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영화를 본 것은 불과 다섯 살 때 ‘오케스트라의 소녀’라는 영화였다. 이 영화는 1937년 제작된 흑백영화로 원 제목은 One Hundred Men and A Girl 으로 미국의 대공황 시절을 배경으로 한 흑백음악영화다. 그때는 아버지께서는 동두천에 병원을 개원하고 계실때로 어림잡아 1959년이나 1960년으로 기억된다. 당시만해도 동두천과 서울의 대중교통은 열악해 서 낮에는 기차를 타고 청량리로 올 수 있었지만 늦은 시간에는 동두천에서 의정부를 경유하여 종로5가 까지 합승택시를 이용했어야 하는데 그날 영화를 보고 택시로 동두천으로 돌아올 정도였으니 아버지께서 그 영화를 무척 보시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그 영화를 보게 된 것은 장시간 집을 비우게 되니 집에 살림을 도와주는 사람은 있었지만, 부모님이 우리들만 남겨두는 것이 걱정이 되어 데리고 가신 것 같다. 그런데 그 영화 속의 두 장면 주인공 데아나더빈이 부르는 모짜르트의 할렐루야와 베르디 오페라 La Traviata의 축배의 노래는 내 머리 속에 사라지지 않고 지금도 또렷이 기억이 나는데 그후 내가 음악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때는 마침 스테레오판이 처음으로 발명되어 나올 때였는데 동두천의 미군 7사단의 군의관과 친분관계를 맺고 계셨던 아버지께서 시중에서는 귀하기 어려운 귀한 클래식음반을 많이 수집할 수 있어서 지금도 내가 좋아하는 음반 20장 정도는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
1937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지휘자로 Stokovsky 스토코프스키가 직접 출연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디즈니랜드의 유명한 음악만화영화 환타지아의 도입부분에 실루엣 처리되면서 지휘대에 올라 지휘했던 지휘자가 바로 스토코프스키다. 그는 지휘봉을 사용하지 않고 맨손으로 지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영화의 배경은 전세계가 불황에 빠졌을때. 주인공 패트리샤의 아버지 Cardwell 카드웰은 실직음악가로 창고를 빌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음악가들과 연주연습을 하면서 후원자가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아버지 카드웰로 나오는 배우는 흑백영화시대 ‘무기여 잘있거라’에서 캐리 그랜트와 함께 출연한 아돌프 멘쥬 Adolphe Menjou로 흑백영화를 좋아했던 연령층에는 아주 친숙한 배우다.
그의 딸 패트리샤는 당대 최고의 지휘자인 스토코프스키의 연습실에 들어갔다가 자기도 모르게 연주에 맞춰 모짜르트의 할렐루야를 불러 스토코프스키로부터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아버지의 악단을 지휘해달라는 부탁은 거절당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스토코프스키를 만나러 그의 집에 몰래 들어갔다가 신문사에서 유럽순회연주를 떠나는 스토코프스키한테 인터뷰 전화가 온 것을 엉겁결에 받고 스토코프스키가 유럽연주여행을 취소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결국 일이 꼬여들어갔지만 스토코프스키는 실직자악단의 연주를 듣고 마침내 연주회를 열게 된다. 이때 스토코프스키가 연주를 마치고 이 악단을 지휘하게 된 숨은 공로자로 패트리샤를 청중한테 소개하는데 패트리샤가 베르디오페라 라트라비아타의 아리아 축배의 노래로 답례를 하며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주인공 Deanna Durbin은 1921년에 캐나다에서 태어나 불과 16세에 이 영화로 유명해지게 되었다. 워낙 오래된 시절이라 Deanna Durbin이 출연한 다른 영화는 직접 보지 못했지만 대부분의 영화에서 노래를 불러 흑백영화시절의 줄리 앤드류스 (Sound of Music의 마리아)라 불라도 좋을 것 같다. 아니 쥴리앤드류스를 칼라영화시대의 Deanna Durbin 이라고 해야 하나 !
내가 오케스트라의 소녀를 제대로 다시 보게 된 것은 중학교때인 흑백TV시절이었다. 그후 1990년대 우리나라에 일본위성방송이 인기를 끌때 NHK위성방송을 통해 다시 보게 되고 그때 VTR로 녹화를 해서 지금은 컴퓨터화일로 변환시켜 보관하고 있었는데 2년 전 DVD로 출시되어 비교적 깨끗한 화질과 음질의 영화를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어제 우연히 인터넷을 서핑하다 Deanna Durbin의 사망소식을 알게 되었다. Deanna Durbin은 일찌기 꾀꼬리같은 목소리로 할리우드의 명배우로 활약하였지만 배우로서는 비교적 일찍 은막을 떠났고 1950년대 부터는 세번째 남편을 따라 파리교외의 한적한 곳에서 살고 있었다고 한다. 고향을 떠나 60년 동안 잊혀졌던 Deanna Durbin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외신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정도로 아직은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Deanna Durbin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노래를 들어보려고 유튜브를 찾았지만 오케스트라의 소녀에서 불렀던 노래는 보이지 않아 내가 소장한 화일에서 편집하여 이 영화의 마지막장면에 나오는 라트라비아타의 축배의 노래 부분을 유튜브에 올려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