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천사를 만나러 온 아줌마 천사

<백혈병을앓고있는소녀시인허혜린과서강대영문과장영희교수>

큰슬픔만이작은슬픔을위로할수있습니다.정호승시인의말입니다.7월23일토요일오후서울선유도공원에있는한강전시관에서는초등학교6학년소녀시인의출판기념회가열렸습니다.주인공은올해13살먹은허례린양입니다.경기도파주시금촌초등교에다니고있습니다.

그런데허양은백혈병환자입니다.작년11월진단을받았습니다.아직골수공여자가없어서항암치료를계속하고있습니다.허양의평생소원이시집을내보고,시인이되는것이었다고합니다.

이런아이들을위해자원봉사를하는단체가한국메이크어위시(Make-A-Wish)재단(사무총장박은경02-2144-2241)입니다.1980년미국에서만들어졌고,지금은전세계32개국에서활동하고있는단체인데,한국에는2003년1월창립됐습니다.생명의위협을받고있는어린난치병환자들에게마지막소원하나를성사시켜주는단체입니다.

한국메이크위시는허양에게시집을만들어주기로했습니다.왜냐하면허양이써놓은시가제법됐기도했거니와,시집으로엮어도좋을만큼수준이높았기때문입니다.

나혼자서

힘든싸움을할때

잠시머물러준

그대

혹여나

내곁떠날까봐

마음한구석꽉잡아놓았는데

그대떠날때쯤

어쩔수없는마음에

슬그머니그대마음

풀어놓는다

아무것도모르며

떠나는

그대뒷모습보고

쉴새없이내눈에서

그리움이흘러내린다

나혼자서

힘든싸움하던그때가

너무무서워서

나너무외롭고힘들어서

그대떠나시면모두사라져버릴꿈

나다시는느끼고싶지않아서

그대를놓아준다

혜린이의그리움이라는시입니다.새없이내눈에서그리움이흘러내린다는대목이제일많이좋다쪽지글이그시에는붙어있습니다.시화전을겸하여열리는출판기념회에는시와그림들을이젤위에올려놓았고,그시에포스트잇을붙일수있도록해놓았거든요.

혜린이는정말예뻤습니다.청소년을위한TV드라마에주연으로출연해도손색이없을만큼이목구비가귀여웠습니다.

<시카드에사인을해서봉사원언니들에게선물하고있는허혜린양.왼쪽이엄마김주한씨.오른쪽이남동생재권.>

이날행사에는특별손님으로서강대영문과의장영희교수가왔습니다.장교수는본인이암환자입니다.소아마비를앓아1급지체장애인이기도한장교수는이미4년전에유방암수술을받았습니다.그런데작년에그것이전이된것으로밝혀져지금도너무나고통스러운항암치료를받고있습니다.

암환자가암환자를위로하고격려하는자리가됐습니다.장교수는자기차례가되자목발을짚고힘겹게연단에올라가마이크앞에섰습니다.

혜린이는시인의눈과마음을타고태어난것같습니다.나는두번놀랐습니다.하나는메이크어위시라는단체에대해서입니다.둘째는혜린이의시에대해서입니다.제가방금제팬클럽인정모에갔다왔는데,초등학교6학년의시가맞느냐는얘기를했습니다.영미문학의대가들의시에못지않게훌륭했습니다.

솔직히저는오늘아침졸린눈으로혜린이의시를읽기시작했습니다.그런데처음시를읽다가깜짝놀라서눈을크게떴습니다.내안의나라는첫번째시입니다.

어찌하녀

내가안의

너를생각했는지

비오는날의

먼지처럼

비록나는

사라졌지만

내안의너만은

아직이생에

존재한다

나보다

내안의나를

더욱생각한마음이

나의곁에흙한줌으로

나와함께남아있다

(장교수가감탄할만한시였습니다.혹시혜린이를대신해서어떤어른시인이써준것이아니라면이시는대단한시임에분명합니다.병든육신의내부에깃들여있는명징한영혼을지닌또다른나를상정하고있는시작법이놀랍습니다.장교수의육성을계속들어보겠습니다.)

나는남은시들을다읽고,혜린이를만나러가는구나,커다란희망과포부를갖게됐습니다.다음에주목한시는어려운모험이란시입니다.

장거리의

길을걷지만

험한

길을걷지만

어려워도

힘들어도

결국엔

결국엔

끝이라는

존재가

너의

손끝에

닿는단다.

(장교수는이대목에이르러자신의상황을빗대어약간감정이일어나는것같았습니다.)

저도방사선치료도받고항암주사도맞고있습니다.혜린양처럼저도백혈구수치에따라울고웃습니다.끝이란존재가너의손끝에닿으리라는말은고통이언젠가는끝날것이라며희망을버리지않았다는뜻입니다.아직끝이오지않았고,과정에있지만,분명히우리는그끝에닿을것이란혜린이의시에서저는희망과힘을얻었습니다.

