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이렇게 살았다 2 편

"문규야힘내라~"

운전면허도냈겠다마음의여유를갖고여기저기돌아다니며취직자리를알아보고있는

중이었다.

3째봉규가중학교를졸업하고다니던작은간판집이있었는데꼼꼼하고손재주가좋았던

그는중학교때한때동양화를배우다가형편상포기하고졸업후간판집에취직을하고

기술을배우고있었다.

늦은4월어느날그가일하던5평남짖한간판가게를내놓았다고알려오며나보고간판

그림을잘그리니인수하여간판업을하면어떻겠냐고한다.

돌아다니며일자리구하는것도신통치않았고극장간판부에취직을하자니내능력에비해

너무박봉이라등한시하고있는터에극장간판부보다는났겠거니하며관심을갖고그곳엘

가보았다.

아버지가다니시던인천극장에서가까운화평로변에동원사라는간판이있고옆에는

천도라사양복점(지금도필자와절친임)과같이붙어있는작은점포였다.

권리금조금에다점포세만내면되므로부담도없었기부모님과협의하고바로인수하여

상호를청마건설공사로바꾸고전화는안집전화를빌려쓰기로했다.

개업과동시봉규와함께페인트간판과썬팅은내가제작하고아크릴간판은봉규와작업

하면서약2년은간신히현상유지가되는가싶었지만우후죽순처럼생겨나는동종업자들의

덤핑견적으로간판마진이점점줄어들고상대적으로일은더욱힘들어졌다.

간판업이라는것이손재주만조금있고점포만구하면별다른자본투자비없이쉽게

창업을할수있는직업이며기술직으로평균마진이약60~70%정도라좀알만한사람들이

창업을쉽게하고있었다.

혹자는작은페인트한통과붓하나와어중간한나무사다리를메고다니며간판행상을하며

즉석에서유리창,빈지문ㄷ,현관문등에몇글자써주고일당을버는사람들도있었다.

또한

사회경기가좋으면간판업은불황이고경기가나빠야반짝호황을보는업종이었다.

다시말하면불경기라야개인사업자가폐업을많이하고새사업자가많이개업해야간판일이

생겨난다.

1970년대부터박정희대통령의정책에의한중동건설수출과국내외각종건설붐에편승하여

나라전체의경기가계속호황을누리고있었다.

어느사이우리나라국민들은먹고마시고즐기자라는케치프레이즈아래극장식맥주홀과

로젠켈러같은대형술집이생기고덩달아흙맥주,생맥주등을1,000cc대형컵으로시원하게

마시는그림을걸어놓은대형업소들이우후죽순처럼생겨났다.

구청이나시청등관공서나,은행,OB맥주,주유소등의굵직한단골고객이많은업소는

살아남고나처럼오다가다들려주는고객만기다리는영세업자는아무리실력이있어도

뒤로밀리고있었다.

당시간판업소대표가붓을들고글을쓰고그림을제대로그리는실력을보유한사람이

없었으면서도간판업세계에서는끼리끼리좋은것이좋은,누이좋고매부좋은뒷거래가

대부분이었다,

한번결속을맺으면거기를뚫고들어가기가하는의별따기보다더어려웠다.

일은맡아야하고마진은남겨야하고협회도참석하고큰목소리로바른소리도하며

술도한잔씩해야하며그렇게시간을보내면서많은이웃들의도움도받으며

좋을땐한건으로두세달벌돈을벌기도하고장마때나혹한기엔몇달씩쪼르륵굶으며

버텨내기도했건만….

그래서간판업은총각인나에겐돈을모을수없는직업이었을뿐아니라같이일을도와

주고있는봉규에게어리석게도가족이며동생이라는생각만하고화끈하게월급도

한번도안주었던우를범하고만것이다.

아버지는인천극장에서용현동한일극장기도주임으로발령되어버스로출퇴근을하셨고

퇴근길에간판집을지나치시는데그때시간이밤11시가넘기때문에빈지문닫히고불꺼진

가게앞을지나쳐가시면서아들이하는사업이잘되기를빌고또빌었을것이었다.

…………………………………………………………………………………

개업하며얼마간은현장기술도제대로읶히지못한상태에서가게앞에는새로주문받아

만들고있는간판들이여러개널려있었고너무바쁠때는인부를사서간판을설치하러

가던정도로시끌벅적했었는데,

또한그렇게주문이밀려사람이옆에온것도모를정도로바쁘게돌아가던간판집을

보는내마음이얼마나행복했는지,

내아들이손재주가좋은것은진작부터알았지만이렇게하얗게칠한함석간판에붓을

대고그으면글씨,

그림을그리면멋있는그림이되는저기막힌솜씨가아마도문규는간판사업이천직인것

처럼잘선택한것같았었다.

