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일단의군인인듯한무리들에게잡혀젊은청년들과함께숭의동고개를넘어
신흥동해광사앞길을지나신흥소학교운동장으로끌려갔다.
거기엔벌써수백명의청장년들이모여있었고군작업모에군복을입은꽤나지위가
높은사람인듯한사람과그를따르는일단의군인들도30~40여명은되는듯했다.
운동장에모인사람들중반이상은젊은학생들이었으며그들은나라를지키겠다고
솔선하여지원한사람들이었고그렇지않은사람들은아버지와같이식구들과피난을
가다가젊은남자라는이유로강제로끌려온사람들이었다.
운동장여기저기서억울하다고호소하는사람들과,
젊은사람이나라를안지키면누가부모형제를지키냐고계몽하는사람들,
묵묵히군인들의지시에따르며열을마춰진열을짜고앉아서휴식을하는사람들,
그리고긴장총을메고운동장에모여있는남자들을밖으로흩어지지않도록
감시하며통제하고있는군인들로뒤범벅이었다.
아닌게아니라느긋한하루를지내려던평화롭고화창하던6월의일요일날아침에
마른하늘에웬날벼락이란말인가?
북쪽공산당괴수김일성이가탱크를몰고38선을넘어파죽지세로남쪽으로처내려
왔다는소리다.
신흥학교운동장의확성기로라디오?선전방송이들린다.
"오늘새벽4시를기하여북괴김일성이가선전포고도없이탱크를앞세워
38선을넘어불법남침을자행했습니다.
그러나우리의국군이괴뢰군들과용감무쌍하게맞서서막아내고있습니다
국군들이곧그들을몰아낼것이니
국민들은동요하지말고고향을지키시고
외출중이거나휴가중인전장병은속히소속부대로귀대를하시기바랍니다"
라디오에서는대충이런내용이였지만아나운서들의목소리는다급하게끊임없이
들려왔다.
(38선넘어남침하고있는북괴탱크.신식무기가없던국군으로서는속수무책이었다)
저녁을먹고난후중대장회의집합이있어서교장실안으로들어가회의에참석하여
10여개중대의완장찬중대장들이모두모여인사하고난후예기를들으니
"탱크를몰고내려오는적에게국군이밀리고있다고하는소식과내일아침
상황을본후의용군의참전,혹은후퇴를결정하겠다"
고하는내용이었다.
중대원일행이있는곳으로돌아온아버지는어찌해야하야할지안절부절하며속만태웠다…….
얼마나시간이흘렀을까저녁8시쯤,아직월미도쪽으로해가걸려있었다.
서쪽하늘은붉게물들고멀리바닷가위하늘에선가끔번개를치는듯
폭발섬광이번쩍거리고있었다.
그리고얼마후아버지는4명의소대장들을모이게하고앞일을의논하는척하며그들에게
경계심을풀게하는면서의용군의임무에대단히충성하는척했다.
그리고눈치껏분위기도뛰우면서…
"이렇게만났으니인연인데우리같이막걸리한잔씩하자"
고제의하고지전을몇장꺼내주며군인에게막걸리를사올수있는냐고물었다.
"대포생각은간절하지만대장에게들키면혼납니다"
하며중대장님이이곳분이시니한번구해보시지요중대장인아버지에게오히려부탁을한다.
아버지는흐미하나마한가닥실날같은희망이있음을느끼고있었다.
조금있으면해도넘어가고또한정문보초가일반인들2명이서고있으니잘하면밖으로
나갈수있다는생각에기회를보고있었다.
그러나마음이조급해서인가서산에뉘엇뉘엇저물어가는붉은해가너무느려원망스러웠다.
중대원들은소속별로교실과강당에자리를잡고잘준비를하고있었고아버지는여기저기
진행을감독하며기회만보고있었다…..
이제9시쯤되었는지밤이깔리고어두워지기시작했다.
아버지는나이많은군인을불러한잔하는시늉을보이며두명만정문까지같이나가자고했다.
그군인은쾌히대답하며조금만더하며완전히어두워지기를기다렸다.
아버지는일각이급해미치겠는데,
남의속도모르는군인놈은완전히세월아네월아태평세월이었다.
