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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왜 100년전 옛날사진엔 웃는얼굴이 안보일까? - Media Gaze…
왜 100년전 옛날사진엔 웃는얼굴이 안보일까?

1백여년 전의 19세기의 흑백 사진속 사람들의 얼굴표정을 보면 웃는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고판에 박은 듯 한결 같이침울하고 근엄한표정들을 하고 있다.
왜 아니겠는가?
지금의 50, 60대 중장년층들이 어릴적 벽에 걸렸던 선대의 사진들을 기억해봐도모두가 근엄하게 무표정하거나 뾰로퉁한모습을하고 있음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어디를 봐도 요즘처럼 손가락으로 V자 형을 하고 있거나 이를 훤하게 드러내고웃는 모습은 좀처럼찾아보기 어렵다.

일설에는의료혜택 부족으로 치아가 썩었거나 치열이 가지런하지 못해서란 설도 있긴 하지만 설득력이 부족하다.
왜 그러할까?

엊그제뉴스를 통해 소개된 한 기사는(클릭) 이에 대한 근거있는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기사에서는 먼저 미국의 재간둥이 작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의 설명을 근거로 그들이 무표정하고 찌뿌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는데 대강 읽어봐도 매우 설득력이 있다.

[인용]
"사진은 가장 중요한 기록물로 여겨졌다. 우스꽝스럽고 얼빠진듯한 미소를 보이는 사진을 후손들에게 대대로 내리물림 하는 것만큼 상스럽고 볼썽스러운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니콜라스 지브스(Nicholas Jeeves)란 학자도 아틀랜틱스 매거진에서 같은 맥락으로마크 트웨인의 주장을 거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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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이를 드러내고 웃는 스타일이 우스꽝스럽고 바보같다고 믿었던 사람은 마크 트웨인만의 생각이아니다. 과거 위인들의 얼굴을 그린 초상화들을 봐라. 이를 허옇게 드러내고 웃는 초상화를 본 적이 있었던가?
유럽에서 17세기까지만해도 그림속에서나 실제 인물중에서이를 드러내 놓고 노골적으로 웃는 사람들 대부분은 가난한 거렁뱅이거나, 음탕한 바람둥이, 술 주정뱅이, 얼빠진사람, 그리고 광대 뿐이라는 통념이 자리잡고 있었다.

상류층들은 웃음에 인색했다.
보통의 가벼운 웃음마저도 예의와 교양에 어긋나는 것으로 보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1703년에 모 프랑스 작가는 그의 작품에서 웃는 얼굴을 아래와 같이 한탄하는 기록도 이를 뒷바침한다.
"치아가 모두 드러나도록 윗 입술을 높이 올리며 웃는 것은 큰 실례를 범하는 것이다.신은 우리에게 이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도록 두톰한 입술이란 덮개를 주지 않았던가…"
사람의 얼굴을 그림으로 그린 초상화도 이런 추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귀족의 사진대용으로사용된 초상화의 얼굴표정을 흉내내기란 쉽다.초상화는 망자의 인격체와동일시 될 정도로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망자의 생전 모습과 삶의 궤적을자손에게 전달하는 유일한 도구였다.
초상화는 사진처럼 ‘순간’의 포착이 아니고, 한 인격의 모럴의 결집체거나확신과 같은 것이었다. "

사람들은 사진을 박으며 초상화를 생각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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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행복, 유머, 친근함,온화함, 밝음으로 인식되는 웃음과 미소가 불과 1백년 전만 해도 이렇게 왜곡되어 있었다니 웃음만 나온다.

이러한 시대에 뒤처진인식, 도그마를 깨려고 우리는 지금사진을 찍을 때마다 ‘김치’와 ‘치즈’를 외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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