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1986년과 1987년에 같이 학교를 다니면서 같은 공부를 한 친구들과는 1년에 서너번씩 만나고 있다. 송년회와 신년회는 정기적인 모임으로 자리잡았다. 신년회는 자녀를 원하는 대학교에 무사히 보낸 친구(들)이 쏘는 걸로 언제부터인가 합의가 되었다.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지만 어쨌든 모두들 만족할만한 결정이다. 하긴 만나는데 그 어떤 이유나 방법이 문제가 될것이 없다. 시도때도 없이 만나는데 의의를 둘뿐.

전국 각지에서 모인 친구들이라 개성이나 성격, 지역적 특색등이 모두 달랐다. 자란 환경, 공부를 해온 과정도 다르고 공부를 마치고 걸어온 길도 각양각색이다. 인터넷 붐을 타고 가히 재벌에 견줄만한 성과를 거둔 친구들도 있고, 연락이 두절된 친구들도 더러 있다. 보기에 따라서 삶의 우열이 분명히 갈라지지만 어떤 위치와 직위에도 만나면 그저 반가울 따름이다. 그게 같은 시대를 살았던 동지애인가보다하고 짐작할 뿐이다

1986년과 1987년을 같이 보낸 기억은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동질감을 진하게 느끼는데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긴 어느 세대에서나 같은 시절 같은 역경을 헤쳐온 경험이 없겠는가. 우리가 어찌 일본의 만행과 뒤이은 비참한 전쟁을 겪은 윗 세대들의 심정을 알수 있을까. 그저 옛날 이야기 듣듯이 그렇게 역사로 이해할 뿐일텐데.

영화 ‘1987’은 그다지 보고싶지 않은 영화였다.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에서다. 그러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하는 무료 이벤트에 혹해서 보게 되었다. 다른 어려운 시대를 살아온 세대들에게는 가소로운 소리일수 있으나, 그 시대를 관통하며 헤쳐온 이들에게 그 시대에 대한 기억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아니 겪지 말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할 정도로 힘든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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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살았던 유년의 껍질을 너무 격하게 깨고 세상으로 나가버렸다. 너무도 분명한 선악의 갈림길에서 아무도 선택을 망설일수 없었다. 그 격한 토론을 뒤로하고 내디딘 발걸음은 제각각 달랐으나 누구도 이를 문제삼지 않았다. 그리고 영화에서처럼 여럿의 희생을 거치고서야 겨우 또하나의 터널로 들어설수 있었다. 영화가 표현한 희생은 그저 한 조각일 뿐이다. 훨씬 더 아프고 훨씬 더 지척에 있었다. 그리고 한 세대가 흘렀다.

그 시절을 잊지말라고, 기억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내가 살아가는 모습은 과거에 내가 행했던 수많은 결정과 습관, 고민과 실천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이다. 지금 내가 속한 사회가 가고 있는 모습 또한 과거 그 사회 구성원들이 행했던 모든 행위의 결과물이라는 사실 또한 명확하다.

기억하기 싫은 그 아픔과 두려움을 뒤로 하고 우린 더 행복해졌을까. 답은 없다. 지금 나의 모습,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지금의 선택이 또 한 세대 후 어떤 결과를 만들지에 대한 물음표만 남길 뿐이다. 우리는 지금 과연 현명한 선택을 하고 제대로 길을 찿은 것인가.

공짜라는 이유로 보게된 보고싶지 않았던 영화 ‘1987’은 그렇게 또 질문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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