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 유유자적, 설악(雪嶽)을 품다 (上)

신새벽,헤드랜턴불빛으로시작하는이른바’무박산행’
몇번의설악산산행은늘그렇게’무박’으로다녀왔다.
동트기전부터왼종일을쫓기듯허둥대며걷기만하다보니
정작설악의속살을제대로탐할수없었기에1박을하면서
더러게으름도피워가며여유롭게걷고싶었다.

그리하여호시탐탐1박을노리며예약을시도했으나번번이낙방했다.
이처럼지리산이든설악산이든주말의대피소예약은’하늘의별따기’다.
예약은매월1일과15일에인터넷을통해할수있다.
1일엔그달15일~말일까지,15일엔다음달1일~15일까지예약을받는다.
예약일시가되면전국산악회와산꾼들이동시접속하기에
뻥좀섞는다면성공확률은로또당첨에버금간다.

그러던차에知己로부터연락이왔다.

"이번주말,중청대피소에서삼겹살파티콜?"

한계령을출발,중청에서1박후공룡능선이나천불동계곡거쳐
설악동으로하산하자는제안을이렇게툭던졌다.

"땡큐지,그런데대피소예약은?"

"OO산악회에서서너자리정도여유가있다하니…"

그렇게山友셋이의기투합했고,5월끝날에만나한계령으로향했다.
1박이다보니먹을거리에여벌옷까지,배낭무게가장난아니다.
날씨를살폈다.주말내리맑다.다만올들어가장높은기온을보일거란다.

서울을벗어난버스는짙푸른산야를가로질러시원스레내달렸다.
원통을지나구절양장(九折羊腸)한계령길로들어섰고,
굽이굽이고갯길을돌아한계령고갯마루(1,004m)에멈춰섰다.
스르르차문이열리자,후끈한열기가확밀려든다.
예보대로바깥공기가뜨겁다.힘든산행이예견된다.

의외로한계령이널널했다.
10시40분,산꾼들로북적여야할시간대인데…
온나라가시름에잠겨있어산객들발길이부쩍준탓이다.

들머리의가파른계단을딛고오르면한계령탐방지원센터다.
설악산도지리산처럼입산시간지정제를시행하고있다.
대피소를예약하지않은산객은12시이후이곳을통과할수없다.
설악산전지역이비박금지이기때문이다.

탐방지원센터를통과해귀때기청봉갈림길까지2.3Km는줄곧오름길이다.
5월마지막날날씨치곤독하게덥다.
팔토시에선글라스는물론손수건으로목덜미까지꽁꽁싸맸다.
노출된볼때기가따가울정도로자외선지수가높지만
간간이불어오는골바람이있어걸을만하다.

끝청에서건너다본귀때기청봉

한계령에서부터쉬엄쉬엄80分을걸어서북능선에올라섰다.
좌로가면귀때기청봉,우로가면대청봉방향이다.
하늘은구름한점없이맑다.
삿갓모양의귀때기청봉이손에잡힐듯선연하다.
별의별산이름도다많다.귀때기청봉도그중하나다.
귀때기청봉의유래는두가지說이있다.

첫째說은이러하다.
설악산봉우리는대부분바위산인데유독귀때기청봉만육산이다.
다른봉우리들이시비를걸었다.
"넌바위산도아닌것이감히설악산에끼어들었냐?"
이에발끈하여말대꾸를했다.
"너희들도온전히바위로만이루어진건아니잖나?"

시비끝에급기야대청,중청,소청봉이합세해귀때기를후려쳤다.
귀때기를맞은봉우리는분을삭여가며남몰래바위를모으기시작했다.
천신만고끝에바위봉우리모습을갖춰갈즈음,
세봉우리에게들켜또다시귀때기를얻어맞아소원을이루지못한채
지금의위치로한걸음물러나앉게되었다는설이다.
귀때기청봉오름길이너덜지대인것은그때귀때기를맞아
부서진바위들이굴러내린때문이란다.

