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피난살이 4 편

나를사랑한할머니….

피난때나를버렸던막내삼촌이일등중사계급장을달고만석동우리집으로휴가를

왔다동생들만있던나는군복을입은막내삼촌이그냥좋았다.

그러나엄마에겐옛날추억이되살아나는지삼촌에게엄청까칠하게대했고

"육군건빵"이라고찍힌누런봉지에가득들은간빵,

삼촌이그것을먹지않고조카인나를주려고모아서갖어온것이다.

이간빵을들고동네방네다니며자랑도하고평소에나를그렇게땜통이라고놀리던

새똥이와못난이에게도몇개씩주며맛보게할땐신나게으시대면서…

아이들이부러워하던그때의기분좋았던희열이있었기나에게삼촌은영웅이었다.

그러나엄마에겐옛날추억이되살아나는지삼촌에게엄청까칠하게대했고

삼촌은그래도좋다고

네형수,네형수하며엄마의비위를마추며몇일을보냈다.

휴가기간이25일이었고우리집엔10일정도같이있으며잠은다락에서나와함께자며

내가조금만맘에안들면나를아주군인다루듯이업드려뻐쳐,원산폭격등기압을

주는등군기를집어넣는데그때내나이11살이었다.삼촌은24살….

진짜로기압을받을땐삼촌이야속하고안좋기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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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시골에서홀로살기가힘들어밥이라도먹고산다는둘째아들내인우리

집으로아이를봐준다며올라오셔서3째봉규를봐주며같이살게되었고,

할머니는엄마와가끔한바탕씩큰소리로다투시곤했다.

그때내가본것들이고부간의갈등이라는것을모르고할머니도우리편?,

엄마도우리편?인데왜싸울까?하며이상하게생각했었다.

얼마안되어피난을갔을때도몇번못본큰삼촌까지마음잡고정착하여일하겠다고

하며아버지를찾아와몇일묶은뒤

옆동네인화수동달동네에문간방을얻어나가신후할머니와사시다가얼마안되어

결혼을하고다시이사를하고살림을차리셨다.

가끔삼촌집엘놀러가면작은엄마가쌀밥누룽지도주며잘대해주었고

더기분좋은것은단칸방이지만깔끔하게도배된깨끝한방에서는항상은은한

분냄새가났고나는그냄새를맡으면기분이좋았다.

아버지와노동일을나가는삼촌은워낙힘이좋고기골이장대하고목소리가우렁차서

가히항우장사라불릴정도였고게다가삼촌이사람들을향하여화를낼때의눈빛은

공포그자체였다.

아버지와삼촌이한조가되어일할땐괭이부리에서그누구도아무도시비걸어오는

사람도없었던만치그런날의수입은그야말로짭짤그상태였고

그렇게힘이장사인삼촌과아버지가너무자랑스럽고든든하고행복해서세상이

다내것처럼느낄정도였다.

1957년12월4째동생성규가태어났다.

아주복스럽고건강하게잘생긴동생이다.

하여간우리형제들은모두잘~생기게태어나인물이훤했다

1958년여름7,8월성규를나에게맡기고어머니는일을찾아나가고나와필규그리고

여동생미자랑셋이서네째를엄마대신돌봐주어야했다.

3째인봉규는할머니가업고삼촌집에가서작은엄마살림하는것도와준다고놀러가고

꼬물꼬물한아이들4명만집에남아집을본다.

필규와미자는나가놀고성규가자꾸기어문밖으로나가기때문에아예다락에올려놓고

햇빛이들어오는다락창문을통하여바같구경을하게하며울타리밖으로오가며

지나다니는사람을가르키며막내의눈을마주보고말부치며달래주는것이전부였다.

오늘따라유난히보채는막내성규가울음을그치지않고계속칭얼대기를몇시간째다.

배가고파서도그렇겠지만어데아픈지도모르겠고,

지금이오후2시니까엄마가오려면아직도4시간정도는되어야올텐데….

부억으로내려가물한대접에당원을달게타서성규에게먹이는데얼마나배가

고팠었는지쬐고만놈이물한대접을다먹어버린다.

다시한대접을타서반쯤내가마시고더주었더니더이상생각이없는모양이다.

생각해보니배가고파서그렇게울었던것이다.

나는막내를재우려고창밖으로지나다니는사람들을같이보게하며아이를안은체로

좌우로허리를움직이며아이의관심을끌기위한즉석작사자장가를불렀다.

한사람지나간다…또한사람지나간다…한여자지나간다..한사람은여자고

한사람은아줌마…엄마는아직안보이네…한사람지나가고,

또한여자지나간다…엄마는언제올가?…우리성규가잠이들면올까?…

이렇게불무를하며얼마시간을보내니드디어잠이들었다,

막내를내려놓고가만히아기벼개를바쳐주는데도쌔근쌔근잘도자고있었다.

자는모습이포동포동하고하얀알몸에배꼽까지올라오게귀저귀를찬막내의모습이

하얀아기곰처럼예뻣다.

