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우연한 기회에 SkyTrax 5 Star 항공사로 꼽히는 일본 ANA 항공으로 도쿄에 다녀 올 기회가 생겼다. 원래 국내 저비용항공사를 이용하려고 했는데 큰 아이가 자신이 적립한 Etihad 항공의 마일리지가 8월에 14000마일 정도 소멸된다고 해서 Eihad 항공의 파트너항공인 ANA로 일본을 다녀오게 되었다. 이번 ANA 항공의 김포-하네다 시승은 내 개인적으로는 몇 가지 특별한 의미가 있는 여행이었다. 우선 그 동안 세계여행을 하면서 전세계의 주요 항공사를 비롯해서 지역항공사 등 모두 100여개가 넘는 항공사를 이용했다. 그런데 일본의 항공사는 Peach항공, Vanilla항공, Starflyer 등 저비용항공사나 지역항공사만 이용했을 뿐 일본의 양대 국적항공사인 JAL과 ANA는 한 번도 이용한 경험이 없었다. 이번 여행이 첫 번째 ANA 여행이었다. 또 한 가지는 김포-하네다 ANA 항공편 기종이 보잉사의 차세대첨단기종인Dreamliner B787 이다. ANA 항공은 Dreamliner B787 기종의 제1호기를 도입한 항공사이자 현재 이 기종을 가장 많이 보유한 항공사다. 나는 2011년 9월 말 미국 시애틀 근교에 있는 Everett 보잉공장에서 개최된 ANA의 B787 1호기의 출고식(First Delivery) 행사에 항공전문잡지인 월간항공을 대표하여 우리 나라에서는 유일하게 보잉사의 초청을 받아 취재여행을 다녀 온 적이 있었기 때문 이다. 일반인으로서는 우리나라에서 완성된 B787 Dreamliner를 처음 본 사람이 된 것이다.
일본을 여행할 때 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일본의 항공사들이 유난히 우리 나라에서는 맥을 못추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JAL과 ANA 등 양대항공사가 인천공항에 직접 취항을 했지만 어느 순간 부터 인천공항에 일본의 양대 항공사들이 사라졌다. 대신 JAL은 대한항공과, ANA는 아시아나항공과 코드쉐어 항공편으로 인천 노선을 유지하고 있을 뿐 직접 우리나라에 취항하는 노선은 김포-하네다가 유일한 노선으로 남아 있다.
한편 일본에서 네 번째로 큰 공항인 후쿠오카공항의 경우 국제선터미날을 보면 뜻밖의 현상을 볼 수 있다. 후쿠오카공항 국제선터미날에는 일본의 양대항공사인 ANA와 JAL의 모습을 전혀 볼 수 없다. 후쿠오카공항에 취항하는 국제선항공편의 절반 정도는 우리나라 항공사들이며 중국항공사와 동남아시아 할공사들이 그 나머지를 채우고 있다. 우리나라의 모든 국적항공사가 인천공항, 김해공항 뿐만 아니라 청주, 대구 등 지방공항에서 후쿠오카공항에 취항하고 있다. 국제선터미날에는 ANA, JAL 체크인카운터는 있지만 모두 파트너항공사의 코드쉐어로 운항하는 노선들 뿐으로 일본항공사가 직접 취항하는 노선은 최근에 운항을 시작한 Vanilla항공의 후쿠오카-타이베이 노선 뿐이다. 후쿠오카 공항은 일본에서 네 번째로 큰 공항이면서 인천공항, 김해공항에 이어 세 번째로 우리나라 국적항공사의 국제선 항공편이 많은 공항이라는 진기록을 가진 것이다.
SkyTrax 5 Star 항공사인 ANA 항공은 김포-하네다 노선에 하루 세 편 운항하는 정도라 별도 라운지는 없고 같은 Star Alliance 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 라운지를 이용한다. 원래 하네다공항의 ANA라운지를 체험해 보고 싶었지만 하네다-김포 노선에는 비즈니스클래스 마일리지 항공편이 없어 아쉽지만 김포-하네다 노선의 비즈니스클래스를 이용하였더. 김포공항 아시아나 라운지는 운항 편 수가 인천공항에 비해 많지 않고 모두 중국과 일본 단거리 노선이라 그런지 제공되는 음식이 샌드위치 정도에 그치고 있지만 그나마 인천공항 아시아나 라운지의 허접한 샌드위치에 비해서는 질적으로 좋은 편이다.
