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이렇게 살았다 7 편

아버님의逝去

1992년2월15일,음력1월12일

조회가끝나고업무가바쁘게돌아가는시간에

남동상공회의소건설현장에서도방(盜防)일을하시는아버지가추락하여중상을입고

길병원으로후송중에있으며생명이위독하다는급전이사무실로날아왔다.

수화기를내려놓으면서

"설마?설마?아닐거야"

하는말만입안에서굴러다녔으며

머릿속엔온통세상천지가그냥하얀색으로조금전과하나도다르지않았으며

나를제외한모든사람들은그냥자기일들을평소와같이보고있었고

옆과뒷자리에동료직원몇명만이놀라며안됐다는듯아는척을하는얼굴을보이고있었고

"어서병원으로가보세요,그리고만약에무슨일이생기면연락주세요"

하는상사와동료의말이끝나기무섭게또다른급보가날아들었다.

"아버지께서공사장서추락하여병원으로후송도중에사망하셨다"

과장과부장,그리고본부장에게다녀오겠다고하고택시를타고구월동길병원으로

달려갔더니동생들과아내그리고

원X건설임원,총무부장과직원1명이사고를수습하며빈소를지키고있었다.

"원X건설에선누가나오셨나요?"

동생에게나를소개받은원X건설총무이사와부장과현장책임자가잔뜩긴장을하며

나의눈과입만처다보며몸둘바를몰라하고있었다

"어떻게된겁니까?아버지는어디계십니까?한번뵈어야겠습니다"

"9시40분공사장에서실족하시어추락후송도중운명하셨습니다,

그냥아무감정도생각도없이설명을들으며컴컴한영안실로가서흰까운을입은남자가벗겨주는

아버님의주검을확인했다.

핏기없이하얗게변한얼굴에눈은감고계셨고오른쪽으로머리와얼굴부분이함몰되어

일그러져있었다

아내와형제들그리고어머니까지내가도착하길기다리며아무일도못하고있다가

나와함께영안실로이동하여하얀이불보에덮혀있던아버지의주검을보고얼굴을돌렸고

아내는나에게얼굴을파묻으며

"아이고아버님~~어떻게요~"

하며울음을터트렸고어머니와형제들의얼굴이일그러지기시작했다,

"자우리모두울자,지금싫건울자,그리고다시는울지말자,알았지?"

하며이렇게뇌까리고빈소로돌아왔다.

아버지는원X건설이건설하고있는인천상공회의소신축건물의盜防(도방)을하시며

현장을정리하여작업자들이일할수있도록5층에서작업정리를하시는중시멘트바닥에

어제내려쌓인진눈깨비를밟아미끄러져실족,5층에서1층에있는승강기로추락하셨고

많은량의출혈과뇌진탕으로후송도중별세하셨다는것이다.

의사의소견과현장에서후송해온현장책임자의말로는아버님은순간의사고로말씀한마디도

남기지않으시고그렇게고통없이운명하신거였다.

내눈치를보며안절부절못하고있는그들에게말했다.

"내가대우중공업노무관리를했던사람입니다,나는선친의주검앞에서이런저런

불미스러은작태를보이기싫습니다,

산재법과노동법에준하고또한귀사에서제공하는모든편의를다받고장례를

치루겠습니다,도와주시기바랍니다,산재가입은되어있지요?"

"네가입되어있습니다,동생분들에게말씀잘들었습니다,

저희회사에서성심성의것선친을모시겠습니다"

"피차에줄다리기같은것은생략하고모든것을명쾌하고간단하게줄것주고

받을것받도록한마디로진행하도록합시다"

"네그렇게하겠습니다,그런데5일장을하실건지?"