엄마가와서젖을물릴때까지그렇게잠을잘정도로무던하게순하고착했던성규는

아버지와엄마의속도별로안썩이고잘자라주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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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살아가던어느날

할머니는삼촌의신혼방이너무좁고3째봉규가자꾸엄마만찾으며보챈다고

집에데려다놓고삼촌집으로다시가셨는데,

그다음날아침화수동삼촌댁안집에서급히사람을보내서할머니와삼촌부부가

돌아가셨다고우리집에알려왔다.

너무황당하여못믿어워하며아버지와엄마그리고나는불이나게삼촌집문간방으로

뛰어가보니할머니는방에서부억쪽으로문을열고얼굴을내놓고작은아버지는바로

누운체작은엄마는엎드려있었고두분모두누런오물을요위에토한상태였다.

세분모두연탄까스중독으로돌아가셨다고했다.

(불타는구공탄)

객지를떠돌며그전쟁통에서도살아남았던굳굳한작은아버지아니삼촌이,

그리고숱한역경을이기고견디어오신할머니와시집오신신혼의작은엄마는

19공탄한개로방을따듯하게하고주무시려다연탄가스를맏고중독되어돌아가셨다.

우리집이좁다고안주무시고작은아버지댁으로가셨던할머니도돌아가셨다.

어찌사람의운명이이렇게허망할수가있을까?

나를장손과다름없이생각하시고사랑하시며숱한역경과죽을뻔했던고비를넘어오늘까지

살수있도록몸과마음으로애써주셨던할머니였다…

피난길,회인에서팔매실죽음의골짜기까지그가파르고험한산중에서공산군에게들키면

영락없이죽어야하는생사를가름했던공포와절명의순간에도

피고름을흘리며아픔에고통스러워하며죽어가던나를살리겠다고그힘들었던길을끝까지

업고숨고도망다니며묵묵히살려내신할머니,나는한없이다정했고사랑했던

할머니를생각하면서

그아침,

늦게학교에가서선생님에게할머니와작은아버지,작은엄마가돌아가셨다는부음을전하며

며칠결석하겠다고절을하고학교정문을나서는순간,

그때서야

할머니에대한사모치는서러움에나도모르게참았던눈물을흘리고말았다…..

나를사랑했던할머니는그렇게나를떠나셨다.

지금도보고싶은인자하셨던할머니를허공에외쳐본다.

할머니~~~~할머니~~~~~~

밤이면할머니옆에누워할머니가들려주던재미있는떡장수엄마와호랑이의

"떡하나주면안잡아먹지"

"햇님오빠와달님동생"이라는옛날이야기도들을수없게되었고

배가아플땐할머니의따듯한약손으로내배를몇번쓰다듬어주면아프던배가감쪽같이

나아스르르잠들었던일들,

이제는할머니의냄새와따듯한손길을영원히느낄수없게되었다….

내나이12살축현국민학교5학년.

할머니와작은아버지어머니가불의의사고로돌아가시고우리집은한동안아무

사고없이열심히살아갔으며

전교미술부장인나는학교에서공부가하기싫거나숙제를안해간날은아침등교하자마자

교감선생님을찾아가미술부원들과자유공원으로맥아더동상을그리러나가겠노라고

보고하여승인을받아놓고오후시간에미술부원모두를

집합(약20명)시켜의기양양하게스케치북을옆에차고학교정문을나서서자유공원으로

줄마추어행군해올라가는데아이들은내말을참잘따랐다.

아이들도빡빡한공부보다나처럼밖에나와그림을그리는것이더좋았나보다^^*

선생님의따가운질책도없으며,숙제검사도없고,공부못한다고지적당해화장실

청소할일도없을뿐만아니라모든것이열외였고자유시간이라좋아하는것했다.

맥아더장군동상아래서옹기종기모여동상이나또는구경하는사람들모습,

또는기상대와무궁화꽃아무거나두어시간안에한장그려놓으면끝이었고

그리고나머지시간은자유시간이었기때문이다……

(6.25동란을승리로이끌어우리나라의자유를지켜준인천자유공원의맥아더장군동상)

운동부아이들은매일운동장을뺑?뺑돌며기압을받고,

음악부는매일음악교실에서깡깡이치고나팔불고,

주산부는무슨놈의1234567…숫자책만놓고떠들지도못하며수판알튀기며지지고볶지만

나의미술부는내가하고자하는대로할수있었다.

우리미술부원들은학교가파하기마지막수업시간에다같이그린그림을갖고들어가

미술선생님에게제출하면그날수업은다끝났다.

이래서미술부는자치활동점수도좋았으며언제나아이들이잘모였었다.

아이구찌와기찻길

그러나모든일이그렇듯이학교생활이그렇게평탄치만도않았다.

등치크고나이가한두살많은고아원출신의아이들이주축이되어조직을구성하고

선생님이모르게활동하며아이들을괴롭히고있었다.

이들은이유없이약한아이들을괴롭히고,

돈을빼앗고돈이없는애들은끝까지괴롭히며다음날돈을갖어오게하여빼앗거나

갖고있는소지품중에좋은것들은빼앗아가고그것도없을땐학교뒤화장실이나

방과후골목길에서기다렸다가괴롭히곤했다.

