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정말식인종일까?
뉴기니섬의 원시부족 다니족을 찾아서 여행할 때의 일이다. 이들은 불과 몇 십년 전만 하더라도 식인종이었다. 다니족은 옷차림 이라고 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벗고 사는 부족이다. 남자들은 성기에 꽂은 대롱하나가, 여자들은 짚으로 만든 치마를 엉덩이에 걸친 것이 전부다. ‘왜 벌거벗고 사느냐’는 질문부터가 ‘왜 우리는 넥타이와 스카프를 매고 사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준비가 안 되었으면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그저 그들 사회가 오랫 동안 인정한 풍습일 뿐인 것이다.
도저히 식인종의 후손들 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그들과 며칠을 지내면서 그들의 움막에서 하루를 지낸 적도 있다. 이이야기를 하면 다들 무섭지 않았느냐고 묻지만 나는 그저 우스갯 소리로 ‘그들은 웰던만 먹고 미디엄은 안 먹어’ 하면서 농담으로 넘긴다. 지금의 다니족은 책에 쓰여진대로 식인종 이었다는 사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졌기에 그러한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 태국의 북부 산악지방, 태국과 미얀마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파동마을에는 카렌족이 살고 있다. 카렌족여인은 목에 무거운 황동고리를 착용하고 평생을 지낸다. 내가 파동마을을 여행하기 전, 카렌족은 목이 길어야 미인이고 카렌족여인의 황동목걸이는 나이를 먹을 때마다 하나씩 늘어 간다는 얘기를 TV프로를 통하여 들었다. 방송을 통하여 새로운 문화를 간접체험한 것이다.
하지만 파동마을을 직접 찾아가 카렌족여인을 만났을 때 내가 알고 있던 것이 대부분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황동목걸이는 여러 개를 포갠 것이 아니고 하나의 스프링형태로 된 것 이었다. 목이 길어야 미인이라는 것도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실제로 목이 긴 것도 아니라는 과학적 근거도 접하게 되었다.
다만 정확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지만 오래 전부터 누군가에 의해 주도 되어 이들 사회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 뿐 이다. 카렌족 여인의 목은 어렸을 때 부터 황동목걸이를 착용함으로써 목뼈 주변 근육의 발달이 억제되고 황동목걸이의 무게 때문에 어깨뼈가 밑으로 쳐지게 된다고한다. 황동목걸이의 상단이 턱을 위로 치켜 올려 이들의 목걸이가 길어 보이는 것 뿐이지 실제로 목뼈가 늘어난 것은 아니다. 신체의 일부분이나마 억눌려 지낸다는 것 때문에 의사들은 그들의 건강을 염려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카렌족여인들은 그들의 긴 목을 뽐내며 지내고 있다.
목이 길어서 기쁜(?) 여인들……
여행의 매력은 새로운 세계에서 느끼는 새로운 체험 이다. 물론 첨단과학문명 덕택에 집 안에 가만히 앉아서도 간접체험을 할 수 있지만 매체의 주관이 일방적으로 강요 되는 경우가 많다. 옛말에 ‘백문이 불여일견’ 이라고 했는데, 현지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체험하는데서 여행의 진미를 만끽할 수 있다.
나는 여행에 나서면 나름대로 몇 가지 원칙을 따른다. 우선 특급이나 일급관광호텔이 아닌 현지의 중산층이나 서민들이 이용하는 숙소에서 묵는다. 어느나라든지 국제수준의 호텔에서 일하는 종업원은 그 나라의 특색이 무시된 규격화된 호텔맨이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현지인들의 생활속으로 빠져들려고 애쓴다. 물론 먹는것도 마찬가지다. 비록 뒤돌아서 뱉을지언정 그들과 같은방식을 고집한다. 철저하게 체험문화를 즐기는것이다.
지구촌에는 언어가 다른 만큼 종교와 문화, 풍습을 달리하는 수 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중에는 우리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와 풍습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을수 있다. 흔히 우리는 문화를 이해한다는 얘기를 많이하는데, 여기서의 ‘이해’가 자신의 잣대로 만들여다보는 이해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지금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크고 작은 분쟁도 일방적 문화의 이해에 바탕을 둔 ‘새로운 문화의 강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서로 이질적인 문화를 접하면서 우리의 가치 기준은 잠시 접어두고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바라보자. 진정으로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한다는것은 마음과 머리를 열고 자신의 아집과 편견을 떨쳐버릴 때 가능하지 않을까?
<이글은월간DOVE2003년3월호에기고하였던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