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금대 사연
BY 노당큰형부 ON 5. 23, 2012
彈琴臺
탄금대는충청북도충주시칠금동에있다.
국립한국교통대학교석좌교수이시며
국제정치학박사이신예비역육군소장안충준박사께서
친절하시게충주탄금대를안내해주셨습니다.
탄금대는충청북도기념물제4호.대문산(大門山)을중심으로
남한강상류와달천(達川)이합류하는지점에있다
1592년(선조25)임진왜란때도순변사신립(申砬)이
적은병력으로출전하여이곳에배수진을치고왜군과대결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패전하고,
부장(副將)김여물(金如岉)과함께전사한전적지이기도하다.
그리고충주댐이준공되어호반의관광지로각광을받고있으며,
또한탄금대부근에중원탑평리칠층석탑(국보제6호)을비롯하여
중원고구려비(국보제205호)등귀중한문화재가집중되어있는곳이기도하다.
참고문헌
文化財誌(忠淸北道,1982)
충주중앙탑신라때신라국토의동.서.남.북으로중심점이라는설도있다.
탄금대에는1953년에세운탄금대비를비롯하여
1977년에세운악성우륵선생추모비,
1978년에세운신립장군전적비,
1968년에건립된권태응(權泰應)의감자꽃노래비,
1970년에세운탄금정과그밖에충혼탑·충주문화관·야외음악당등이있다.
안충준교수님의지도에따라오병규님,안충준교수님,노당이
신립장군의구국충정애국정신을기리고자묵념을했다.
왜적에항거하며부른감자꽃노래비
안교수님의부연설명으로탄금대의유래를상세히알게되었다.
가야국의악성우륵이신라에귀화하여진흥왕에게명성이알려져
하림궁에서새곡을지어연주하니,
왕이감동하여충주에살도록하였다.
우륵은그를보호하던계고(階古)에게는가야금을,
법지(法知)에게는노래를,만덕(萬德)에게는춤을가르치며
여가있을때바위에앉아가야금을타며살았다.
탄금대라는명칭도우륵이가야금을타던곳이라는데에서유래한다.
신립의충절을추모하며..
노당은한세상태어난시간이달라등에활을메지않고
허리엔장검을차지않고손에는한자다섯치채찍을들지않는
사나이지만탄금대의노송을보며
그대신립의순직을오늘에되새겨본다.
아~
젊은신립이여그대가지금세상에서노당과어깨를나란히
적토마를타고달리며활을잡고창검을휘둘렀다면
굳이배수진을치지않고도저푸른솔과같이청청했으리라.
(노당의생각)
국회의원들
인간이태어나한줌의흙으로돌아갈진데
같은하늘같은땅의같은공기와물을마시면서
정치인들은어이하여거짖과반역으로세월을보내며
창피를모르고만인의지탄을받는가?
탄금대에어울리지않는부끄러운조각들……
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