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체른 사자상 이야기
그리스용병에대해큰나랏님이친절하게설명을해주셨습니다.

그래서좀더자세한역사적설명이필요할것같아찾던중좋은자료가발견되어옮겼습니다.

참고해주시길바라면서…

빈사의사자상에얽힌이야기

1792년8월10일오전9시.파리의튈르리궁입구로통하는계단에서두무리의군인들이정면으로대치하고있었다.계단위쪽에는빨간색상의를입은군인들이,아래쪽에는파란색상의를착용한군인들과평범한시민으로보이는사람들이서로총을겨누고있었다.언제총성이터질지알수없는일촉즉발의긴장감이계단주변을뒤덮고있었다.

계단위쪽에있던군인들은프랑스국왕루이16세를호위하는근위대병사들이었다.이들은프랑스군인들이아니라,스위스에서고용된이른바’100인근위대’였다.아래쪽사람들은국왕의하야를요구하며튈르리궁전으로쳐들어온혁명군이었다.혁명군은최근몇달동안루이16세가혁명의회의여러가지진보적인법안을거부한데불만을품고있었다.

▲방화때문에소실돼사라져버린튈르리궁그림.

긴장감넘치는양측의대치는15분이상이어졌다.

어느쪽에서도먼저총을쏠생각을하지못하고있었다.혁명군측에서한명이계단위쪽으로뛰어올라가소리를질렀다.

"마지막으로경고한다.스위스근위대는무기를버리고항복하라.그것이목숨을보존하는유일한길이다."

스위스근위대쪽에서도한명이앞으로나섰다.계단가장위쪽에서있던근위대대장베스터만이었다.용병생활만20년이넘는베테랑군인이었다.그는단호한목소리로잘라말했다.

"우리는스위스근위대다.우리에게는무기를버리는것보다목숨을버리는게더쉬운일이다.어떤일이있더라도,몰살당하는일이있더라도우리는현재의위치에서물러나지않을것이다.죽는순간까지무기를손에서놓지않을것이다.튈르리궁으로들어가서국왕을붙잡아가고싶다면우리의시체를밟고넘어서가라."

베스터만이큰소리를치기는했지만,사실스위스근위대는난처한처지에몰려있었다.원래튈르리궁을지키는병사는스위스근위대외에프랑스군인으로구성된궁궐경호대등까지합쳐모두5천여명에이

르렀다.이정도병력만유지된다면혁명군이아무리많더라도튈르리궁의안전을위협할수는없을터였다.하지만궁궐경호대병사들가운데대부분은혁명군의선전술에현혹되거나동포를상대로총질을할수없다며도망쳐버렸다.남은병사는스위스근위대900여명과국왕을지지하는왕당파군인200여명에불과했다.

게다가베르사이유궁에서튈르리궁으로끌려오다시피한루이16세는혁명군과충돌하지않겠다며튈르리궁에서혁명의회로도망쳐버린상태였다.마리앙투아네트왕비는궁을지켜야한다며도주에반대했지만,루이16세는말을듣지않았다.

그때였다.갑자기계단에서"탕탕"하며총성이터지기시작했다.누가먼저쏜것인지는알수없지만,

양측병사들은서로를향해총을쏘고있었다.큰총성과함께"으악"하는비명을지르며쓰러지는병사들이늘어났다.스위스근위대보다는주로혁명군병사들이쓰러지고있었다.오랜훈련덕에스위스근위대의총알은정확하게혁명군병사들을맞혔던반면,혁명군병사들의총알은허공을가르기일쑤였다.

▲스위스’100인근위대’와혁명군이전투를벌이는그림.

시간이흐르자혁명군은밀리는모습을보였다.겁을먹거나당황한일부사람들은총을내던지고도망가기시작했다.다른사람들도총을쏘고는있었지만두려움에떠는표정이역력했다.결국30분정도의짧은전투는스위스근위대의압승으로끝났다.혁명군은튈르리궁입구로통하는계단에서밀려나튈르리정원밖까지쫓겨났다.혁명군의퇴주에사기가오른스위스근위대병사들은쓰러진혁명군병사들의시체를밟으며계단아래로밀고내려갔다.그들은혁명군이버리고간무기와대포를압수했다.

하지만혁명군은한번전투에서패했다고그대로물러설사람들이아니었다.튈르리정원밖으로쫓겨

간혁명군에전국각지에서몰려온응원군이합류했다.그숫자는수천명을넘어섰다.맨주먹이거나아니면몽둥이,쟁기등을든사람들도적지않았다.프랑스정규군에서이탈한군인들도적지않았다.튈르리정원은온통혁명군으로둘러싸인형국이되고말았다.

하지만스위스근위대병사들은혁명군의위세에도불구하고전혀기가꺾인모습을보이지않았다.너무무표정한얼굴들이어서혁명군은’저들이사람인가’라고생각할정도였다.

혁명군이인원과무기를정비해재공격을준비하고있을때,튈르리궁쪽에서병사한명이베스터만에게로달려갔다.그병사의얼굴은큰충격을받은듯노랗게질려있었다.

"대장님,큰일났습니다.국왕전하께서철수명령을내리셨습니다."

"뭐라고,도대체그게무슨말이냐?"

그병사의손에는종이한장이들려있었다.종이에는국왕의친필이분명한글씨가적혀있었다.베스터만은종이를얼른넘겨받아내용을급히읽어내려갔다.종이에는이렇게적혀있었다.