간판집을개업하고바쁘게사업을하는모습을보면서그동안잘자라준것을생각만해도

고마움에가슴이메어왔었다.

그리고2년째1972년눈이오던겨울어느날집으로네모난BOX가하나배달되었는데

내생전그토록멋있는선물을받아본적이없었다.

문규가14인치골드스타(금성)텔레비젼을사온것이다.

설치기사가안테나를달고장독대에서내려와텔레비를켜자후라이보이곽규석이

진행하는장수만세가켜저나오자온집안식구가환성을지르며기뻐하며잔치를

벌렸었다.

바로얼마전엔화수동전화국을통하는교환전화를집에다가설하고얼마나기뻐하며

가슴이벅찼었는지…ㅎ

그러나

3년정도지나면서시간이흐를수록저녁한밤중에술에떡이되어인사불성으로

들어오는일이잦아지고간판일이점점적어지고마진이줄어들었다는푸념만하며

괴로워하는나이가27살인큰아들…

버젓한직업을갖고이제는장가를가야할나이인데이렇게힘들게살면서어떻게장가를

간단말인가?

이제몇일만있으면문규도28살이되고장가도가야하는데..

이런저런생각을하며일부러28번버스에서내려걸어가며문규가하는불꺼진간판집

청마사앞으로다가가닫힌빈지문을만져보며속으로뇌까려본다.

"문규야힘내라,이만치살게된것도대단한축복이란다."

아버지인내가너에게해줄수있는일이란네가하는일을방해않고그저잠자코보고만

있을수밖에없구나.

(아버지와나)

너처럼그렇게할려고만하면세상살이는그냥그렇게살아지는것이란다.

"문규야힘내라"

마음속으로지껄인말이가슴에울컥하는감회가치받쳐올라오며작은소리가되어

입밖으로튀어나옴을느끼며눈시울이뜨겁게젖어온다.

불꺼진아크릴간판을다시한번쳐다보고발길을돌리며시계를보니밤11시40분.

너무늦었다,

통금이전에어서집으로가야지…….

그녀를처음본순간

간판집을좀더상권이좋고페인트점과붙어있어조금은유리할것같은

친구가경영하는송림동의페인트가게옆(2평남짖)을얻어옮기고

그럭저럭허울만간판쟁이행새를하고있던중

1973년12월23일페인트가게로수시로놀러왔던부인의친구인

한직장의아가씨들이무슨바람이불었는지처녀총각끼리짝마춰성탄및송년축하

모임을갇자고하면서,

간판집오빠라고부르며나보고여자6명이오는데남자6명을맟추어모이자고한다.

굳이싫다고할필요가없을것같아승락을하고친구들을불러모았다.

장소는우리집,회비는X원시간은18시모든준비는내가하는것으로정했다.

이아가씨들이불평도없이흔쾌히따라주었다ㅎ

그날모인내친구들을모두밝히고싶지만잘기억이안난다,

여섯명은확실한데…ㅎㅎ

아무튼동생에게도모처럼용돈을기분좋게주고하루즐겁게놀라고하며그날저녁

만석동파출소에서일행들을모두만나우리집으로안내하였다.

물론집에는아버지어머니에게사전에허락을받고차와몇가지음식을만들어

상을차렸다,

그런데참묘~했다.

사방9자(270cm)밖에안되는방에성인남녀12명과가운데파티상이들어앉았는데도

좁다는생각이하나도안든다.ㅋ

내가일어섰다,그리고진행을시작했다.

"여러분이렇게좋은날아름다운청춘남녀들이이뜻있는날을축하하며

즐거운만남을위하여이자리에모였습니다.

모여주신여러분께감사드립니다,

아울러즐거운시간아름다운추억을만드시기바랍니다.

오른쪽부터왼쪽으로자기소개를부탁하겠습니다."

아가씨들대부분의시선이나의일거수일투족에방향을잡고처다보고있었다.

잠시자기들소개가진행될때이름과얼굴을번갈아보며인사하던중나에게삘이

팍꽃히는여인이있었다.

김XX라고했다.

"그리고관례상,아니편의상내가화투로짝을정하기로하고

7~12까지2장씩을꺼내한장은남자가갖고한장은여자들이

나누어갖고오늘의파트너가되는것으로하겠습니다."

하고한번둘러본후

"이의없지요?"

하고묻는데모두다이의없다며좋다고한다.

