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9일예비사단에서전역자교육을받고신고를마치고나왔다.
혹자는제대하면한달정도는쉰다고하지만나는그럴수가없는입장이다.
7남매의장남으로서9식구의입을채우는데한힘을보태지않는다면이어찌힘들게한많은
세월을살아온보람이있겠는가?
놀면않된다는일념으로좋은직장이나오기전까지라도임시로아는직업을갖고
돈을벌어야한다는생각으로
12월27일군대가기전에다녔던하인천의경북수산상사를인사차찾아갔다.
다행이도큰사장님이언제든지오라고하였고바로출근하라는둘째사장님의허락이있어
취업이되었다.
담당하는일은오래된고참사무장선배들과함께어선이잡아온생선류를경매시간전까지
하역하여경매장에진열하고,주간에는선박의주부식과그물과연료,조업장비등의선적과
그리고예전에담당했던선박용윤활유입출고관리였다.
(경북상회창고앞에서자가용기사와,나를편하게대해주는사람은이분밖에없었다)
신정연휴가끝나고바로출근하여근무를시작하였고
이리뛰고저리뛰며정신없이한달이지나고구정이다가왔다.
사장님이호출하여찾아갔더니월급이라며3,000원과
양회종이에싼쇠고기2근그리고한되들이백학정종1병을주며아버지께갔다드리라고
하는데내가한일에비하여너무터무니없는월급이었다.
3,000원의월급이너무적다고말씀드렸더니
30년된사무장도월급이4,000원이야그런사람들도아무소리안해,
너도더있다가올려줄테니아무소리말고열심히일해~한다
너무기가막혀말이안나왔다30년을밤낯없이회사에서일해온사람도
겨우월쌀두가마값이월급이라고준단다,
너무심하다는생각이들었다.
그러니박봉에못견디고한밤에하역장에서생선을하역할때감시와관리한다면서
한두상자씩빼어먹었던것이아닌가?
사장은과거부터으례히그러려니하면서묵인하는대신월급을적게주는것이려니…
한달여를꼬박회사에서숙식을하며엄동설한에밤12시부터새벽까지는배에서생선을
하역하며경매장까지목도나구르마로운반하는것을부두의로지에서서맹추위와싸우며
참관하고관리하고그것이끝나면한밭식당에서
국밥한그릇먹고주간근무를계속하는데도무지쉴틈이없다.
대기실연탄온돌방에등깔고늘어져있다가선장이나사무장이찾으면또뛰어나가
일을해야만한다,
직장에서제일막내그리고신입사원,도대체만만하지않은사회에서의
첯발을이렇게힘들게직장에서의첯해겨울을보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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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서제대한후열흘도안쉬고생활전선으로뛰어나간내아들큰아이문규,
어릴적을생각하면희망이없던병약하던꼬맹이가늠늠하게잘자라군대까지마치고나온
아주잘생긴나의큰아이문규,
태어나서부터삶과죽음의모질고험한순간을무수히견디어내더니,
이제는집안살림살이를걱정하며아무도시키지않은힘에벅찬일을스스로해나가느라
오늘처럼매서운추위에얼마나힘들까?너무궁굼하고걱정이되어잠이안온다.
엄동설한웃목의바람벽에성애가하얗게피고유리창에도두꺼운성애꽃이여러형상으로
피어있는모습을보니오늘아침도언간히추위가매울것이리라…..
나는통금해제사이렌이울리자마자아들이일하는하인천경북상회로급히달려갔다.
그리고보았다.겨울선창가매서운바람과추위속에…..
저기멀리서얼어붙어졸고있는가로등불빛아래서목도리를푹뒤집어쓰고,
얼굴에서는하얀콧김을연심뿜으며추위를이기려고잠시도쉬지않고발을구르며몸을
움직이는한사람을보았다…
그를본순간내아들임을직감하였고지금이시간은이땅의모든사람들이따듯한
이불속에서행복한단잠을자며행복한꿈을꾸고있을시간이건만,
묵묵이할일을하며가끔언손을입으로호호불고있는그모습을그순간
온몸에북받히는비애에血淚(혈루)가내두눈을적시며애간장을끓이고있었다.
