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박정희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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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박정희대통령의인간적인면모

1.박정희대통령의편지

1978년2월2일,朴正熙(박정희)대통령이버스안내양들의방한복을제작하던주식회사태흥사장에게보낸감사편지이다.당시버스안내양들의방한코트제작을의뢰받은주식회사태흥의權泰興(권태흥)사장은방한바지를함께제작,무료로납품했다.이에朴正熙(박정희)대통령이감사편지를보낸것이다.이편지에서朴(박)대통령은버스안내양들을어린나이에가정형편이불행하여상급학교에진학도못하고직업전선에나와서고된일을하면서국민들에게봉사하고있는이들少女(소녀)」라고썼다.버스안내양들의입장을이보다더가슴깊이사무치게대변하기는어려울것이다.하급노동자의삶을대통령이챙기는이런모습이當代(당대)엔국민들에게거의알려지지않았다.홀아비가된朴(박)대통령주변을둘러싼권력의장막이이를막고있었고밖에서는유신철폐를외치는야당과재야인사들의외침에가려져있었다.朴대통령이權泰興사장에게버스안내양들을대신해서감사를표시하는문장들마다마치대통령이안내양을친딸처럼여기는마음씨가곳곳에배어있다.

(편지원문)

時下酷寒之節(시하혹한지절)貴體健安(귀체건안)하심을仰賀且祝(앙하차축)하나이다.昨年(작년)年末(년말)과今般(금반)舊正(구정)에際(제)하여서울과全國(전국)에서勤務(근무)하는뻐쓰案內孃(안내양)들을위하여따뜻하고品位(품위)있는防寒(방한)코드와바지를製造(제조)하여주시고特(특)히바지는貴社(귀사)에서無料(무료)로膳賜(선사)까지하여주셔서感謝不已(감사불이)하는바입니다.

어린나이에家庭形便(가정형편)이不許(불허)하여上級學校(상급학교)에進學(진학)도못하고職業戰線(직업전선)에나와서고된일을하면서國民(국민)들에게奉仕(봉사)하고있는이들少女(소녀)들에게조고마한선물하나씩을보내어그들의勞苦(로고)를慰勞(위로)하고激勵(격려)할까하는뜻에서貴社(귀사)에게付託(부탁)을하였든것인데貴下(귀하)께서그趣旨(취지)를忖度(촌탁)하시고誠心(성심)껏協調(협조)하여주신데대하여眞心(진심)으로感謝(감사)를드리는바입니다.

이物品(물품)을받는案內孃(안내양)들도이것을알게되면眞心(진심)으로고맙게생각하고보다더誠實(성실)한마음가짐으로自己(자기)들이맡은일에誠心誠意(성심성의)熱心(열심)히일을하리라고믿습니다.다시한번感謝(감사)를드리며貴社(귀사)의더욱隆昌(융창)과發展(발전)이있기를祈願(기원)합니다.

1978년2월2일朴正熙(박정희)敬具(경구)

글쓴이신은숙(sys6602)[퍼온글임]

2.아랫사람에게담뱃불켜줘,침실에는효자손두고등긁어

박대통령은가끔청와대식구들과막걸리를마셨다.막걸리를마실때옆자리사람이잔을오래놓아두면손수젓가락을저어주면서마시라고권유했다.박대통령은담배를권하고손수라이터를켜불을붙여준대통령으로도여러사람들의기억에남아있다.박대통령의침실에는검도용목도,헬스용자전거,철봉,칼빈총등이있었고,머리맡에는등을긁을수있는’효자손’이있었다.가려운등을긁어줄수있는사람의손이없었기때문이었다.그역할을할육영수여사는이미저세상사람이되어있었고근혜씨는퍼스트레이디역할은했지만잠자리에서등을긁어줄수는없는노릇.그래서나무로된효자손이침대를지켰던것이다.대통령집무실에는부채와파리채가있었다.

만년의벗“방울이”

박대통령의말년,특히부인육영수여사의돌연한죽음이후는쓸쓸함이주변을감돌았다.박대통령은늦은밤거실에서혼자텔레비젼을보다가의자에앉아잠이든적도있었다.그의곁에서쓸쓸함을지켜준것은’방울이’라는강아지였다.이런쓸쓸함을떨치기위해배드민턴,줄넘기,턱걸이,철봉,물구나무서기등운동을했다.그러나이러한운동들도그의외로움을해소시키진못했다.

측근들의눈에비친박대통령은소탈하고,정감이넘치는할아버지였고,나라의장래를위해자신을희생한위대한영도자였다.혁명이후20년간자신의혁명목표를세워그것을달성하기위해하루하루를살아왔다.이제그목표가어느정도달성되었다고믿고,독재자로불리면서지켜온권좌에서물러설준비를하였다고한다.