까만교모의챙은90도로꺽어머리에살짝올려쓰고끈을매는검은운동화를신고

두세명씩모여어깨를흔들며거드름을피우는아이들,

방과후집으로가는길에는그들이공포의대상이되었다.

나는다행스럽게폐병환자같이얼굴이노랗고버짐도있고머리엔하얗게땜통까지

있어서그들에게있어나는경멸과기피의대상으로안중에도없었다.

사친회비도못내고선생님이자주집으로돌려보내는것을보았기에약탈대상으로는

자격미달이었던것이었다.

ㅋ~병약하고가난한것이이런땐복이된건가?

하지만친구들은달랐다,

가끔얻어맞기도하고빼앗기기도했기에참고견디다못해나름대로방어방법을

연구하고있었다.

먼저4인치나5인치(10~12.5cm)크기의대못을구해다가방과후에먼기찻길을돌아

집으로가면서

철로에얼굴을대고기차가오는것을확인하고는철로위에대못을올려놓고기차가

지나간뒤에그곳에가보면굵고둥그렇던대못이기차바퀴에눌려서

납작하게칼처럼다듬어저있다.

이것을다시철로에올려놓고기차가한번더지나가면그야말로적당히얇고멋있는

칼이만들어진다,

이것을숫돌에갈아날을세우고나무로자루를예쁘게깍아붙이면

가방이나주머니에넣고다니기알맞은칼이되었다,

갖은것은많지않았지만빼앗기지않고매맞지않으려고저마다이렇게칼을만들어

방어용으로비밀스럽게휴대하여갖고다녔다.

양아치들과우리들은이칼을"아이구찌"라고불렀다.

그런데문제는이칼을교실에서양아치들에게사전에발각되는데양아치들손에들어

가면은많은위험을감수해야했다.

그때나도아이구찌를멋있게여러개만들어빼앗긴아이들에게호떡하나씩얻어먹으며

보급을해주기도했다.

말하자면약소국에무기를공급했다고할까?

나는졸업을할때까지양아치들에게뺏긴것도없었지만아이들은나는건드리지안았다.

1959년6학년5월,

열심히일하고절약했던아버지와엄마의노력으로만석동11번지의학고방판자집이지만

등기평수11.5평짜리약18평되는대지에방3개부억2개그리고5평정도의마당이있는

단독주택을120만환에사서이사를하면서돈이부족하여부엌이딸린윗방은이집에

먼저부터세살던분에게전세로,부엌을같이쓰는작은건너방은월세를놓아쉽게구할수

있었다.

사범학교보다인문계를가라

그해겨울내능력에맞는중학교를선택하라고하며선생님이두학교를추천해주셨다.

선생님이인천중,동인천중,남중,사범학교등상위권학교중두곳,남중이나사범학교를

지원하라고했다.

1960년2월

아버지도분필가루먹는선생은하지말라고사법학교는반대하시므로남중학교를

선택하고시험을보았고입시경쟁이2;3으로세지않았으므로쉽게합격을했다.

자,이제부터걱정이다.

입학등록금3만환을남중학교교무과에납입해야한다.

아버지와엄마는사방팔방으로나의중학교입학금을구하려고노력을했지만모두

허사였고고생하시는아버지와엄마를생각하면내가중학교시험에공연히합격한것

같아죄송한마음만이계속해사라지질않고있었다,

오늘이등록마감일이다,

밖에는봄비가억수같이쏟아지므로아버지도엄마도일못하고공치는날이라

집에서한숨만쉬며8식구모두가컴컴한방에둘러앉아야속한하늘만바라보며

마음속눈물을쏟고있을뿐이었다.

그런데도나는속절없이우두커니앉아있을수밖에없었다.

이젠포기하자고그리고야간학교나가자고단념하였고아버지도엄마도나보고

복도어지간히없는자식이라며

부모잘못만나공부하지못함을원망하라며눈물을닦으신다.

나도덩달아소리없이흐르는눈물을훔치며

"학교못가면어떼?나,만화그려서돈벌꺼야너무걱정하지마요"

하고아버지와엄마를위로하자,

"이놈의자식아만화가도공부를해야글을쓰고아는것이있어야하는것몰라?

안되면야간이라도가서공부하면된다~.."

하고아버지도엄마도중학교는꼭가야한다고했다.

"그래야간학교가면되지~"

이렇게아버지와엄마그리고나도남중학교등록을포기하고야간학교를가기로

마음을먹으니이렇게편안할수가없었다.

이때였다,문밖에서누가부르는소리가들렸다.

"문규야~!문규야~,처남~뭐해~?"

고모부목소리였다.

얼른문을열고보니고모부가까만우산을받치고서서나와아버지를부르고있었다.

고모부는줄기차게쏟아지는비를맞으며맥아더장군처럼우뚝서있는데얼굴만

안젖고바지와구두가흠벅젖어있었다.

그리고한손엔누런양회종이에싼뭔가를한뭉치들고있던것을아버지앞으로던지며

딱한마디하고는급히빗속으로사라져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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