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톡은 러시아의 동쪽 끝에 있는 도시로 아시아에 있는 유럽이다. 러시아가 지리적으로 유럽으로 구분되기에 블라디보스톡은 우리 나라 보다도 더 동쪽에 있으면서도 유럽으로 분류된다. 인천공항에서 불과 두 시간 만에 유럽의 한 도시에 도착하게 된다. 블라디보스톡은 역사가 짧은 도시라 그리 볼만한 곳은 없지만 러시아 극동함대사령부가 있는 곳이라는 상징성과 연해주에 고려인 이주역사가 스며 든 곳이라 한국인들이 많이 찾고 있다.
그런데 블라디보스톡을 돌아 보면 재미 있는 동상 두 개를 볼 수 있다. 하나는 미국의 유명한 배우 율브린너(Yul Brynner)의 동상이고 또 하나는 블라디보스톡 항구에 있는 러시아의 유명한 작가 솔제니친의 동상 이다. 두 사람 모두 구소련에서는 환영받지 못한 세계적인 인물이다.
- 사진 왼쪽 : 율브린너 (출처 : wikipedia 저작권공개된 사진)
- 사진 오른쪽 : 율브린너가 이집트 파라오 람세스역으로 출연한 영화 십계에서 캡쳐한 사진
먼저 블라디보스톡에서 율브린너의 동상을 만난다는 것은 의외였다. 율브린너는 뮤지칼 영화 ‘왕과 나 King and I’, ‘십계’ 등 1950년대에 명성을 떨쳤던 대머리 배우로 유명하다. 특히 종교영화 ‘십계’는 최근에도 매년 연휴 명절 때 자주 상영되어 젊은 세대들한테도 그리 낯 선 사람은 아니다. 이번 블라디보스톡 여행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율브린너는 블라디보스톡 태생이라고 한다. 엄밀하게 얘기하면 그가 태어날 때인 1920년은 블라디보스톡은 독립국가형태의 Far Eastern Republic 극동공화국 소속이었지만 실제는 러시아의 조종을 받았고 곧 이 지역은 1922년 러시아에 편입되었으므로 편의상 러시아출생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율브린너는 어릴 때 가정불화로 어머니와 함께 하얼빈으로 이중하고 중일전쟁이 벌어지면서 프랑스로 이주했다고 한다. 율브린너는 20세 때 미국으로 이주하여 제2차세계대전에 참전한 뒤 전쟁이 끝나자 할리우드 배우로 활약하게 되었다. 그가 한창 명성을 떨칠 때는 미국과 소련이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국가의 맹주로 예민하게 대립하였던 냉전시대였기에 소련에서는 율브린너가 러시아 태생이라는 것을 내세울 수는 없었던 시대였다.
- 사진 왼쪽 : 율브린너 동상 (2018.08 촬영)
- 사진 오른쪽 : 율브린너 주연영화 왕과 나에서의 한 장면 (왕과 나 영화에서 캡쳐)
블라디보스톡에 율브린너 동상에 세워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소련의 체제가 무너지고 난 후라는 것은 틀림 없을 것 같다. 율르린너 동상이 세워진 율브린너 생가는 블라디보스톡 기차역에서 시내방향으로 걸어서 5분 정도 못 미치는 주택가에 있다. 주변에 있는 Aleuskaya 17 번지와 19번지는 1938년대에 세워진 스탈린양식의 대형건축물로 유명해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들 건물은 구소련시대에 KGB나 소련 극동함대 사령부의 제독들이나 고위 장교들의 숙소로 이용했다고 하며 지금은 유스호스텔 Barbados 가 입주해서 많은 배낭족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율브린너 생가는 3층의 단독건물로 바로 17번지 왼쪽에 있으며 그 앞 마당에 율브린너가 그의 대표작인 ‘왕과 나’에서 맡았던 태국 국왕의 복장을 하고 영화 속의 한 장면 그대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톡에 율브린너의 동상이 세워진 것은 아마 러시아가 개방되면서 관광객유치를 위해 세운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 구소련 시절 제2차세계대전에 참전한 잠수함 S-56과 영원한 불꽃 광장 (2016.01 촬영)
불라디보스톡을 상징하는 명소는 극동함대사령부 옆에 전시된 구소련의 잠수함 C-56 이다. 이곳에는 러시아의 어느 도시를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영원한 불꽃 등 냉전체제때의 유물과 함께 아담한 러시아정교 교회와 니콜라이2세 개선문 이 있어 블라디보스톡을 방문하는 여행객은 빠지지 않고 찾는 곳이다. 그런데 니콜라이2세 개선문 역시 구소련에서는 배척되었던 곳이다. 니콜라이 2세는 제정러시아 로마노프 마지막 황제로 볼셰비치혁명에 의해 퇴위되고 사형당했던 인문이기 때문이다. 이 개선문은 구소련 시대에 훼손되었으나 구소련이 붕괴 된 후에 다시 복원되었다고 한다.
- 블라디보스톡 부둣가에 세워진 구소련 반체제작가로 알려진 솔제니친 동상 (2019.01 촬영)
이곳에서 바다 정면으로 내려오면 1910년대 함정인 Red Pennant 가 전시되어 있다. 아마 블라디보스톡의 근대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유물인 것 같다. 그러나 이방인한테 이 보다 더 눈길이 가는 것은 Red Pennant가 정박된 부둣가 바로 앞에 있는 낯 선 인물의 동상이다. 우리한테는 알려지지 않은 구소련 해군의 영웅의 동상이 잇을 법한 곳에 의외로 러시아의 반체제작가로 노벨수장자인 솔제니친의 동상을 만날 수 있다. 솔제니친은 소련의 장교출신으로 스탈린에 대해 불평한 죄로 한 때 수용소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는 수용소생활을 그린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지만 소련사회에서 반체제작가로 낙인 찍혀 서방세계로 추방되었다.
-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하는 시베리아횡단특급기차에 오른 솔제니친 (1994년)
- 출처 wikimedia.org 저작권공개된 사진
솔제니친은 소련에서 추방되었지만 그렇다고 자유세계를 동경만 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미국으로 망명와서도 너무 자유분방하고 물질만능 풍조에 실망했다고 한다. 소련포병장교출신이라 그런지 이상적 사회주의자라고나 할까 ? 그런데 솔제니친의 동상이 블라디보스톡의 부둣가에 세워진 것은 의외다. 블라디보스톡이란 도시와 동상이 세워진 장소가 솔제니친이나 러시아 문학과는 전혀 연관이 되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솔제니친의 출생지도 블라디보스톡에서 정반대에 있는 러시아의 흑해 연안에서 가까운 키슬로보츠크 이다.
전해지는 얘기는 구소련이 무너진 후 1994년 솔제니친이 러시아로 돌아 올 때 블라디보스톡으로 들어와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가서 그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냉전체제 때 소련해군 군사기지였던 블라디보스톡에서 냉전체제 때 소련의 적국이었던 미국에서 활약했던 배우와 반체제작가로 추방되었던 솔제니친의 동상을 블라디보스톡에서 보니 러시아 근대사의 변화를 실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