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학동 돌담길, 그리움의 장소

그린란드에갔을때였습니다..

나르삭수와크.인구천명의작은도시.

멋쟁이선장이,예정에도없는곳을마을이예쁘다고보여주고싶어밤중잠깐만텐더보트를타고내렸던도시.

늦은밤이니가게마다문은닫혔는데골목골목젊은청년소녀들이어울려노래를부르면다녔어요.교회도불을켜놓고기도하는사람들이가득했구요.

그곳에서저는돌담길에흐르던우리의소리들을들었어요.

늦은밤엄마가짠명주를다듬잇돌위에올려놓고또닥또가닥다듬이하던소리,

통금시간을알리는딱딱이소리.

늦은밤우리젯밥얻어먹으려고밤을새고기다리는사람들을위해

탕국주전자에담아들고제삿밥머리에이고가다넘어져울었던일,

게사려,찹쌀떠억!,단술삿소.띠끈따끈한재첩국있어요.

단술과재첩국은오지항아리에담요를둘둘감싸고보온을해서냄비를들고그걸받으면,뜨는국자에김이술술났었지요.

동네아이들은

“왔도다,왔도다꽃을찾아왔도다,

무슨꽃을찾겠니?

태무꽃을찾겠다.“

두패를갈라죽손을잡고그런노래를부르며사람꽃을다가는놀이를햇습니다.

남자아이들은고무줄뛰기하는여자에들의고무줄을끊어가기도하고

치마를들썩이며아이스케키라고크게외치고는도망을가버리기도했습니다.

그런그리움의장소를문득찾아간곳은고성군학동마을흙돌담골목길입니다.

우린그때지금의아아들처럼절대로혼자놀지않았습니다.

여럿이모여야더재미있었기기때문입니다.

컴퓨터게임도장난감도없었지만주변에널린것들이다놀이기구였고공깃돌한조각,엽전에종이를끼워찢어만든재기도즐겁기만했습니다.

재기가폴싹폴싹하늘로날아오를때,오른쪽다리를치켜세워다시오르게하는묘미는재주가없으면맛볼수가없었습니다.

저는운동신경이발달하지못하여재기를마음껏살려보질못했습니다.

다섯개의동그란모양의조약돌로하는공기줍기가제겐제일마음에드는놀이습니다

남자에들은돌이나깨진벽돌을동그랗게다듬어비석치기를하고,

헌공책을뜯어딱지를접어놀기도했습니다.

조금긴막대기로자치기를할때면남의장독을깨기일쑤였던우리오빠.

엿장수라도오는날이면꼬깃꼬깃주머니에감추었던돈으로엿한자루사서툭분질러후후불고누구엿의구멍이더큰가내기를하기도했습니다.

이모든놀이가돌담길에서이루어졌습니다.따로놀이터가없었지만돌담길이아이들에겐놀이터보다좋은공간이었습니다.

정신없이놀다보면어느새하루해가저물었지요.

돌담길옆집집마다아련히저녁연기가피어오르고

“저녁먹으러안오나?”

큰소리로나를부르던어머니의음성이지금도귓가에아련합니다.

비스듬히경사진골목의끝,높다란양쪽의돌담길끝.서녘으로비끼는샛노란햇살이남은물기를털어내느라분주한빨래들을이고앉아있던하오.

그런삶의애환들이이런돌담길골목에들어서면금방이라도얼싸안아줄듯이정겹습니다..

집을보호하는울타리였지만이웃집과소통하는돌담.

부침개를부친날이면돌담위로소쿠리가오갔습니다.

그속으로따뜻한인정도오고갔었지요.

햇빛을받아따뜻해진돌담에고사리나취나물혹은깨끗하게빤운동화가널려있기도했습니다.

손님도없고입맛도없어서무슨별식이라도먹어볼까하고고성으로드라이브가는길이었습니다.

표지판하나가붙어있었어요.

고성학동마을돌담길.

자석에이끌리듯그곳으로들어갔습니다.

과연정겨운광경이눈앞에펼쳐졌어요.

해가다지기전에그곳을카메라에담으려고애썼습니다.

시간의흔적이고스란히이곳에담겨있었습니다.

그곳사람들을만나보지못했던게가장아쉬움이남습니다.

아무도집밖에나와있지않았고고무줄뛰기하는아이도팽이치기하는아이도재기차는아이도만나보지못한아쉬움으로그곳을나왔습니다.

돌담은그냥추억의장소애환의장소그리움의장소일뿐..

문화재로보호받는옛날의흔적일뿐이었습니다.

아라클럽에서20분거리입니다.

학동마을은전주최씨안렴사공파의집성촌이다.

경상남도고성군하일면(下一面)학림리(鶴林里)에있는옛담장은2006년6월19일등록문화재제258호로지정되었다.

이마을의담장은다른마을의담장과는차별되는모습을보여주며마을주변의대숲과잘어우러져고유의풍경을이룬다.마을뒤수태산에서채취한2~3cm두께의납작돌과황토를섞어바른층쌓기로세운돌담은같은방식으로석축을쌓은마을건물의기단등과도잘어우러진다.경상남도고성군하일면학림리917-1번지등에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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