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WP_Widget에서 호출한 생성자 함수는 4.3.0 버전부터 폐지예정입니다. 대신
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20년전 오늘 명컬럼 ‘거리의 편집자’ - Media Gaze…
20년전 오늘 명컬럼 ‘거리의 편집자’

지금부터 정확히 20년전인 1984 11월… 당시 저는 논산 훈련소에서 6주간의 신병교육 마친 , 경북의 군부대 운전교육대에서운전교습 막바지에서 자대배치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당시 교육대 교관들은 막사에서 조선일보 구독하고 있었고, 우리 교육병들은 저녁이 되면 교관들이 보고난 꾸깃꾸깃한 신문을 낱장으로 나눠 여러명이 돌려가며 읽을 있었지요.

어느날(지금생각해보면1130일이 맞겠네요) 조선일보 지면에는 당시에도 필명을 날리시던 김대중 칼럼니스트의 거리의 편집자라는 눈길을 끄는 제목의 컬럼기사 하나가 실렸고, 안경잽이들이 유달리 많았던 우리 부대에서도 당시 컬럼은 동기들사이 잔잔한 화젯거리로 회자되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1 기사와 빨간 줄의 의미’라는 부제가 달린 컬럼은 당시 조선일보 출판국장( 조선일보 고문)으로 계시던 김대중 국장이 동서남북이란 고정코너에 기고한 칼럼으로, 광화문 지하도에서 신문의 톱기사는 무시한채 1단짜리의 시국관련뉴스에 빨간줄을 그어 신문을 파는 사람들을 거리의 편집자 비유한 글입니다.「우리는 오늘도 거리의 편집자들에게 졌다. ‘ 친구들 잘도 뽑아낸다’면서 히죽히 웃을 수밖에 없는 마음 속에 쓰디쓴 느낌이 가라앉는다」라며 당시의 암울했던 언론상황과 신문기자로서의 무기력함을 자조하는 글였습니다.

당시 김대중 출판국장은 이후에도 비판적 칼럼을 계속써 정권의 미움을 받고 86 10 본의아닌 영국행을 해야했다지요. 레이건이 49개주를 휩쓸어 재선에 성공하고, 서울대와 대전 한남대 캠퍼스에 경찰이 투입되고, 대학생들이 민정당사를 점거하여 무더기로 구속되고, 가수 정수라가 대한민국이란 노래로 전국을 흔들어 놓던 그 달의 일이였습니다.

훗날 김대중 출판국장은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글을 개만 꼽아달라 요청을 받자, 주저없이 칼럼을 꼽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그걸 쓰고나서 외국의 독자들로부터 여러 통의 편지를 받았어요. 자기들이 신문기자들이 지금 기사를 제대로 쓰고 있고, 무엇인가에 짓눌려 있다는 사실을 가장 실감나게 표현했다는 거요. 그래서 칼럼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20년전 오늘…당시의 암울하고 짓눌렸던 언론상황을뒤로 그려낸 명칼럼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거리의 편집자들]

<김대중 記>

지하도(地下道) 신문팔이
12시쯤의 광화문 지하도(地下道) 점심을 먹으러 가는 사람, 점심을 먹고 나오는 사람들로 언제나 붐빈다.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 언제나 그렇듯이 그곳 역시 갖가지 잡상인들이 손님들을 부른다. 그들 사이를 비집고 하루의 소식을 제공하는 신문들이 잉크 냄새를 떨어내지도 못한 선을 보인다.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신선한 뉴스가 있는 날이면, 신문에 빨간 색깔의 줄들이 어지럽게 쳐져 있다. 신문을 파는 사람들이 손님들의 눈을 끌기 위해 나름대로 뉴스의 제목들에 빨간 줄을 그어서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빨간 연필로 강조한 기사들의 내용과 크기에 있다. 어떤 때는 3∼4 짜리 기사에도 줄을 그었는가 하면, 때로는 1 짜리에도 빨간 띠가 둘러져 있다. 신문의 편집자들이 그럴 만한 의미와 뉴스성을 감안, 톱이나 중간 톱으로 올린 기사는 외면당한 , 한쪽 구석에 나지막하게 자리잡은 기사들이 재빨리 선택되어 톱기사 이상의 관심사로 변신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을 보는 순간 신문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의 하나로 가슴이 막히는 어떤 어색함을 느끼곤 했다. 우리는 「작은 뉴스」로 취급했던 기사를 친구들은 무슨 안목으로 「큰 기사」로 판단했을까. 대답은 가지 중의 하나다. 우선 신문 파는 사람들의 안목이나 관심사에 대한 판단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신문을 만드는 우리들의 안목이다 센스가 그들보다 못했을 경우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우리들의 감각이 결코 그들보다 못할 리는 없지만, 우리에게 주어지는 여러 여건이 판단과 결과를 다르게 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우리는 신문 만드는 일에 종사하면서 그런 대로 경험을 쌓아 전문 직업인의 영역에 속한다. 그들 역시 어느 세월 동안 신문을 팔아 오면서 신문의 기사에 그런 데로 익숙한 경험을 지녔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을 굳이 비하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하고 신문 파는 일을 생계로 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라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놓은 빨간 줄의 기사가 사람들의 눈을 끌고 사람들이 기사 때문에 신문을 사게 된다면 문제는 그들에게 있지 않고,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는 것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없다. 그가 현재의 상황에 우리의 판단을 양보한, 신문 사안의 편집자들이라면, 그들은 상황에서의 괴리를 잘도 집어내는「거리의 편집자」들인 것이다.

