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M. Lee의 모든 글

C. M. Lee에 대하여

디지털 저널리즘의 현실과 방향에 대한 궁리를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312m 하늘 아래 펼쳐진 최상의 호반 경치

KBS영상앨범 산에서 몇 달 전 소개된, 춘천 춘클리지에서 내려다 본 의암호 전경에 푹 빠졌던 기억이 있다. 가고 싶었지만,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오가는 시간에 비해 등산 예상 시간이 3시간 정도에 그쳐 계속 망설였다.

춘클리지 자체는 암벽 등반 코스로, 나같은 뚜벅이 등산객에겐 무관한 코스.

그러다가 8월의 마지막 날 오후 2시쯤 느긋하게 춘천행을 결심했다. 추석 앞둔 벌초 차량들의 귀경 행렬로 올 때에는 막힐 것이 뻔하므로 어디 찜질방이나 사우나에서 푹 잠이나 자고 한밤중에 귀경할 생각을 했다.

북한강을 가로 지르는 의암댐 위의 다리 신연교를 건너서 의암쉼터 앞에 주차하고(주변에 주차할 공간은 이럭저럭 꽤 된다) 등산로를 물으니 100m 떨어진 곳의 계곡길에서 시작하면 된다고. (나중에 집에 와서 보니, 좀 더 차를 몰면 인어상 있는 곳에서도 등산로가 제대로 있는 것을 알았다).

드름산 등산안내도

어쨌든, 해발 50m쯤 되는 출발점에서 35분가량을 가파르게 오르니 전망대가 나왔다. 그리고 그 앞에 펼쳐진 풍경은 바로 KBS 영상앨범의 그 풍경이었다. 건너편에는 삼악산이 보이고, 길죽한 원형의 붕어섬도 한눈에 들어오는. 

드름산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북한강

지난 10여 간 가 본 산 중에선, 해발 312m에서 조망할 수 있는 풍경으로는 최고라 해도 과언(誇言)이 아닌 듯 싶다. 남한강이든 북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산으로는 예봉산 운길산 문안산 고동산 뾰루봉, 깃대봉(매곡산), 검단산 등 여러 곳들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낮은 곳에서 이렇게 가깝고도 시야가 확 트이는 곳은 처음이었다. 춘클리지를 암벽 등벽하는 이들이 만나는 정점이 이 전망대인 듯 싶다.

 드름산 정상비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라고 할까. 8월의 뜨거운 오후 햇살에도 정신 놓고 마냥 풍경을 즐겼다. 여기서 드름산 정상까지는 표고차 30~40m 정도의 높낲이를 따라서 최소 서너번을 오르내려야 한다. 정상까지 시간은 천천히 약 50. 드름산 정상은 별거 없었다. 조망도 없었고, 동네 약수터의 체련기구들이 있어서 좀 허망한 느낌? 전형적인 동네 뒷산 분위기였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은 숲길따라서 죽 걷는 재미가 있었다.

 

이날 산행 시간은 모두 3시간. 쉬엄쉬엄 걸으면서, 전망대에서 충분히 시간을 보냈다. 돌아오는 길에 춘천 시내에서 꼭 들러야 한다는 우성 닭갈비를 먹는 재미에도 빠졌다. 양이 많다. 성인 두 사람이 2인분 시켰는데, 밥을 볶아 먹지 않고 사리 1인분 시켰는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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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성’ 영문기사 제목들…단속 나선 페이스북

영어권 뉴스 웹사이트에서도 낚시성()’ 기사 제목이 있다. 물론 목적은 어떻게 해서든 클릭을 하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표현도 clickbait이다.

그런데 유형은 우리랑은 좀 다르다. 우리는 허걱’ ‘충격’ ‘알고 보니…’ 등 독자의 기대를 쥐어짜는 표현을 쓴 고전적 수법에서부터, 아예 내용과는 무관하게(또는 읽고 나면 애초 기대와는 너무 동떨어져 허무한 느낌마저 들게 하는) 제목을 다는 수법이 많다.

섹시 女배우 깜짝발언‘ “연기 전에 반드시…—>결론부터 얘기하면, 깜짝 발언도 아니고, 연기 전에 반드시 ~~하는 것도 없다. 그리고 이 섹시 여배우는 한국 사람도 아니다. 한국을 방문한 미 여배우 메건 폭스가 그냥 한국 음식점 가면 고추장, 김치 좋아한다는 얘기다.

영어권, 특히 미국의 인터넷 뉴스매체들, 버즈피드(Buzzfeed), 업워디(Upworthy)이 즐겨 쓰는 낚시성 제목은 종종 길다.

자기애가 그다지 인기 있는 아이가 아닌 줄은 알았지만, 부모 눈앞에서 바로 일어난 일을 봤을 때에 그들이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해 보라(Their Son Wasn’t A Popular Kid. Imagine Their Surprise When This Happened Right Before Their Eyes)”

===>제목만 보면, 부모 눈앞에서 왕따, 괴롭힘을 당하는 자식을 상상할 수도 있겠지만, 그 반대다. 중학교 풋볼 팀 친구들이 풋볼 재주가 영 없는 왜소한 체격의 아들이 터치다운을 할 수 있게 함께 도와줬다는 훈훈한 얘기다.

 당신이 아마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을 질병은 아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그것도 당신 애가 아니고 남의 애를요(A Disease You’ve Probably Never Heard Of Is Killing Kids. Not Your Kids. But Someone Else’s Kids.”

낚시성 모자파상풍

===>이 무슨 섬뜩한 범죄인가 궁금하겠지만, 읽어보면 유니세프가 내건 아프리카의 모자 파상풍을 근절하자는 캠페인 기사의 제목이다.

