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는 故鄕의 沔川중학교(沔川 : 아주 오래된 歷史를 지닌 고장이다. 고려창업공신인 복지겸장군이 태어난곳이고, 그가 심었다는 銀杏나무가 아직도 생장하고 있다. 그리고 熱河日記를 쓴 연암 박지원이 縣監으로 재직하기도 한 고장이다. 그리고 옛 성곽을 재건하느라고 초등학교도 우리의 모교인 면쳔중학교에 이사를 하였다.)를 동창 34명이 訪問을 하였다. 정말로 50년이라는 세월이란 半世紀가 흘러 가고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히였는데, 5번이나 循環을 한 세월이다.
동창들을 50년만에 만나니 우리는 참으로 幸運兒들이고, 再會의기쁨과 감사의 마음이 가슴속에서 우러 나오는 만남이었다. 왜냐하면 50년 동안에 건강하게 살아 왔다는 증거이고, 우리나라를 일으켜 세우면서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모임이었고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母校를 방문히여 교장선생님으로부터 현황을 청취하니, 人口絶壁이라는 말이 실감이 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우리가 졸업한 해는 1968년 2월은 눈이무척이나 많이 오고, 김신조 일당이 靑瓦臺를 습격한 사건이 나고 예비군이 창설되는 등 참으로 어련운 시기었다. 그럼에도 그때에 2학급에 128명이 卒業을 하였는데, 지금의 전교생은 50명이고 올해 입학한 학생이 15명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人口 감소와 저출산이라는 퇴보를 하고 있는 현장을 보니 母校를 방문하였다는 기쁨보다는 우리나라의 미래가 암담하다는 것을 느끼는 旅程이었다.
이번 방문은 동창중에서 사업을 하는 친구가 소요되는 경비를 부담하고, 몇몇 친구들이 연락을 취하여 모임이 성사된 것이다. 母校를 방문한 기념으로 奬學金(모임을 주선하고 비용을 부담한 동창이 마련한 것임.)을 교장선생님께 전달을 하고는, 방문 기념 사진을 찍고서는 점심을 먹으러 우리고장의 유명한 日出과 日沒을 한곳에서 볼수 있다는 “왜목마을”의 횟집으로 옮겨서 그동안 못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향에 내려와서 농사를 짓는 친구가 마련한 杜鵑酒(면천의 명주임)로 乾盃를하면서 식사를하였다. 참석한 동창들중에는 여자동창이 7명이나 참석하여 자리를 멋지게 하여 주었다.
왜목 마을은 경관이 멋진 마을이지만 그 옆의 석문화력발전소에서 내뿜는 가스연기 때문에 牙山灣 바다가 뿌였게 흐리어 있고, 먼지와 가스 매연 때문에 가장 公害가 심한 지역이 되어 버려서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産業化와 發展에 대한 代價이고 이것을 잘 극복하야할 숙제이기도하다.
여러동창들이 말하기를 이렇게 오래간만에 만났으니 이제는 자주 만나기로 하자고하여 매년에 모임을 갖기로하고, 그자리에서 주소를 작성하여 각자가 나누어서 간직하면서 모임을 마치고 버스를타고서 서울로 향하였다.
마지막으로 이번 모임에서 가장 印象에 남는 동창은 시골에서 평생을 농사에 종사하여 가업을 일으킨 “여인복”이라는 친구이었다.
이글의 결론은 어렸을 때의 친구는 영원한 친구이고 同窓이며, 우리고향에서 태어나서 이제까지 살아왔음을 感謝하면서 살아가야겠다고 다짐을하고, 다음에는 더 많은 친구들이 참석하였으면 바램을 가져 보았다.
데레사
2018년 3월 30일 at 1:09 오후
친구는 묵을수록 좋다는 말이 있어요.
오래된 친구는 언제 만나도 부담없고 좋아요.
저도 초등학교 동창회도 나가고 중고등학교도 나갑니다만
그 모임들처럼 즐겁고 흉허물없는 모임은 없어요.
대학동기들만 해도 좀 타산적이 되어 있거든요.
이길영
2018년 4월 2일 at 11:42 오전
매번 글을 읽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집이 부천인데, 만나뵙고 커피나 식사를 대접하고 싶습니다.
저의 e-mail은 leegilyo@inha.ac.kr/입니다. 가능하시면 연락주세요. 무례인지 모르겠습니다.
부천에서 이길영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