시인이되는제일중요한조건은내가아파보는것입니다.내가병에걸려야다른이를이해하는폭이넓어지고깊어집니다.병과고통은시인의몸과마음을성숙하게합니다.혜린이는내가아픈것이결코나쁜것만은아니라고말하고있습니다.이세상이공평하지않은건이라는시를읽어보겠습니다.

이세상에

아픈사람이

있는것은

그사람이

불행해서가아니다

다만

이세상의

악을

물리치는것이다

만약아픈사람이

없다면

사람들은

희망과도움을

잊었겠지

아픈사람이

있기에

그사람을

보기에

이세상엔

악말고도

선이존재하는

것이다.

아픈사람으로

인해

세상이

밝아지는것이다

병은고마운존재일수도있다는것,병을이야기해서희망을이야기하는것,제가50이넘어서깨닫고있는것을혜린이는13살에깨달아나에게,우리에게가르쳐주고있는것입니다.

시인은사물의앞만보는게아니라속도보고뒤도봅니다.혜린이는병이라는것의피상적인의미뿐아니라함축된의미를깨닫는경지에다다랐다고봅니다.

저는나중에혜린이의시를영어로번역해서노벨문학상을받게하고싶습니다.앞에전목사님께서시인들은천당에간다고했는데,저도혜린이의옷자락을붙잡고천국욕심을내볼까그런생각도합니다.

저는항암치료의후유증으로손바닥이갈라져로봇처럼반창고를붙이고있습니다.어려움겪으면끝이와서우리손을잡아줄것입니다.다른사람에게위로를주는아름다운시인이될것이라고믿어마지않습니다.

<장영희교수와허혜린양>

장교수의격려사가진행되는동안좌석에앉은청중들은숙연했습니다.몇몇은코를푸는척하기도했습니다.혜린이는맨앞줄에엄마와남동생사이에앉아있었습니다.서울용산구에서환경미화원으로일하는아빠는뒤에다섯번째줄맨왼쪽에소리없이앉아있었습니다.가끔손가락으로눈가를비비는것같아보였습니다.

혜린이는아직골수공여자가없습니다.아빠의걱정은태산같습니다.이달말까지만기다려보고그도안되면제대혈을두개정도사용한치료법을써볼생각입니다.이런아빠마음을아는지모르는지혜린이는선생님들의칭찬에볼이발개졌습니다.

드디어혜린이차례가됐습니다.사회를보는메이크어위시의오빠가연단으로불러내자수줍음때문에난감한표정이었습니다.몸을뒤로빼면서말을하지않을것처럼굴었습니다.

어떡해.못하겠어요.

그러자오빠가다시혜린이를격려합니다.,나하게게임할때는나를잘도때리더니…그말에용기를얻었는지혜린이가마이크앞에섭니다.

제가이세상을마음으로느끼고쓴글을선생님들이잘썼다고칭찬해주니이제세상을더많이느끼고제큰마음으로안아서좋은글많이쓸게요.그리고엄마아빠재권(동생)이,제시쓸때도와준것,감사하구요,항상사랑할게요.

저는이보다더감동적이고아름다운인사말을보지못했습니다.마음으로느끼고쓴글이라는대목과,앞으로더큰마음으로쓰겠다고한대목이훌륭합니다.어떤어른문인들도이같은수상소감을밝히는것을보지못했습니다.너무도적절한표현이었습니다.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은난치병어린이소원들어주는행사를이번으로117번째하고있습니다.8명으로구성된자원봉사팀16개팀이1년내내풀가동되고있습니다.

이날장교수는연신혜린양을칭찬했습니다.저도그러고싶었습니다.

혜린양의시를읽으면서이렇게생겼을것이다,고생각했는데정말그대로생겼습니다.정말이쁩니다.사인하나해주세요.정말이쁘네요.그리움공평같은시를보면서정말초등학생시냐고했습니다.철학적깊이가있고,우리대학교학생들시보다훨씬훌륭합니다.사물을보는눈이성숙돼있습니다.아픔이있으면밝은날이있을것입니다.훌륭한시인이되리라믿습니다.

그러나,이날정말힘든사람은장교수였을것입니다.

장교수는계단을제일두려워합니다.이날행사장은지하1층이었는데,엘리베이터가없었습니다.장교수는누군가에게엎혀서내려와야했습니다.목발2개에의지해서높은계단을오르내릴수는없기때문입니다.

그러나,장교수는자신의고통을넘어서서어린시인의고통을어루만져주고떠났습니다.제눈에는날개를다친어린천사를어른천사가치료해주고떠나는것같았습니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