어른들도 그렇게 틀리는데, 한 어린 애가 그렇게 옳을 수 있다니!(It’s Weird That A Kid Could Be So Right About Something That Adults Still Get So, So Wrong)”===>(이것까지 속기 싫어서, 아예 클릭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흔한 당신이 몰랐던~~’, ‘여름에 꼭 가봐야 할 ~~~’ ‘~라면 꼭 알아야 할~’ 10, 5가지 등의 리스트 제목들이다. 

영어권 매체에서 난무하는 이런 제목들이 전달하는 콘텐츠가 다 허무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제목은 어떡해서든 클릭으로 이끌어내려는 낚시성이다.

그런데, 페이스북이 25일 이런 낚시성 제목 clickbait’에 대해선 노출을 금하는 등 제재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clickbait의 정의(定義)까지 내렸다.

“사람들로 하여금 클릭해서 더 많이 보고(읽고) 싶게 제목을 달았지만, 실제로는 뭘 보게 될지에 대해선 별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콘텐츠(content in which a publisher posts a link with a headline that encourages people to click to see more, without telling them much information about what they will see).” 

몇가지 예시까지 했다. 예를 들어, “어느 두 스타가 개싸움을 했는지 정말 믿지 못할 것입니다. 이 동영상을 보세요”처럼, 느낌표가 팍팍 찍힌 “결코 믿지 못할 ~~~”류의 제목들이다.

celebstyleweekly-new

 페이스북 측은 구체적인 ‘낚시성 제목’ 식별 방식으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1. 사람들이 그 기사(콘텐츠)를 얼마나 오랫동안 읽는가. 만약 낚시성 제목이었다면, 그 콘텐츠가 게재된 웹사이트에서 곧바로 페이스북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이는 독자가 기대했던 것을 읽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사람들이 클릭한 숫자 대비 그 콘텐츠에 대한 공유, ‘좋아요표시 숫자의 비율. 즉 클릭은 많이 일어났는데 좋아요, 공유 표시가 매우 적다면 이는 콘텐츠가 형편없고 클릭은 단지 낚시성 제목으로 일어났다는 것을 말한다.

페이스북은 이 기준에 따라서, 낚시성 제목으로 포장된 콘텐츠들의 노출을 억제해나가겠다는 것이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사람들이 오래 보기만(읽기만) 한다면, 퀄리티가 저질이라도 낚시성이라는 이유로 퇴출될 우려는 없다.

페이스북이 계속 강조해온 가치는 페이스북 이용자들의 만족도 극대화이다. 따라서 낚시성 제목으로 이용자를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의도는 좋지만, 그 기준은 시간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에선 페이스북과 같은 극소수 소셜미디어의 콘텐츠 유통 플랫폼 역할이 압도적으로 크다. 따라서 페이스북이 자사의 뉴스피드 벽()에 게재되는 콘텐츠를 이용자들이 읽는 시간으로 정하는 순간, 많은 뉴스 미디어사들은 이에 따라서 콘텐츠 제작을 할 것으로 보인다. 

페이스북은 특정한 편집방향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언론사도 아니고, 또 언론사이기를 표방한 적도 없다. 또 어떤 콘텐츠가 가장 많은 이들의 뉴스피드에 게재되는지 그 알고리즘을 정확히 밝힌 적도 없다. 이번에 이러이러한 낚시성 제목은 걸러내겠다는 것을 밝혔을 뿐이다. 그런데도, 결국 이용자들이 볼 수 있는 뉴스(콘텐츠)는 자사만의 알고리즘을 통해서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뉴스스탠드라는 판을 통해 인터넷 언론사들이 콘텐츠를 노출할 수 있게 하는 네이버의 일관된 입장은 낚시성 제목 자제는 언론사의 몫이고, 자신은 장()을 제공할 뿐이라는 것이다. 언론사가 자체 정화(淨化)해야 할 사안에, 왜 플랫폼 사업자인 네이버가 끼어들겠느냐는 것이다. 네이버에 기사가 어떻게 노출돼 유통되느냐에 따라서 (디지털 광고 수익으로) 사활이 걸린 중소 인터넷 매체들을 고려하면 이해할 만도 하다. 네이버로선 끼고 싶지 않은 민감한사안이다. 그러나 뉴스 유통망을 장악한 플랫폼 사업자가 뉴스의 질()에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것은, 불투명한 알고리즘으로 보여주고 싶은뉴스만을 노출하겠다는 생각만큼이나 위험한 발상이다

기분좋게 흠뻑 땀에 젖는 통방산~중미산 산행

통방산에서 삼태봉을 거쳐, 중미산 정상을 밟는 코스는 경기도 근교의 한가한 산을 찾는 등산객들에게는 잘 알려진 코스다. 그러나 교통편이 마음에 걸려(한 번에 가는 대중교통편이 없고, 자가용 승용차를 이용하려면 아침 일찍 떠나야 한다) 숙제로만 남았던 코스였다.

823일 토요일, 일찍 집을 떠났다. 양재역 오전 7시 출발. 650m에서 800m 남짓을 오르는 코스. 인터넷에 먼저 다녀온 사람들의 등산 시간은 대략 5시간 반. 그러나 최근 들어 (체력 탓이지만) slow movement 주창자가 된 나는 애초부터 7시간 산행으로 마음잡고, 충분히 쉬어가며 느긋하게 산행하기로 친구와 다짐했다.

산행 들머리는 노문리의 정곡사 근처(아래 등산로 안내도에서 3코스). 3년 전에 상산재에서 통방산에 올랐다가(2코스)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해 통방산 기슭에 수많은 족적(足跡)을 남겼던 기억이 있기에, 아예 등산로가 분명해 보이는 정곡사 입구를 선택했다. 인터넷에는 주로 서너치 고개에서 거꾸로 중미산~삼태봉~통방산~정곡사(or 가마소 유원지)를 간 산행기가 많았지만, 서너치 고개는 들머리의 해발이 좀 ‘비양심적으로’ 높지 않나, 그래서 너무 쉽게 가는 것 아닌가하는 의문이 있었기에. 그러나 이는 나중에 밝히겠지만 착각이었다.

