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했던 여행

지난 주 동남아시아여행을 다녀왔다.  8년전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함께 일하다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말레이지아 출신 의사, 태국출신 의사의 8주년 기일에 맞춰 그동안의 활동을 마무리하는 모임을 가졌다. 당시 나는 집안 사정으로 도중에 귀국을 하지 않았다면 함께 희생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나한테는 충격이 무척 컸던 사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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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객실 TV를 틀면 국왕서거애도화면부터 나온다. 10월23일.

쿠알라룸푸르에서 모임을 갖고 일부는 태국 방콕으로 이동했다. 마침 태국은 부미볼 국왕이 서거하여 임시 공휴일로 지정되어 전 국민이 슬픔에 잠겨 분위기가 가라앉은 상태였다. 시내 곳곳의 대형 전광판의 광고는 사라지고 국왕을 추모하는 동영상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거리의 ATM, 지하철 및 BTS(지상전철)역의 운항안내판 등 모든 모니터에서 국왕을 추모하는 사진과 동영상이 방영되고 있다. 신문은 한 페이지 걸러 국왕서거에 조문을 표하는 전면광고가 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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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시내 지하철, 지상전철 정류장 모니터에 나타난 국왕추모영상들.

세계에서 최장수 국왕의 자리에 올랐던 부미볼 국왕은 태국 국민의 존경을 받은 큰 어른이다. 세계최고의 갑부라는 부를 가진 현실에 대해 일부에서 불만은 있었지만 지금 이 마당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부미볼국왕의 생전 모습을 보면 다양한 취미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부미볼왕은 음악을 좋아했다고 한다. 내 기억에는 1970년도 오디오에 빠져있을 때 Hi-Fi 잡지에서 Fishery 라는 오디오회사 광고에서 태국왕실도 고객이라는 것을 본 기억이 난다.  특히 Jazz 음악에 심취했다고 하며 많은 곡을 직접 작곡하기도 했다.

2000년도 초에 태국의 대표항공사인 타이항공의 비즈니스클래스로 여행할 때 탑승기념으로 부미볼 국왕이 작곡한 음악 CD를 받은 기억이 있다. 부미볼국왕은 특히 Jazz 풍의 음악에 재능을 가져 여러 악기를 능숙히 다루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왕 생전의 사진에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모습도 많이 등장하고 있어 개인적으로 취미가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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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말 타이항공 비즈니스클래스 탑승했을때 탑승기념선물로 받은 국왕작곡집 연주 CD.

 

이번 방콕방문이 국왕을 조문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태국 친구들의 권유로 우리 모임의 멤버들도 조문을 가기로 했다. 마침 우리 멤버들은 모두 8년전 잃은 친구의 기일을 맞아 검정바지와 흰 와이셔츠, 검정 넥타이를 지참하고 있었다. 국왕을 모신 왕궁에는 일반 조문객들이 엄청 몰려 하루 10,000명으로 제한할 정도라 엄두를 못 내고 태국 친구의 안내로 태국의 한 기업에서 관련된 외국인들을 위해 마련한 조문소를 찾아 조문했다.

앞서 조문을 마친 네덜란드에서 온 한 여성이 내가 조문 리봉이 없는 것을 보고 자기는 오늘 태국을 떠나 조문 리봉을 나한테 달아 주었다. 조문을 마치고 걸어가는데 많은 사람들이 나를 힐끔 쳐다 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아 ! 남자는 조문 리봉을 왼쪽에 달아야 하는데 오른쪽에 달았다. 그 네덜란드에서 온 여성은 남녀 구분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나한테 같은 쪽에 달아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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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Holiday Inn Silom 호텔 로비에 마련된 태국국왕조문대. 10월24일.(이곳은 정식 조문하는 곳이 아니라서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조문장소에서는 사진촬영을 하지 않는다.)

 

한편 카톡으로 고등학교 은사님이자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동창인 친구의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는 문자 연락도 받았다. 말레이지아 친구, 태국 친구의 기일 모임, 태국국왕조문에 이어 연달아 부고연락을 받아 이번 여행은 무척 우울한 여행이 되었다.

항상 동남아시아 여행은 항공요금을 아끼려고 베트남항공을 이용하기에 귀국을 위해 25일 방콕에서 하노이에 도착하였다. 하노이에서 만난 베트남 친구는 베트남신문 영자지를 하나 건네 주었다. 오늘 신문에 한국 대통령이 대국민사과를 했다는 기사를 보여준다. 외신면 톱기사로 반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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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영자신문 외신면 톱기사로 실린 박대통령 대국민사과기사. 10월26일.

대한민국은 아무리 국내정치가 개판 수준이라도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서는 모든 면에서 상당히 앞 선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자국에서 넘쳐 나는 한국상품들이 최고급으로 꼽히고 있으며 한류열풍이 휩쓸고 있지만 국내 정치상황이 이들 나라에 보도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Swirling Scandal Involving Shamanistic Cult Threatens S. Korean President 이란 외신을 밖에서 보지 않게 된 것이 다행으로 생각된다. 지금 밖에서는 우리나라를 마치 우리가 졸부를 우습게 보듯 졸국으로 보는 것 같다.

태국 국왕의 서거에 끊이지 않는 태국국민들의 존경심에서 우러 나오는 애도물결을 보고 나서 우리 나라 대통령의 대국민사과 소식을 들으니 참담한 생각이 들었다. 비록 정치체제는 다르지만 우린 대다수 국민들의 존경을 받아온 지도자를 아직 경험해 보지 못했다. 지금 결과론으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가장 높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말로가 비참했듯이 그분 역시 생전에는 공보다 과가 많이 부각되었던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래도 박정희 대통령의 유산이 된 경제발전과 육영수여사의 인품을 그리워 하는 국민들이 대를 이어 박근혜 대통령을 만들었지만 유감스럽게 부모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여 많은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어렸을 때 멋 모르고 흥얼대었던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Sad news(원래는 movies) always make me cry . . . . . .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끝까지 우울했던 여행이었다.

 

 

1 Comment

  1. journeyman

    2016년 11월 1일 at 6:54 오후

    작금의 정치 현실은 정말이지 우울하기 그지없습니다.
    저도 해외에서 이런 소식을 들었다면 창피했을 듯합니다.
    21세기에 샤마니즘적 사이비교 세력이 국정을 농단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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