flightradar24.com으로 내가 이용할 항공편을 검색해 보니 예정대로 하네다에서 김포로 비행 중이다. 항공기 등록번호는 JA878A 이다. 마음 속으로는 혹시 8년 전 내가 시애틀 Everett 공장을 방문했을 때 보았던 제1호기나 제2호기 JA801A, JA802A기가 오기를 기대했지만 JA878A기는 2016년 제작된 것이니 ANA가 보유하고 있는 B787-8의 평균기령 보다 훨씬 새 비행기이니 잘 걸렸다고 위안을 가져야 할까 ?
잠시 2011년 9월25일~27일에 개최된 B787 제1호기 First Delivery 행사 얘기로 되돌아가면 당시 비가 내리는 가운데 비를 맞으며 B787 조립공장 근로자들을 앞세우고 ANA 항공의 B787이 입장하는 장면은 아주 감동적이었다. 참석자들은 모두 ANA 항공에서 제공한 We Fly 1st, B787 FIRST DELIVERY 라고 큼직하게 적힌 머플러를 휘두르며 자신들의 손으로 완성된 B787기의 등장을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설명을 곁들이면 당시 행사장에 등장한 ANA B787기는 제1호기 JA801A가 아닌 제2호기 JA802A (위 사진)였다. 보잉사와 ANA항공은 행사 전날 Everett공장의 Paine Field 주기장에 서 있는 JA801A기와 JA802A기 두 대를 공개했지만 JA801A 1호기는 다음날 행사가 끝나면 일본으로 비행을 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기내는 공개하지 않았고, 대신 옆에 서 있는 객실 조립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였던 제2호기 JA802A 기의 객실을 취재진에 공개를 했었고 행사장에 등장한 것도 JA802A 이다.
ANA는 보잉사가 생산한 B787의 거의 10% 에 해당하는 67대를 보유하고 있다. B787의 기본형인 B787-8과 항속거리가 길고 동체를 늘려 탑승정원을 늘린 B787-9, 그리고 항속거리는 짧지만 동체를 B787-9 보다도 늘려 탑승정원이 가장 많은 B787-10도 도입하였다.
예정된 시간에 탑승이 시작되었다. 보딩브릿지에서 보는 B787의 기수는 이젠 많이 익숙해졌다. 보통 다른 기종은 기수 끝 부분이 돌출되어 nose 라는 표현이 어울리지만 동체 디자인에서 다른 기종에 비해 유선형이 강조 된 B787은 조종석 유리창에서 기수부분이 거의 돌출되지 않고 그대로 미끄러지는 모습이 처음에는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조종석의 유리창도 다른 기종에 비해 훨씬 크고 곡면인듯 부드럽게 곡선으로 이어진다. 이런 부분은 경쟁기종인 에어버스의 A350도 같지만 B787이 A350에 비해 훨씬 매끄럽게 보인다.
ANA B787 비즈니스클래스좌석 . . . . . recliner seat & flat-bed 두 가지
기내에 오르니 8년 전 처음 보았던 비즈니스클래스 좌석이 반갑게 느껴진다. JA878A기의 비즈니스클래스는 요즘 유행하는 flat-bed 스타일이 아닌 recliner seat 이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장거리비행이 아니라면 recliner seat를 선호한다. flat-bed 좌석은 침대형으로 펼쳤을 때 침대처럼 굴곡이 없이 편평하게 만들기 위해 좌석의 쿠션이 밋밋하고 딱딱한 편이다. JA878A기의 운항기록을 찾아 보면 하네다에서 김포, 샹하이, 타이베이 등 아시아권에서도 동북아시아권을 주로 운항하고 있다. 이정도 비행시간이라면 좌석을 침대형으로 펼치고 누울 시간 여유는 없을테니 recliner seat가 오히려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ANA항공은 B787기종을 모두 67대 보유하고 있는데 좌석구조를 보면 비즈니스클래스는 두 가지 형식이 있다. 하나는 JA878A기와 같은 recliner seat와 또 하나는 flat-bed 스타일로 아시아나항공 Smartium Business Class 좌석처럼 좌석 옆의 사이드테이블을 앞 뒤로 번갈아 가며 위치를 바꿔 배열한 staggered 방식 이다. staggered 방식은 승객의 프라이버시는 보호되지만 너무 좌석 주변에 파티션이 많아 답답한 느낌을 주는 단점도 있다. staggered 방식을 채택한 B787기종은 미주와 유럽노선에 취항시키고 있으며 틈틈히 동남아시아 노선에도 등장하는 것 같다.
