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이렇게 살았다 1 편

1970년12월전역후

12월19일예비사단에서전역자교육을받고신고를마치고나왔다.

혹자는제대하면한달정도는쉰다고하지만나는그럴수가없는입장이다.

7남매의장남으로서9식구의입을채우는데한힘을보태지않는다면이어찌힘들게한많은

세월을살아온보람이있겠는가?

놀면않된다는일념으로좋은직장이나오기전까지라도임시로아는직업을갖고

돈을벌어야한다는생각으로

12월27일군대가기전에다녔던하인천의경북수산상사를인사차찾아갔다.

다행이도큰사장님이언제든지오라고하였고바로출근하라는둘째사장님의허락이있어

취업이되었다.

담당하는일은오래된고참사무장선배들과함께어선이잡아온생선류를경매시간전까지

하역하여경매장에진열하고,주간에는선박의주부식과그물과연료,조업장비등의선적과

그리고예전에담당했던선박용윤활유입출고관리였다.

(경북상회창고앞에서자가용기사와,나를편하게대해주는사람은이분밖에없었다)

신정연휴가끝나고바로출근하여근무를시작하였고

이리뛰고저리뛰며정신없이한달이지나고구정이다가왔다.

사장님이호출하여찾아갔더니월급이라며3,000원과

양회종이에싼쇠고기2근그리고한되들이백학정종1병을주며아버지께갔다드리라고

하는데내가한일에비하여너무터무니없는월급이었다.

3,000원의월급이너무적다고말씀드렸더니

30년된사무장도월급이4,000원이야그런사람들도아무소리안해,

너도더있다가올려줄테니아무소리말고열심히일해~한다

너무기가막혀말이안나왔다30년을밤낯없이회사에서일해온사람도

겨우월쌀두가마값이월급이라고준단다,

너무심하다는생각이들었다.

그러니박봉에못견디고한밤에하역장에서생선을하역할때감시와관리한다면서

한두상자씩빼어먹었던것이아닌가?

사장은과거부터으례히그러려니하면서묵인하는대신월급을적게주는것이려니…

한달여를꼬박회사에서숙식을하며엄동설한에밤12시부터새벽까지는배에서생선을

하역하며경매장까지목도나구르마로운반하는것을부두의로지에서서맹추위와싸우며

참관하고관리하고그것이끝나면한밭식당에서

국밥한그릇먹고주간근무를계속하는데도무지쉴틈이없다.

대기실연탄온돌방에등깔고늘어져있다가선장이나사무장이찾으면또뛰어나가

일을해야만한다,

직장에서제일막내그리고신입사원,도대체만만하지않은사회에서의

첯발을이렇게힘들게직장에서의첯해겨울을보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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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서제대한후열흘도안쉬고생활전선으로뛰어나간내아들큰아이문규,

어릴적을생각하면희망이없던병약하던꼬맹이가늠늠하게잘자라군대까지마치고나온

아주잘생긴나의큰아이문규,

태어나서부터삶과죽음의모질고험한순간을무수히견디어내더니,

이제는집안살림살이를걱정하며아무도시키지않은힘에벅찬일을스스로해나가느라

오늘처럼매서운추위에얼마나힘들까?너무궁굼하고걱정이되어잠이안온다.

엄동설한웃목의바람벽에성애가하얗게피고유리창에도두꺼운성애꽃이여러형상으로

피어있는모습을보니오늘아침도언간히추위가매울것이리라…..

나는통금해제사이렌이울리자마자아들이일하는하인천경북상회로급히달려갔다.

그리고보았다.겨울선창가매서운바람과추위속에…..

저기멀리서얼어붙어졸고있는가로등불빛아래서목도리를푹뒤집어쓰고,

얼굴에서는하얀콧김을연심뿜으며추위를이기려고잠시도쉬지않고발을구르며몸을

움직이는한사람을보았다…

그를본순간내아들임을직감하였고지금이시간은이땅의모든사람들이따듯한

이불속에서행복한단잠을자며행복한꿈을꾸고있을시간이건만,

묵묵이할일을하며가끔언손을입으로호호불고있는그모습을그순간

온몸에북받히는비애에血淚(혈루)가내두눈을적시며애간장을끓이고있었다.