정곡사 등산로 초입에 세워진 통방산 산행 안내도

정곡사 등산로 초입에 세워진 통방산 산행 안내도

길은 분명했지만, 초입부터 전반적으로 경사가 좀 있었다. 남한강의 남북에 걸쳐 있는 양평군의 산들은 대개 산행인들이 별로 없다. 그래서 사실상 산 속에 자신만 있다고 착각할 정도로, 조용하다(그래서 멧돼지라도 만날까봐, 꿩이나 다람쥐의 부스럭 소리만 들려도 종종 겁이 난다).

통방산 정상
통방산 정상

정곡사 입구에서 1차 목적지인 통방산까지의 지도상 소요시간은 1시간 40. 전에는 휴식시간을 다 취하고도 지도에 표시된 시간 내에 산행을 마치는 것이 정상이었는데, 언젠가부터 공식 소요시간에 한 시간 정도 더 붙이는 것이 나의 산행 일상이 됐다.

 이날 기온은 29~30. 비 오듯 쏟아지는 땀과 턱에까지 차는 숨이란 상투적 표현이 딱 맞았지만, 나는 이 맛에 산을 찾는다. 마라톤을 뛰어볼 염두는 못 냈지만, runner’s high라는 것이 이런 것 아닐까.

날씨가 흐려 조망은 별 게 없었다. 점심은 삼태봉에서 먹기로 하고, 통방산 정상에서 잠시 쉬었다가 1.4km 떨어진 삼태봉으로 출발. 삼태봉 가는 길은 마지막 코스에 급경사에 밧줄이 계속 연결된 구간이었다. 삼태봉 부근엔 경치를 내려다보며 먹을거리를 풀어놓고 그늘 속에서 쉴만한 공간이 있다. 건너편을 보니 낮게 깔린 구름인지 안개 사이로 지나온 통방산 정상이 보인다.

7 드디어 삼태봉삼태봉 정상에서 한 시간 넘겨 노닥거리며, 친구와 뻔한 얘기를 계속 주고 받았다. 어차피 이 산엔 아무도 없으므로, 우리가 주인이다. 이날 산행 중에 통틀어서 등산객은 2~3인으로 구성된 두 팀 만났다. 바로 옆 나무 위에선 새들이 정말 엄청나게 지저귄다. 친구는 이럴 때마다 하는 얘기가 “(그렇게 돈 많다는) ○○○이가 지금 이 순간은 안 부럽다. 나는 좀 다르다. 그래도 부럽기는 하다. ^^

삼태봉에서 본 통방산 전경

삼태봉에서 본 통방산 전경

삼태봉에서 중미산으로 향하는 4.79km 구간은 곳곳이 잡목이 무성해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더운 날씨에도 긴팔을 입기를 잘했다. 등산 스틱으로 길을 막아선 잡목 가지들을 계속 헤처나가면서 고우(go)! 중간에 다른 동네로 내려가는 등산로들을 만나니까 종종 헷갈렸다. 이럴 때에는 감()으로 가는 수밖에. 또 한 달여 전에 다운로드한 등산 GPS 오룩스맵스(Oruxmaps)가 위력을 발휘했다. 이미 남들이 간 루트(route)gpx 파일로 받아서 오룩스맵스에 설치하고 내가 가는 길을 그 위에 트랙으로 남기면서 가는 이런 등산앱은 어디서 내가 잘못 길을 들었는지 곧 확인할 수 있어 불필요한 족적(등산객들은 이를 몇 년 전부터 알바라고 한다)을 남기는 수고를 덜 수 있다.

9 중미산 정상삼태봉을 출발한 지 3시간 만에 834m의 중미산 바위덩어리 정상에 도착. 중미산 꼭대기를 밟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늘 선어치 고개 건너편 유명산만 몇 번 가봤지, 정작 중미산은 오를 기회가 없었다.

10 선어치 내려가는 급경사중미산에서 선어치 고개로 내려오는 코스는 완전히 급경사의 끝판왕이었다. 30분에 걸려서 선어치 고개의 아스팔트를 만나기까지 밧줄을 잡고 급하게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gps로 확인해보니, 만약 이 길에서 출발해 중미산을 밟는다고 하면, 표고차 300m를 매우 가파르게 오르는 코스였다.

서너치 고개의 길거리 찻집들 중 한 곳을 들러 급히 칡차 한 잔 마시고 바삐 집으로.

차를 세워놓은 정곡사까지 가려면 이제 설악면에서 오는 콜택시를 부르는 수밖에 없다. 설악면에서 콜택시가 오는 비용만 18000여원. 여기서 다시 정곡사까지 가야하니 택시비만 모두 4만원이 들었다.

이날의 산행 시간은 정확히 7시간. 종일 기분 좋게 흠뻑 땀에 절어 본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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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방산~삼태봉~중미산 산행 총정리 (오룩스맵스)

통방산~삼태봉~중미산 산행 총정리 (오룩스맵스)

 

 

뉴욕타임스의 유료화 행진은 멈추었나

20113월 콘텐츠 유료화를 시작한 이래, 뉴욕타임스(NYT)는 전 세계 신문사들의 주목거리였다. 물론 그 전에 파이낸셜 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이 유료화를 했다. 그러나 이 두 신문은 경제 뉴스로 보다 특화됐다는 점에서, ()품격 general news를 생산하는 뉴욕타임스가 인터넷 시대를 헤쳐 나가는 기업 전략은 그 콘텐츠의 압도적인 질()과 함께, 전 세계 신문업계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3년여간 말 그대로 0(제로)에서 80만명에 이르는 디지털 콘텐츠 유료구독자를 이끌어냈다. ‘콘텐츠는 공짜’ ‘유통(플랫폼)이 왕이라는 인터넷 시대에 이룬 쾌거였다.

