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생활에서주위의해꼬지를당하며살아왔던나는언제나긴장속의생활을버리지
못하고항상경계하고살아야했고내가하지않으면다른사람이하게되고
그리되면내가또손해를볼것이라는생각이었는데세상의이치가꼭그렇치는
않았으며내가하기싫은것은남들도하기싫어하고기피한다는것을알았다.
또한나는다른사람보다더병약하였으며언제나부족하고한수처진다는생각에
다른모든분야에서조금이라도더노력하고잘나보이기위하여항상긴장을하였으며
한순간의실수가박문규는없다를미리생각하고
다른사람의실수는용납하더라도나자신은실수를하지않으려고노력하며살아왔다.
똑바른것을좋아해서구부러진철사를주우면똑바로펴놓아야마음이편했고남들은
삐그덕거리는의자를새것으로바꾸어앉지만나는그것을고쳐서다시사용해야했고
항상새것이여유로남아있어야마음이편했다.
누가먹을것을주면맛이없는부분부터먹기시작해맛이있는쪽으로먹어간다,
그러다가맛이있는부분은먹어보지도못하고남에게빼앗기거나주어야하는
경우도있었지만……
언제어디서갑자기예기치못하고있다가불의의사고를당하거나그사건에휩씁리는
경우도있으리란생각에골목길에서튀어나오는깡패나양아치,
건축공사장위에서떨어지는낙하물,
인도로뛰어드는자동차도있을것이고,
아이들이갖고노는꼬챙이가아이의눈을실수로찌를수도있을것이며,
비오는날고압선이끊어져젖은땅에떨어져감전도될수있고,
자전거를타고노는아이가실수로지나가는나나다른이에게넘어지며다칠수도
있을것이다.
그래서길을갈때내몸은언제나예기치못한사고가있을것이라대비하느라
늘긴장을하고있었기이제는모든근육이딱딱하게경직되어굳어있었고걷는걸음
걸이도남보다두배는빠를수밖에없었다.
그렇게하지않으면가난하고힘없는내가이사회의정상적인일원으로도저히
따라갈수없다고생각하며모든일에더욱더적극적으로마주부디치며살아왔다.
남들은그런나의생각을이해도못하지만긴장으로언제나어깨와목과눈에힘이
들어가있으니힘을빼라고충고도많이해주었었다.
혹자는내눈초리를보면형사의눈매라고도했으니….
그때항상그렇게온몸을긴장으로뒤집어씌우며살아와서그런지지금은
온몸이신경통인지근육통인지자주쑤시고안아픈곳이없는것같지만
그렇게살았기낙오하지않았고,
지금은그런긴장을풀어놓고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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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피난살이는고등학교를다니며어느정도끝난것같았으나
필규와미자는엄마의극장좌판가게냉차장사일을도우며동생들돌보고
엄마가놓지고못하는집안일을해나갔다.
그모든일들이내가겪었던피튀는처절한전쟁속의삶과죽음의그것은아니지만
헐벗고굶주림에지처체면을버릴정도로힘들고눈물겨운여정을보내고있었다.
필설로이루다밝히지못할배고프고추위에떨며암담했던미자의이야기는
나중에그녀에게서직접듣고자한다.
(중3인나와중1인필규)(미자)(중2인필규와고1인나)
사실아버지와엄마는중학교를졸업할때까지도병을끼고살았던내가군대도물론이지만
장가도갈수있을지불안했으며4~5십세까지도살지못할거라는생각을자주했다고하셨다.
그런내가이렇게견디고살아남아
1,000원의월급을타서첯월급이라고엄마에게드리기도했고,
사춘형이입다가물려준빛바랜검은교복을입고고등학교를졸업할땐
모범상둘3년개근상하나탓다며두툼한상품과상장을갖어왔다고
환하게웃는모습을보았던나의기쁨을어떻게표현을할수있을까?
또한매일얻어맞고울면서집에와속상했던적이얼마나많았는데땀에절어누렇게색이
변한검은띠가매어진유도복을들고다니는모습이얼마나자랑스러웠는지
문규가잘하면쉰살은넘겨살겠구나.
하고생각했다는말을들었을때
아~내가이렇게열심히살고있었구나.하고가슴속깊은곳에서북받혀오르는슬픔을
감추며뒤로돌아고개를떨구고말았다.
그런데나에겐한가지병이또생겼다.
태양다방위에공기총사격장이생겨났는데마침영장도받았겠다친구들과사격연습
한다며자주들려사격을배웠는데신기하게도총을잘쏘아너무어떤땐사격장에서초보자들을
훈수하며무료로사격을하기도하면서가끔놀러오는현역들과께임도했지만어느누구도
나의상대가되지는못했다.
당시의공기총은총에달린펌프를발로밟고상하로움직여공기를압축해서3~4번정도
쏘았는데그위력이대단했었다.
하기야내성격은그동안갖고싶었던것은무슨짖을하더라도꼭구하고마는병,
특히카메라에대하여는중학교때취미반을사진반으로정하고사진기술을배우며엄마
몰래돈을모아카메라를사서사진활동을열심히했었기,우리집형편에감히생각도못할
사치(?)를누리기도했었다.
공기총도갖고싶었지만잠시뿐이었으며군입대를앞두고있었기바로치유되었고
이러한아직까지의본의아닌생사를건피난길과,
헐벗고굶주린피난살이15년간의모진밑바닥생활로담금질된나의경험들은
하루세끼따듯한쌀밥과,한겨울에도벽에성애가끼지않는
따듯한기와집에사는미래의꿈을이루는데밑거름이될것이리라.
아버지나어머니그리고동생들모두가우리집에서처음으로큰아들이며,
큰형이며,큰오빠가군대를간다는것에마음속깊이눈물을머금고1968년1월23일
내가탄수원행열차를설레임반두려움반으로배웅도없이나를떠나보내주었다.
그리고35개월의세월이지난후나는대한의남아로서명예롭게국방의의무를
다하고나의가족들에게예비군복을입고돌아왔다.
그것은대한민국의모든평범한젊은사나이들처럼나또한국가에부름에
따라의무를다한충성이었으며부모에대한효도였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