recliner seats 좌석피치는 59인치로 좌석등받이를 최대로 뒤로 제낄 때 발의 위치는 앞 좌석의 밑 부분 공간으로 위치하게 된다. 일부 항공사들은 이 정도의 좌석공간에 무리하게 좌석을 침대형으로 펼치게 하여 펼쳐진 좌석 전체가 기울어져 불편한 것과 비교하면 차라리 다리가 부러진 침대와 같은 lie flat bed 보다는 recliner seat가 나은 편이다. ANA 비즈니스클래스 recliner seat는 USB, AC 전원소켓이 팔걸이 바로 아래 있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내가 예약한 좌석은 1K, 맨 잎줄 창가 좌석 이다. 일반석이라면 첫 줄 좌석이 좋겠지만 비즈니스클래스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보통 비즈니스클래스 좌석의 개인용 모니터는 앞 좌석 뒷면에 내장되어 있지만 맨 앞 좌석의 경우 개인용 모니터가 팔걸이에서 나오는 방식이라 거추장스럽기 때문 이다. 원래는 비행 중 후지산을 촬영하기 위해 창가 좌석 A열을 원했지만 늦게 예약한 탓인지 날개가 가리게 되는 뒷쪽 좌석 밖에 없었다. 다행히 탑승후 1A, 1B 좌석이 비워 승무원의 양해를 얻어 1A로 옮겼다. 앞 좌석의 좋은 점은 기내소음이 비교적 적다는 것이다. A380, B787, A350 등 2000년대에 들어서 개발된 기종들의 특징 중의 하나는 객실 내의 소음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B787 기종은 엔진덮개의 디자인을 톱니 모양chevron으로 만들어 소음을 크게 줄였다고 한다. 보잉 기종 중에서 첨단기종인 B787, B747-8과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B737MAX 모두 엔진덮개가 톱니 모양의 디자인 이다.
비즈니스클래스는 승객이 좌석에 앉으면 승무원이 음료수 부터 권한다. 이때 나의 선택은 항상 샴페인 이다. 샴페인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아니고 축배를 들 일도 없지만 이왕이면 일반석에서 제공하지 않는 것을 마시고 싶다는 소박한 생각이다.
B787기의 객실 조명은 일반 전구가 아닌 LED를 사용하기 때문에 다양한 조명이 가능하다. 이번 비행은 낮시간이기 때문에 특별히 기내 조명이 필요없지만 장거리 비행중에는 이착륙, 순항, 기내식 등 운항환경에 맞추어 기내 조명이 다양하게 바뀐다. 요즘 이런 조명은 B737NG 기종 중에 고급형인 BSI(Boeing Sky Interior) 기종과 점보기의 최신형 B747-8I도 채택하고 있지만 B777과 A330 등 구형 기종에도 많이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김포-하네다 구간은 비즈니스 클래스라도 짧은 단거리 노선이라 개인용 화장품을 담은 amenity kit 는 따로 제공되지 않고 기내용 슬리퍼만 제공된다. 기내용 슬리퍼는 바닥이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이 제공하는 것 보다 약간 두꺼워 좋았지만 일회용 수준을 넘지 못하는데, 기내용 슬리퍼는 중화항공이나 베트남항공에서 제공하는 것이 훨씬 좋아 나는 중화항공과 베트남항공에서 제공 받은 슬리퍼를 비행기나 기차, 고속버스를 탈 때 마다 항상 휴대하고 다닌다. ANA 항공 비즈니스클래스에서 제공하는 헤드폰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noise cancelling 기능이 있는 고급이다. 그런데 ANA 항공은 과감하게(?) 헤드폰 단자를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one pin을 채택하고 있다. 다른 항공사들의 경우 헤드폰 단자는 개인용 전자휴대품에 사용하지 않는 two-pin을 많이 사용하는데 승객들이 가져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B787 Dreamliner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B787의 객실창문 크기가 높이 47cm, 폭 27cm 정도로 A330/A340기 (높이 33cm, 폭 23cm)에 비해 엄청 크기 때문 이다. 대륙간 장거리 노선이 아니라면 비행 중 하늘의 구름 모습이나 지상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창가 좌석을 선호하는데 B787의 객실창문의 시야가 가장 넓다. 간혹 B787과 A350, A80을 비교하여 A350, A380의 창문이 더 크다는 주장도 있지만 A380의 경우 객실 벽의 창문 틀만 넓을 뿐이지 실제 동체 외부의 직경은 B787 보다 훨씬 작다. 특히 B787 객실 창문의 위치는 다른 기종 보다 높다. 다른 기종들은 좌석등받이의 높이가 객실창문의 위와 같아서 성인이 좌석에 앉아 창 밖을 내다 보려면 약간 고개를 숙여야 하지만 B787은 성인이 좌석에 앉은 채로 고개만 돌리면 하늘 위나 지상이 훨씬 넓게 보인다.
