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억만장자의 꿈 – 터키의 화폐

몇 년전 어느 여성사회단체의 강연초청을 받아 특강을 할 때의 얘기입니다. 그때는 제가 터키와 요르단여행을 다녀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터키여행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강연이 끝나자 그 모임의 회장님께서 다음 달에 터키여행을 가기로 되었다며 터키의 물가와 환전에 대한 질의를 해 주셨습니다. 마침 주머니의 지갑에는 사용하고 남은 몇 장의 터키리라(TL,Turkish Lira)가 있었습니다. 10,000,000 TL 한 장, 1,000,000 TL 두 장, 그리고 500,000 TL 가 여러장 있어서 500,000 TL 한 장을 회장님께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50대 중년이신 회장님은 제가 쓰고 남은 터키화폐를 드리겠다고 하니 좋아서 뛰어 나와 받으시다가 액수를 보고 놀래서 머뭇거리셨습니다. 저는 워낙에 농담을 잘 하는 편이라 회장님께 껌값이니 부담없이 받으시고 정 뭣하면 강사비나 많이 달라며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그래도 그 분께서 동그라미 갯수가 부담되셨는지 받기를 망설이셔서 제가 강연시간에 맞추느라 잠실롯데호텔까지 전철을 타고 올라왔는데, 그러면 회장님께서 저를 영등포전철역 까지만 데려다 주시면 된다고 하자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터키의 물가와 환전에 대한 얘기가 계속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터키리라의 환율은 놀랍게도 1,600,000 TL ! 공항에서 $200을 환전하니 주머니에 3억2천만 TL가 가득차서 억만장자가 된 기분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환율이 $1에 1400원 정도였으니 500,000 TL는 약 420원 정도되는 셈이었습니다. 정말 껌값인 것이죠. 저는 거짓말을 못한답니다.

그러나 억만장자의 꿈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시내까지 택시비가 3천만TL, 게스트하우스가 일박에 3천만TL, 콜라 한 병에 800,000TL, 햄버거세트에 3,000,000TL ……

그야말로 터키에서는 돈을 물쓰듯 쓰는 것이 아니라, 물을 돈쓰듯 쓴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엄청난 인플레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날 강연이 끝나고 회장님께서는 화폐가치에 맞게 저를 강연장인 잠실롯데호텔에서 영등포역이 아닌 강남역까지 바래다 주셨습니다.

결국 화폐에 그려진 동그라미 갯수를 세기에 지친 터키국민들의 원성에 터키는 현행화폐를 동그라미 여섯개를 떼어 1/1,000,000 으로 낮추는 화폐단위변경(denomination)을 2005년1월1일 부로 단행하게 되었으며 1년 동안 구화폐와 신화폐(YTL,New Turkish Lira)를 함께 사용해오다 금년부터는 구화폐를 폐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Turkey10000000000a1999

 

< 사진 : 10,000,000 TL 화폐 (USD.6 정도), 동그라미가 너무 많아서 잘 세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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