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틈 – 신용목 ( 1974∼ )

바람은 먼곳에서 태어나는 줄 알았다 태풍의 진로를 거스르는 적도의 안개 낀 바다나 계곡의 경사를 단숨에 내리치는 물보라의 폭포

혹은 사막의 천정, 그 적막의 장엄

아랫목에 죽은 당신을 누이고 윗목까지 밀려나 방문 틈에 코를 대고 잔 날 알았다

달 뜬 밖은 감잎 한 장도 박힌 듯 멈춘 수묵의 밤 소지 한 장도 밀어넣지 못할 문틈에서 바람이 살아나고 있었다 고 고 고 좁은 틈에서 달빛과 살내가 섞이느라 바람을 만들고 있었다

육체의 틈 혹은 마음의 금

그날부터 한길 복판에서 간절한 이름 크게 한번 외쳐 보지도 못한 몸에서도 쿵쿵 바람이 쏟아져나왔다 나와 나 아닌 것 삶과 삶 아닌 것이 섞이느라 명치끝이 가늘게 번져 있었다

처음에 시인은 바람은 먼 곳, 적도의 안개 낀 바다나 사막의 천장 같은 곳에서 태어난다고 연막을 쳤다. 사실 바람은 아랫목에 죽은 가족을 누이고 윗목에서 방문에 코를 대고 잔 날, 소지 한 장도 밀어넣지 못할 방문의 좁은 틈에서 살아나는 것이었는데. 죽은 자는 산 자처럼 아랫목에 눕고 산 자는 죽은 자처럼 찬 윗목에 밀려 낯선 이별을 겪는 한밤, 고조된 몸과 마음의 총화가 익숙한 세계를 뚫고 틈을 발견했다. 바람이 살아나는 문틈을. < 이진명·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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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1. 겨울비

    23/02/2011 at 21:42

    틈- 허만하

    틈을 주무른다. 애절한 눈빛으로 서로를 더듬는 알몸의 포옹이 만드는

    캄캄한 틈. 멀어져가고 있는 지구의 쓸쓸한 등이 거느리고 있는 짙은 그늘.

    진화론과 상호부조론 사이를 철벅거리며 건너는 순록 무리들의 예니세이 강.

    설원에 쓰러지는 노을. 겨울나무 잔가지 끝 언저리.

    푸근하고도 썰렁한 낙탓빛 하늘 언저리. 안개와 하늘의 틈.

    지층 속에서 원유처럼 일렁이고 있는 쓰러진 나자식물 시체들의 해맑은

    고함소리. 바위의 단단한 틈. 뼈와 살의 틈. 영혼과 육신의 틈.

    빵과 꿈 사이의 아득한 틈. 낯선 도시에서 마시는 우울한 원둣빛 향내와

    정액빛 밀크 사이의 틈. 외로운 액체를 젓는 스푼.

    존재는 틈이다. 손이 쑥쑥 들어가는 틈이다.

    허만하,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 솔, 1999
       

  2. 참나무.

    24/02/2011 at 07:54

    아침에 조조 한 편 보고…지중해의 빛 들고 서울숲에서 놀다왔어요
    날 풀렸다고 컴에 앉을 시간이 없네요
    보라색 시집 들고다니며 나랑 공통분모 발견하며 다니느라…^^
    유안진 시인의 시. 오늘 읽은 것 중에도 ‘틈’ 이야기가 나왔는데
    지하철 안, 포스트 잇이 없어서… 나중에 올려볼게요

    허만하 시인의 동 시집 있는데도 이 시를 기억못하겠네요
       

  3. 참나무.

    24/02/2011 at 08:05

    나 밖을 떠도는 내가 찾아다니는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그 우주는 어딘가
    머리 속 전두엽과 후두엽사이
    틈 없는 틈새를
    호시탐탐 노리다가 내 안에 들어와서
    거꾸로 흐른 시간 안에 나를 잡아두고 싶어 하는
    내눈
    응시하고 있으면서도 보고 있지 않는 눈동자
    그 너머로 얼핏 잡힘 뻥 뚫린 거긴가
    등잔 밑이 어둡다고
    먼 데가 가까운 데라고
    훗날이 오늘이라고
    고개드니
    입구(入口)이자 통로(通路)이자 출구(出口)의 문(門)인
    내 눈동자 너머의 광할한 허공(虛空)
    여기 지금 너머(byyond here and now)
    나를 열지 않고는 나갈 수도 없는 훗날의 거기를
    오늘 여기로 살아야 한단다

    -유안진, 거짓말로 참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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