"문규야아버지가가난해서미안하다,그리고열심히살아주는네가고맙다."

내아들이서있는그의앞으로생선상자를목도로메고수없이오가길반복하고있었고

불빛이환한고깃배의담부리(배갑판밑의저장실)에선여러명의선원들이하얀입김을

내뿜으며생선상자를들어내올리고,들어낸상자를5개씩쌓아놓으면2인1조의목도들은

그것을어께에메고<홋도~홋도~,혹은으쌰~으쌰~>하며자기들의구령소리에

발마추어공판장으로운반하고있었다.

내아들이그한중간에서서온몸이어는것도견뎌내며도방(盜防)을맡아하고있었다.

밀려오는한기를이기고자발을동동구르며양손은양쪽겨드랑이에끼워넣어어는손을

보온을하는듯했다,

아마도밤12시부터새벽5시가넘은지금까지저렇게저자리에서움직이지않고

장승처럼서있었을것을생각하니또한번눈물이절로나온다.

나는얼굴에차갑게흘러내리는눈물을훔치며속으로흐느끼며또한번중얼거렸다,

"문규야아버지가가난해서미안하다,열심히살아주는네가정말고맙다."

하며따끈한국밥한그릇도못사주고아들이볼세라뒤돌아집으로돌아오는길은

잠시동안이지만내몸이이미꽁꽁얼어붙고발은동상이걸리는듯아려왔다.

"세상에나처럼못난아버지가또어데있을가?"

……………………..

……………………………………………………………………………………….

사장은나에게무언의지시로고참사무장들과어울려지내지말고생선등을빼돌리지

못하게감시하라는의도였었다.

그러나그렇게하려면밤마다회사의선배사무장과젊은사무장이다투는모습을선원들과

하역노무자들에게보이게되므로회사이미지도실추될뿐아니라관리가되지않기

때문에내가이생활을그들과함께동조하어근무하는데많은애로가있었다.

나는웬만하것은말없이그저보기만하고있었고사장에게도말도할수가없었다.

그러나사장의심복임을읽히아는선배사무장들은약속이나한듯나를배척하듯피하며

말상대도해주지않고엉뚱한곳에서혼자떨어저서있도록장소를바꾸어배치하면서

"젊은사람이따듯한데서감시하면졸기만하고일이않된다."

하며따듯한선박의부릿찌(선장실또는조종실)에서감시를못하게만들었다.

부릿찌에서아래로내려다보면작업관경이180도한눈에들어와관리감독이무척

쉬웠는데….

(생선하역시난방이되는선장실<하얀부분>에서감독을한다,자료사진)

TV가없던시절저녁6시면주간일을끝내고잠시집에도다녀오고개인사무를본후

다시들어와생선비린내푹푹나는온돌방에서2시간정도눈을부치지만

밤12시가되면일제히일어나입항한어선의생선을하역하기위하여어둠을뚫고

아직도가시지않은졸림에연신하품을해가며밧지(어선이정박하기좋게뛰운철선)선

으로나간다.

엄동설한추위에살을에이는듯한부둣가세찬바람을가슴으로받으며동상처럼

왔다갔다하다보면어느새코끝엔콩알만한고드름이달리고발가락은처절히아려왔다.

최고로두툼한방한복으로무장한선배들은벌써생선한짝을대폿집에갖다주고

찌개를끓여와자기들끼리들어가따끈한찌개에소주도한잔씩하며열기를채우며

도란도란예기의꽃을피우며재미있게야간근무를하고있었다.

말단직원으로힘들고여러모순된괴리를겪으며한달을참고견디었고그월급은군대

가기전수준으로서생각보다턱없이부족했다.

