이넘었을겁니다.며칠후에사모님이나를보시더니시골에서가져온감을잘먹었다고하시는겁니다.그러더니중국담배하고술하고해서한보따리를집으로보내주셨어요.내가마치단감을선물한것처럼되었어요.나는그냥비서실직원들먹으라고준건데』

朴씨가청와대이발사가되자효자이발소주인신모씨는청와대에서번돈을나누자고했다.그는청와대에서받는돈의액수를공개할수없어서아예효자이발소를그만두고1965년에인근에북악이발소를차렸다.

朴秀雄씨는청와대에서일하면서부터다니던국민대학교도그만두었다.일국의대통령이발사가되었으면성공했는데,다른걸생각할필요가없다고생각되어서였다.

청와대에드나들때깔끔하게차리고가야한다는생각에서인사동가구점에서가방까지맞추었다.오동나무에옷칠을하고자개를박아만든007가방형태의나무가방을1만원을주고만들고,다른사람들은5000원에사입는흰가운도1만원을주고맞추었다.

朴秀雄씨는북악이발소를1년정도운영하다가청와대의부름에전념하기위해처분해버렸다.朴正熙대통령은보통열흘에한번정도이발을했으나울산에비료공장을건설할때는29일만에朴秀雄씨를찾은적도있다고한다.한번은밤에이발을하러갔는데朴대통령이이발을하다가잠이들었다.

『울산에한비사카린사건났을때였는데너무피곤하셨던거라.이쪽을다잘랐는데깨울수도없고난감하더라고.근데조금있으니까알고고개를돌려주셨지요.얼마나일을열심히하셨다고』

처음에는면도하는것이어렵지않았으나나날이면도하는것이민망했다고한다.게다가朴대통령은수염이한쪽으로만난게아니라엇갈려서나는스타일이어서면도하기가힘들었다.

『어르신도수염이깎기힘들게났다는걸아셔요.갈수록어려워서안전면도라는걸구해서「이걸로직접하시지요」라고말씀드렸더니혼자해보시더라고.안전면도라고일회용면도기였는데그때만해도국산은그런게없었지요』

『길은좋게되었다만인부들이많이죽었다』

朴秀雄씨는청와대에들어갈때마다가방을검열당했는데,긴면도칼과가위는보기에따라흉기가될수도있는것들이다.

1969년에청와대안에이발소를개설하면서朴秀雄씨는아예청와대에근무하게되었다.총무처별정직직원으로청와대에파견나가는형식을띠었다.이발사1명과면도사2명,머리감는사람1명을관리하는책임자가되었다.朴秀雄씨는아무심사도받지않고청와대에들어갔지만,그외이발소직원들은비서실에서엄선했다고한다.청와대직원들은그를「朴실장」,「朴씨」등내키는대로불렀다.그는청와대에근무할때직원들에게은근히괄시를받았다는말을덧붙였다.

朴대통령은이발소직원들을친근하게대했다.당시면도사중에박순옥씨가있었는데朴秀雄씨는『3朴씨가잘통했다』며웃었다.朴대통령은가끔씩『세상이어떻게돌아가는지얘기해달라』는요청도했다.

『농촌에오토바이도많이생기고,반찬도많아졌다는얘기를했지요.그전에먹고살기가힘들었거든.한창산림녹화를한다고지방관리들이소를산에못올라가게했어요.「촌에서노인들이소를산에못올라가게한다고수군거리는얘기를들었다」는보고를드리니까각하께서「내가무슨얘기를하면밑에내려가면서針小棒大(침소봉대)가된다.소가산에서소나무를뜯어먹는것도아니고풀밖에안먹는데왜못올라가게하나」고하시더군요』

朴秀雄씨는고속도로가개통된뒤『고속도로를잘만들었는데다이정표와가드레일같은시설물도좋더라』고말하자朴대통령은

『길은좋게되었다만인부들이많이죽었다』며비통해했다고한다.

『장기집권한다,독재한다』는얘기도전했느냐고하자朴씨는『그런얘기를어떻게할수있나』라고했다.

청와대안의이발소는朴대통령父子와비서실직원,출입기자들이주로이용했다.이발요금은2500원이었다.기자들중에는이발을하다가朴대통령이오면황급히일어나느라신발을못찾아서허둥대는사람도있었으나,의자에누운채입으로만인사하는기자도있었다고한다.朴대통령은그런일에개의치않았지만,朴씨는동네어른이와도일어서는게예의인데버젓이누워서인사하는걸볼때자기가분통이터졌다고했다.

이발하는사람이많지않아어떤날은하루매상이1만원도오르지않을때가있었다.순경월급이2만6000원일때朴씨는10만원을받았다.월급을많이받기가미안해서『놀고먹는것같다』고말하자朴대통령이『이사람아,돈벌려고이발소만들었나.자네좀편하게있어』라고말했다.그런데도가끔朴대통령이용돈을따로주었다.그러면그걸이발소직원들과똑같이분배한뒤다음날朴대통령에게보고했다.