그러나박대통령의역사는10월26일에막을내렸다.대통령의국장이끝나고집무실을정리하러들어갔을때벽에걸린달력은10월26일에정지되어있었다.하루에한장씩뜯겨지던달력이그렇게멈춰있는것을보고,청와대식구들은충격을받았다고한다.그래서그달력을아주소중한유품중에하나로보관하고있다.인간박정희!대통령의역사는그날그렇게멈추었지만영원히잊혀질수없는까닭에서다.

3.박정희와술

朴正熙(박정희)대통령은술을좋아하기도했고술과관련된일화도많이남겼다.朴(박)대통령과술에대한이야기는월간조선85년4월호’朴正熙(박정희)대통령과술’이라는기사에자세히나와있다.그기사에서朴(박)대통령의술과관련된부분을발췌수록해본다.

…70년부터9년간대통령경제담당특별보좌관으로일했던박진환씨는이렇게말한다."오후5시쯤되면대통령이우리한테전화를했다.’보좌관들다있어?식사같이해’이런내용이었다.그러면우리는6시에식당으로올라갔다.우리는막걸리가너무지겹게나와서오늘도또막걸린가하고,조금먼저가서식당에목을쏙내밀고살피곤했다.그때막걸리통이있으면아주질색을했다….어쩌다가가뭄에콩나듯이시버스리걸이나오는데그것만보면우리는얼굴이환해져서조그맣게소리쳤다.’됐다!’

박정희전대통령의식사습관이어찌나농민다웠던지술상에선예사로김치를손으로집어먹었고김을밥숟갈에척붙여서먹었으며닭고기를먹을때도손을잡고먹음직스럽게뜯어먹었다고한다.

…58년6월말당시기자였던Y씨는1군사령관이었던송요찬장군을만나러갔는데송장군이없어서,참모장인박정희장군을대신만났다.박장군은Y씨를맞아’먼길에오셨으니그냥갈수있느냐’면서중국집에가서술대접을했다.둘은배갈을먹기시작했다.둘은누가술이더센가시합을해보자고했다.그래서빈병을나란히눕혀가면서마셔댔다.이렇게하고보니빈병이24개가될때까지마셨다.Y씨는이것이박대통령이생전에세운최고기록일것이라고말했다.

…박대통령은술자리에앉으면먼저앞에놓인,젓가락,술잔,재떨이같은것을반듯하고가지런하게다시놓았다.이렇게주변을깔끔하게정리하는게버릇처럼돼있었다.그렇지만술자리에선참석한사람들을아주편안하게해줬다.

…박대통령은가끔막걸리에맥주를타서’맥탁’을만들어마시기도했고막걸리에사이다를타서’막사이’를만들어마시기도했다.술에취해서기분이좋으면박대통령은흘러간옛노래인’짝사랑(으악새)’이나’황성옛터’를불렀다.

박대통령주량은육영수여사가흉탄에쓰러진74년이후부터는급격히떨어졌다고한다.박대통령은생을마감하는자리에서도술과함께있었다.1979년10월26일박대통령의마지막궁정동술자리에서그가들었던마지막잔은막걸리와함께좋아하던시버스리걸이었다.

<월간조선’한국의대통령’에서발췌>

4.박정희의헤진혁대,도금이벗겨진넥타이핀

1979년10월26일저녁경복궁앞국군병원에서는이미시체가된박정희를놓고이런일들이벌어지고있었다.필자의"내무덤에침을뱉어라!"에서인용한다.

<두정보부경비원유성옥과서영준은허리에권총을차고있었다.그권총을일부러보이면서둘러선군의관과위생병들에게"꼭살려야해요"라고위협조로말했다.정규형대위는이우철일병에게심장마사지를하라고지시했다.이일병은환자의가슴위로올라가서두손을포갠뒤에왼쪽가슴을몇차례강하게눌렀다.동시에정대위는수동식인공호흡기’암부’를환자의입과코에덮어씌워놓고공기주머니를눌러공기를허파로밀어보냈다.

정대위는심장을자극하여박동하게하는강심제에피네프린20cc를가슴에주사했다.심장마사지도다시했다.한20분간응급소생법을실시했으나결과는회생불능이었다.

정대위는"도저히안되겠습니다"라고했다.송계용소령이"돌아가셨습니다"라고곁에버티고있는두감시자에게이야기했다.

"이사람이누구십니까.".

송소령의물음에두감시자는대답이없었다.며칠뒤군의관정규형대위는합수부에서조사를받을때"얼굴을보고도왜각하인줄몰랐는가"란질문에대해서이렇게답했다.

