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옛날이야기. 5) 미국군인을 위한 기지촌 정화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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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옛날이야기. 5) 미국군인을 위한 기지촌 정화작업.

6.25전쟁으로 우리나라에는 외국 군인들이 많이 와있었다. 그 후 다른 나라 군인들은 돌아 갔지만 미군은 유엔군으로 남아 지금도 있다.

미군기지는 대개 일제시대 일본군이 주둔했던 지역이었다 용산 미군기지는 일본 조선군사령부 자리 평택기지는 일본군의 비행장기지 그 외 대구 왜관 동두천 군산기지 등 미군기지가 산재해 있다. 그 기지에는 반드시 그들을 위한 기지촌이 있고 위안부도 있었다.

갑작스런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여자 내가 아니면 가족을 굶긴다고 여기는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 당시에는 거의 없었다. 그런 여인을 지켜줄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다. 그러나 다만 여성의 순결은 목숨과 같은 것이다는 힘 없는 도덕관은 먹고 살아야 한다는 절대적인 운명 때문에 그런 여성을 지켜 줄 수가 없었다.

어느 통계에 보면 한국 전쟁 때부터 지금까지 기지촌을 거처간 여성의 수가 30만여 명이 된다고 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참 많은 숫자이다. 그 30만 명이 아무에게도 말하기 싫은 아픈 과거를 가슴에 안고 평생을 살다가 죽은자도 있고 이 땅에 아직 많이 살고 있다.

1971년 닉슨 미국 대통령이 주한 미군이 6만2천여명 정도인데 2만명을 철군 단행 하였다. 그리고 추가로 더 할려고 하였다. 그때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안보에 큰상처가 날 지경에서 전전긍긍 했다.그러나 미국 쪽에서 보면 자국 군대가 외국에 가서 언제 전쟁이 날지도 모르고 열악한 환경으로 고생하고 문란한 생활과 성병으로 건강이 악화되는 것 이대로 방치 해서는 안 된다는 미국의 여론에 못 이겨 시행 할려는 계획이었다.

우리 정부는 미군을 붙들어 두기 위해서 무슨 일이라도 감수하여야 할 시점 이여서 그들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고 대대적인 기지촌 정화 작업도 하였다. 기지촌 여성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미군을 위한 정화 운동 즉 주한 미군 붙들어두기 전투력 극대화를 위한 건강한 양공주 기지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어느 분의 글에서 보니 청와대 주도로 10여개 부처 차관급으로 기지촌 정화 위원회를 만들고 힘 있는 사람이 내려가서 군산에는 미군의 쾌락을 위해 건설된 미군을 위한 클럽, 식당, 미용실, 각종상점, 환전소, 기지여성이 사용하는 500여 개의 방을 갖춘 주식회사 같은 위안부촌 아메리카 타운을 건설 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기지촌 여성의 인권은 더 무시되고 미국 군인이 즐거우면 되는 것이다. 성병 퇴치는 물론이고 그 여성들은 미군을 위한 국가를 위한 소모품이었다. 청결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일주일에 2번을 검진을 받아야 하였다. 검진대에 올라가서 남자 의사에게 여성이 가장 부끄러워하는 곳을 시키는 대로 보여 주어야 했고 검진증에 도장을 받아야 했다 그 도장 받은 검진증은 위안부 그들의 영업 허가증이다.

어떤 병사가 성병에 걸리면 관계한 여성은 바로 감금 시키고 그 병사가 나아야만 풀어 주었다 고도 한다. 그래도 원인 규명은 물론 왜 그러느냐 하지 못하고 당하고만 있어야 하였다. 그렇게 사람대우는 물론 인권이니 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사치였다 그러나 1964년 우리나라 외화 수입이 일년 일억 달러 정도일 때 그들이 벌어 들인 돈이 970만 달러 정도 약 10% 정도가 되었다고 하였다.

한국 정부는 외출 나온 병사들이 일본과 오끼나와로 가는 것을 안 가도록 기지촌을 업 그래이드 하여 국내에 붙잡아 둘려고 정부 차원에서 위안부들 모아놓고 영어를 가르치고 에치켓 교육도 시키고 아양 떨고 많이 즐겁게 해주라는 교육도 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그때 어느 강사가 ‘여러 분들은 우리나라에 애국자 입니다 긍지를 느끼고….’하니 그렇게 좋은 일이면 자기 딸부터 시키지 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세월도 많이 지났지만 이렇게 되도록 우리 온 국민이 어려웠던 시절 그렇게까지 하면서 미군을 국내 주둔해 주기를 바라기도 하였고 서독에 광부로 간호원으로, 월남전쟁에도 우리국군이 주저하지 않고 국가를 위해 가서 노력한 결실이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내 나라의 안보를 미군이 지켜주기를 바라는 나라다.

 

 

 

 

이재용 부회장, 이 아픔이 계기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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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부회장, 이 아픔이 계기되어서….

2017년 2월17일은 삼성가에게는 잊혀지지 않을 잔인한날이다. 거대기업 삼성이 창업이래 79년만에 처음 총수가 구속 되는 날이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위법사건들이 여러번 있었지만 배고픔을 빨리 잊고 싶어하는 국가로 인해 구속은 되지 않았다. 기간이 얼마일지는 잘은 모르겠으나 재벌들에게는 솜방망이 법이라도 아마 5, 6개월은 구속 생활을 하여야 할 것 같으다.

신유년 벽두에 이 무슨 액운일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분들에게 비교 할 수도 없는 주제이고 따라서 이런 글도 쓸 자격도 없지만 일생을 거의 산 사람으로서 참 안타까운 모습으로 보여서 한번 써 본다.

