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오페라 전곡을 별로 안 들었다. 시간이 너무 길고, 직접 공연을 보는 것이 아니라면 지루한 면도 있어 유명한 아리아만 발췌해 놓아 듣곤 했다. 유일하게 전곡을 자주 듣는 오페라는 베르디의 오페라 ‘La Traviata’ 이다. 너무 감미로운 아리아가 너무 많기 때문 이다. 사실 오페라는 다른 음악 장르와 달리 대사를 외면할 수 없다. 일반 가곡 등은 가사를 몰라도 멜로디만으로도 충분히(?) 감상할 가치를 느껴서인지 자주 들으면서도 애써 가사를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오페라의 경우는 전곡을 이해하려면 음악 못지않게 대본(스토리)도 중요하기에 가사 내용을 완전히 외면할 수 없다.
어제 오랜 만에 베르디 오페라 ‘AIDA’ 공연을 찾았다. 역시 은퇴한 음악애호가 티를 내어 20만원의 R석, 15만원의 S을 애써 외면하고, 너무 싸서 경로할인 혜택도 제외되는 1만원 말단 D석을 예매했지만 똘똘한 쌍안경만 있으면 아쉬움이 없다. 오히려 무대 앞 쪽 좌석은 무대가 한 시야에 들어오지 않고, 자막 스크린도 무대를 보는 시야에서 벗어나 불편하지만, 맨 뒷 좌석은 무대 전경과 자막스크린이 같은 시야에 들어와서 보기 편하다.
오래 전 이집트 룩소를 여행할 때 호텔로비에 커다란 AIDA 공연포스터를 본 기억이 난다. AIDA가 고대 이집트 왕국을 무대로 하여 유명 오페라단이 고대이집트의 중심지인 룩소에서 연주하였지만 아쉽게 시간이 맞지 않아 놓쳤다.
AIDA는 이집트가 1869년 수에즈운하 개통 기념으로 세운 카이로 오페라하우스의 개관공연으로 베르디한테 의뢰하여 작곡한 오페라다. AIDA는 등장인물도 많고 개선행진곡 등 웅장한 곡들이 많은 스케일이 큰 오페라다. AIDA 광고 포스터에는 웆앙한 고대이집트 신전과 위엄있는 파라오와 수많은 시녀와 군사들이 등장하는 장면이 나온다. 극 중 유명한 대표적인 곡도 La Traviata와 Rigoletto 등에 나오는 달콤한 남녀 간의 사랑을 그린 노래 대신에 웅장한 합창곡 개선행진곡, 이기고 돌아오라 Ritorna Vincitor, 가자 신성한 나일강가로 Su del Nilo al sacro lido 등 군사적인 내용이 많아 시대극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AIDA는 이집트 개선장군 라다메스를 두고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와 전쟁포로로 잡혀와 암네리스의 시녀로 지내는 에디오피아 공주 아이다 사이에 벌어지는 사랑 싸움의 러브스토리 이다.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는 에디오피아 포로인 에디오피아 공주 아이다를 시녀로 데리고 있지만 자기가 흠모하는 이집트 개선장군 라다메스와 아이다가 좋아하는 사이라는 것을 눈치 챈다. 라다메스는 에디오피아와 전쟁에 출전하는데 아이다는 연인 라다메스를 응원하자니 아버지가 왕인 에디오피아를 배반하는게 되어 사사랑과 애국심을 사이에 두고 번민하게 된다. 라다메스는 에디오피아와 전쟁에서 승리하여 많은 에디오피아 포로들을 데려 오는데 그 중에는 아이다의 아버지인 에디오피아 왕 아모나스로도 있었다. 에디오피아의 왕과 공주가 포로 신세로 적국에서 재회를 한 셈 이다.
이집트 왕(파라오)는 개선정군 라다메스한테 승리의 선물로 소원을 하나 들어 주겠다고 한다. 라다메스는 서슴치 않고 포로 신분인 아이다를 위하여 에디오피아 포로들을 풀어 줄 것을 요청한다. 당연히 라다메스와 아이다 사이의 관계를 눈치 채고 시기하는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와 이집트 사제들은 강력히 반대하여 결국 아이다 아버지인 아모나스로를 인질로 잡고 포로들을 풀어주기로 하고 파라오는 라다메스한테 자기의 딸 암네리스 공주와 결혼하여 이집트를 통치할 것을 명령하지만 라마데스의 마음 속에는 아이다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인질로 잡힌 에디오피아왕은 에디오피아를 재건하기 위해 이집트 개선장군 라다메스와 연인 사이가 된 딸 아이다한테 라다메스한테 접근하여 이집트의 군사기밀을 빼 올 것을 명령한다. 아이다는 연인 라다메스와 조국 에디오피아 사이에서 갈등을 빚으며 그럴 수가 없다고 한다. 사랑하는 아이다를 두고 암네리스 공주와 결혼하라는 왕의 명령을 받은 라다메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 가지. 이들은 함께 도망가자는 얘기도 하지만 라다메스는 조국을 버릴 수 없다며 고민하고 아이다한테 탈출 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는데 이 장면을 목격한 암네리스 공주에 의해 라마데스는 반역죄로 체포된다.
암네리스는 라다메스한테 자기와 결혼하면 석방시켜주겠다고 회유하지만 거절하고 반역죄로 지하돌무덤에 갇히게 되는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자기가 흠모했던 라다메스가 죽게 되자 암네리스는 너무 가혹한 형벌이라고 사제들한테 그를 살려줄 것을 요구했지만 결국 지하돌무덤에 갇히게 된다. 그런데 이집트를 빠져 나간줄 알았던 아이다는 라다메스가 돌무덤에 갇히는 사형선고를 받은 것을 알고 미리 돌무덤 안으로 들어가서 라다메스와 아이다는 재회하게 되지만 그들의 사랑은 죽음으로 마무리 하게 된다.
AIDA는 베르디의 명장 답게 음악적으로는 크게 성공을 거둔 작품이지만, 이 곡이 이집트가 수에즈운하 개통기념으로 세운 카이로오페라하우스의 공연작품으로 이집트가 전폭적인 지원을 하여 베르디한테 의뢰한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내용은 약간 의외다. 이집트를 홍보하려는 작품에 이집트 공주가 적국으로 설정된 에디오피아 공주에 의해 사랑싸움에서 진 것도 그렇고, 이집트 왕도 개선장군 라다메스한테 배반 당한 꼴이 되고 말았기 때문 이다.
그나마 이집트 입장에서 다행스럽게 오페라 AIDA에서 가장 유명한 곡은 개선장군 라다메스와 아이다 사이의 사랑을 그린 아리아가 아니라, 이집트가 적국인 에디오피아한테 대승을 거둔 장면에서 나오는 개선행진곡이니 조금은 위안이 될 것 같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