"병원에들어왔을때는얼굴에피가묻어있었고감시자들이응급처지중에도자꾸수건으로얼굴을덮었습니다.그리고시계가평범한세이코였고넥타이핀의멕기가벗겨져있었으며혁대도헤져있었습니다.머리에흰머리카락이약간있어50여세로보았습니다.이런여러가지사실로미루어각하라고는상상도할수가없었던것입니다.">

일부에서원수처럼욕을퍼붓고있는박정희는죽을때’평범한세이코,멕기가벗겨진넥타이핀,헤진혁대’를차고있었다.그의집무실과침실화장실물통에는벽돌한장씩들어있었다.물을절약하기위해서.그의집무실에는선풍기와파리채가있었다.기름절약을위해서한여름에도에어컨사용을통제했던그는문을열어놓고선풍기를틀면서더위를견뎠다.벌레가들어오면파리채로잡았다.그가죽을때입고있던바지는허리부분을수선하여늘린것이었다.

趙甲濟月刊朝鮮편집장(3Dmongol@chosun.com">mongol@chosun.com)

5.박정희와정조(正祖)

개인의응어리민족차원서푼초인(超人)"책을놓지않았던유교적교양인.."추진력은골돌한사색에서…

1979년11월3일중앙청광장에서열린고박정희대통령영결식에서최규하대통령권한대행이건국훈장대한민국장을영전에바칠때국립교향악단이연주한곡은리하르트슈트라우스가작곡한’짜라투스트라는이렇게말했다’였다.

낮은음에서시작되어고음으로치다른뒤꼭지점에도달했다가급격하게사라지는이장엄한곡은니체가쓴같은이름의책서문을음악으로표현한것이다.이곡처럼박정희는토종한국인으로태어나서초인(짜라투스트라)처럼살다가영웅에어울리는최후를남기면서사라져갔다.

이니체의책서문에는이런대목이있다.

‘인간이란실로더러운강물일뿐이다.인간이스스로를더럽히지않고이강물을삼켜버리려면모름지기바다가되지않으면안된다.’

박정희는질풍노도의시대를살면서영욕과청탁을같이들이마셨던사람이다.영웅이란한시대를비추는거울이고그시대를담는그릇이며새로운시대를빚어내는용광로이다.그는시대정신을반영하고그시대의요구를담아현실속에서구현하는사람이다.영웅은보통난세에나타나서불꽃처럼살다가홀연히사라진다.그리하여후세에오래오래계속되는논쟁점을남긴다.바다처럼청탁을함께포용하고있기때문이다.

암살순간에도"난괜찮아".

니체가말한대로스스로의혼을더럽히지않고청탁을함께쓸어담았다가이를소화하여한반도라는화폭에큰그림을그렸다는점에서박정희는김일성과차원을달리하는인간이다.김일성은권력으로부패했으나박정희는권력을쥐고도끝까지맑은혼을유지하였다.

63년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시절에쓴’국가와혁명과나’에그가인용하여실은시의한구절은’2등객차에불란서시집을읽는소녀야나는고운네손이밉더라’였다.

그는이시를인용한뒤에’고운손은우리의적이다’고덧붙였다.이책끝장에서박정희는’가난은나의스승이고군림사회와특권계층을증오하는것은나의생리’라면서’서민속에서나고,자라고,일하고,그리하여그서민의인정속에서생이끝나기를염원한다’고했다.

박정희는1979년10월26일저녁7시40분김재규가벽력같은고함을지르면서차지철을쏠때,그리고차지철이실내화장실로달아날때,이어서김재규가일어서서4∼5초쯤주저하다가박정희의가슴을향하여발사할때미동도하지않고눈을지그시감고있었다.이는곁에있었던두여인의일치된증언이다.

차지철이실내화장실문을빼꼼이열고"각하괜찮습니까"하고물었을때박정희는"난괜찮아"라고했다.두여인이"각하진짜괜찮습니까"라고했을때그는또다시"난괜찮아"라고했다.이순간그는관통상으로인해등에서는선혈을콸콸쏟고있었다.세계의암살사를다뒤져도이런초인적인장면을발견하기란어려울것이다.준비없이맞이한상황에서그가보여준이모습이야말로인간박정희의꾸밈없는진면목이다.

육영수는선을볼때박정희가구두끈을푸는뒷모습이좋았다고고백한적이있다.인간은앞모습은꾸밀수가있지만뒷모습은꾸밀수가없다.뒷모습이야말로그인간의참얼굴일것이다.총알이허파를꿰뚫고지나간뒤에도"난괜찮아"라는말을한그의마지막모습이바로우리가본그의뒷모습이었다.

