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화 회화전- 한옥갤러리

미인도,장지에 프린팅채색,106×29,2015 미인도,장지에 프린팅채색,106×35,2015

성형미인도.

작가는 이야기를 읽어주면서 동시에 각색한다고 했다. 그처럼 이번엔 전통적인 미인도를 가져와 현대판 미인도로 뜯어고쳤다. 얼핏 전통적인 미인도 그대로인데, 알고 보면 아담 사이즈의 전통적인 미인이 8등신 몸매에 이목구비가 크고 뚜렷한 쭉쭉빵빵 미인으로 거듭났다. 이렇게 종이호랑이는 호랑이 뒤에 숨고, 토끼는 엽기토끼 뒤에 숨고, 아이덴티티는 페르소나 뒤에 숨고, 얼굴은 가면 뒤에 숨고, 이면은 표면 뒤에 숨는다.

그렇게 현대인은 정체성 지우기에 급급하고, 얼굴 지우기에 급급하고, 이면 지우기에 갈급하다. 그리고 그렇게 지우다가 실제로 다 지워져서, 어쩜 현대인은 정체성을 상실한 시대며 얼굴이 부재하는 시대 그리고 이면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오로지 표면만이 진실이고 진정인, 그런 초현실적인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의 성형미인도는 그런 초현실적 현실(비현실?)을, 얼굴도 핏기도 그리고 당연히 영혼마저 없는 사이보그 세상을 풍자하고 있었다.

어제 다녀온 한옥 갤러리 유독 미인도가 눈에 띄었다.

6월 들어서자 마자 메르스 때문에대형 미술관은 피하고

소소한 작은 갤러리 위주로 다니기로 했다.

전문 평론가의 글을 읽지 않으면 도통 이해 불가여서

올려두고 천천히 보려고…

한경화, Han Kyung Hwa

한옥갤러리 / 6월3일~6월13일

전화02-3673-3426 / 팩스02-3673-3425

홈페이지http://galleryhanok.blog.me

주소110-260, 서울 종로구 가회동 30-10

한경화,금호동 앨리스,장지에 채색,103×133,2011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용궁에서 탈출한 토끼

고충환(Kho, Chung-Hwan 미술평론)

(… 중략…)

그렇다면 엄밀하게 그 분위기는 어디서 어떻게 연유한 것인가. 허접공주와 울랄라 백설공주에서 보듯, 그리고 가족 혹은 아이들을 대리하고 있는 의인화된 토끼가 등장하는 토끼의 집이며 금호동 앨리스에서 보듯 동화적인 상상력에 연유한 것이며, 동화에 대한 재독서에서 유래한 것이다. 잔혹동화라고 할 것까지야 없지만 전래동화가 은폐하고 있는 억압된 욕망을 복원하고 바로잡는 과정이며 경우로 보면 되겠다. 다시, 무슨 말인가. 이야기를 읽어주면서, 동시에 지어낸다.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또 다른 책을 저술(각색?)한다. 작가가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과정에서 불현듯 아님 은연중에 롤랑 바르트가 개념화한 작가적 텍스트(그저 수동적으로 읽기만 하는 독자적 텍스트와 비교되는)가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은 동화책(이를테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속으로, 지어낸 이야기며 판타지 속으로, 그리고 그렇게 하나의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의 꼬리를 물면서 연이어지는 이야기의 무한순환 속으로 빠져든다. 혹은 빠져들게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순환구조 속에서 현실과 비현실, 현실과 가상현실, 현실인식과 상상력, 그리고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지워진 제3의 어떤 차원을 열어 놓는다.

아이의 눈으로 본 숲속과 피안. 작가의 그림은 자전적이고 서사적이고 문학적이다. 이야기를 읽어주면서 동시에 이야기를 생성시킨다. 그리고 그렇게 새롭게 생성되는 이야기가 최초의 이야기를 넘어서고, 원본과 사본과의 경계를 지우는 논리의 비약이 있다