또하나說은이렇다.
옛날옛적,설악산봉우리들이높이경쟁을했다.
높이순으로대청,중청,소청,끝청이결정되었는데나중에한봉우리가
나타나자기가제일높다고박박우기다가귀때기를맞고지금의장소로
쫓겨와그때부터’귀때기청봉’으로불리게되었다는설이다.
황당무계하나이러한설이있어즐겁지아니한가.

한동안骨山雪嶽의품이그리웠다.
그품에안겨대청봉방향서북능선을걷는지금,
장딴지는둔중하나마음만큼은새털처럼가볍다.

문득,평생을고향인속초에머물며,설악을노래하다가
2001년삶을마감한설악시인,이성선의’山詩’가대그빡을때린다.


산에와서문답법을버리다

나무를가만히바라보는것

구름을조용히쳐다보는것

그렇게길을가는것

이제는이것뿐

여기들면말은똥이다


그렇다.
어설피설악을지껄이기보다는잠시입을닫고걷자.
가만히바라보고조용히쳐다보며그렇게길을걷자.

해발1,610m,끝청에이르니거친설악이짜릿하게펼쳐졌다.
바짝다가선중청과대청봉,용의어금니를닮은용아장성(龍牙長成),
불교최고의성지라는봉정암,외설악의병풍인울산바위…

1박이예약된중청대피소까지는1km남짓,길은완만하다.
초대형축구공(?)두개가얹어져있는중청봉은군사시설이있어서
일반산객들은출입할수없다.

중청언저리길에서바라본설악의주봉,대청봉은말쑥한모습이다.
운무가휘감겨있어야그림이되는데…쾌청해감흥이덜하다.

걷다지치면쉬어가고,졸음오면바위에등을기대어앉아졸기도했다.
주어진시간내에하산해야하는부담이없으니여유만만이다.

중청봉과대청봉사이안부에옴팍하게자리한중청대피소에닿았다.
중청대피소는지상2층,지하1층의목조건물이다.
山友셋은나란히지하1층에있는목조2층침상을배정받았다.
지리산의대피소와달리침상에남여구분이없다.모호했다.

내일새벽,빡세게공룡능선으로튈지,쉬엄쉬엄천불동계곡으로내려설지는
오늘저녁床을물린후,몸상태를봐가며결정짓기로했다.

중청엔통신중계기가빵빵해SNS놀이에전혀문제없다.

"대피소예약이되어있지않은산객께서는지금즉시이곳중청에서
가장빠른하산코스인오색방면으로하산해주시기바랍니다~"

"바깥데크아래계신분,쓰레기몰래버리지마세요.
되가져가시기바랍니다"

"취사실물로세면은삼가해주세요.물이귀합니다.
식사준비로만사용해주시기바랍니다."

대피소관리요원이CCTV모니터를통해매의눈으로곳곳을살피며
시의적절한멘트를날린다.

바깥데크엔바람이세차버너에불을당기기가거북했다.
일찌감치지하층취사실로자릴옮겨잡았다.
길다란스텐레스취사대가3개놓여있다.
취사실창밖으로보이는대청봉정상엔산객들모습이고물거린다.
山友셋은챙겨온먹을거리를꺼내산상만찬에몰입했다.
지글지글삼겹살에,이내이슬이?가동이났다.
모자란듯아쉬운듯자릴털고일어나바깥데크로나와
별이쏟아져내리는설악의밤풍경에흠씬스며들었다.<계속>


첫째날…

한계령탐방지원센터->서북능선->끝청->끝청갈림길->중청대피소(1박)

둘째날…

이어서곧올리겠습니다^^

2 Comments

  1. 데레사

    2014년 6월 11일 at 8:44 오전

    귀떼기청봉의이름지어진유래가재미납니다.
    몰랐거든요.

    다음편저도기대하겠습니다.   

  2. 정종호

    2014년 6월 12일 at 4:14 오전

    설악의기운을지대로받으셨나..너~~무멋져보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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