이런행동은죽음과오랫동안대면해왔던사람,그리하여죽음과친구가된사람만이자연스럽게보여줄수있는것이리라.그는어머니가임신했을때지워버리려고그렇게애썼던생명이었다.44세에며느리를둘이나둔어머니는박정희를임신하자간장을두사발이나마시고기절해보기도하고높은데서뛰어내려상처를내보기도했다고한다.

무거운것을배에얹어서뒤로넘어져보기도했으나뱃속의생명은지워지지않았다.그리하여’태어나서는안될생명’이태어났고이인물에의하여이나라가천지개벽의변화를겪었으니운명적이란말로써밖에설명할길이없다.

박정희는지옥의문턱까지,그리고인생의골짜기까지떨어졌던경험을여러번했던사람이다.남로당에포섭되었다가탄로가나서전기고문을받는가혹한수사끝에사형선고를받았으나그의인간됨을아낀많은사람들의운동에의해서생환했다.그때동거하던이모여인은가출하여그를버렸고피난중부산의어느술집에서이상한관계로재회했다.

마음은여리지만간은컸던사람.

박정희는실연과가난과그에따른인간적수모,식민지생활의울분,해방후사상대결에서겪었던비참함을하나의거대한응어리로만들어가슴속깊이묻어두었던사람이기도하다.이응어리를개인적차원에서해소하려하지않고민족적차원에서풀어간점에서그가혁명가임을확인하게된다.이응어리는그의동력원이었다.

이응어리로해서그는미국에도전하는엄청난오기를부릴수있었다.타고난반골인그는경제개발을통해서물질적인기반을확보한다음,우리의운명을우리가스스로결정할수있는자주국가의건설을최종목표로설정했던것이다.

박정희는소심담대한사람이었다.즉마음은여리고부끄럼을타며간은큰사람이었다.육영수와선을보러갈때는가슴이떨려서소주한병을마시고간사람이총구앞에서는태산처럼의연했다.그의집무실은서재로불렸다.그는책을손에서떼지않는유교적교양인이기도했다.정확한용어선택과늘핵심을찌르는그의말은박정희가1급지식인이었음을보여준다.

박정희의추진력은골똘한사색에서나왔다.그가이룩한엄청난물질적인성취의바탕이되었던이정신력을간과하고는박정희를제대로이해할수없을것이다.말년의박정희는아내를잃은허전함으로해서내면이해이해졌다.그를둘러싼권력의갑옷은차지철경호실장의월권에의해서경직되어갔다.

이허전함과경직됨의틈바구니에서김재규의총탄을허용했던것이다.그러나박정희로하여금영웅으로죽게만든김재규는저승에서박정희로부터"고맙다"는말을들었을지누가아는가.

글쓴이:김두영(전청와대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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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으로부터독재자라고불리는대통령이진짜국민을위한대통령…

…故朴大統領의談話文中에서


지만원



내가해온모든일에대해서,

지금까지야당은반대만해왔던것입니다.


나는진정오늘까지야당으로부터

한마디의지지나격려도받아보지못한채,

오로지극한적반대속에서막중한국정을

이끌어왔습니다.


한일국교정상화를추진한다고하여,

나는야당으로부터매국노라는욕을들었으며

월남에국군을파병한다고하여,

"젊은이의피를판다"고그들은악담을하였읍니다.


없는나라에서남의돈이라도빌려와서

경제건설을서둘러보겠다는

나의노력에대하여

그들은"차관망국"이라고비난하였으며,


향토예비군을창설한다고하여,그들은국토방위를

"정치적이용을꾀한다"고모함하고


국토의대동맥을뚫는고속도로건설을

그들은"국토의해체"라고하였습니다.


반대하여온것등등대소사를막론하고

내가하는모든일에대해서,비방.중상.모략.악담등을

퍼부며결사반대만해왔던것입니다.


만일우리가그때야당의반대에못이겨

이를중단하거나포기하였더라면,

과연오늘대한민국이설땅이어디겠습니까?


지금이시간에도야당은유세에서

나에대한온갖인신공격과

야당은언필칭나를독재자라고비방합니다.


내가만일,야당의반대에굴복하여

"물에물탄듯"소신없는일만해왔더라면

나를가리켜독재자라고말하지않았을것입니다.


야당의반대를무릅쓰고라도

국가와민족을위해도움이되는일이라면,

내소신껏굽히지않고일해온나의태도를가리켜

그들은독재자라고말하고있습니다.


야당이나를아무리독재자라고비난하든,

나는이소신과태도를고치지않을것입니다.