이렇게6쌍이모두짝을정하는과정에서나에게삘이팍온그녀는남의파트너가되고

간판집에자주놀러오며나를오빠라고부르는오늘이자리를주선한여성측

대표였던순덕이가내파트너가되는것같아얼떨결에나누어주던화투를얼른

바꿔치기하고다시돌렸는데역시나헛수고였다,

이번엔더비호감인,

절대내타입이아닌아가씨가나의파트너가되는사고를내고말았다.

아~이렇게되면어쩌란말이냐?…..

나는화투장바꾼사실이들통날가두려워포기하고그냥파티를진행하였다.

6명중제일비호감인이아가씨는남의속도모르고그저좋다고12시경파티가

끝날때까지내옆에바짝붙어앉아동료들이시키는모든얄궂은짓을하나도거부하지

않고모두시키는대로다해내고있었다.

입으로과자전달하기,눈가리고파트너손으로만저서찿기,께임하다틀리면받는야한

벌칙을모두따라하기등남자인나도쑥스러워고개숙일일들을눈하나까딱안하고

남의속도모르고오히려더진하게노골적으로따라했다.

그렇게자정까지즐거운시간을보낸후집에서나온우리들은각자파트너들과쌍쌍으로

손,혹은팔장을끼고구름다리까지걸어가며집이먼순서대로각자택시를잡아타고

하나둘,사라지기시작한다.

내가점찍은김XX양은양복점하는친구와걸어간다고사라져가고

나는자기를나에게의지하며내놓아맡기고마음대로하라는비호감파트너를달래어

택시에태우고그녀집으로보내고자하는데

갑자기순덕이가자기파트너를버리고

내게와그녀가탔던차의문을닫으며출발시키고내팔장을끼고

"오빠는나랑같이가요"

하며나를끌고간다.

12월25일0시30분부터구름다리에서다시화수동으로돌아만석동괭이부리를돌며

여관을찾아서걷는데빈방이좀처럼나지않아그녀와나는추위와싸우며계속걸었다.

얼마나추웠을까?이녀가그가슴을내옆에착밀착하고뛰뚱뛰뚱발마추어걸으며

"오빠너무춥다~저기아무데나가서몸녹이고가지요응?"

삼미사를돌아철길을넘어왼쪽의전봇대에가로등이졸고있고그밑에여인숙간판이

보였다.

캄캄한성탄절새벽지나는행인도없었지만누가볼세라급히골목안여인숙으로

들어가빈방이있음을확인하고계산을한뒤어둑한복도를지나끝쪽의작은방으로

안내되었다,

이불이펴놓인방에들어가이불밑에손을넣어보니쩔쩔끓지는않아도따끈따끈한

열기가손으로전해왔다.

그녀가따라들어와문을닫으며하는말이

"그냥이렇게잠시눕기만해야돼요알았죠?"

하며코트를벗어걸고이불속으로따라들어오는그녀를어찌해야한단말인가?

"아~오빠이불속이따듯하내요그쵸?"

그녀는엄청당돌하고태연했건만나는아까부터목이타고가슴이쿵쿵뛰고있었다.

입안에침이말라혀가뻣뻣해서말도잘안나온다.

그러나분냄새가고운과녁한여인과한이불속에서어깨를맞대고있다는것이

꿈이아닌가생각되기도했다.

나의눈앞에같이누운그녀의부드러운머리결에서은은히풍겨오는화장비누냄새와

향기로운분향기가내코를간지럽히고있는데이런경우를보고

황홀하다고하는가보다.

용기를내어한동안가만히있던떨리는왼손을움직여그녀의가슴으로갖어갔다.

노브라였다,그냥하얀목티하나만입고있었다,그러니얼마나추웠을까?

"음~"

하는신음소리를내며그녀가어둠속에서고개를돌려나를바라본다

그리고이녀는가만히있었고,

도톰하고보송보송하고솜사탕처럼부드러운젖무덤을더듬어보았다.

하지만마음속에있는김XX양을생각하며끓어오르는욕망을자제해보려고하지만

이미몸따로마음따로각자요단강건너간것같았고

이미내손은이녀의손에잡혀있었다.

지금나갈까?

아냐내가지금자리에서나간다면나중에친구들간에조롱거리가되거나이녀의

마음을아프게할수도있다,그러니어쩌란말인가?

한편은무조건그럴수도없다는생각이나를잡아놓는다.

아무튼이녀는나의손길을거부하지않았고

나의손과손가락은처음쳐보는새로산아코디온을타듯이이제따듯해지고있는

이녀라는악기를그렇게조심스럽게애무해나갔다.

이녀가또신음을하며몸을비튼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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