정말냉정하고얄밉기가너구리같아서한대쥐어박고싶었지만내색하지않고이를갈며
주먹에힘을쥐고참았다.
그리고얼마후그군인과두명의중대원을대동하고왼팔에중대장완장을찬체
시침을딱떼고정문을통과한다.
"중대장님어데가십니까?"
"어수고하시는군요나간사람들없죠?"
"넷~!"
"잘지켜요우린대포한잔생각나서막걸리한잔하고올께요~"
하며보초의어깨를다독이며
"아무말도하지말고이따가막걸리생각나면따라나와요~"
아~얼마나순진한우리동포인가?정문을지키는것이아니고탈출을도와주는보초가아닌가?
책임자인군인은거기까지배웅하고정문에서서아버지와두명이시장쪽으로가는것을확인하듯
한참바라보다가강당으로돌아갔다.
뒤를돌아보니드디어정문의불빛이안보이고지척이암흑이다.
단지시장통의주막집만이남포등불이깜빡이고있을뿐이었다.
이제는같이간두사람을떼어놓아야한다,
아버지는일단주막집으로들어가두사람을앉히고주머니에서지전을몇장꺼내주모에게주며
막걸리를한말주문하고따로한되를총각김치안주와함께주문해두사람과한사발씩마셨다.
그리고는다시지전을꺼내한장씩둘에게나누어주고
"내잠깐시장안에사는누이한테다녀올테니더마시고있어요"
하고나가려하자두사람이
"그럼우리는어떻게합니까?"
하고묻는다.아버지는완장을보여주며
"내가누구요?내가중대장이요늦으면두사람은막걸리한말들고먼저들어가요
나는늦더라도꼭돌아올테니"
하고두사람이말리기도전에벌써문을닫고시장의어둠속으로뛰어가며숨었다…..
그리고잠시후아버지는발에불이나도록달렸다.
목에선조금전에마신막걸리가뱃속에서출렁거리며내는냄새가올라오고있었다.
주막집도신흥학교도중대장도모두생각밖의일이다.
오로지컴컴한숭의동벌판에서갖은공포에떨며
끌려가서언제올지모르는기약없는남편을,그리고아버지를기다리며울고있을
식구를생각하며어둠속을뚫고달려나갔다.
잡히면죽는다는생각도할틈이없었다,
생각나는것은오직사랑하는아내와자식에게한시라도빨리가야한다는것밖에없었다.
넘어지면일어나고,자빠져나뒹굴어지면오똑이처럼또다시일어나숭의동벌판으로
뛰고또뛰었다.
나도엮시아까끌려가신아버지가오기를기다리며엄마와함께울다가또울다가지쳤다.
아니나는엄마와동생이울고있으므로무서워서같이울었던것이었다.
이제는너무울어서눈물도말랐다,가슴과목이아파와서더울수도없었다.
어머니도두눈이퉁퉁부은상태로구르마에기대어가끔딸국질을하듯온몸을떨듯흐느끼셨다.
얼마나지났을까?해가산넘어로넘어가고산그림자가벌판에드리워지기시작했다.
배도고프고졸려와자꾸눈이감긴다.
"엄마~졸려~,배도고파~"
"배고프니?조금만더참어,참었다가아버지오시면쑥개떡먹자"
하며내얼굴에말라붙은눈물자국을두손으로몇번문질르며닦아주신다.
그때엄마에게서가슴에서나는비릿한젖냄새가코끝에서맴도는데그냄새가그렇게맡기좋았다.
(아~지금은맡아볼수없는포근한엄마의따듯하고구수한가슴냄새…..)
(배급받은말분가루로만든씹을때꺼끄러웠던개떡.자료사진)
우리는그밤을수봉산서쪽의제물포를통과하여지금의경인국도를통하여소사
양호재고개를찾아아버지는구르마를끌고,어머니는밀고나는구르마위에올라가서
새벽하늘의별을보고졸며자며엄마와아버지의꿈을꾸며피난을가고있었다.
그꿈은아마도고향집에서아버지의무등을타고까르륵대며즐거워하는모습이었고
엄마는부엌에서맛있는개떡을만들어노란설탕과열무김치와함께소반에담아내와
먹자고하고,동생필규는시원하게꼬추(?)를내놓고방안에서쌔근쌔근자는꿈이었다.
