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에서의 7일 …

그리 길지도 않은 여행기간에 항공편 환승공항인 청두(成都)에서 하루를 묶인 것이 몹시 아쉬웠지만 다행히 다음날은 티벳의 관문인 라싸로 출발할 수가 있었다. 쳉두에서 티벳의 라싸까지는 불과 2시간으로 광활한 중국대륙에서는 가까운 거리이지만 서울을 기준으로 하면 도쿄까지의 먼 거리다.

이날 탑승한 정원 400석의 대형 항공기 Airbus 340 은 며칠 결항한 탓인지 빈 자리 없이 만석이었다. 아직은 본격적인 시즌이 아니라 승객이 많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고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여행객도 많지 않았지만 우리와 비슷한 생김새의 중국인과 티베탄들로 가득 찼다. 그 만큼 티벳을 중국정부와 중국본토에서 이주한 한족이 장악하고 있어서 티벳의 순수성이 많이 변하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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쳉두공항을 이룩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창 밖으로는 정상에 아직 눈이 쌓인 산들이 구름 사이로 보이고 그 산들을 비집고 뚫려진 천장공로(川藏公路, 쳉두와 티벳을 잇는 도로)가 시야에 들어온다. 저 길로 티벳을 들어가면 첩첩산중, 심산유곡을 지나 무려 꼬박 4일에 걸쳐 수려한 풍광이 여행객을 유혹하기도 하지만 나 같이 시간에 쫓기며 여행하는 사람들 몫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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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정도 지나니 이젠 온 천지가 눈으로 덮힌 산들이 손을 내밀면 잡힐 듯이 가까이 보인다. 보통 비행기의 운항고도가 10km 정도이니 해발 7000미터가 넘는 산들과의 거리는 불과 3km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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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는 것을 감지하는 순간부터는 황량한 티벳의 땅이 보이기 시작한다. 간간이 나무들도 보이기는 하지만 드문드문 보이는 인가도 잿빛 일색이다. 창 밖에 강물이 말라붙은 브라마푸트라강이 시야에 보이자 비행기가 랜딩기어를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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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시텔레 !

드디어 티벳에 도착하였지만 머릿속에서 그렸던 모습은 아니다. 점보기까지 이착륙이 가능한 넓직한 활주로와 투명한 유리로 장식된 보딩브릿지를 갖춘 현대식 라싸공항청사가 변화하는 티벳의 모습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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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내리니 반갑게도 눈에 익은 대우마크를 단 국산 중고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이곳에서 라싸까지는 버스로 약 1시간 30분 거리인데, 오색룽다가 휘날리는 민가 뒤로 펼쳐지는 티벳의 풍광이 여행객들을 유혹하고 있지만 고산병 증세인지 가슴이 답답해 오는 것을 느끼게 되어 눈을 감고 심호흡을 쉬어본다. 라싸만 해도 무려 해발 3600m 이니 남한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의 두 배 정도나 높은 곳 이다.

티벳에서의 첫 날은 무조건 휴식을 취해야한다는 것이 티벳여행의 철칙이었지만 일정을 하루 날린 것이 못내 아쉬워 약간 감기기운을 느끼면서도 시내를 한바퀴 둘러보았다. 초저녁까지는 그런대로 견뎠는데 밤이 깊어지면서 가슴이 더욱 답답해지고 두통이 심해져만 간다. 전날 쳉두에서 오랑캐와 차가운 밤공기를 마시고 밤늦게 돌아다닌 것이 티벳에서 컨디션조절의 화근이 된 것이다.

다행히 야크호텔에 장기 투숙하고 있는 한국인 선교사부부가 전기장판을 빌려주고 휴대용 산소통을 구입하여 머리맡에 비상용으로 두고 잠자리에 누웠지만 심한 두통으로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내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샤워를 하는 것도 힘들게 느껴지고 2층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부담이 될 정도로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하늘 아래 첫 동네라고 하여서 맑은 하늘을 기대하였지만 마침 비까지 뿌린 우중충한 날씨 때문에 발이 묶여 방안에서 카메라만 만지작거리며 쉬게 된 것은 어쩌면 나로서는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전날 날씨 탓도 있었지만 심한 두통으로 하루동안 아무 것도 안하고 지냈더니 그 다음날부터는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날씨는 여전히 흐려서 안타깝지만 오늘도 호텔 방안에만 있을 수 없어 카메라를 메고 시내산책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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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어디를 가더라도 남루하고 두터운 코트를 걸치고 길을 오가는 티베탄들의 손에는 마니차(법륜)가 들려져 있으며 입가의 움직임을 보니 불경을 읊는 듯 싶다. 티베탄들이 살아 있는 성불로 모시는 달라이라마의 거처인 포탈라궁은 과연 그 명성에 걸맞게 수직으로 세워진 거대한 궁전이다. 라싸시내의 한 복판에 있는 조그만 산을 감싸듯이 지은, 대형 유람선의 옆모습과도 비슷하게 보이는 것이 창문의 수를 보아 크고 작은 방이 수 천개는 됨직 하였다. 포탈라궁의 상층부 중앙의 홍궁과 그리고 양옆의 백궁은 이곳이 티벳의 정치와 종교의 중심이 대대로 환생하는 달라이라마의 영역임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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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에 마니차(법륜)을 들고 사원으로 가는 티베탄들,  Tibet, Lhasa, 2004년 촬영 > 

 

기독교와 힌두교, 불교에서는 사후 세계에 대해 부활, 환생, 윤회 등으로 설명하지만 티벳불교에서는 이를 현실로 실현하고 있다. 티벳불교에서는 일반인들은 업에 의해 윤회하지만 달라이라마는 살아있는 성불로서 종교와 통치의 절대자로서 계속 환생한다고 믿는 것이다.