"문규야아버지가가난해서미안하다,그리고열심히살아주는네가고맙다."
내아들이서있는그의앞으로생선상자를목도로메고수없이오가길반복하고있었고
불빛이환한고깃배의담부리(배갑판밑의저장실)에선여러명의선원들이하얀입김을
내뿜으며생선상자를들어내올리고,들어낸상자를5개씩쌓아놓으면2인1조의목도들은
그것을어께에메고<홋도~홋도~,혹은으쌰~으쌰~>하며자기들의구령소리에
발마추어공판장으로운반하고있었다.
내아들이그한중간에서서온몸이어는것도견뎌내며도방(盜防)을맡아하고있었다.
밀려오는한기를이기고자발을동동구르며양손은양쪽겨드랑이에끼워넣어어는손을
보온을하는듯했다,
아마도밤12시부터새벽5시가넘은지금까지저렇게저자리에서움직이지않고
장승처럼서있었을것을생각하니또한번눈물이절로나온다.
나는얼굴에차갑게흘러내리는눈물을훔치며속으로흐느끼며또한번중얼거렸다,
"문규야아버지가가난해서미안하다,열심히살아주는네가정말고맙다."
하며따끈한국밥한그릇도못사주고아들이볼세라뒤돌아집으로돌아오는길은
잠시동안이지만내몸이이미꽁꽁얼어붙고발은동상이걸리는듯아려왔다.
"세상에나처럼못난아버지가또어데있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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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은나에게무언의지시로고참사무장들과어울려지내지말고생선등을빼돌리지
못하게감시하라는의도였었다.
그러나그렇게하려면밤마다회사의선배사무장과젊은사무장이다투는모습을선원들과
하역노무자들에게보이게되므로회사이미지도실추될뿐아니라관리가되지않기
때문에내가이생활을그들과함께동조하어근무하는데많은애로가있었다.
나는웬만하것은말없이그저보기만하고있었고사장에게도말도할수가없었다.
그러나사장의심복임을읽히아는선배사무장들은약속이나한듯나를배척하듯피하며
말상대도해주지않고엉뚱한곳에서혼자떨어저서있도록장소를바꾸어배치하면서
"젊은사람이따듯한데서감시하면졸기만하고일이않된다."
하며따듯한선박의부릿찌(선장실또는조종실)에서감시를못하게만들었다.
부릿찌에서아래로내려다보면작업관경이180도한눈에들어와관리감독이무척
쉬웠는데….
(생선하역시난방이되는선장실<하얀부분>에서감독을한다,자료사진)
경북상회를그만두고얼마간쉬면서
인천숭의동기차길에접해있는모운전학원에찾아가등록하였다.
월요일부터토요일까지
오전10시부터12시까지학과1시간실기한시간을아주열심히열강을받았다.
수강동기들과인사를나누고친하게지내고자하며서먹한강의실분위기를웃음이
가득한강의실로바꾸어놓으니어느날나보고실장을하란다.
1971년3월31일필기시험도참쉬웠고코스도깃대하나도안건드리고쉽게끝냈다.
여동생미자가걱정하면서따라와응원을해준덕인가?
정말너무쉽게장거리까지끝내고돌아와합격했음을통지받고같이수강한동료들과
서로축하의악수도나누고학원인근의대폿집에서동료들과점심겸대포도한잔씩하고
즐거운시간을보낸후그날오후3시경에학원사무실에서면허증을수령했다.
사진도잘생긴미남이고주민등록번호130×01-103×54성명박문규종별1종,보통
경기도경찰청장이발행한이시대대한민국최고의자격증….
보드러운파란비닐양장으로만든작은수첩으로안쪽엔내준수한(?)얼굴사진과함께
예쁘게만들어져나온면허증은가히국가공인인증서라할만했다.
(1971년3월내가취득한운전면허증의외피;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