그만큼실력이뛰어나서그런대우를받은게아니냐고묻자朴씨는『그게다緣(연)이지요』라고답했다.

『국수나한그릇먹고가면되지』

朴秀雄씨는청와대에안에서일하는사람들은朴대통령의이런엄격한면을익히알고있었다고말한다.

『어르신께서한번화나면천장이들썩거릴정도였지요.일국의대통령이되면서릿발이내릴정도로차가워야지요.확실한어른이기때문에처신을잘하려고다들노력했지요』

청와대직원들이朴秀雄씨에게『각하가오늘도이발했나.오늘은어디로행차하신다고하더냐』고묻기일쑤였지만『그런거알아서뭐하느냐』고말했을뿐청와대안에서도입조심을했다.

한번은朴正熙대통령이대구로지방출장을갈때朴秀雄씨도기자들이탄그레이하운드에동승해따라갔다.朴대통령은대통령전용차를타고내려와서업무를마친뒤비행기로돌아가기위해대구비행장에도착했다.마침점심시간이어서식사를하고떠나기위해다들기다리고있는데,좀처럼점심이나오지않았다.

車智澈경호실장이추풍령의한식당에꼬리곰탕을시켰는데,너무멀어서제시간에닿지못했던것이다.朴대통령이예전에이용한적이있는집이었다.나중에야朴대통령이추풍령으로점심주문한사실을알고『국수나한그릇먹고가면되지,여기서추풍령이어디라고점심을시켰느냐』며식사도하지않고비행기를탔다.

『그렇게큰집에살면부끄럽지않나』

그날朴秀雄씨는대통령전용차를타고서울로돌아왔다.

『대통령차를타고대통령이드시는과자도먹고그랬지.올라오면서운전기사와이런저런얘기를했지요.운전기사가건평이한60평되는집을샀답니다.대지까지합치면200평이나되는큰집이었는데한번은어르신이부르시더니「집이전체몇평이냐」고물으시더랍니다.그래서200평이라고대답을하니까각하가

「동네사람들부끄럽지않나.그렇게큰집에살면부끄럽지않나」하시더랍니다.그래서다음날당장집을팔고보고했답니다.대통령께서가까이있는사람들을일일이점검하시니다들조심했지요』

朴秀雄씨는효자이발소손님이었던권모씨가들려준얘기도소개했다.朴대통령과사범학교동기생인권모비서관이삼청동에으리으리한집을지었을때朴正熙대통령은경호실에누구집인지조사하고사진을찍어오게했다.朴대통령은권모비서에게『혁명할때는다잘살자고했지혼자만잘살려고한거아니지않느냐』며당장그만두라고했다고한다.

『朴대통령이초창기부터주변을철저히살펴부정부패의소지가생기지않도록하셨어요.각하가깨끗하니까그런얘기를하면다들꼼짝못했지』

그런가하면朴대통령은집이없는朴秀雄씨를측은하게여겼다고한다.

『청운동셋집에살때면도사박순옥씨에게「朴군집은있나」라고물어보시더랍니다.박순옥씨가「셋집에산다」고하자어르신께서「나는새도들의짐승도밤에자기둥지로가는데집이없다니」라고말했답니다』

朴秀雄씨는1976년용산구청파동에13평짜리연립주택을마련했다.1년후인1977년에세검정가는길에있던과학수사연구소를헌자리에청와대직원들을위한아파트두동이들어섰다.朴대통령은아파트가완공되자朴秀雄씨에게『셋집에살지말고아파트로오라』고했다.

朴秀雄씨는스무살차이나는朴대통령이아버지같았다고회고했다.처음에는朴군이라고불렀지만나중에는「임자」라고불렀을정도로자신을신임했다며또울먹였다.朴대통령이청와대에서오래근무하는사람들에게100만원씩보너스를준일이있었다.朴秀雄씨는자신이5년동안은밖에서드나들었기때문에해당사항이없다고생각했다.

『어르신이「자네,오래근무하는사람들에게주는돈받았나」하기에나는「해당이안됩니다」그랬지요.언제부터했냐고하셔서「1964년부터했지만5년동안은밖에서왔다갔다했습니다」라고했더니손가락을꼽아보시더라고.그러더니「10년이넘었네.朴군을빠뜨릴수있나」하셨어요.내가청와대안에서얼마나괄시를많이받았다고.정식직원도아니고이발사니까.그래서날빼놨지.근데다음날총무비서실에서100만원을줬어요.그런일하나하나생각하면다고맙지요』

車실장에게대들다

청와대에있을때자신은특별히어디소속된데가없어서누구에게고개숙이지않았다고한다.청와대에서높은사람들차가지나갈때다들인사하는데자신은인사하지않아서「뻣뻣하다」는소리를많이들었다고한다.