또 한 가지 B787 Dreamliner 객실창문의 특징은 다른 기종에 있는 창문 덮개가 B787에는 없고 대신 유리창이 단추 하나로 투명도가 변하는 electrochromism이란 새로운 기술을 채택한 smart glass 이다. 이 방식은 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선글래스와 같은 것으로 창문 마다 밑에 달린 버튼으로 승객이 직접 투명도를 조절할 수 있으며, 승무원이 운항 상태에 따라 필요시에 중앙에서 조절할 수도 있다. 이 장치는 승객보다는 승무원들 한테 고마운 장치가 될 것 같다. 비행기가 이착륙할 때 외부에서 객실 안이 잘 보이도록 객실 창문의 덮개를 모두 올리도록 되어 있는데 B787기는 승무원이 단추 하나로 모두 통솔할 수 있기 때문 이다.
항공사들이 고유가와 치열한 경쟁 때문에 수익구조가 악화되면서 운항경비를 줄이기 위해 일본항공사들이 한일 노선에서는 기내식이 스낵 정도로 수준이 떨어졌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김포-하네다 구간의 비즈니스클래스 기내식은 기대한 만큼 좋았다. 짧은 비행시간 때문에 코스별로 제공되지 않고 선택여지도 없이 하나의 메뉴를 일반석 기내식과 같이 all-in-one 스타일로 제공되지만 김포-하네다 노선에서 제공된 함박스테이크는 맛이 좋았다. 승무원한테 확인해 보니 기내식은 김포공항에서 공급 받은 것이라고 한다.
NH864편 JA878A기는 예정 시간 보다 훨씬 빠른 1시간35분 만에 하네다 공항에 도착하였다. 다른 때는 착륙시간이 기다려졌지만 이날 따라 비행기가 일찍 도착한 것이 유난히 아쉬움이 남는다. 기내식 식사를 마치고 객실 뒤의 일반석도 구경하고 싶었지만 벌써 비행기가 하강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내일은 후쿠오카의 친구를 만나러 하네다에서 후쿠오카로 가는데 일부러 ANA항공 261편, B787 기종을 선택했기에 일반석 체험은 내일 하기로 했다. 이번 김포-하네다 노선에서 한 가지 기대한 것은 비행코스가 후지산에 가까운 루트를 선택하면 후지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는데 이날은 구름이 워낙 짙게 깔려 후지산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김포-하네다 노선은 짧은 비행이라 승무원에 대해 평하기는 부족한 시간이지만 능동적으로 근무하는 것이 우리 나라 항공사의 승무원과 같은 수준으로 좋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오늘 탑승한 ANA 승무원들은 모두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 같아 영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한국인 승무원도 있겠지만 발음하는 것을 보면 교포나 일본인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단거리 노선에 SkyTrax 5star의 감동을 느끼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전체적으로 만족할 만한 비행을 하였다. 무엇 보다도 비행중 무료하지 않게 지내려면 AVOD 시스템이나 아니면 개인용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를 마음 편히 이용할 수 있도록 USB 전원시설이 좋아야 하는데 같은 SkyTrax 5 Star 항공사라도 아시아나항공은 많은 기재가 아직도 해상도가 낮은 모니터를 사용하고 있어 5 Star 평가가 무색할 정도였지만 ANA B787기는 SkyTrax 5 Star 항공사로서 부족함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