얼마를갔을까?
아침해가뜨거운신작로길한옆에잠시서며
"이제는낯에는숲속으로가며쉬고밤에만내려가야하겠다"
하는검게그을린아버지의얼굴에는굵은물방울이콧등을타고계속흘러내리고
밤새걸어지친엄마는말없이고개를떨구고있었다,아니말이없는게아니었다.
말도할기운이조금도남아있지않은것이다,
동생을잠시내려쉬를시키며잠시순간을쉰다.
발바닥은짖무르고배는고프고허기져동생에게줄젖도말라버린것같았다.
젖을물고있는동생이자꾸보채고있었다.
양호재고개와미산리길을지나수원으로가는신작로길이다.몇시나되었을까
길거리마다가족으로보이는사람들끼리길옆에서밥이나죽을끓이고있었다.
아버지도신작로한적한곳에구르마를세우고여기서아침먹자하며곤로와솟을
내려놓고물초롱을들고근처또랑을찾아가물한초롱을길어와서엄마에게말하셨다.
"자기주먹밥을하자,아무래도그것이편할것같애"
엄마도피난가면서자주멈춰밥을하는것은앞으로나가는데방해만될뿐이라고
생각이들었는지그렇게한다며동생을아버지에게주고보리를먼저넣고끊인뒤
다시거기에쌀을한줌을씻지도않고보리끓른솟에털어넣었다.쌀에묻어있는
쌀분도씻어버리기아깝지만씻을물도풍족하지않았다.
(이주먹밥은쌀이많이들어가깔끔하고맛있게생겼다.자료사진)
그렇게만든주먹밥을멸치를넣어깡통(CAN)으로만든고추장과소금을찍어요기를
하고몇시간을눈을붙이며쉰후다시길을재촉하여수원을향하여걸어나갔다.
6월26일,
우리피난민들은38선전선의소식과아군의반격이어떤지?아무것도모르는
상태에서남쪽으로만가면살것이라는희망만을가슴과머리에간직하고집잃은
개미들처럼그렇게무리지어길게행군해나갔던것이다.
그러는동안아군이북괴군을물리칠것이고평화가찾아오면그때다시찾아오면
된다는희망을갖고서……
신작로에늘어난피난민들.
모두가남으로가기위하여수원으로향하고있었다.
우리도그속에끼여앞서거니뒤서거니하며길을걸어나가고있었다.
이제는지금걷고있는곳이어데인지어디쯤인지도모른체앞에가는피난민들을
따라서자동적으로발을떼고있는사람들도적지않았다고했다.
가끔먼지를뒤집어쓰며군인들을태운도라꾸(트럭)들이우리와반대방향으로
달리고있었고또어떤도라꾸들은보따리를산높이쌓아올리고그위에수십명이
올라타고우리가가는방향으로붕,붕거리며힘들게움직여우리들앞을통과해
나가는데우리는그사람들로부터
김포비행장이폭격을당했고공산군이임진강을넘었다는전황을들었다.
그러니빨리가야한다는말이었다.
얼마를갔을까?
오른편쪽으로는넓은염전이보이고더멀리에는바다가보인다.지금의고잔이나
반월어딘가로추측이되는곳이다.
신작로양편에붉은완장을찬남자들수십명이손에는죽창과몽둥이등을들고
언제부터인지젊은남자들을모두끌어내어수십명씩정렬시키고우리들행렬을
기다리고있었다.
그것을보는순간몇몇사람들은걸음을멈추었고젊은남자들은혼비백산하며
어깨짐들을벗어버리고후다다닥사방으로흩어져달아난다.
그런모습을본아버지는엄마에게
"자기~이길로수원쪽으로저사람들하고계속가~20리건30리건계속더가
그리고거기가어디던지길옆에서기달려~
오늘밤안으로무슨일이있어도찾아갈께~"
하고아버지도일행들과조금떨어져서저들의눈치를살피며천천히몸을낯추어
허리를굽히고말없이내볼을쓰다듬고는
젊은피난민들속으로들어가그들과함께다시한번생사를초월한달리기를시작했다.
그리고무작정좌충우돌어딘지도모르면서붉은완장들의반대방향으로뛰어나갔다.
논뚝으로숲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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