‘국왕이명하노니,스위스근위대는무기를버리고숙소로철수하라.더이상나의국민들에게총을쏘지말라.’

베스터만은화가나서종이를갈기갈기찢어버렸다.도대체국왕은무엇때문에이중차대한순간에이런어처구니없는명령을내렸는지이해할수가없었다.그는순간적으로머리가복잡해졌다.

‘멍청한녀석!하지만고용주인국왕이명령을내렸으니따르지않을수없다.그렇게되면우리는몰살인데….아!하늘이시여,이렇게우리를버리시는것입니까?’

잠시고민에빠졌던베스터만은어쩔수없이일단부하들을궁전쪽으로철수시키기로했다.그는계단에모여있던부하들을향해큰소리로외쳤다.

"국왕의명령이다.모든스위스근위대는궁궐안으로철수한다.혁명군에게약세를보이지않도록한꺼번에철수하지말고분대별로천천히차례차례철수한다."

스위스근위대병사들은갑작스러운철수명령에어리둥절해하면서도대장의명령에따라절도있게철수를서둘렀다.그들은궁안으로후퇴한뒤출입구와주요창문등에배치돼혁명군의기습에대비했다.

시간이조금씩흐르자,국왕이무기를버리라고명령했다는소문이퍼지기시작했다.게다가탄약보급도끊어져곧탄약이고갈되고말것이라는이야기도들려왔다.병사들의얼굴에는마침내긴장감과공포감이몰려오기시작했다.그럼에도불구하고베스터만이지시한위치에서이탈하는병사는한명도없었다.

베스터만은평생용병으로외국에서살면서수없이많은죽을고비를넘겼다.그는그래서부하병사들의불안감을잘알고있었다.그는복도에나가부하들을쭉둘러보았다.그리고단호하면서도비장한목소리로이야기를꺼냈다.

"스위스는가난한나라다.논도부족하고밭도부족하다.먹고살게없다.그래서우리는여기프랑스에온것이다.스위스남자들은수백년전부터목숨을걸고외국군대에서용병으로일하면서가족을먹여살렸다.조상들은어떤일이있어도고용주를배신하는일은없었다.우리도마찬가지다.만약우리

가오늘무기를버리고항복하거나여기에서도망간다면,앞으로다른후손들은영원히용병으로일할수가없게된다."

베스터만의말이이어지는동안스위스근위대병사들은어느누구도입을열지않았다.그들의눈앞에는고향에살고있는부모,형제,친척,친구들의얼굴이떠올랐다.일부어린병사들은눈물을흘리기도했다.

"죽음이두렵다면지금당장여기를떠나도된다.아무도여러분의이탈을말리지않는다.다만이한마디만하겠다.우리가이자리를떠나면목숨은건지겠지만,고향에살고계신부모,형제는굶어죽는다.결정은여러분개개인에게맡기겠다."

베스터만은말을끝낸뒤튈르리궁입구로갔다.그는문을지키고있는부하병사들바로뒤에서서총을꺼내들었다.그리고바로앞에서총을겨누고있는부하의어깨를두들겼다.그부하는베스터만의얼굴을돌아보더니,씨~익미소를지었다.그날밤튈르리궁에서도망간스위스근위대는한명도없었다.

수천명의혁명군은마침내튈르리궁에대한대대적공격을재개했다.스위스근위대는자기위치에서물러서지않고끝까지싸웠다.혁명군은수적으로는압도적으로우세했지만,스위스근위대의위세에눌려함부로튈르리궁안으로진입하지못했다.궁입구밖이나창문밖에서총만쏘아댈뿐이었다.

스위스근위대로서는불행하게도한명두명총알이떨어진병사들이생기기시작했다.결국튈르리궁안에는단한발의총알도남지않게됐다.스위스근위대쪽에서총알이날아오지않자,혁명군병사들은금세사정을눈치챘다.그들은"와~"하고함성을지르며튈르리궁안으로진입했다.

스위스근위대병사들은하나둘씩쓰러지기시작했다.어떤병사들은제자리를지키다혁명군의총에맞아즉석에서숨졌고,다른병사들은혁명군과맨주먹으로싸우다몰매를맞아죽었다.혁명의회로쫓겨갔다가붙잡혀칼에찔려죽은병사도부지기수였다.

역사에’8월10일사건’으로기록된그날,튈르리궁을지키다숨진현장에서스위스근위대병사는모두700여명에이르렀다.대장베스터만도현장에서즉사했다.포로로잡힌100여명은나중에혁명군에의해학살당하기도했다.살아남은병사는극소수에불과했다.

스위스루체른에는’빈사의사자상’이라는힘이빠져죽어가는사자의모습을새긴조각이있다.튈르리궁의스위스근위대병사들이몰살당하고30년뒤인1821년스위스국민들이’의리’를지킨병사들의뜻을기리기위해만들었다고한다.

사자상위에는라틴어로’헬베티오럼피데이아크비르투티(HELVETIORUMFIDEIACVIRTUTI)’스위스근위대의충성심과용맹성에바칩니다’라는글을새겨두었다.

한편튈르리궁은1871년파리시민,노동자들이봉기를통해세운혁명적자치정부인’파리코뮌’시기때일부극단주의자들이저지른방화때문에없어지고말았다.지금은튈르리정원만남아파리시민들의공원역할을하고있다.

김해뉴스남태우편집국장leo@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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