朴秀雄씨는1년동안車智澈경호실장의머리를해준적이있다.車智澈경호실장비서가車실장이오기전에꼭전화를해서아무도오지않게하라고했다.

『사람들이나한테「경호실장이그렇게무섭나,그사람오면우리는오지도못하게하고왜그러냐」고말하기도했어요.이발소가꼭머리만깎는게아니라사람들이휴게소처럼자주들락거리면서바둑도두고그랬는데,車智澈실장은혼자만사용하려고했지요』

朴씨는이발소를좀더즐거운장소로만들기위해카세트를하나구입해늘노래를틀어놓았다.朴대통령이「황성옛터」라는노래를좋아하는걸알고가사를적어주기도했다.

『대통령께서가사를보시더니「朴군,황성옛터의「황」자가틀렸네.이때는임금皇(황)이아니라황폐하다는荒(황)을써야맞지.그러셨지요』

車智澈실장은나중에아예朴씨를자신의사무실로불러이발을하게했다.매일아침에가서이발을했는데車실장은약속시간보다점점늦게나타나더니나중에는1시간씩늦게오곤했다.

『경호실에서이발소까지돌아오려면시간이꽤걸렸어요.각하가갑자기머리할일이있으면어쩌나걱정이되더라고.매일아침에車실장방에갔다가안보이면화장실에들어가변기뚜껑덮어놓고그냥기대서잤지뭐.그러다가문소리가들리면나갔지.점점부아가나요.대통령도시간을안어기고,좀늦으면늦는다고직접와서말씀해주시는데,아무연락도없이매일아침늦게오니화가났지.

朴대통령은머리할때생전말씀이없으셔요.한번도불만을말씀하신적이없어요.근데車실장은머리카락한올가지고트집잡고좀더올리라느니내리라느니.도저히못참겠어서어느날내가그랬어요.「실장님,내일아침부터다른이발사불러요.이렇게사람을기다리게하고.당최안되겠어요」그랬더니눈이둥그레지더라고.그리고그냥나와버렸지뭐』

朴秀雄씨는朴대통령이陸英修여사가세상을떠난후눈에띄게말수가줄었다고전한다.陸여사가총탄에쓰러진그날아침朴秀雄씨는빗을떨어뜨렸는데,공교롭게도부러져서두동강이나고말았다.朴대통령이눈치채지못하게부러진빗을의자밑으로밀어넣고다른빗을꺼내서일했다.한번도그런일이없었는데지금생각하면두분의이별을암시한거같다며한숨지었다.

陸여사장례를치른뒤처음으로朴대통령이이발하러오던날의일이다.

『송구스러워서얼굴을볼수없었어요.인사말을장황하게늘어놓을수없어서「각하죄송합니다.저희들이잘못해서그런일이생겼습니다.죄송합니다」라고인사를드렸어요.그때얼마나놀랐던지.어르신이의자에앉으시려다가내가상주에게인사하는걸로아시고,의자옆으로물러서서고개를숙이시면서인사를받으셨어요.예의가정말바른분입니다』

公과私가분명했다

朴志晩씨가육군사관학교입학할때쯤朴대통령은눈에띄게쓸쓸한표정이었다고한다.

『「대통령께서우리志晩이내일육사입교하는데머리좀깎아달라」고하실때왜그렇게쓸쓸해보이던지.다음날아침에어르신이학부모자격으로志晩씨와함께육사입학식에가셨어요.나는몰랐지요.얼마후에나와알고지냈던육사헌병대장인김수길씨가전화를했어요.「朴대통령이육사오시는거미리좀알려주지아무도안알려줘서다들혼비백산했다」면서.

육사앞에서헌병이보초를서고있는데차가한대지나갔답니다.거기朴대통령이타고있어서헌병이깜짝놀라헌병대장에게연락하고교장에게연락하고다들난리난거지.그때벌써대통령은육사생도들이모여있는곳에도착했어요.교장이달려와서인사를하니까대통령이「나는오늘대통령이아니라학부모입장이니이해하라」고했답니다.公과私가분명한분입니다』

朴秀雄씨는인터뷰틈틈이계속눈물을훔쳤다.대통령집무실에걸어놓은浩然之氣(호연지기)의뜻을음미하며살았다는朴씨는朴대통령이늘외우던朱子(주자)의詩도암기하고있다고소개했다.

「少年(소년)은易老(이로)하고學難成(학난성)이니一寸光陰(일촌광음)인들不可輕(불가경)이라.未覺池塘春草夢(미각지당춘초몽)하여階前梧葉(계전오엽)이已秋聲(이추성)이라」

(소년은늙기쉽고,학문은이루기어려우니짧은시간이라도가벼이여기지말라.아직못가의봄풀은꿈에서깨어나지못했는데어느덧세월은빨리흘러섬돌앞의오동나무는벌써가을소리를내느니라)

추신:끝까지읽어주셔서감사합니다^^

원문을쓰신분께누를끼치지않고많은분께알리고자노력했습니다(노당큰형부백)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