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 부담스러워진 영미권 언론사들

‘신문 산업의 미래’ 같은 주제에 대한 논의의 결론은 대략 뻔하다. 세계편집인포럼(WEF)이나 세계신문협회(WAN)의 발표자들이나 개별 신문사들의 실적 보고때 CEO들이 흔히 하는 얘기들은 “인터넷 격변의 시기에 지금은 어렵지만, 뉴스 산업에 희망은 있다” “콘텐츠의 질과 생산 방식이 앞으로는 달라져야 겠지만, 고품격 뉴스에 대한 수요는 계속 있다”류이다.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렇게 변한 high quality 뉴스에 대한 수요가 과거 대중매체로서의 신문이 누렸던 수요를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클 것인지, 또 신문-인쇄 매체에 어떤 희망이 있는지 구체적인 ‘모범’ 방안은 없다. 그래서 선도적인 매체들이 여러 루트를 개척하고 있지만, 아직 숫자로 증명된 성공 사례는 매우 드물거나 예외적이다.

디지털 카메라를 발명하고도 불티나게 팔리는 필름 산업을 버리지 못했던 코닥, PC를 ‘장난감’처럼 여겼던 메인 프레임 컴퓨터 회사들의 운명, 또 스마트폰-모바일 기기의 출현을 가볍게 봤던 PC 제조사들의 말로(末路)를 우리는 잘 안다. 그래도 신문 산업 종사자들은 “뉴스는 다르다” “고품격 뉴스에 대한 수요는 충분하다”고 믿는다. 아니면 믿고 싶어한다.

그래서 작년에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가 개인 돈으로 2억5000만 달러를 들여 워싱턴 포스트를 샀을 때에, 전세계 신문업계는 그가 신문-인쇄 매체에 새로운 혁명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했고, 자신들이 놓쳤던 뭔가를 그는 봤을 거라고 짐작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 아직(!) 워싱턴 포스트는 외견상, 숫자상 달라진 것이 없다. 디지털 콘텐츠 생산에 전보다 더 많이 투자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서 길을 제시한 것은 없다.

그리고 최근 미국 신문업계의 현실은 더더욱 정반대로 돌아갔다. 신문-인쇄매체를 보유한 대형 언론기업들이 앞다퉈 ‘골치아픈’ 신문 파트를 분사(分社)했다.

♦ 트리뷴 컴패니

시카고에 본부를 둔 트리뷴 컴패니는 4일 로스엔젤레스 타임스와 시카고 트리뷴, 올랜도 센티널 등 모두 10개의 지역 신문을 관장하는 신문 파트를 ‘트리뷴 퍼블리싱’이란 이름의 별도 법인으로 분사했다. 트리뷴 컴패니는 이름도 ‘트리뷴 미디어 컴패니’로 개명하고  42개 방송국과 디지털 사업을 운영하는 회사로 변모했다. 한때 미국을 대표했던 지역 신문사들이 매출-이익 신장의 걸림돌이 되자, 버린 것이다. 새 기업 ‘퍼블리싱’엔 3억500만 달러의 빚까지 ‘위자료’로 떠넘겼다.

♦ 가넷(Gannett) 그룹

5일엔 USA 투데이를 보유한 가넷 그룹도 방송과 디지털 사업을 관장하는 파트와, 신문 발행을 관장하는 파트를 분리해 2개의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5일 발표한 USA 투데이 모기업 가넷 그룹의 분리 계획
지난 5일 발표한 USA 투데이 모기업 가넷 그룹의 분리 계획

미 언론사들이 이렇게 경쟁적으로 신문 파트를 떨어내는 배경엔 이들 공개 기업에서 전체 이익에서 방해물이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미 투자가들의 심리도 크게 작용했다. ‘신문 영업 분리’ 발표가 있으면 바로 주가가 뛰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 워싱턴포스트 역시 애초 소유주였던 그레이엄(Graham) 가문이 신문인 워싱턴포스트만 쏙 빼서 아마존의 베이조스에게 팔았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모든 지역 방송, 잡지, 인터넷 웹사이트들을 모두 매각하고 뉴욕타임스 신문 하나에 올인한 케이스다.

♦루퍼드 머독이 ‘신문’만 떼어 낸 뉴스코프(News Corp)

뉴스코프의 CEO 로버트 톰슨은  최소한 겉으론 신문-인쇄 매체의 미래에 대해 ‘낙관론자’다. 방송-엔터테인먼트-신문으로 구성됐던 뉴스코프에서 작년에 분사해 신문 그룹을 관장하게 된 그의 임무상 이해할 만 하다. 7일 분사 이래 1년간의 영업 실적을 보고하는 컨퍼런스 콜에서 톰슨은 자사 소유 신문 영업에 매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인쇄매체, 특히 인쇄매체 광고(신문 광고)를 회사의 중점사업이자 미래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거느린 신문은 영국의 더 타임스, 더 선,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 뉴욕 포스트 등이 영-미-호주의 언론사들이다.

그는  “우리는 여전히 인쇄의 파워를 강력하게 믿는다“며 “인쇄 광고의 효과가 광고주들에 의해 심각하게 저평가됐다”고 주장했다.

 그가 맞기를 바란다. 그러나 숫자는 반대로 말한다. 뉴스코프의 실적이 전년 88억9000만 달러에서 매출이 85억7000만 달러로 떨어졌다. 신문 광고 수입 감소와 환율 변화, 다우존스 콘텐츠 판매 수익의 감소 등의 이유로  순이익은 47% 감소했다(5억5000만 달러→2억9000만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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