또앞으로누가대통령이되든오늘날우리야당과같은

"반대를위한반대"의고질이고쳐지지않는한

야당으로부터오히려독재자라고불리는대통령이

진짜국민을위한대통령이라고나는생각합니다


故박정희대통령의인간적인면모

1.박정희대통령의편지

1978년2월2일,朴正熙(박정희)대통령이버스안내양들의방한복을제작하던주식회사태흥사장에게보낸감사편지이다.당시버스안내양들의방한코트제작을의뢰받은주식회사태흥의權泰興(권태흥)사장은방한바지를함께제작,무료로납품했다.이에朴正熙(박정희)대통령이감사편지를보낸것이다.이편지에서朴(박)대통령은버스안내양들을어린나이에가정형편이불행하여상급학교에진학도못하고직업전선에나와서고된일을하면서국민들에게봉사하고있는이들少女(소녀)」라고썼다.버스안내양들의입장을이보다더가슴깊이사무치게대변하기는어려울것이다.하급노동자의삶을대통령이챙기는이런모습이當代(당대)엔국민들에게거의알려지지않았다.홀아비가된朴(박)대통령주변을둘러싼권력의장막이이를막고있었고밖에서는유신철폐를외치는야당과재야인사들의외침에가려져있었다.朴대통령이權泰興사장에게버스안내양들을대신해서감사를표시하는문장들마다마치대통령이안내양을친딸처럼여기는마음씨가곳곳에배어있다.

(편지원문)

時下酷寒之節(시하혹한지절)貴體健安(귀체건안)하심을仰賀且祝(앙하차축)하나이다.昨年(작년)年末(년말)과今般(금반)舊正(구정)에際(제)하여서울과全國(전국)에서勤務(근무)하는뻐쓰案內孃(안내양)들을위하여따뜻하고品位(품위)있는防寒(방한)코드와바지를製造(제조)하여주시고特(특)히바지는貴社(귀사)에서無料(무료)로膳賜(선사)까지하여주셔서感謝不已(감사불이)하는바입니다.

어린나이에家庭形便(가정형편)이不許(불허)하여上級學校(상급학교)에進學(진학)도못하고職業戰線(직업전선)에나와서고된일을하면서國民(국민)들에게奉仕(봉사)하고있는이들少女(소녀)들에게조고마한선물하나씩을보내어그들의勞苦(로고)를慰勞(위로)하고激勵(격려)할까하는뜻에서貴社(귀사)에게付託(부탁)을하였든것인데貴下(귀하)께서그趣旨(취지)를忖度(촌탁)하시고誠心(성심)껏協調(협조)하여주신데대하여眞心(진심)으로感謝(감사)를드리는바입니다.

이物品(물품)을받는案內孃(안내양)들도이것을알게되면眞心(진심)으로고맙게생각하고보다더誠實(성실)한마음가짐으로自己(자기)들이맡은일에誠心誠意(성심성의)熱心(열심)히일을하리라고믿습니다.다시한번感謝(감사)를드리며貴社(귀사)의더욱隆昌(융창)과發展(발전)이있기를祈願(기원)합니다.

1978년2월2일朴正熙(박정희)敬具(경구)

글쓴이신은숙(sys6602)[퍼온글임]

2.아랫사람에게담뱃불켜줘,침실에는효자손두고등긁어

박대통령은가끔청와대식구들과막걸리를마셨다.막걸리를마실때옆자리사람이잔을오래놓아두면손수젓가락을저어주면서마시라고권유했다.박대통령은담배를권하고손수라이터를켜불을붙여준대통령으로도여러사람들의기억에남아있다.박대통령의침실에는검도용목도,헬스용자전거,철봉,칼빈총등이있었고,머리맡에는등을긁을수있는’효자손’이있었다.가려운등을긁어줄수있는사람의손이없었기때문이었다.그역할을할육영수여사는이미저세상사람이되어있었고근혜씨는퍼스트레이디역할은했지만잠자리에서등을긁어줄수는없는노릇.그래서나무로된효자손이침대를지켰던것이다.대통령집무실에는부채와파리채가있었다.

만년의벗“방울이”

박대통령의말년,특히부인육영수여사의돌연한죽음이후는쓸쓸함이주변을감돌았다.박대통령은늦은밤거실에서혼자텔레비젼을보다가의자에앉아잠이든적도있었다.그의곁에서쓸쓸함을지켜준것은’방울이’라는강아지였다.이런쓸쓸함을떨치기위해배드민턴,줄넘기,턱걸이,철봉,물구나무서기등운동을했다.그러나이러한운동들도그의외로움을해소시키진못했다.

측근들의눈에비친박대통령은소탈하고,정감이넘치는할아버지였고,나라의장래를위해자신을희생한위대한영도자였다.혁명이후20년간자신의혁명목표를세워그것을달성하기위해하루하루를살아왔다.이제그목표가어느정도달성되었다고믿고,독재자로불리면서지켜온권좌에서물러설준비를하였다고한다.

