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와 요수의 시가 있는 거창 수승대

남해문화원가족들,유적답사회와남해역사연구회,그리고문화원이사들이

거창을다녀왔습니다.

거창문화원에서는거창의문화를알리기위해몇몇지역을대상으로

버스비를지원했다고합니다.

남해도그혜택을입어이행사를실행하게되었다고합니다.

자기의지역을알리기위한적극적인행사를남해도좀배웠으면합니다.

사실우리가거창을본것은훌륭하고좋았지만남해는더많은것을안고있잖아요?​

아무튼이행사로우리가본곳은

1.거창박물관

2.수승대

3.황산고가마을

4.동계정온고택

멋지고의미깊은답사여행을따라와보시지요.

거창박물관

1989년5월거창유물전시관으로개관하고1993년4월거창박물관으로승격되었다.

1997년에는별관을건립하였다.

총1,200여점의유물을소장하고있으며

95%이상이가야국에속하였던거창군내에서수집된것이다.

가야시대의토우와그물추,둔마리고분벽화모형,채색본<대동여지도>,

<송림사지석조여래좌상>등이대표적인전시물인데정리가너무잘되어있어

제1전시실에보존된1864년(고종원년)판《대동여지도》는희귀본으로

경상남도유형문화재제275호로지정되었다.

관람시간은오전9시부터오후5시까지이다.경상남도거창군거창읍(居昌邑)김천리216-5번지에있다.

야간에도개장할때가있으니알아보고가시도록

수승대

수승대는삼국시대때백제와신라가대립할무렵백제에서신라로가는사신을전별하던곳으로처음에는돌아오지못할것을근심하였다해서근심수(愁),보낼송(送)자를써서수송대(愁送臺)라하였다.수송대라함은속세의근심걱정을잊을만큼승경이빼어난곳이란뜻으로불교의이름에비유되기도한다

그후조선중종때요수신권(樂水愼權)선생이은거하면서구연서당(龜淵書堂)을이곳에건립하고제자들을양성하였고대의모양이거북과같다하여암구대(岩龜臺)라하고경내를구연동(龜淵洞)이라하였다.지금의이름은1543년에퇴계이황(退溪李滉)선생이안의현삼동을유람차왔다가마리면영승리에머물던중그내력을듣고급한정무로환정하면서이곳에오지는못하고이름이아름답지못하다며음이같은수승대(搜勝臺)라고칠것을권하는사율시(四律詩)를보내니요수신권선생이대의면에다그싯귀를새겼다.

수승이라대이름새로바꾸니

봄맞은경치는더욱좋으리다.

먼숲꽃망울은터져오르는데

그늘진골짜기엔봄눈이희끗희끗

좋은경치좋은사람찾지를못해

가슴속에회포만쌓이는구려.

뒷날한동이술을안고가

큰붓잡아구름벼랑에시를쓰리다.

그시를받아든신권은다음과같은화답을보냈다.

자연은온갖빛을더해가는데

대의이름아름답게지어주시니

좋은날맞아서술동이앞에두고

구름같은근심은붓으로묻읍시다.

깊은마음귀한가르침보배로운데

서로떨어져그리움만한스러우니

속세에흔들리며좇지못하고

홀로벼랑끝늙은소나무에기대봅니다.

거북바위인암구대에는이곳을찾았던선비들의이름이빼곡히들어차있으며,퇴계이황의시옆에새겨진시는거창지방의선비였던갈천(葛川)임훈의시다.

강언덕에가득한꽃,술동이에가득한술

소맷자락이어질듯흥에취한사람들

저무는봄빛밟고자네떠난다니

가는봄의아쉬움,그대보내는시름에비길까

위의싯귀세수만보아도이곳이얼마나승경인지를말해주는듯하다.​

경내에는구연서원(龜淵書院)사우(祠宇)내삼문(內三門)관수루(觀水樓)전사청(典祠廳)요수정(樂水亭)함양제(涵養齊)정려(旌閭)산고수장비(山高水長碑)와유적비(遺蹟碑)암구대(岩龜臺)등이있는데이는유림과거창신씨요수종중에서공동관리하고있으며,솔숲과물과바위가어울려경치가빼어나고또한자고암과주변에는고란초를비롯한희귀식물들이자생하고있다.

이부근의황산마을은모두가한옥민박집허가를내어민박집을운영하는데

연중사람들로붐빈다한다.

비가와서물이불어수승대의진면묵목본다는곳을둘러서가야했다.

관수루의기둥주춧돌등의자연미는정말아름다운우리민족만의미세계이다.

울퉁불틍멋대로생긴돌위에적당한나무를얹어구조물을올린선조들의지혜는

그어느민족도따를수없으리라.​

황산마을

황산마을은거창신씨집성촌으로인근에서손꼽히는대지주들이살던곳이다.이마을의담장은대개토석담으로활처럼휜담장길이고가들과어우러져고즈넉하면서도절제된풍경을이룬다.물빠짐을위해아랫단60~90cm정도는커다란자연석으로돌만이용하는메쌓기방식으로쌓고그위에황토와작은돌을교대로질서있게쌓아올렸다.담장위에는대부분한식기와를올렸다.담장에그림을그린골목도유명하다.

다양한기법의벽화들이솜씨자랑하는화가들의손에의해시골골목이현대적으로바뀌었다.

그냥두어도좋을것을

저그림이색이바래지면다시와서더밝고환하게그려줄수있을까?

이동네들은빼어난수승대의경치때문에사계절사람들이몰려드는곳이다.

맵싸한냄새가나길래보니비닐하우스안에서고추가말라가고있었다.

동계정온고택

정온선생은광해군에게나이어린영창대군을

증살(방에장작불을지펴열기로죽이는방법)한것은부당하다는상소를올렸다가

제주도대정(大靜)에서10년간유배생활을했고,인조때발발한병자호란이후척화를주장하다화의가이뤄지자낙향해이곳에서살았다.

《덕변록(德辨錄)》과《망북두시(望北斗詩)》,《망백운가(望白雲歌)》를지어애군우국(愛君憂國)의뜻을토로하였고,문집으로는《동계문집(桐溪文集)》이있다.

한옥을연구하는사람들이많이다녀가는곳으로한옥의아름다움을가장잘나타낸건축물이라해도과언이아니다.

마을앞길을걸어대문앞에다다르면하마석이있고대문에는인조가내린정려(旌閭)현판〈문간공동계정온지문(文簡公桐溪鄭蘊之門)〉과〈(국태민안國泰民安)>이있다.

그런데예쁜눈섭지붕이내려앉고있었고옆으로가니계속오는비에담장이허물어지고있었다.

종부가살고있다고하나이큰집을다돌보기는어렵지않겠나싶었다.

유서깊은곳들을돌아보고부자가된기분으로거창을떠났다

과연거창한곳이바로거창이란곳이다.

그렇지만내가사는남해,

이아름다운바다를누가갖겠는가?

충무공이순신의​숨결이아직도생생히살아숨쉬는이노량앞바다.

그곳노량의유진횟집으로돌아와회덮밥을먹고헤어졌다.​

언제나살아움직이고있는바다,

출렁이는파도를보며​내가슴에남해를사랑하는마음이

크게자리잡고있음을느낀다.

더구나남해펜션아라클럽에서보는한려해상국립공원이라니.​

<소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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