 그런데 최근 나온 2분기 실적은 앞으로 갈 길에 큰 그림자를 드리운다.

뉴욕 맨해튼의 8th 애버뉴와 41번가~42번가 스트리트 사이에 위치한 뉴욕타임스 새 사옥
뉴욕 맨해튼의 8th 애버뉴와 41번가~42번가 사이에 위치한 뉴욕타임스 사옥

 ■ 2분기 실적

1분기까지 NYT가 거둔 디지털 유료구독자 수는 80만 명이었다. 모바일 앱//PC 등의 기기별 구독 결합상품 구성에 따라 15~35달러인 구독료를 내는 디지털 독자들이었다.

2분기 들어서 NYT는 월8달러짜리 쪼개기 상품들을 많이 내놨다. NYT NOW, NYT Opinion, NYT Cooking과 같이 방대한 콘텐츠의 NYT쪼개서보다 많은 구독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이었다. 미 미디어업계에선 같은 고기를 얼마나 잘게 썰어서 팔 수 있을까라는 조롱도 있었지만, 벌크(bulk)로 일단 상품을 내놓은 회사로선 추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벌크 상품을 부담 없는 가격에 쪼개서 파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결국 2분기에 실제로 늘어난 유료 구독자 수는 약32000명에 불과했다. 6월말까지 총 디지털 유료구독자 수는 831000.

NYT2분기 증가 구독자 32000명의 어느 정도가 기존 상품 구독자(15~35달러)인지, 새로운 쪼개기 앱상품 구독자인지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간단한 산수는 가능하다. 32000명이 모두 기존상품 구독자라고 해도, 이는 1분기 증가분 36000명에 못 미친다. , NYT의 디지털 유료화는 이제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얘기다.

만약 월8달러짜리 신상품 쪼개기 앱 구독자들이 대부분이라고 하면 더 심각하다. 정기구독자(15~35달러)의 증가는 이제 멈췄고, 새로운 시장으로 개척했던 쪼개기 앱들은 추가 독자 유치에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이들 앱을 개발하기 위해서, 1년간 쏟은 개발비와 앱 콘텐츠 구성을 위한 인력 운용을 생각하면, 완전히 마이너스다. NYT NOW 앱 하나를 운영하는 전담인력이 20명 가까이 된다).

■ 매킨지가 추정한 NYT의 유료독자수 전망

4년 전에 NYT 경영진은 컨설팅 회사 매킨지에 디지털 유료 독자수에 대한 추정을 의뢰했다. 유료화 장벽(paywall)을 세우기 전 얘기다.

당시 매킨지의 추정은 월 15~30달러를 기준으로 했을 때, 가장 낙관적인 숫자는 80~90만 명이었다. 어쨌든 100만 명은 안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 추정이 맞는다면, 현재 NYT의 디지털 유료독자수는 이제 한계점에 이른 것이다.

유료화 장벽: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장벽' 너머 풍경(콘텐츠)에 관심을 보일 수 있을까...
유료화 장벽: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장벽’ 너머 풍경(콘텐츠)에 관심을 보일 수 있을까…

NYT의 디지털 매출

이런 비관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NYT가 보잘 것 없었던 디지털 매출(디지털 콘텐츠 유료 구독 +디지털 광고 매출)을 연간 36000만 달러 규모(2014년 예상)로 키운 것은 놀라운 일이고, 한국 언론사들로선 부러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이 중 디지털 구독료가 15000만 달러, 디지털 광고 매출이 2100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 숫자의 위대함은 비슷한 웹트래픽을 유지하면서 웹 콘텐츠는 완전 공짜, 디지털 광고 수익 위주의 경영을 고집하고 있는 영국의 가디언과 비교해 보면 금방 드러난다. 가디언은 한해 디지털 광고로 6200만 달러를 거두는데 그쳤다. 그래서 가디언의 작년 전체 디지털 매출은 8500만 달러였지만, 적자는 4700만 달러에 달했다.

가디언은 든든한 재정적 뒷받침을 해주는 스캇 트러스트(Scott Trust)가 있어서 다행이지, 가디언의 디지털 전략에 대한 온갖 찬사는 숫자로 환산되는 순간 절망적이다. 그러나 스캇 트러스트 재정적 지원으로 가디언은 앞으로 19년간 지금의 적자 규모를 유지해도 계속 신문과 인터넷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다.

 

NYT는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NYT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디지털 성과에도 불구하고, NYT의 디지털 사업 규모는 결국 36000만 달러짜리라는 것이다. 이 숫자로는 NYT1100명에 달하는 편집국 인력을 계속 유지하면서, 세계 최고의 퀼리티 뉴스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숫자가 아니다.

 NYT의 디지털 매출은 전체 매출의 20%에 불과하다. , NYT가 이 정도의 디지털 매출로서 유지할 수 있는 digital-only 언론사의 편집국 규모는 200명 정도라고 한다. 이는 한국의 큰 신문사들 편집국 규모와 비슷하다. 

물론 BBC 사장을 역임했던 NYTCEO 마크 톰슨은 여전히 투자가들에게 자신감을 보인다. “높은 숫자의 백만 명대 숫자를 미국에서 유료 독자로 확보하겠다는 생각이 터무니없지 않다(It’s not ridiculous to think of a high single million number in the U.S. as an addressable market.)” , 700~900만 명대의 유료독자를 거둘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아직 그 숫자에서 너무나도 멀다.  

