껌벅이다가

느닷없이 너 마주친다 해도
그게 무엇인지 알아채지 못할 것 같다
물건을 고르고
지갑 열고 계산을 치르고
잊은 게 없나 주머니 뒤적이다가
그곳을 떠나듯

가끔
손댈 수 없이
욱신거리면 진통제를 먹고
베개에 얼굴을 박고
잠들려고
잠들려고 그러다가

젖은 천장의 얼룩이 벽을 타고 번져와
무릎 삐걱거리고 기침 쿨럭이다가
왜 그럴까 왜 그럴까
도대체 왜 그래야 할까
헛손질만 하다가 말듯이

대접만 한 모란이 소리 없이 피어나
순한 짐승의 눈처럼 꽃술 몇 번 껌벅이다가
떨어져 누운 날
언젠가도 꼭 이날 같았다는 생각
한다 해도
그게 언제인지 무엇인지 모르겠고

길모퉁이 무너지며 너
맞닥뜨린다 해도
쏟아뜨린 것 주워 담을 수 없어
도저히 돌이킬 수 없어
매일이 그렇듯이 그날도
껌벅이다가
주머니 뒤적거리다
그냥 자리를 떠났듯이

껌벅이다가 – 최정례 4번째 시집 레바논 감정 10 ~11p

당신은 찔레 가시 속에 있었지요 찔레 덤불 앞에서

이쪽으로 눈길을 주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요 찔레 덤

불과 나 사이엔 조붓한 길이 굽어 산을 오르고 등 뒤

로는 산골짝 물이 요란하게 뒤집히며 흘러가고 나는

당신을 똑바로 못 보고 비스듬히 찔레 덤불만 보는 척

하고 아니 나는 당신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모른 척하고내가 당신의 가시에 오

래 찔리고 있었다는 걸 전해야 하나 어쩌나 그러다가

다 흘러갔지요 그러다가 당신의 눈 당신의 귀 당신의

이마 온통 찔레 가시덤불인 채로 두고

어느 날 보니 나는 멀리도 흘러왔겠지요 말똥구리

소똥구리 말똥을 굴리며 엎어지며 고꾸라지며 들판을

건너가고 불 켠 차들이 요란하게 흘러가는 거리를 지

나가고 있겠지요 가뿐 숨을 내쉬다 검은 눈을 껌벅거

리다 이내 눈을 감겠지요 달리는 구급차 속에서 어딘

가로 가기는 가는데 큰 강에 이르기도 전에 세상에 찔

레 덤불 기억조차 없고 이따금 자잘한 꽃잎 떠내려오

지만 아무것도 모르겠고 따끔따끔한 이것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고

찔레 가시덤불 同 詩集 14~15P

228.JPG
네에. . .더러운 그리움 때문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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