한경화,숲 속 대통령,장지에 채색,107×147,2015

이를테면 아이가 무슨 순례자인 양 숲속으로 접어든다(숲속 대통령). 여기서 숲은 또 다른 미지의 세계를 의미하고, 아이의 눈을 통해본 작가의 무의식(숲속과 무의식이 동일시되는)을 의미하고, 아이 자신의 호기심천국을 의미한다. 그 숲에는 민화풍의 해학적인 호랑이가 살고, 호랑이보다 큰 토끼가 산다. 아이는 호랑이와 토끼 중 과연 누가 이 숲속의 진정한 제왕(주인?)인지가 궁금하다. 당연 호랑이가 되겠지만, 정작 호랑이는 종이호랑이처럼 평면적이고 얇다. 여기에 그 생긴 꼴이 우스꽝스럽기조차 하다. 이에 비해 토끼는 훨씬 실감이 있고(실사로 재현된), 게다가 호랑이보다도 더 크다. 그저 논리의 비약 내지 유별난 상상력으로 볼 일은 아니라고 본다. 실제로 아이의 눈으로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 일이다. 학습효과가 아니라면, 타자의 눈을 통해본 경우가 아니라면, 선입견과 편견의 눈으로 본 경우가 아니라면 그렇게도 보인다. 의식을 제로지점에 내려놓고 보면(현상학적 에포케), 생판 처음 보듯이 보면 그렇게 보인다. 혹은 이런 제3의 눈(심안? 혜안?)을 복원시키기 위해 일종의 낯설게 하기를 예시해주고 있는 경우로 볼 수도 있겠다.

어쩜 의식을 내려놓고 본 혹은 맨눈으로 본 세계의 진상이란 사실은 가변적이고 비결정적이고 우연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의식이 세계를 만들고 이데올로기가 세계를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의식이 이런 세계를, 그리고 저런 이념이 저런 세계를 낳는 것. 여기서 아이의 눈은 진실을 본다. 아이의 눈은 즉각적으로 진실을 알아보는(알아채는) 동물적인 직감이 있다. 앎이 아닌 몸으로 보기 때문이고, 이치가 아닌 감정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 맨눈으로 보면 호랑이 흉내를 내는 종이호랑이가 우습고, 괴물토끼(엽기토끼?) 뒤에 숨은 토끼가 우습다. 이미지 정치학(정치에서 결정적인 것은 실제가 아닌 이미지)과 파사드의 정치학(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이면이 아닌 표면) 그리고 정치적 키치가 우습다(아님 재밌다?). 그렇게 작가는 아이(어른아이?)의 눈을 통해 사회적 현실이며 정치적 현실을 풍자하고 있었다.

한경화,13월의피안,장지에 채색,107×139,2015

그리고 아이는 차안과 피안의 경계 위에 서있다(13월의 피안). 여기서 13월이라는 제목이 흥미롭다. 게오르규의 소설에서 유태인으로 오인 받은 주인공이 현실도피를 위해 25시라는 없는 시간을 지어냈듯이(한편으로 그 시간은 악몽 같은, 할 수만 있다면 지우고 싶고 없었던 일로 하고 싶은, 그런 비현실적이고 심리적인 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13월은 현실에 대한 부정의식을 반영하고 있고, 그 연장선에서 일종의 피안이며 유토피아를 암시한다. 어쩜 13월의 피안이란 제목을 통해서 작가는 13월이 없는 것처럼 사실은 피안도 유토피아도 없다는 반어법적 현실을 암묵적으로 증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가 맞닥트릴 암울한 현실을, 그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한 현실을, 상상의 도피처마저 허용되지 않는 불임의, 불모의 현실을, 상상을 무미한 현실로 소환해 들이는 가상적 현실을 증거하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는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입센의 인형의 집 사이, 용궁에서 탈출에 성공한 토끼와 또 다른 현대판 용궁인 하수구 통풍구 사이, 그리고 어쩜 현실과 비현실, 현실과 가상현실, 현실인식과 상상력, 그리고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저 홀로 셀카봉을 들고 서있다. 그 자체가 오리무중인 현실인식의 알레고리를 보는 것 같다. 그렇게 아이는 숲속으로 들어가고 미지의 세계에 입문한다. 피안으로 들어가고 오리무중의 현실에 눈뜬다. 작가의 그림은 그런 반어법처럼 보이고, 알레고리처럼 읽힌다

P.S

015.JPG

오늘(6.5) 지인과 다시 찾은 한옥갤러리

작가의 설명으로 미인도 옷고름에 새겨넣은 샤넬마크 추가합니다

처음 볼 땐 당연히 그냥 스친 부분이었지요

현대인들 성형뿐 아니라 명품에 연연하는 걸 꼬집은 듯…

016.JPG

동행한 지인은 그림을 꼼꼼히 보고 마치맞은 질문도 했습니다

작품의 아이는 따님이냐고…

‘맞다’ 했습니다

굉장히 좋아하겠네요/ 아주 많이 좋아한다

하며 더 친절하게 설명을 했습니다

017.JPG

아이가 타고있는 게 뭐더라(스카이 씽씽?)