원숭이가 찍은 ‘셀카’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원숭이가 찍은 ‘셀카(selfie)’의 저작권을 놓고 사진 작가와 위키미디어가 다투고 있다. 영국 데일리텔레그래프가 6일 웹사이트에 소개한 사연은 이렇다.

야생 촬영 전문가인 영국인 사진작가 데이비드 슬레이터(Slater)는 2011년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과 인근 섬들의 밀림에서 마카크(macaque) 원숭이 무리를 찍고 있었다. 이 검은털의 원숭이는 멸종 위기의 원숭이로, 한 무리에 대략 5~25마리가 속해 있다.

그런데 이 중 한 암컷 마카크 원숭이가 카메라를 낚아채더니 수백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 원숭이는 카메라의 셔터 소리에 매료된 것이 틀림 없다. 나중에 인화를 해보니, 대부분의 사진은 나무를 향하고 있거나 포커스가 맞지 않았지만 그 중의 몇 장은 영락없는 ‘셀카’였다.

인도네시아 마카크 원숭이가 찍은 '셀카'
인도네시아 마카크 원숭이가 찍은 ‘셀카’

씩 웃고 있는 듯한 모습의 셀카를 비롯해 원숭이가 찍은 사진은 전세계 신문사, 웹사이트로 퍼졌고 슬레이터는 유명세를 탔다. 그런데 정작 위키피디어를 운영하는 위키미디어 코먼스(Wikimedia Commons)가 저작권이 없이 누구나 무료로 쓸 수 있는 자사 웹사이트의 2천238만여 장의 사진 DB에 이 원숭이 셀카를 포함시키면서 다툼이 시작됐다.

슬레이터의 주장은 인도네시아로 촬영가는데 소요된 경비만 2000파운드가 들었고, 5000파운드가 넘는 자신의 카메라를 이용해서 원숭이가 찍은 것이므로 이 사진의 소유권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사진 1만 장을 찍으면 그 중에서 ‘얘기되는 것’ 1장이 자신의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데, 바로 이 원숭이 셀카가 그런 사진이라는 것이므로, 아무나 무단으로 쓸 수 없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위키미디어는 삭제를 거부했다. “사진에 대한 저작권을 주장하려면 최종 이미지에 수정 등의 상당한 기여를 해야 하고, 그런 경우에도 소유권은 그 ‘수정 사항’에 대해서만 소유권을 가질 수 있으며, 미국 법에 따르면 비(非)인간은 비록 그 개체가 찍었다 할지라도 그 사진에 대해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으므로 당연히 공개적인 영역(public domain)에 게재될 수 있다”는 이론을 폈다.

슬레이터는 현재 1만 파운드를 들여 법정 소송을 제기하려고 한다. 그는 “비록 원숭이가 셔터를 누른 것은 맞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환경은 내가 만들었다”고 말했다. 

현재 데일리 텔레그래프를 비롯해 여러 웹사이트에선 누구에게 이 사진의 소유권이 있는지 인터넷 투표를 실시하고 있다. 여러분의 선택은?

8월13일 현재 인터넷 투표 결과
8월13일 현재 인터넷 투표 결과

 

 

‘신문’이 부담스러워진 영미권 언론사들

‘신문 산업의 미래’ 같은 주제에 대한 논의의 결론은 대략 뻔하다. 세계편집인포럼(WEF)이나 세계신문협회(WAN)의 발표자들이나 개별 신문사들의 실적 보고때 CEO들이 흔히 하는 얘기들은 “인터넷 격변의 시기에 지금은 어렵지만, 뉴스 산업에 희망은 있다” “콘텐츠의 질과 생산 방식이 앞으로는 달라져야 겠지만, 고품격 뉴스에 대한 수요는 계속 있다”류이다.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렇게 변한 high quality 뉴스에 대한 수요가 과거 대중매체로서의 신문이 누렸던 수요를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클 것인지, 또 신문-인쇄 매체에 어떤 희망이 있는지 구체적인 ‘모범’ 방안은 없다. 그래서 선도적인 매체들이 여러 루트를 개척하고 있지만, 아직 숫자로 증명된 성공 사례는 매우 드물거나 예외적이다.

디지털 카메라를 발명하고도 불티나게 팔리는 필름 산업을 버리지 못했던 코닥, PC를 ‘장난감’처럼 여겼던 메인 프레임 컴퓨터 회사들의 운명, 또 스마트폰-모바일 기기의 출현을 가볍게 봤던 PC 제조사들의 말로(末路)를 우리는 잘 안다. 그래도 신문 산업 종사자들은 “뉴스는 다르다” “고품격 뉴스에 대한 수요는 충분하다”고 믿는다. 아니면 믿고 싶어한다.

그래서 작년에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가 개인 돈으로 2억5000만 달러를 들여 워싱턴 포스트를 샀을 때에, 전세계 신문업계는 그가 신문-인쇄 매체에 새로운 혁명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했고, 자신들이 놓쳤던 뭔가를 그는 봤을 거라고 짐작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 아직(!) 워싱턴 포스트는 외견상, 숫자상 달라진 것이 없다. 디지털 콘텐츠 생산에 전보다 더 많이 투자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서 길을 제시한 것은 없다.

그리고 최근 미국 신문업계의 현실은 더더욱 정반대로 돌아갔다. 신문-인쇄매체를 보유한 대형 언론기업들이 앞다퉈 ‘골치아픈’ 신문 파트를 분사(分社)했다.

