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어른의 55년만의 만주여행 (1)

저의양가집안어른은공통점이많습니다.우연이라고하기에는어려울정도로같은점이많은것입니다.

우선장인어른과아버님은지금은은퇴하셨지만소아과,내과의사이셨고,장모님과어머님은사범학교를

졸업하시고결혼전에는교편을잡으셨다고합니다.더나아가장모님과저의둘째고모님은평양의서문

여고동기동창생,장인어른과둘째고모부님은평양고보동문이셨으며,저의큰아버님과장인어른께서는

실향민들의친목모임인을지구락부의핵심회원이셨습니다.

그뿐아니었습니다.저희들의결혼식날하객으로참석하신분들이청첩장을받고설마하셨다가막상결혼

식장에서양가어른을보시고급히축의금봉투를하나더만들어야하는뜻하지않게이중과세의민폐를

끼쳐드린분들도생겼습니다.

이런인연때문인지저의양가어른들은사돈간에격의없이이웃처럼잦은교류를하고지내실수있게

되었습니다.

<사진-장인어른은6.25때인천으로피난오셔서한장소에서50년간진료를해오셨습니다.>

그런데저의양가네분의어른들중에서장인어른은다른세분과다른점이딱하나있습니다.주로독

서와음악감상등혼자하는취미를가지신아버님과는달리장인어른께서는일찌기사회활동을많이하셔

서인지일반적인여행보다는사교적인모임을좋아하시는것입니다.

저역시골프나라이온즈모임등여럿이어울리는것보다는아버님을닮아서인지음악감상이나사진촬영

독서등혼자하는것을즐기는편이었습니다.그래서골프를함께치자는장인어른의권유에도불구하고

골프가방대신에여행배낭을짊어졌고,결혼과동시에라이온즈총재의권한(?)으로저를한라이온즈클럽

에강제로가입을시키셨지만일년도못가탈퇴를하여실망을끼쳐드리는등저와장인어른은코드가맞

지않아가족모임외에는함께어울리는기회가많지는않았습니다.

그래서제가집사람과음악회를갈때장모님을모시고가거나,성지순례를모시고가는등나름대로장모

님께는효도를할기회가좀있었지만,장인어른과함께나선여행이라고는장인어른께서지구라이온즈총

재로서일본아타미(熱海)라이온즈모임에초대받아서가실때에함께동행한것뿐이었으니그때도장인

어른이저희부부를자식사랑의차원에서데려가신것이지부모효도차원에서제가모시고나선것은아니

었습니다.그리고그때3일동안의아타미여행에대한기억은매일점심에는이집저집에초대받아비록

저의입맛에는맞지았지만정통고급일식을접할수있었다는것과매일밤이어지는연회밖에는아무것

없을정도였습니다.

<사진-일본아타미에있는일본식호텔의아침식사,장인어른과집사람>

-상차림이건드리기가민망할정도로정성껏차린최고급일식아침식단-

저의아버님은일찌기고향인평양을떠나서울로유학을오셔서세브란스의전을졸업하신후서울에생활

기반을갖고계셨지만,장인어른께서는공립인평양고등학교와평양의학전문학교(평의전)를졸업하신후

강제로징집되어만주의신경(지금의長春)에있는만주철도병원으로발령을받아그곳에서사회인으로서

첫발을내딛으셨다고합니다.그때만주에는일본군을제외하면민간인은대부분조선족과중국인이어서

전쟁위주로운영되는병원방침때문에의약품공급이부족해열악한환경에서치료를받지못하는중국인

과조선족이많았다며그때의사로서의안타까웠던시절을자주회상하시는것을보니장인어른은만주

에향수를느끼고계신것같았습니다.그러나우리나라가중국과수교하고중국에많은기업들이진출하

고교류를하게되었을때는이미장인어른의연세가여든을넘어셨기에쉽게발걸음을대딛을수는없으

셨습니다.

결국또제가나설수밖에없었습니다.집안에는처남들도있었지만모두여행을별로좋아하지는않기

도하거니와당시만해도만주때의수도였던장춘(당시이름은新京)이유명한관광지도아니었기에여행

사의단체관광도없어서아무나모시고갈상황은아니었습니다.