그러나박대통령의역사는10월26일에막을내렸다.대통령의국장이끝나고집무실을정리하러들어갔을때벽에걸린달력은10월26일에정지되어있었다.하루에한장씩뜯겨지던달력이그렇게멈춰있는것을보고,청와대식구들은충격을받았다고한다.그래서그달력을아주소중한유품중에하나로보관하고있다.인간박정희!대통령의역사는그날그렇게멈추었지만영원히잊혀질수없는까닭에서다.

3.박정희와술

朴正熙(박정희)대통령은술을좋아하기도했고술과관련된일화도많이남겼다.朴(박)대통령과술에대한이야기는월간조선85년4월호’朴正熙(박정희)대통령과술’이라는기사에자세히나와있다.그기사에서朴(박)대통령의술과관련된부분을발췌수록해본다.

…70년부터9년간대통령경제담당특별보좌관으로일했던박진환씨는이렇게말한다."오후5시쯤되면대통령이우리한테전화를했다.’보좌관들다있어?식사같이해’이런내용이었다.그러면우리는6시에식당으로올라갔다.우리는막걸리가너무지겹게나와서오늘도또막걸린가하고,조금먼저가서식당에목을쏙내밀고살피곤했다.그때막걸리통이있으면아주질색을했다….어쩌다가가뭄에콩나듯이시버스리걸이나오는데그것만보면우리는얼굴이환해져서조그맣게소리쳤다.’됐다!’

박정희전대통령의식사습관이어찌나농민다웠던지술상에선예사로김치를손으로집어먹었고김을밥숟갈에척붙여서먹었으며닭고기를먹을때도손을잡고먹음직스럽게뜯어먹었다고한다.

…58년6월말당시기자였던Y씨는1군사령관이었던송요찬장군을만나러갔는데송장군이없어서,참모장인박정희장군을대신만났다.박장군은Y씨를맞아’먼길에오셨으니그냥갈수있느냐’면서중국집에가서술대접을했다.둘은배갈을먹기시작했다.둘은누가술이더센가시합을해보자고했다.그래서빈병을나란히눕혀가면서마셔댔다.이렇게하고보니빈병이24개가될때까지마셨다.Y씨는이것이박대통령이생전에세운최고기록일것이라고말했다.

…박대통령은술자리에앉으면먼저앞에놓인,젓가락,술잔,재떨이같은것을반듯하고가지런하게다시놓았다.이렇게주변을깔끔하게정리하는게버릇처럼돼있었다.그렇지만술자리에선참석한사람들을아주편안하게해줬다.

…박대통령은가끔막걸리에맥주를타서’맥탁’을만들어마시기도했고막걸리에사이다를타서’막사이’를만들어마시기도했다.술에취해서기분이좋으면박대통령은흘러간옛노래인’짝사랑(으악새)’이나’황성옛터’를불렀다.

박대통령주량은육영수여사가흉탄에쓰러진74년이후부터는급격히떨어졌다고한다.박대통령은생을마감하는자리에서도술과함께있었다.1979년10월26일박대통령의마지막궁정동술자리에서그가들었던마지막잔은막걸리와함께좋아하던시버스리걸이었다.

<월간조선’한국의대통령’에서발췌>

4.박정희의헤진혁대,도금이벗겨진넥타이핀

1979년10월26일저녁경복궁앞국군병원에서는이미시체가된박정희를놓고이런일들이벌어지고있었다.필자의"내무덤에침을뱉어라!"에서인용한다.

<두정보부경비원유성옥과서영준은허리에권총을차고있었다.그권총을일부러보이면서둘러선군의관과위생병들에게"꼭살려야해요"라고위협조로말했다.정규형대위는이우철일병에게심장마사지를하라고지시했다.이일병은환자의가슴위로올라가서두손을포갠뒤에왼쪽가슴을몇차례강하게눌렀다.동시에정대위는수동식인공호흡기’암부’를환자의입과코에덮어씌워놓고공기주머니를눌러공기를허파로밀어보냈다.

정대위는심장을자극하여박동하게하는강심제에피네프린20cc를가슴에주사했다.심장마사지도다시했다.한20분간응급소생법을실시했으나결과는회생불능이었다.

정대위는"도저히안되겠습니다"라고했다.송계용소령이"돌아가셨습니다"라고곁에버티고있는두감시자에게이야기했다.

"이사람이누구십니까.".

송소령의물음에두감시자는대답이없었다.며칠뒤군의관정규형대위는합수부에서조사를받을때"얼굴을보고도왜각하인줄몰랐는가"란질문에대해서이렇게답했다.