♦ 트리뷴 컴패니

시카고에 본부를 둔 트리뷴 컴패니는 4일 로스엔젤레스 타임스와 시카고 트리뷴, 올랜도 센티널 등 모두 10개의 지역 신문을 관장하는 신문 파트를 ‘트리뷴 퍼블리싱’이란 이름의 별도 법인으로 분사했다. 트리뷴 컴패니는 이름도 ‘트리뷴 미디어 컴패니’로 개명하고  42개 방송국과 디지털 사업을 운영하는 회사로 변모했다. 한때 미국을 대표했던 지역 신문사들이 매출-이익 신장의 걸림돌이 되자, 버린 것이다. 새 기업 ‘퍼블리싱’엔 3억500만 달러의 빚까지 ‘위자료’로 떠넘겼다.

♦ 가넷(Gannett) 그룹

5일엔 USA 투데이를 보유한 가넷 그룹도 방송과 디지털 사업을 관장하는 파트와, 신문 발행을 관장하는 파트를 분리해 2개의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5일 발표한 USA 투데이 모기업 가넷 그룹의 분리 계획
지난 5일 발표한 USA 투데이 모기업 가넷 그룹의 분리 계획

미 언론사들이 이렇게 경쟁적으로 신문 파트를 떨어내는 배경엔 이들 공개 기업에서 전체 이익에서 방해물이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미 투자가들의 심리도 크게 작용했다. ‘신문 영업 분리’ 발표가 있으면 바로 주가가 뛰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 워싱턴포스트 역시 애초 소유주였던 그레이엄(Graham) 가문이 신문인 워싱턴포스트만 쏙 빼서 아마존의 베이조스에게 팔았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모든 지역 방송, 잡지, 인터넷 웹사이트들을 모두 매각하고 뉴욕타임스 신문 하나에 올인한 케이스다.

♦루퍼드 머독이 ‘신문’만 떼어 낸 뉴스코프(News Corp)

뉴스코프의 CEO 로버트 톰슨은  최소한 겉으론 신문-인쇄 매체의 미래에 대해 ‘낙관론자’다. 방송-엔터테인먼트-신문으로 구성됐던 뉴스코프에서 작년에 분사해 신문 그룹을 관장하게 된 그의 임무상 이해할 만 하다. 7일 분사 이래 1년간의 영업 실적을 보고하는 컨퍼런스 콜에서 톰슨은 자사 소유 신문 영업에 매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인쇄매체, 특히 인쇄매체 광고(신문 광고)를 회사의 중점사업이자 미래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거느린 신문은 영국의 더 타임스, 더 선,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 뉴욕 포스트 등이 영-미-호주의 언론사들이다.

그는  “우리는 여전히 인쇄의 파워를 강력하게 믿는다“며 “인쇄 광고의 효과가 광고주들에 의해 심각하게 저평가됐다”고 주장했다.

 그가 맞기를 바란다. 그러나 숫자는 반대로 말한다. 뉴스코프의 실적이 전년 88억9000만 달러에서 매출이 85억7000만 달러로 떨어졌다. 신문 광고 수입 감소와 환율 변화, 다우존스 콘텐츠 판매 수익의 감소 등의 이유로  순이익은 47% 감소했다(5억5000만 달러→2억9000만 달러). 

‘지루함’ 결핍

결코 젊지도 아니면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스마트폰부터 켜는 것이 습관이 됐다. 촌음을 아껴서 매순간 ‘생산적’으로 살려고 애쓰는 것도 아니면서, 구내 식당에 선 줄이 조금이라도 길다 싶으면, 광화문역 플랫폼에서 지하철을 기다릴 때면, 심지어 종로 3가역에서 긴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릴 때면 눈동자는 5인치 스마트폰 화면에 고정된다. 물론 내 주위의 사람들도 대부분 그러하다. 하지만 걸으면서도 고개를 아래로 숙이고 스마트폰 속 동영상에 빠져 있는 젊은 영혼들을 보면 아직은 딱한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면 ‘지루함’이라는 것이 생활에서 사라진 지도 꽤 됐다. 밤늦게 TV를 켜면 심지어 홈쇼핑 채널, IPTV 채널을 뒤져서라도 지루함을 넉넉하게 쫓아낼 수 있다. 그리고도 그 TV 동영상이 약간이라도 재미없어질 것 같으면, 동시에 스마트폰을 꺼내 이것저것을 훑어보면서 흥미를 북돋을 수도 있다. 동시에 ‘아스팔트 8’ 자동차 레이스를 할 수도 있다. 모바일이 가져다 준 ‘혁명’이다. 자면서도 누군가의 강의든 설교를 유튜브에서 듣다가 어느새 ‘지루하지 않게’ 잠에 빠질 수 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냥 생각에 잠겨 한 동안을 보내는 것이 낯설게 느껴진 것이다.

지루함을 잘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과연 긍정적인 면만 있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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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사회의 새로운 증후군, 지루함 결핍증?

BBC의 한 기사를 보자. 영국의 코미디언이자 극작가-가수-배우인 미라 사이얼(Syal)은 주변이 조용했던 한 광산 마을에서 자랐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별로 할 일이 없었던 탓에, 마을의 할머니들과도 애기했고 빵 굽는 것을 배웠고, 멍하니 창밖을 보며 날씨와 계절이 바뀌는 것을 보곤 했다. 그리곤 매일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에게 ‘지루함’이란 외로움이자 고독함이었지만,  그 탓에 그는 어려서부터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한 것, 시, 단편소설들로 일기장을 채웠고, 작가가 될 수 있는 소양을 이 어린 시절에 쌓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강요된 외로움은 인생의 ‘빈 페이지’와 함께 멋진 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도예작가이자 여성 의상을 입는 예술가로도 유명한 그레이슨 퍼리
도예작가이자 여성 의상을 입는 예술가로도 유명한 그레이슨 퍼리

같이 출연한 도자기 예술가 그레이슨 퍼리(Perry)에게도 지루함이란 “창조적인 상태”였다. “나이가 들면서,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과 할 일이 없는 상태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다는 것이다.

