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 동두천

추억.1-카페<JUN>

내가언제부터재즈를좋아하기시작했던가?
클래식음악감상실을찾아다니던사춘기단발머리시절부터시작해서
그때한참유행하던샹송,산레모가요제에서나온칸소네들,영화주제곡들
그러다가라디오에서흘러나오는팝송에귀기울이기시작했다.
대학에서가서맨처음배운것이시끄러운하드락카페들을찾아다니는일이었다.
당시내주변의친구들이번갈아가며명동의유니크한카페<JUN>에서DJ로아르바이트를했다.
이가게는건물설계,디자인서부터유명한일본인디자이너를데려다써서 독특한유리창이인상적인데다가내부인테리어와종업원들제복까지전부 흑백의모노톤으로맞추어져있고,가게에걸려있는그림들도유명화가들의작품, 김창열화백의물방울그림이여러점있었다.이러니여기앉아있는것만으로도 내자신이특별한존재가된듯한기분을느끼게해주는곳인데, 난기껏커피한잔이나,때론아니자주그비싼커피한잔값이없어서 3층구석의작은디제이실에들어가앉아음악을듣곤했다.(이집은레코드도전부원판이었다.) 친구는가게에멋진새음반이들어오면,나한테들려주고싶어안달이었고, 어떻게든주방에다애교떨어내음료수나간식까지도가져다주곤했다. (이게절대로있을수없는일이었다는걸나중에이가게사장님이랑도친분이생기면서알게됐다.) ㄱ사장님왈그당시에알았다면내친구는그자리에서당장짤렸을거란다. 아주꼼꼼하게질과서비스를체크하고,직원들에게따로숙소가있어서숙식까지제공하고 돈(월급)도다른곳보다더많이주고,한마디로당시최고의아르바이트자리라 그만큼직원(아르바이트까지도)관리가철저했단다. 여기가커피나빵맛도좋지만,값도무척비싸서,왠만한멋쟁이아니면안들어온다. 이가게는보통의커피숍이아니라처음부터경영학적으로철저히계산된벤쳐사업이라, 내친구들이다들잘생긴남학생이니,그세련된카페분위기랑잘맞아서그랬나보다. 덕분에나는원판으로온갖팝송과라디오에서도듣기힘든곡들을많이들을수가있었다. 남학생들이랑같이어울리느라팝송을것도주로하드락이라불리우는것들을들었는데, 아무래도클래식에익숙한내귀엔재즈나샹송이제일맘편한쟝르였다. 추억.2-동두천 여자디제이도한명이었는데,홍익미대회화과휴학생이었는데, 나랑친구가되서이친구의동두천집까지놀러가기도했고,같이화실하는친구들과어울리기도했다. 당시의나름나는불량학생이다했지만,으와,이친구들하고수준이달랐다. 술꾼들에다골초이고말투도옷차림도여자라기보다는남자처럼터프하고거칠것이없는것이, 미대생들은다이럴까싶기도했고,내색안하는라애는썼지만,조금겁나기까지했다. 그때처음따라가본동두천이란곳이참썰렁하고슬픈동네구나하는느낌이아직도생생하다. 서울토박이인친구네가그몇해전집안이빚에몰려가족들이야반도주하여정착한곳이동두천이란다. 그리고친구의그얇은벽의가건물같은집이층 친구방에는야전침대와작은테이블,의자두개,이젤하나화구상자, 그리고탁자위에는장미가그려진아주우아한핑크빛찻잔이두개놓여있었다. 그게유명한비싼도자기제품인데,살짝흠집이있는거다. 친구얘기로는자기가그림가르치던학생집에서얻어온거란다. 스승의날선물다른것대신그찻잔금간것이라도하나주시면안되겠냐고.. 그렇게어렵게얻어온것을,그썰렁한방에놓여있던유일한보석같은 그볼이넓은장미색일제홍차잔이얼마나탐이나던지…예쁜물건을보면욕심이, 그대로내얼굴에드러났나보다.그친구는결국다음날자기도아끼는그찻잔을 싸선내손에쥐어줬다.나보다더가난한집에가서얻어들고온걸생각하면, 참철도없었다.그저찻잔하나가날이렇게행복하게하는구나!하며 붕붕뜨는기분으로돌아왔던것. 지금추억을떠올리니눈물이나고,그친구도궁금해진다. 그당시에는더러같이어울리고했는데,어느순간인가더이상 연락이되질않았다.아마학교로되돌아갔던지, 어떻게해서든자기는미국에들어가그림그리며살거라던그꿈대로미국으로들어갔는지. 조블들어와초기에내가문리버란분의방엘그렇게자주갔던것이 문리버님말투나스타일이이친구를많이연상시켰던때문이었다. 혹시라도신이씨가소원대로미국에서문리버님처럼살고있지않을까해서..꼭그랬으면, 아니신이씨는그열정적인성격대로나보다훨열심히멋지게잘살고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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