여기서 굳이 우리의 판단과 결과가 일치되지 못하는 상황을 따질 생각은 없다. 그것은 어제오늘의 문제도 아니고 어느 하루에 해결될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다만 신문이 어떤 기사를 어떻게 다루느냐는 것은 어디까지나 신문인들의 판단에 맡겨져야 하고 신문인들은 스스로 판단에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형성돼야 한다는 상식적인 명제(命題) 거듭 강조하고 싶을 따름이다.


그러나 신문에 그어진 빨간 줄들이 지니는 다른 문제의 심각성은 반드시 지적되고 인식되어야 한다. 그것은 사회의 가치(價値)체계의 이원화(二元化) 현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신문의 판단에 의한 기사의 강도에 대해 회의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래도 감수할 만하다.

그러나「작은 기사」가「큰 기사」로 끌어올려지고「큰 기사」가 보아란듯이 외면당하는 상태가 계속되면 될수록, 사회에는 개의 가치 체계가 계속되면 될수록, 사회에는 개의 가치 체계가 굳어지고, 그것은 국민의 의식을 이원화하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다시 말해 믿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뒤집어서 믿어 버리는 국민들의 의식 체계는 결코 방치해서는 된다는 생각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출판물들에 의해 많은 양의 정보가 제공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양의 정보들이 제대로의 과정을 거쳐 상식적으로 처리되지 못한다. 과정을 봉쇄하고 있는 상황 때문에 정보들은 지하(地下) 흘러들어가 거기서「거리의 편집자」들에 의해 빨간 줄들로 처리되기도 하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거꾸로 믿어 버리는」상황을 낳는 것이다.

가치(價値)체계 이원화(二元化)
서울 근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어느 일본 특파원은「오랫동안 서울 특파원을 하면서 한국 정부의 공식 견해나 반응을 기다릴 겨를이 없어 미리 보낸 반응이나 견해가 결과적으로 실제 공식 반응과 일치하는 것을 종종 보았다」면서「왜냐하면 한국 사회는 어느 정도의 통제에도 불구하고 유통되는 정보량은 풍부하며, 따라서 정보에 따라 미리 짐작해서 보낸 기사가 실제와 일치하게 되는 것」이라는 글을 일이 있다.


일본 특파원의 술회는 우리 사회의 정보가 공식보다는 비공식으로 많이 유통된다는 사실, 그리고 비공식 정보로 짐작해서 때리면 대개 맞는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지만 말을 뒤집어 보면 비공식 정보, 다시 말해 거리의 편집자들이 작은 기사에 빨간 줄을 긋는 심리상태가 대단히 유쾌하다는, 상당히 우회적인 비꼼의 뉘앙스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사회에 여러 가치 체계가 있을 있고 독자적인 판단의 영역들이 널려 있어야 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어깨 너머로 고개를 디밀고 열심히 읽어 가는 기사가 반드시 사회에 필요한 정보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때로 감각적인 것에 보다 관심을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옳은 것은 어디서나 옳아야 하는 기본적인 가치 체계는 분명히 있어야 한다. 검은 것에서 것을 찾고, 것에서 검은 것을 찾는 것은 가치 체계의 전도이지, 다양성이 아니다. 특히 거리의 편집자들이 그어 놓은 빨간 줄의 기사가 결코 감각적이거나 센세이셔널한 것이 아니고 사회에 필요한 정보일 , 거기서 노출되는 가치나 의식 체계의 비뚤어진 전도는 길게 나라 전체를 위해 지극히 불행한 일이 아닐 없다.

때론 그런 가치 체계가 이원화되고 전도되는 상황에서, 다시 말해 작은 기사에서 기사를 찾아내거나 또는 기사의 행간에서 무엇인가를 풍기고 읽어 내려는 사람들을 가리켜 균형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사회가 된다면, 그것은 뭐가 잘못해도 크게 잘못된 사회가 아닐 없다. 우리는 오늘도 거리의 편집자들에게 졌다. 수치감과 창피스러움이 우리의 어깨를 움츠려 들게 하지만「저 친구들 잘도 뽑아 낸다」면서 히죽이 웃을 수밖에 없는 마음속에 쓰디쓴 느낌이 가라앉는다. <조선일보 1984.11.30일 동서남북>

4 Comments

  1. 이영태

    2004년 11월 30일 at 9:50 오후

    군부 정치 시절에 조선일보를 구독했는데 당시 저와 같은 사람들의 속마음을 때로는 행간을 통하여 혹은 우회적인 표현을 통해서 전달하는 것을 느꼈지요. 물론 사주가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신문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부터 갑자기 조선일보가 낯설어지기 시작합니다. 조선일보가 낯설어지기 시작할때 어? 저 사람이 왜 저러지 하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2. 이영태

    2004년 11월 30일 at 9:55 오후

    박홍, 김동길, 그리고 보수목사님들.. 그리고 매번 해가 바뀌고 정부가 바뀜에 따라 나와 같은 편에 있는 줄 알았던 분들이 저쪽으로 넘어갑니다. 갑자기 박정희를 찬양하고 군부시절을 변호합니다.
    이들은 종전의 위치에 머루르는 것이 아니라 종전에 스스로가 부정했던 위치로 뒤돌아 걸어갑니다.
    도대체 어디까지 따라왔다가 갑자기 팩 돌아서서 등을 보이는지, 그 지점이 어디었든지 생각해내려 애씁니다.   

  3. 아아거

    2015년 5월 30일 at 5:37 오후

    조선일보는 조선일보의 이익만를 위해 글을 쓰는 집단이지요

  4. 아아거

    2015년 5월 30일 at 5:38 오후

    그렇치 않나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