현재 중국정부의 식민지배에 맞서 1959년 스물다섯의 나이에 인도로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14대 달라이라마도 13대 달라이라마가 1933년 열반하자, 1937년 그의 나이 세 살 때에 라마승려들이 찾아낸 환생한 달라이라마인 것이다. 티벳에서는 달라이라마 외에 환생하는 종교수장으로 판첸라마와 카르마파가 있다. 시가체의 타쉴훈포사원의 종교수장인 여섯 살 된 11대 판첸라마는 1995년에 중국정부에 의해 강제로 중국으로 납치되어 갔고 그 자리에 중국정부가 선택한 판첸라마를 타실훈포사원에 앉쳤지만 어느 누구도 이를 인정하지는 않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성불인 카르마파는 17대까지 환생하였으며 역시 16대 카르마파가 입적한 후 17대 카르마파로 추대되는 과정에서 그는 중국의 입김을 받아 잡음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는 후에 중국정부의 기대에 어긋나게 1999년 15살의 나이에 히말라야를 넘어서 달라이라마가 이끄는 티벳망명정부가 있는 인도의 다름샬라로 가서 달라이라마와 함께 망명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평지를 걷기도 숨이 찬 라싸에서 포탈라궁전을 둘러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삼보일배를 하듯 세 걸음 내 딛고 숨 한번 몰아쉬기를 반복하며 포탈라궁전 위로 오르니 라싸 시내전경과 그 주위를 둘러 싼 눈 덮힌 고산영봉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고산병 증세 중에 건망증이 있다던가 ! 아뿔싸 …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 가방을 뒤지니 전 날 피곤해서 미처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다시 내려가 숙소로 돌아가 새 배터리를 가져온다는 것은 몸 컨디션을 생각하니 생명보험사에서 싫어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아쉬움을 접고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모처럼 홀가분한 구경을 하게 되었다.

어차피 포탈라궁전 안에서는 촬영이 안된 다는 것에 조금은 마음의 위안은 되었지만 …

포탈라궁 위에서 내려다 본 라싸의 전경은 티베탄들의 공간과 중국본토에서 이주해 온 한족들의 공간이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어 보인다. 아무리 중국이 티벳을 내륙화 한다해도 뿌리깊은 티벳의 정취를 없앨 수는 없는 것이다. 마니차를 휘두르며 포탈라 궁전 주위를 맴도는 사람과, 오체투지를 하며 그들의 염원을 비는 티베탄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신앙심이 티베탄들의 생활 속에 녹아 있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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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탈라궁 앞의 연못은 베이징 천안문의 인민광장으로 바뀌어 오성적기가 나부끼고 그 앞으로 중국정부가 세운 시짱(티벳의 중국어표기)해방기념탑이 흉물스럽게 버티고 있건만 티베탄들의 시야에는 오로지 구시가의 가옥 지붕에서 나부끼고 있는 오색룽다 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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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종교가 일치된 티벳이라해도 아무래도 포탈라궁은 달라이라마의 궁전으로 통치의 상징이라 할 수 있으며 진정한 티베탄들의 신앙의 중심은 조캉사원이다. 대낮임에도 안개가 낀 듯, 어디선가 화재라도 난 듯 짙은 향내가 스며든 뿌연 연기를 따라 마니차를 돌리며 코라(순례행열의 하나로 사원주위를 도는 것)를 가는 티베탄대열에 합류하니 조캉사원과 마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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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의 상징인 포탈라궁은 이미 사진과 브라운관을 통하여 여러번 보아온 터이지만 그리 화려하거나 웅장하지도 않은 조캉사원 앞에서 벌어진 광경을 보니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지며 이곳이 진정 티베탄들의 진정한 영적인 고향임을 느끼게 한다. 광장바닥은 깔끔하게 보도블럭으로 포장되었지만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티베탄들의 중국정부에 대한 시위가 자주 열려서 시위인파를 단속하기 쉽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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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캉사원은 티벳불교의 역사와 함께 하는 가장 오래된 사원으로 그들한테는 가장 신성한 성지가 되는 곳으로 정문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체투지를 하며 그들의 염원을 빌고 있고 그 주위로 마니차를 돌리며 코라를 도는 순례객들로 항상 붐비는 곳이다.

빨간 법의를 두른 승려들로부터 나이 어린 자식들을 몸에 끈으로 묶은 채 오체투지를 하며 코라를 도는 티베탄들 등 모든 계층의 티베탄들로부터 그들의 영적인 세계를 지켜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니 세상이 변하니 먹고 살기 위해 오체투지를 하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머리가 혼탁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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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번한 교통수단도 없는 넓은 티벳고원에서 멀리서 오체투지를 하고 이곳까지 도달한다는 것은 우리들의 판단 기준으로는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라 그들의 심오한 신앙심 역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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