제가 표시한 부분 작가 사인이 있었어요..^^

이번 5,6월은 어이된 셈인데 한 번 다녀온 곳을 또

가게 된다고…얘기하며 웃었답니다

작가의 설명을 꼼꼼하게 들으니

작품에 훨씬더와닿은 건 사실이지요

화선지에 쓰기 어려운 석채랑 크리스탈 입힌 것까지 알게 되었으니…

작품이 전시장과도 잘 어울린다

친절한 설명 고맙다 하고 다음 행선지로 향했지요

오늘 주 목적은 윤보선 고택 개회나무꽃 향기 맡기

7 Comments

  1. 참나무.

    04/06/2015 at 10:20

    "난 명예와 욕망과 물질에 눈이 먼 사람을 경멸하고 있다. 난 순수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사랑을 찾아 헤매고 있는 이방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배창호 감독의 지하철 자살 사건을 쓴 한현우기자는 영화’적도의 꽃’
    첫 나레이션이 이렇게 시작한다며 그를 추억했다.
    이 영화를 나는 본 적이 없다
    내 기억이 맞다면 최인호 작가 신문연재소설인 것같은데…
    그의 다른 영화를 나는 몇 개나 봤을까 한 번 추려볼 일이다.
    대한민국에서 오랫동안 감독으로 살아가는 일이 이렇게 힘 든일이었고
    나도 힘들게 한 1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날이다…

    본문관 상관없는 글…뜬금없이…;;
       

  2. 선화

    04/06/2015 at 22:28

    우울증이라고 하던데…

    자살이 아니고 발을 헛디뎌 그런사고가 생긴거라고
    우겨주던데요? ( 갑자기 이름 잊음/ 아시죠? ㅎ)

    저 미인도의 여인…정말 미운데요? 가늘고 긴 눈을 그려넣고 싶습니다!! ㅋ~   

  3. 참나무.

    04/06/2015 at 22:54

    언제부터인가 명화를 페러디한 작품들이 유행처럼 번졌지요
    피카소도 마네의 ‘풀밭위의 식사’ 등을…
    이후 수많은 작가들의 명화 페러디들 지금도 이후에도 퍼지리라 믿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선 낯익어서 감상자들에게 안심을 주면서
    작가나름의 개성에다 약간의 아이디어만 추가하면 (보테르 외)
    생각이외의 호가를 누리기도 하는 듯
    요즘 우리나라도 모니카의 명화여행이 열리고있지요
    글쎄요 아이들께 다가서기는 좋은 장점도 있지만
    일부에선 좋지않게 보기도 한다지요

    분리수거하고 왔는데 오늘 날씨 흐리고 지금 현재 서울 날씨 비옵디다
    – 그래서 또 기분이 좋아집니다 저는
    이런 날씨 덥지않고 다니기좋잖아요
       

  4. Hansa

    05/06/2015 at 01:29

    대학시절, 리포트를 열심히 짜깁기해서 내던 세대가 자라서
    그림까정 짜깁기하나 봅니다.. 하하

       

  5. 아카시아향

    05/06/2015 at 06:24

    오랫만에 한국 드라마 보면
    등장인물들이 다 비슷비슷하게 보여서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어요.

    저도 갑자기 뜬금없이…;;^^
       

  6. 참나무.

    05/06/2015 at 09:01

    향님 맞아요 왜그리 뜯어고치고 보톡스 주사들도 서슴치않고 맞는지…
    저도 맘에 안든답니다. 얼굴이 무기인 직업은 할 수없다손 치더라도
    외국배우들 자연스러운 모습…그래서 더 좋아보이더군요..

    뜬금없이 올려주시는 답글이 더 재밌네요..^^
       

  7. 참나무.

    05/06/2015 at 09:27

    한사님 오늘 작가랑 제법 많은 애길 나누고왔는데
    작품의도도 확실하고 노력 많이 하는..진정성이 있는 작가라 응원하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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