"병원에들어왔을때는얼굴에피가묻어있었고감시자들이응급처지중에도자꾸수건으로얼굴을덮었습니다.그리고시계가평범한세이코였고넥타이핀의멕기가벗겨져있었으며혁대도헤져있었습니다.머리에흰머리카락이약간있어50여세로보았습니다.이런여러가지사실로미루어각하라고는상상도할수가없었던것입니다.">

일부에서원수처럼욕을퍼붓고있는박정희는죽을때’평범한세이코,멕기가벗겨진넥타이핀,헤진혁대’를차고있었다.그의집무실과침실화장실물통에는벽돌한장씩들어있었다.물을절약하기위해서.그의집무실에는선풍기와파리채가있었다.기름절약을위해서한여름에도에어컨사용을통제했던그는문을열어놓고선풍기를틀면서더위를견뎠다.벌레가들어오면파리채로잡았다.그가죽을때입고있던바지는허리부분을수선하여늘린것이었다.

趙甲濟月刊朝鮮편집장(3Dmongol@chosun.com">mongol@chosun.com)

5.박정희와정조(正祖)

개인의응어리민족차원서푼초인(超人)"책을놓지않았던유교적교양인.."추진력은골돌한사색에서…

1979년11월3일중앙청광장에서열린고박정희대통령영결식에서최규하대통령권한대행이건국훈장대한민국장을영전에바칠때국립교향악단이연주한곡은리하르트슈트라우스가작곡한’짜라투스트라는이렇게말했다’였다.

낮은음에서시작되어고음으로치다른뒤꼭지점에도달했다가급격하게사라지는이장엄한곡은니체가쓴같은이름의책서문을음악으로표현한것이다.이곡처럼박정희는토종한국인으로태어나서초인(짜라투스트라)처럼살다가영웅에어울리는최후를남기면서사라져갔다.

이니체의책서문에는이런대목이있다.

‘인간이란실로더러운강물일뿐이다.인간이스스로를더럽히지않고이강물을삼켜버리려면모름지기바다가되지않으면안된다.’

박정희는질풍노도의시대를살면서영욕과청탁을같이들이마셨던사람이다.영웅이란한시대를비추는거울이고그시대를담는그릇이며새로운시대를빚어내는용광로이다.그는시대정신을반영하고그시대의요구를담아현실속에서구현하는사람이다.영웅은보통난세에나타나서불꽃처럼살다가홀연히사라진다.그리하여후세에오래오래계속되는논쟁점을남긴다.바다처럼청탁을함께포용하고있기때문이다.

암살순간에도"난괜찮아".

니체가말한대로스스로의혼을더럽히지않고청탁을함께쓸어담았다가이를소화하여한반도라는화폭에큰그림을그렸다는점에서박정희는김일성과차원을달리하는인간이다.김일성은권력으로부패했으나박정희는권력을쥐고도끝까지맑은혼을유지하였다.

63년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시절에쓴’국가와혁명과나’에그가인용하여실은시의한구절은’2등객차에불란서시집을읽는소녀야나는고운네손이밉더라’였다.

그는이시를인용한뒤에’고운손은우리의적이다’고덧붙였다.이책끝장에서박정희는’가난은나의스승이고군림사회와특권계층을증오하는것은나의생리’라면서’서민속에서나고,자라고,일하고,그리하여그서민의인정속에서생이끝나기를염원한다’고했다.

박정희는1979년10월26일저녁7시40분김재규가벽력같은고함을지르면서차지철을쏠때,그리고차지철이실내화장실로달아날때,이어서김재규가일어서서4∼5초쯤주저하다가박정희의가슴을향하여발사할때미동도하지않고눈을지그시감고있었다.이는곁에있었던두여인의일치된증언이다.

차지철이실내화장실문을빼꼼이열고"각하괜찮습니까"하고물었을때박정희는"난괜찮아"라고했다.두여인이"각하진짜괜찮습니까"라고했을때그는또다시"난괜찮아"라고했다.이순간그는관통상으로인해등에서는선혈을콸콸쏟고있었다.세계의암살사를다뒤져도이런초인적인장면을발견하기란어려울것이다.준비없이맞이한상황에서그가보여준이모습이야말로인간박정희의꾸밈없는진면목이다.

육영수는선을볼때박정희가구두끈을푸는뒷모습이좋았다고고백한적이있다.인간은앞모습은꾸밀수가있지만뒷모습은꾸밀수가없다.뒷모습이야말로그인간의참얼굴일것이다.총알이허파를꿰뚫고지나간뒤에도"난괜찮아"라는말을한그의마지막모습이바로우리가본그의뒷모습이었다.