그래서명색이여행전문가로명성을쌓기시작한제가장인어른의소망을외면할수는없어서,결혼초기

에장인어른을모시고저로서는무미건조한여행을한경험이있었지만이번에는장인어른의소망을위하

여코드프리의여행을나서게되어모처럼장인어른께도효도를할기회를갖게되었습니다.

<사진:장인어른의어제와오늘>

-(좌로부터)평양고보시절(1940)/만주시절2컷/위컴8군사령관대장과함께(1980)/3년전/저의생일날(2005.8)-

1999년가을,마침추석이임박한터라진료일정이한가해지는추석직전에장인어른을모시고만주땅을

다녀오기로결심하였습니다.우선집사람한테이런계획을귀뜸해주었는데저혼자하는여행이면또나

가냐며속으로빈정대겠지만이번만큼은싫어할,반대할이유가전혀없었습니다.그런데항공편을살펴

보니추석전날귀국하는항공편이없어서추석당일돌아오는일정밖에잡을수없게되어마음에걸려

우선아버님께저의계획을설명드렸습니다.

저의어머님은교회를다니시지만일반적인기독교인의관례와는상관없이,오래전부터제사가우상숭배

의개념이아니라집안어른을공경하는것뿐이며라며제사를지내왔을정도로개방적인생각을하고계

셨습니다.그래서어느해에는휴가를제때못간막내동생가족을제사에열외시켜뒤늦게휴가를다녀오

도록배려를해주시기도하였습니다.

그렇다해도아버님께처음부터추석연휴에제사를빠지고중국을다녀오겠다는말씀을드릴수는없었습

니다.우선장인어른이중국을다녀오시고싶어서모시고가려는데항공일정이추석연휴와겹치면못갈

지도모른다고상황을우회적으로돌려말씀을드렸습니다.역시아버님의대답은기대했던대로명쾌하였

습니다.모처럼장인어른을위하여나서는여행인데추석제사에너무얽매이지말고장인어른을위해무

리하지않게여유있는일정을잡으라고오히려칭찬까지해주셨습니다.옆에서듣고만계시던어버님도

살아있는사람을공경하지않으면서어찌돌아가신조상을진심으로모시겠냐면서기꺼이아버님의의견

에동의를해주셨습니다.그러나"살아있는사람을공경하지않으면…"하시는두분의말씀을잘음미

보면"나도중국을가고싶으니까그때도알아서하거라!"하는것인지도모르겠습니다.실제로중국

역사에심취하신아버님을모시고중국역사와고문에관한책을구하러베이징과타이페이의서점가를순

례하는여행을두차례나다녀왔그때마다엄청난책보따리를들고다니느라저의팔이빠질정도였습

니다.

정식으로추석제사에빠져도된다는아버님의허락을받은후장인어른께만주를모시고다녀오겠다고말

씀드렸습니다.장인어른은제가일부러제사를빠지고모시고간다는말에부담스러워하셨고장모님께서

도반대하셨지만,장모님은이미저와성지순례를다녀오신전과(?)가있으셨기에장인어른께서원하시는

만주여행을마냥반대만하실수는없으셨고,장인어른께도장모님도성지순례를제가모시고갈수밖에

없었듯이장인어른도만주를꼭한번가시고싶으시면선택여지가없는일이라고말씀드리니사위고집을

어떻게말려하시면서못이기시는척하면서따라나서게되었습니다.

어쨋든제가추석제사까지빠져가며장인어른을모시고여행을가게되었지만,저를처가집일로제사에

빠지게만들어송구스럽다는전화를하신장모님께저의어머님은"처가,본가집이어디있고장인,장모

도부모와같은것인데사위도자식인만큼당연한일"이라며이해심이많고배포가큰사둔이란것을과

시하실수있어서"장인어른모시고중국가기"야말로저한테는장인어른과집사람한테까지크게생색을

낼수있었고그야말로WIN-WIN-WIN-WIN전략이었습니다.

<사진-1999년9월추석을앞두고,김포공항장춘행GATE앞에서>

<이번여행기시리즈는1999년추석때의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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