이제와서뒤늦은후회지만군대의병과도좋았고그자리에서ST(장기)지원하고6개월만

교육받고나오면5~6,000원정도의월급을받았고게다가범죄수사대수사관신분으로

"아주편한군대며직장생활이였는데왜전역을했을까?"

하는아쉬운마음이떠나질않았다.

3월중순까지2개월반을채우고사장님과다시급여문제를협의를해본바

수십년근무한고참들과의형평성을고려하여3,500원으로올려주겠다고했지만마음에

내키지않았다.

이런일들을몇일만에집으로가서아버지와이야기를나누었는데

아버지도막제대한아들이몇일쉬지도않고이추위에억세고드센부두에서잘지내는지

걱정이되어말없이몇번이나내가일하는모습을보고눈물을흘리고가셨다고했다.

월급은아버지와(4,000원정도)비교하여적긴하지만힘들면마음대로해도좋다고하셨기

다음날사장에게찾아가너무임금이적기에차라리

"운전을배워택시운전을할계획입니다."

라고말하고사직을하였다.

사장님은언제든지마음이바뀌면다시와도좋다고하며

쇠고기와정종을사서아버님께갖다드리라고금일봉을내놓았다.

고교시절부터30개월과제대후성인으로서근무한첯직장의2개월간수산업회사에

근무한경력은앞으로살아가는동안많은사람들과나누는아주좋은이야기보따리이며

훌륭한삶의경험을갖게된것이다.

1971년3월31일첯번째운전면허취득

경북상회를그만두고얼마간쉬면서

인천숭의동기차길에접해있는모운전학원에찾아가등록하였다.

월요일부터토요일까지

오전10시부터12시까지학과1시간실기한시간을아주열심히열강을받았다.

수강동기들과인사를나누고친하게지내고자하며서먹한강의실분위기를웃음이

가득한강의실로바꾸어놓으니어느날나보고실장을하란다.

수강생들이강의전후강의실청소와칠판의지우게털기,강의실식수비치하기등

수강생들이자치적으로하는당번제도가있었는데

실장이되면이런일에서열외될수있다는특혜에사심을느끼고언제까지해야할지

모르지만실장직을수락하고오전수강생반실장이되었다.

오전반실장으로부지런하며매사솔선수범한다고학원내에서인기가있었고

학원사무실에서도나에대하여많은관삼을갖는것처럼보였었다.

분위기가좋으니강의도머리에쏙쏙잘들어왔다.

경북상회에서선박용야끼다마엔진을분해조립하는과정을어깨넘어로본기억이있어서

자동차구조부문에서는타의추종을불허할정도로모의시험도올100점이었다.

비록짧은기간이지만수강생들과한주를공부하던중첯번째시험일자가확정되었다.

응시를해보겠냐고묻길래자신이없지만한번해보겠노라고하고신청을했다.

학원수강후일주일날수론8일,

1971년3월31일필기시험도참쉬웠고코스도깃대하나도안건드리고쉽게끝냈다.

여동생미자가걱정하면서따라와응원을해준덕인가?

정말너무쉽게장거리까지끝내고돌아와합격했음을통지받고같이수강한동료들과

서로축하의악수도나누고학원인근의대폿집에서동료들과점심겸대포도한잔씩하고

즐거운시간을보낸후그날오후3시경에학원사무실에서면허증을수령했다.

사진도잘생긴미남이고주민등록번호130×01-103×54성명박문규종별1종,보통

경기도경찰청장이발행한이시대대한민국최고의자격증….

보드러운파란비닐양장으로만든작은수첩으로안쪽엔내준수한(?)얼굴사진과함께

예쁘게만들어져나온면허증은가히국가공인인증서라할만했다.

(1971년3월내가취득한운전면허증의외피;자료사진)

이렇게취득한면허증을1974년적성검사를받지않아써보지못하고자격정지되고

취소되고말았다.

그러나1974년이전엔면허증이없는장거리화물수송을나가는기사들이가끔면허증을

빌리러와빌려주기도했던기억이난다.