옥스퍼드대 링컨칼리지의 연구원이자 방송인인 신경과학자 수전 그린필드가 소개한 자신의 어린 시절 얘기도 마찬가지다. 부유하지 못한 가정에서 13세까지 형제 자매 없이 자라다보니까, 혼자 얘기를 꾸며서 쓰고 그걸 그림을 그리고 또 도서관에 가서 책 읽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들의 얘기는 이렇다. ‘지루함’이란 것은 “불편한 감정’이며 그래서 사회는 우리 자신이 끊임없이 뭔가를 생각하고 뭔가에 자극받는 상태를 갖도록 부추겨 왔지만, 사실 창조적이 되려면 “내적 자극을 발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진공이니 공백 상태를 싫어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지만, 그 공백을 스마트폰이나 TV와 같은 외적 자극으로 충족할 것이 아니라, 상상력과 같은 자신의 내적 자원으로 채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더더욱 어려서부터 조금만 지루해지면 tV를 켜거나 비디오 게임을 하지만, 결국 이런 아이들은 글 쓰기 능력에서 매우 제한적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아이들은 종종 시간을 그냥 보내면서, 생각의 나래를 펴고 그 상상력 속에서 살면서 주변을 관찰하고 연극을 보면서 배우들의 경험을 모방하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  BBC의 이 프로그램은 이런 과정들이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이와는 대조적으로 스크린은 이런 ‘지루한’ 시간과 창조적 능력의 발전 사이의 경로를 바로 연결(short circuit) 해 결과적으로 내적 자극 발달 능력을 배제한다고 말한다.

창조적 마인드를 위해서라도, 종종 오프라인 상태에서 지루함을 즐겨보는 방법을 이제부터라도 익혀보라는 얘기다.

‘페이스북’보다 더 중요한 ‘다크 소셜(dark social)’를 아십니까

‘다크 소셜(dark social)’이란 말이 있다. www.theatlantic.com의 테크노 관련 콘텐츠 저술 책임자인 알렉시스 마드리걸(Alexis C. Madrigal)이 이 웹사이트에 2012년 10월에 처음 사용한 조어(造語)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대표적인 소셜 웹사이트의 ‘어두운 면’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물론 이전에는 쇼셜 미디어에서 이뤄지는 마약 거래, 범죄 모의 등과 같은 ‘검은 면’을 지칭하던 때도 있었다. 

마드리걸이 정의한 ‘다크 소셜’이란 이런 것이다. 즉, 일반적인 웹검색에선 그 규모를 파악할 수도, 유입 경로를 독립적으로 알 수도 없는 인터넷의 ‘소셜’ 기능으로, 예를 들어 카카오톡과 같은 채팅앱의 인스턴트 메시지(IM)나 이메일, 휴대폰의 문자 메시지(text message) 기능을 통해서 콘텐츠를 ‘공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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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소셜’이라고 하면, 페이스북과 트위터, 인스타그램을 떠올리며 콘텐츠를 더 많이 공유하려면 이들 소셜 웹사이트들을 더욱 잘 활용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마드리걸은 웹의 역사를 보면, 사실 이들 대표적인 소셜 웹사이트 이전부터 우리는 소그룹 유저넷이나 이아기 채팅 사이트 등 여러 소셜 기능을 활용해서 콘텐츠를 공유해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A라는 사람이 B에게 전화 문자 메시지로 보낸 링크를 B가 클릭해도 이 클릭의 유입이 정확히 어떤 경로를 통한 것인지 그 웹사이트는 추적할 수가 없다. 반면에 2004년 이후에 나타난 페이스북, 구글+, 트위터 등 전세계적인 소셜 웹사이트들은 웹의 정보들을 구조화해서 추적이 가능해, 웹사이트로선 이들 소셜 사이트를 통한 유입을 확인할 수가 있다. 즉 조선닷컴을 직접 클릭하지 않고 페이스북 상에 공유된 링크를 클릭해서 들어왔을 경우에 그 접속이 어디서부터 이뤄졌는지 referral data가 있지만, 친구끼리 이메일, 채팅 앱을 통해 공유한 링크를 클릭해서 들어온 유입은 그런 referral이 없다. 다만 대개 무지하게 긴 URL 주소(예를 들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7/16/2014071601158.html?news_top)를 referral 없이 이용자가 직접 주소창에 입력해서 접속했을 리는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 유입이 위에서 언급한 ‘다크 소셜’을 통해 들어왔으리라고 추정할 수 있다.

이 ‘다크 소셜’이,  검색에 이어 소셜 웹사이트를 통한 유입이 대부분의 웹사이트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한 유입 데이터 분석에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많은 웹사이트들이 주목하는 페이스북, 트위터를 통한 유입 통계와는 달리, 1대1 채팅에서 이뤄지는 링크 추천에 대한 통계는 거의 암흑 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호주의 비즈니스 매체인 BRW는 지난 5월27일 웹사이트 로그 분석 회사인 차트비트(chartbeat)와 레이디엄원(RadiumOne)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전세계 26만 여 개의 거대한 웹사이트 둘중에서 ‘다크 소셜’을 통한 콘텐츠 공유는 60%에서 심지어 80%에 이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즉, 우리는 주로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통한 웹사이트 유입 경로에 주력하며 이들 소셜 웹사이트의 활용도에 주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최소 절반 이상이 이메일이나 라인-카카오톡-위챗-왓츠앱 등과 같은 메시지앱, 심지어 손으로 써 준 URL 주소 전달과 같은 방식으로 웹사이트에 들어오고 있다는 얘기다.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다크 소셜’은 무시하고, 눈에 보이는 20!~30% 소셜 웹사이트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미국의 인터넷 매체인 버즈피드는 메시지 채팅 앱에서 자사 콘텐츠의 공유를 늘이는 ‘모바일 다크 소셜’ 전문가를 찾고 있다. 이미 1년새 4배나 된 채팅 앱에서의 공유 현상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뜻이다.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를 모두 손글씨로 써 봤더니…

전세계에서 이메일과 전화 문자메시지, 채팅 앱, SNS의 글 게재 및 댓글 등을 통해서 쏟아지는 단어 수는 하루에 3조6000억개라고 한다. 대략 3억6000만권의 책에 해당하는 단어를 하루에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쏟아내는 것이다.(물론 이 중 대부분은 책으로서의 가치는 없는 신변잡기 문자이겠지만…)

이런 문자의 쓰나미 속에서, 미국 시카고와 시애틀에서 개인들이 한 실험이 최근 소개됐다.

