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 – 부소산성 (扶蘇山城)

부소산성(扶蘇山城)

충청남도부여군부여읍관북리63-1

041-830-2527

부소(扶蘇)는백제시대에"소나무"라는뜻을가지고있으며

백제의도성으로평시에는왕실의후원이였고

전시에는최후방어성으로이용되었습니다.

산성안에는식량을저정하던군창지(軍倉址),

삼천궁녀가절개를지키기위해던진낙화암(落花岩),

고란사(皐蘭寺),해맞이영일루(迎日樓),송월대(送月臺)등

고대중국,일본과교역로역활을하였던백마강이바로옆으로흐릅니다.

538년백제성왕이웅진에서사비로도읍을옮긴후

백제가멸망할때까지123년동안백제의도읍이었던곳으로,당시에는사비성이라불렀다합니다.

우리가백마강길입구에도착하였을때는비가부슬부슬내리는날씨였습니다.

모두우산을들고해발106m에자리한부소산성을향해천천히걸어들가고있습니다.

반월루(半月樓)

백마강이반달모양으로끼고도는부소산남쪽마루에있으며

부여시가지전경을한눈에볼수있는전망대이네요.

부소산성터길

해설사님의백제의마지막역사적인배경과인물들에대한해설을들으며

비오는날에슬픈이야기가더욱가슴에절절히파고드는낙화암으로발길을옮겼습니다.

연리지(連理枝)

다른나뭇가지가서로엉켜마치한나무처럼자라는현상을말합니다.

비는점점세차게내리는중에도낙화암으로가는숲길에서자욱한물안개가낀숲속을담아보았지요.

우산들고사진찍기힘들었지만백제의삼천궁녀의마지막이눈앞이아른거려낙화암으로향했습니다.

백화정

궁녀들의원혼을추모하기위해지은정자

백화정에서내려다본백마강이비가와서인지탁한흙물입니다.

시원한풍경이지만마냥슬퍼만보이는풍경입니다.

낙화암천년송

세월도잊은그빛깔늘푸르름은

님향한일편단심궁녀들의혼이련가라는시어가쓰여져있네요.

고란사를향해내려가는숲길이조심스럽네요.

고란사

은산숭각사에서옮겨온것으로정조때개건하였다하네요.

삼천궁녀의넋을위로하기위해세워졌다는이야기도전해진다고합니다.

절벽밑에서솟아나는물을고란정(皐蘭井)이라고합니다.

한번먹을때마다3년젊어진다고하나한숨에한사발들이키고말았네요…ㅎㅎ

고란약수를마시다갓난아이가된할아버지이야기가전해지는데….ㅋㅋ

후덥지근하고비는억수로내리는산행을한데다가

낙화암의삼천궁녀의슬픈이야기는아주갈증을더해주었지요.

고란정약수의이야기는전설일뿐인가봅니다…ㅎㅎ

고란초

그늘진바위틈이나낭떠러지에서자라는식물로고란사뒤편바위에있다해서고란초라한답니다.

멸종위기에있다는데…바위움푹들어간부분에있는거랍니다.

에효비속이라도고란초모습을확실히담았어야하는데…아쉽네요.

삼성각

독성,칠성,산신세분을모시는전각입니다.

고란정도마시고고란초도보았으니황포돛배승선을하러선착장으로내려갑니다.

고란사쪽에서타고구드레나루터로향합니다.

황포돛배에승선하여선상관광을합니다.

조룡대(釣龍臺)

중국당나라장수소정방(蘇定方)이백제의도성을함락시킨뒤

어느날대왕포(大王浦)하류에갑자기태풍이불어

바위나루[窺巖津]를지나낙화암(落花巖)까지잇대어있던수백척의당나라병선이순식간에뒤엎어지고말았다.

소정방은이돌연한괴변이왜일어났는지를일관(日官)에게물었다.

일관이말하기를,이것은백제를지켜온강룡(江龍)이화를낸것이라고하였다.

강룡을퇴치할방법을소정방이다시물으니일관은용이좋아하는백마를미끼로하여낚는것이좋다고대답하였다.

그래서소정방은쇠를두들겨낚시를만들고굵은철사를낚싯줄로하여

백마를미끼로강가운데바위위에앉아용을낚기로하였다.

그러자용은미끼인백마를삼켜서잡히게되었다고한다.

이일로하여뒷날사람들이소정방이용을낚았다고하는이바위를조룡대라하고,

백마를미끼로용을낚은강이라하여금강(錦江)의줄기인부여부근일대의강을백마강이라하였다고한다.

도선사황포돛배선착장

낙화암(落花巖).

서기660년(백제의자왕20)에백제가나당연합군()의침공으로함락되자

궁녀3000여명이백마강()바위위에서떨어져죽은바위라는뜻으로타사암이라하다가

꽃다운삼천궁녀가백마강에몸을던지는아릿다운모습을생각해서낙화암이라하였답니다.

절벽아래에새겨진낙화암()이라는글씨가새겨져있습니다.

백제의멸망에꽃다운3000궁녀의가슴아픈사연을상기하듯..

잊지않기를바라는듯….비가구성지게내리는

백마강선상에서낙화암을바라보고구드래나루터에서하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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