돈을벌수있는직업을갖고자하여취득한면허증을한번도써보지못하고장롱속에넣고

잃어버린첯번째이유가운전을하지않아도되는직업이생겼고

두번째는당시사회에선서민이자가용을갖는다는생각은먼나라꿈같은이야기였기에

운전면허적성검서를받으며재교부를할필요성을느끼지못했다.

그러나1974년7월운전면허적성검사를안받아취소된것을모르고

한국기계공업주식회사에도장공으로입사할때도자격증소지내역에

"제1종보통운전면허소지"라고

자필이력서에기입할정도로당시의자동차운전면허증은바로운전을할줄안다는것

그것만으로도입사자격에상당한프러스알파요인이되었을것이었다.

1992년10월30일두번째운전면허취득

그리고1992년10월자동차영업사원으로전출되면서다시면허를취득하게되는데

두번째도다시자동차학원에등록하였다.

자동차세일을하면서강의를1주일듣고10월19일동생이며운전선배인필규의티코를

타고시험장으로가서학과시험에응시88점을받아턱걸이로학과시험을합격했다,

턱걸이지만어쨌던합격은합격이다.

학과시험에통과하고다음날친구에게실기시험일자를빠른것으로접수해달라고부탁을

하였고초고속으로실기시험도합격하였다.

나는이렇게취소나벌점과실도없었지만운전면허를2번이나취득하였던것이다.

내동생필규,

1992년영업으로나온내가안쓰러웠는지일부로내가두번째면허를받기전까지나의발이

되어주고자국민차티코한대를계약출고하였고

오지랍이넓고정의감이불타는의리와순정파인동생그는택시운전을하면서

9월1일부터내가면허를취득하고하얀에스페로를출고할때까지그차로영업하는곳이면

안가는곳없이전국을다녀주었다.

그리고1992년10월31일나는꿈에도생각못했던자가용자동차하얀에스페로를출고하고

인천1머6713번을달고보란듯이전국을누비며돌아다녔다.

(나의첯차1992년,사진은인천시청앞김영삼대통령후보유세장에서영업활동중인모습)

어디그뿐인가내가군대에가있는동안은집안형편이어려웠기고등학교를포기하였고

17살부터트럭조수로따라다니며받은그야말로17~18세꼬맹이가번푼돈이지만그동안

그렇게먹고싶어했던흰쌀을사서자랑스럽게집으로갖어왔으며

아버지와어머니가일하러나가있는동안미자와동생들을거느리며집일을도와왔다.

그리고18살의나이에1종면허를땄고대형트럭을운전하며집안살림에크게일조를

해왔던것이다.

중학생인미자는배고프다고보채는동생들을보며하염없이눈물지으며서글퍼하고

있었는데

어느날작은오빠가골목길100여m를끙끙거리며메고올라온쌀가마를본순간

그렇게날아갈듯이기뻤다고했다.

그리고쌀이떨어지면몇일동안을작은오빠가저대문으로열고들어오며

"미자야쌀이다~"

하며쌀을메고헉헉거리며들어오지않을까?하며목이빠지게기다렸다고말한다.

나이어린꼬맹이트럭조수가받은임금,얼마안되는적은돈이었고어린나이에

다른쓸곳도많았을텐데필규는돈을버는대로식구들을위하여계속쌀을사온것이다.

내형제들의그런가족애때문에내동생들은주변의불량배들과어울리지않고모두

바르게잘자라주었다.

동생이발이되어태워주고안내해주고다시면허를따라고응원하며격려를해준덕에

아주수월하게취득한면허증을만지작거리면서기쁨과감회의젖어본다..

숱한세월이흐른지금도형을위하여그렇게앞에나서서물심양면으로도와주는

두살아래인동생필규에게베풀어준무한한고마움을영원히잊을수가없다.

필규는나와형제들을위하여이렇게눈물겨운많은도움을배풀었는데

형인나는부모와동생들에게얼마나무엇이던

사랑하며배풀어본적이있기는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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