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시간으로 지난 토요일 아침 9시에 월드시리즈 3차전이 LA 다저스의 홈 구장에서 시작되었다. 보스턴 구장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에 2연패(류현진의 1패 포함)를 당한 LA 다저스로서는 아주 중요한 경기였다. 보스턴 레드삭스도 멋진 팀에는 틀림없으나 류현진의 팀이란 이유로(과거 박찬호의 팀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야구팬들은 당연 LA 다저스를 일방적으로 응원했을 터. 마침 그날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꽉 찬 일정이 있어서 경기 상황을 한번도 볼수가 없었다. 보통 3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리니 12시를 전후해서 경기는 끝났을 터, 오후 4시 15분경 경기 결과를 확인하려고 했을때, 맙소사 ! 경기는 아직도 진행중이었다. 연장 18회라니. 미국 메이져 리그는 무승부를 허락하지 않는다. 24시간이 걸려도 승부를 내어야 끝이 난다. 결국 연장 18회 말에 터진 홈런으로 LA 가 귀중한 1승을 거두었고 류현진도 한 게임 더 던질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 한국인 최초 월드시리즈 선발로 나선 류현진, 출처:OSEN>
그리고 어제 그날의 연장 접전에서의 승리가 무색하게 LA 다저스는 1승 4패로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월드시리즈에서 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1988년 마지막 우승 이후 30년을 흘려보내게 되었다.
5연전의 시리즈 내내 구설수에 오른 것은 양팀 감독의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한 감독은 데이터 야구를 표방하며 선수들의 역량과 패기를 믿지 않고 자신이 경기를 지배하여 승리를 이끌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종일관 임하였으며(감독의 의지라기보다는 구단의 의지로 의심됨), 한 감독은 감독으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최소화하며 선수들의 역량을 믿고 선수들이 한계에 봉착했을 때에나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예상하듯이 전자가 LA의 감독이고 후자가 우승팀인 보스턴의 감독이다.
사실 양 팀의 객관적인 실력차는 크지 않다. 선수들 연봉 총액에서 리그 전체 1, 2위를 다투고 있듯이 양 팀 다 최고의 선수들로 꾸려진 팀이다. 결국 7차례의 승부에서 누가 더 분위기를 주도하는냐, 야구의 신이 누구를 편드는냐가 관건이었다. 그리고 누가 실수를 덜 저지르냐의 싸움이었다. 실수는 비단 선수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감독의 중요한 오판 또한 중요한 부분이었다. 결국 이기겠다는 선수들의 의지, 감독의 수싸움에서 보스턴이 이겼다는 것이 총평이다.
LA 감독은 선수의 역량과는 무관하게 데이터와 자신의 두려움에 편승하여 선수를 기용했다. 반면 보스턴 감독은 현재 가장 잘 하는 선수. 그 역량이 최고조에 올라와 있는 선수를 기용했다. 데이터에 기반한 야구가 장기전에서는 효과를 보겠지만 단기전에서는 도박이나 다름없다. 시즌 팀내 홈런 1-2-3-4 위 타자들을 후보선수로 남겨둔 결정이 과연 데이터 야구라는 이름으로 용인될수 있을 것인가.
3차전과 5차전을 제외하고 1,2,4차전에서 선발 투수를 믿지 못하고 첫번째 위기 상황에서 성급하게 투수를 교체한 것은 최악의 선택임이 결과가 보여주었다. 류현진의 첫 월드시리즈 또한 그 와중에 아쉬운 패배로 끝나버리고 다음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시즌 중 류현진의 투구는 압도적이지는 않지만 위기상황을 스스로 헤쳐나오며 승리를 거머쥐었기에 감독의 성급한 선택은 류현진 스스로에게도 불만이었을 것이다.
가장 안 좋은 모습은 마지막 5차전에서 나왔다. 보스턴 선수들은 스스로 무언가를 하려 얘쓰며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준 반면, 감독의 어설픈 간섭에 내내 시달린 LA 선수들은 의욕도 투지도 모두 잃고 패배를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감독이란 자리는 어쨌든 어려운 자리이지만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만 지키면 큰 비난은 받지 않을수 있는 자리이다. 선수 선발과 출전에 있어서 객관적이어야 하며 때론 주관적일 때에는 그 이유를 설명할수 있어야 하고 그 책임 또한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돌릴수 있어야 한다. 잘못된 결과 앞에서는 선수의 책임으로 돌리기보다는 자신의 책임으로 돌릴수 있어야 하며, 선수들의 역량보다 조금 더 나은 결과를 반드시 만들어내야 하는 자리이다. 우리 국가대표팀 감독들 중에도 이 원칙을 지킨 감독은 좋은 결과와 좋은 평을 받으며 그 자리를 떠나거나 유지했지만 그렇지 못한 감독들은 비난 속에 그 자리를 쫓기듯 떠나야 했다.
보스턴이 너무 강해서 수월하게 우승을 차지한 이번 월드 시리즈는, 9명이 아니라 감독까지 끼어들어 10명이 뛰는 바람에 그 역량에 비해 너무 허무하게 패퇴한 LA 선수들로 인하여 이래저래 뒷말이 무성해졌다. 때론 10명보다 9명이 더 강하다는 교훈을 남기고 말이다. 야구는 9명이 하는 게임이라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