이런행동은죽음과오랫동안대면해왔던사람,그리하여죽음과친구가된사람만이자연스럽게보여줄수있는것이리라.그는어머니가임신했을때지워버리려고그렇게애썼던생명이었다.44세에며느리를둘이나둔어머니는박정희를임신하자간장을두사발이나마시고기절해보기도하고높은데서뛰어내려상처를내보기도했다고한다.

무거운것을배에얹어서뒤로넘어져보기도했으나뱃속의생명은지워지지않았다.그리하여’태어나서는안될생명’이태어났고이인물에의하여이나라가천지개벽의변화를겪었으니운명적이란말로써밖에설명할길이없다.

박정희는지옥의문턱까지,그리고인생의골짜기까지떨어졌던경험을여러번했던사람이다.남로당에포섭되었다가탄로가나서전기고문을받는가혹한수사끝에사형선고를받았으나그의인간됨을아낀많은사람들의운동에의해서생환했다.그때동거하던이모여인은가출하여그를버렸고피난중부산의어느술집에서이상한관계로재회했다.

마음은여리지만간은컸던사람.

박정희는실연과가난과그에따른인간적수모,식민지생활의울분,해방후사상대결에서겪었던비참함을하나의거대한응어리로만들어가슴속깊이묻어두었던사람이기도하다.이응어리를개인적차원에서해소하려하지않고민족적차원에서풀어간점에서그가혁명가임을확인하게된다.이응어리는그의동력원이었다.

이응어리로해서그는미국에도전하는엄청난오기를부릴수있었다.타고난반골인그는경제개발을통해서물질적인기반을확보한다음,우리의운명을우리가스스로결정할수있는자주국가의건설을최종목표로설정했던것이다.

박정희는소심담대한사람이었다.즉마음은여리고부끄럼을타며간은큰사람이었다.육영수와선을보러갈때는가슴이떨려서소주한병을마시고간사람이총구앞에서는태산처럼의연했다.그의집무실은서재로불렸다.그는책을손에서떼지않는유교적교양인이기도했다.정확한용어선택과늘핵심을찌르는그의말은박정희가1급지식인이었음을보여준다.

박정희의추진력은골똘한사색에서나왔다.그가이룩한엄청난물질적인성취의바탕이되었던이정신력을간과하고는박정희를제대로이해할수없을것이다.말년의박정희는아내를잃은허전함으로해서내면이해이해졌다.그를둘러싼권력의갑옷은차지철경호실장의월권에의해서경직되어갔다.

이허전함과경직됨의틈바구니에서김재규의총탄을허용했던것이다.그러나박정희로하여금영웅으로죽게만든김재규는저승에서박정희로부터"고맙다"는말을들었을지누가아는가.

글쓴이:김두영(전청와대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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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으로부터독재자라고불리는대통령이진짜국민을위한대통령…

…故朴大統領의談話文中에서


지만원



내가해온모든일에대해서,

지금까지야당은반대만해왔던것입니다.


나는진정오늘까지야당으로부터

한마디의지지나격려도받아보지못한채,

오로지극한적반대속에서막중한국정을

이끌어왔습니다.


한일국교정상화를추진한다고하여,

나는야당으로부터매국노라는욕을들었으며

월남에국군을파병한다고하여,

"젊은이의피를판다"고그들은악담을하였읍니다.


없는나라에서남의돈이라도빌려와서

경제건설을서둘러보겠다는

나의노력에대하여

그들은"차관망국"이라고비난하였으며,


향토예비군을창설한다고하여,그들은국토방위를

"정치적이용을꾀한다"고모함하고


국토의대동맥을뚫는고속도로건설을

그들은"국토의해체"라고하였습니다.


반대하여온것등등대소사를막론하고

내가하는모든일에대해서,비방.중상.모략.악담등을

퍼부며결사반대만해왔던것입니다.


만일우리가그때야당의반대에못이겨

이를중단하거나포기하였더라면,

과연오늘대한민국이설땅이어디겠습니까?


지금이시간에도야당은유세에서

나에대한온갖인신공격과

야당은언필칭나를독재자라고비방합니다.


내가만일,야당의반대에굴복하여

"물에물탄듯"소신없는일만해왔더라면

나를가리켜독재자라고말하지않았을것입니다.


야당의반대를무릅쓰고라도

국가와민족을위해도움이되는일이라면,

내소신껏굽히지않고일해온나의태도를가리켜

그들은독재자라고말하고있습니다.


야당이나를아무리독재자라고비난하든,

나는이소신과태도를고치지않을것입니다.


또앞으로누가대통령이되든오늘날우리야당과같은

"반대를위한반대"의고질이고쳐지지않는한

야당으로부터오히려독재자라고불리는대통령이

진짜국민을위한대통령이라고나는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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