"아니요3일장으로하겠습니다"

"예알았습니다,

그럼3일간모든경비와약소하지만저희회사그렌져승용차를지원해드리고

편하신것을말씀해주시면최대한으로편의를제공하겠습니다"

그날저녁문상을오시는친지어른들과많은협의를거친후

피난시절철없을적에나를버리려했던막내삼촌(작은아버님)이나의알선으로

대우협력하청회사에취직하여열심히사시면서오늘이일에서커다란힘이되어주셨다.

아버님의평소유지대로충북보은죽바위선산에묘소를마련하고자삼촌을회인으로특사를

보내서준비하게하였고대우중공업을포함하여모든일가친척들이일심으로도와주시어

인천길병원에서의장례식은순조롭게끝났다.

(상;고속도로IC에서잠시쉬어갑니다,

하:죽바위에서마을선산으로상여를운구중)

아버지께서는우리가문에서어쩌면마지막으로상여를타고속세를떠나전쟁과죽음의

근심걱정없는더살기좋은저세상으로편히가셨을것이다.

아버지는충청북도보은군회인면늘곡리에서

1919년寧海(영해)牧使公(목사공)朴堤上(박제상)어른의15대손이며

유학을중시하는율산,호산조부님등대대손손文案家(문안가)에서차남으로태어나시었다.

차남으로태어나셨기學文(학문)보다는農耕(농경)에전념하였고

가난을수치로생각치않으시나근면하고바르게살아오셨다.

일제강점기의탄압속에서도끈질기게버티고이어나가시다

1945년8월15일해방과함께인천으로상경하여대한제분에취업하셨다.

1946년同鄕(동향)의김영희여사를배필로맞아필자를포함두아이를낳아키우는중

1950년6월25일반민족수괴김일성의남침동란을피하여생사를하늘에맡기고

고향인忠北報恩으로피난을하셨다.

1954년봄다시귀경하여피난민으로서온갖고생을하면서도슬하에6남1녀를두었으며

그7남매를모두키우며가르쳤고

장남인필자가대를이을손자들을튼튼히키우며마침내용현동에대지38평건평18평의

아담한집을장만했을때는

기쁜마음을감추지못하고가끔오셔서작은손자의방에서낯잠이라도주무시며

며느리에게

"예나는너희집이참편안하구나^^"

하셨었건만….

舊正(구정)을센후오랜만에고향인충북보은을한바퀴다녀오시고出勤(출근)하신지3일만에

1992년2월15일향년72세로운명을하셨다.

"어허~어허~어허이야~~"

"어허어허어허야~~"

"이제가~면언제~오나~"

"어~허이어~허야~"

죽장을집고아버지가타신상여를뒤딸아가며내가살아온40여년인생의생과사,

그리고희노애락과겪어온애증의세월을생각하면서흐르는눈물은닦아도닦아도

그칠줄을몰랐고내뒤를따라오며목이터져라우는아내와동생들이한없이가엽기까지했다.

"뒤에~남~은자식~들아~,때가되어나는간~다"

"어허~이어허~야어~~허~야어허~이야~어허이어허야~"

"가는~나~를원망~마라~어허이어허야~

"북망산이어드메뇨가도가도끝이없네"

"어~허이어허~이야~"

"어허이어허야~"

……………..

그런데….

그런데요,어머니.

어머니는속으로우시는가봅니다,

어머니이망극한일을당하시고말문을닫으셨습니까?

말한마디안하고묵묵히따라오시며

지나간기막힌忍苦(인고)의세월을더듬어보고계십니까?

어머니,

어머니~나의엄마~얼마나가슴이타며미어지십니까?

이제그만참지마시고통곡을하셔도됩니다,

이세상이떠나라하고땅을치며하늘을향하여크게통곡하십시요…..

(1992년5월26일100일탈상제를올리고,선친의고향인회인율산서당앞에선전가족)

(2003년추석,필자의정원에서어머니와형제그리고조카들)

어머니힘내십시요

우리7남매가어머니膝下(슬하)에있습니다.

어머니의식솔들이모두여기어머니옆에있습니다.

부디건강하고행복하게天壽(천수)를누리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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