시카고에서 활동하는 손글씨 서체(calligraphy) 디자이너인 크리스타나 밴코(Christina Vanko)는 1주일 동안 모든 문자 메시지를 손글씨로 써서 촬영한 파일을 보내보았다.  그리고 이 1주일간의 실험에서 자신이 얻은 결론을 어틀랜틱.com에 지난 6월 26일 게재했다.

미국에서 18~24세의 젊은이가 한달에 주고 받는 메시지는 약 4000건.  여기엔 1주일에 평균 500건 넘게 보내는 문자 메시지도 포함돼 있다. 밴코는 이 1주일 동안 스마트폰의 키보드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온갖 종류의 종이에 직접 답을 손으로 썼고 이를 찍어서 답신을 했다. 왜 자신이 이런 짓을 하는지는 묻지 않으면 먼저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밴코가 1주일간 실험한 손글씨 문자메시지 예
밴코가 1주일간 실험한 손글씨 문자메시지 예

 그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1. 손글씨를 받는 이들은 스스로를 특별하게 느끼게 된다.

2. 손글씨를 씀으로써, 글자에 강조점을 둘 수 있어 자기 표현에 보다 정확해질 수 있다. 

3. 이모티콘, 이모지(emojis)조차 쓰지 않았더니, 평소 얼마나 이러한 특수 형태의 기호에 의존하고 있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4. 일일이 글씨를 쓰다보니 시간이 더 들어서 그 만큼 메시지에 보다 정확하게 생각을 담게 됐다.

5. 문법과 철자에 보다 신경을 쓰게 됐다…

며칠 뒤, 그의 실험을 시애틀타임스의 기자 모니카 거즈먼(Guzman)이 따라했다. 그는 단지 문자 메시지뿐 아니라, 이메일까지 포함해서 이틀간 손글씨에만 의존했다. 사적인 글이든 업무상의 글이든, 길든지 짧든지 모든 형태의 글(이메일, 트윗, 문자 메시지 등등)을 손으로만 썼고 130건의 문서를 작성했다. 왜 이런 실험을 한 것일까. 그는 “디지털상으로 모호하게 정리한 생각들을 너무 쉽게 써서 보내는 과정을 좀 천천히 해서, 그 과정(digital mutterings)을 살펴보고 싶었다”고 시애틀 타임스 블로그에 썼다.

그리고 이렇게 육필 메모를 보내면서 별도의 URL을 링크해서 왜 자신이 이런 육필 메모 실험을 하는지 밝혔고, 뜻을 공유하게 된 된 상대방의 생각까지 함께 정리해서 발표했다.

응답자(70명)의 75%는 10년전에 비해, 더 많이 글을 쓴다고 답했고, 이 들 중 거의 3분의1은 글쓰기가 3배 이상 뛰었다고 했다. 10년전만 해도, 자기 머릿속에나 간직했을 법한 생각들을 이제 친구들에게 보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쓰는 양이 늘었다고, 글의 퀄리티가 좋아진 것은 전혀 아니었다. 또 더 행복하지도 않다. 그저 남들도 쓰니까, 나도 쓸 따름이라는 대답도 많았다.

더 심각한 대답은 “글쓰기가 이렇게 매우 쉬워졌지만, 좀 더 창의적이고 생각을 쏟아 의미있는 글을 쓰기란 더 어렵다”는 것이었다.

왜일까. 쏟아지는 이메일에 답해야 하고, 그때그때 ‘죽고 살일도 아닌’ 시덥잖은 문자 메시지 답글과 채팅으로 머리를 쉽게 굴리다보니 생각하고 집중해서 깊이 있는 글을 쓸 ‘시간’이 없다는 불평이었다.

스마트폰으로 먼저 전화를 걸기보다, 통화 가능한지 여부를 먼저 문자로 묻는 것이 ‘예의’처럼 된 세상이다. 자신의 ‘문자 의존도’를 어디까지로 할지 명확한 선을 긋는 것은 디지털 세상에서 각자가 책임있게 결정해야 할 이슈가 됐다.

전방 십자인대를 깨알같은 글로 묘사한 콘텐츠….

이런 기사를 보면 답답하다. 내가 너무 무지해서, 또 그 무지를 전혀 해소시켜주지 못하는 콘텐츠에….그렇게 전방 십자인대가 중요하다고 하면서, 정작 그 전방 십자인대라는 것이 무릎 관절 속에 어떤 모양으로 존재하는지 그림이 전혀 없다. 그저 깨알같은 글씨로 자세히 설명해 놓았을 뿐이다.

2014-07-08 22;34;29

 

이제 머릿속으로 상상을 펴야 한다. 그러나 그냥 그 흔한 그림 한장 인터넷에서 좀 찾아서 붙여 놓았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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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잘 읽어보면, 또 상상력을 정확히 발휘하면 전방 십자인대, 후방 십자인대의 모양을 그려볼 수는 있다. 그러나 이건 그냥 그림이 있으면 정말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