사람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행복일까? 흔히들 돈,돈! 돈만 많이 있으면 행복해질 줄 알고 그 돈에 목이 매여 허겁지겁하는 것 많이 보며 살고 있다.

나는 엊그제 커피에 대한 글을 썼는데 거기에 보면 ‘조금 묵직한 옛날 커피잔으로 갖 뽑아진 커피한잔을 탁자에 놓고 창밖을 멀리 내다보면서 마시자’고 하였는데 그렇게 하면서 지금의 삼성가의 정황을 나는 잠시 생각을 하여보았다.

아버지는 3년째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그토록 거대한 대 삼성을 만들려고 애쓰며 살았던 그 삼성이 어찌 되었는지도 모르게 지나고 있고, 하나뿐인 여동생은 이혼이라는 아픔을 안고 살고 있으며 본인 또한 홀아비가 되어서 자기도 잘 모르는 기간 동안 물려받은 거대 아성인 대 삼성이라는 왕국을 힘겹게 이끌고 가다가 큰 실수를하여 철창신세가 되었다.참으로 안타깝다.

재계에서는 이회장의 부인 홍라희씨의 심정을 헤아리며 동정어린 말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 그 거대한 세계도처에 산재한 삼성이라는 아성이 머 필요하며 자기 몫으로 되어있는 수 조원의 재산들이 지금 머 필요 할까?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버릴수도 없고 갈라서 누구에게 줄려고 해도 주는 것도 골치가 보통 아픈것이 아닌 것, 아무짝에도 못쓸 것들이다. 잘은 모르겠으나 그것 다 줄거니까 영감 이회장 벌떡 일어나게 해준다면 주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아닐까?

얼마전에 이건희회장의 2016년도 배당수익이 1902억원이라고 금융감독원에서 공시자료에서 밝혔다. 국내 기업 총수중에서 8년 년속 1위이고 이재용 부회장은 468억원이다고 하였다. 468억. 억!억. 아내와 함께 그 뉴스를 들으면서 아내는 “우리는 1억만 더 있으면 너무 행복 할건데…ㅎㅎ. 저 사람들은 돈이 골치 아플 것 같아요. 그런대도 머리 좋은 법조 전관들 거액 주고 고용해서 절세니하며 국가에 세금 적게 낼려고, 머라고 했나요? 국민연금과 짜고 제일모직이 먼 회사하고 합병 할려고 그래서 이재용 지분을 늘린다고 했나, 지분의 주식 값어치를 올린다고 했나, 그렇게 까지 하지요?” 하면서 내게 물었다.ㅎ

중국의 자수성가한 알리바바 회장 마윈은 중국 기업가클럽 회장에 취임하여 인사말을 하면서 “기업가의 돈은 사회와 국가가 자기에게 맡긴 책임” 이라고 했다. 또 “진정한 기업가라면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돈이 아닌 도덕적 가치관과 사회적 책임에 따라야 한다”고 했다.

좁은 독방에서 시체말로, 혼밥 먹으면서 이 세상에는 이처럼 평생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도 있으며 죄 짓지 않고도 이토록 죽기보다 힘든 고뇌도 하면서 아픔을 달래기를 일생 동안 몇 번을 되풀이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지기 수다는 것, 또 마윈이 말한 ‘투자할 때 돈이 아닌 도덕적 가치와 사회적 책임’ 이라는 말뜻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대 재벌의 아들로 태어나서 세상물정 모르고 자라서 거대회사에서 경영 수업이라고 하며 지위만 높아져서 지금 격에 맞지 않을 부회장 아니 세인들이 총수라고 하는 말을 들으며 있는 지위에서 이 나라에서 가장 똑똑하다고 알려진 엘리트들이 우글거리는 재벌을 거느리는 위치에 어줍잖은 총수로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다.

차제에 많이 불편하고 심정이 괴롭지만 위에 말한 알리바바 회장 마윈의 말들을 곱 씹으며 할아버지나 아버지처럼 도덕적 가치관과 사회적 책임 회피 할려고 하지는 말고 좋은 책도 좀 읽고 인생공부(고생)도 좀하고 그것을 잘 소화시켜서 정말 한국이 낳은 한국의 위대한 기업가가 될 사람이 되어 나오시기 바란다. 하기사 이나라 정, 경문화에서 대통령이 주세요 하는데 아니요 하기는 어렵다 이해는 가나 잘, 잘못은 재판 과정에서 밝혀질 것이다 많이 안타깝다.

 

나날이 늘어나는 커피숍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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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늘어나는 커피숍을 보면서.

거리를 다니면서 보면 한집건너 커피숍이다 상호도 이상하게 반드시 영어로 쓰인 것이 특징이다 들여다 보면 약속 장소로 정하고 한잔 앞에두고 마실수 있는 집은 드물다 그 이름도 생소한 것들이고 아매리카노라나 그거는 4천원 그 외 다른 것 들은 6천원 7 천원 나는 아~ 입이 벌어진다.

그리고 거리에서 보면 아기를 앞에 메고 한손에는 아기가방들고 다른 한손에는 뚜껑이 동그란데 빨때가 꼽혀있는 커피컵을 들고 다니는 것 흔히 볼수있다. 연약해 보이는 젊은 여인이 그런 모습으로 사람속을 해 집고 다니는 것을 보면서 혹시나 잘못하면 컵을 엎지르기도 하고 넘어질까 불안한 마음으로 본다.

그런 커피 한때는 몸에 해롭다고 공부 많이 한 박사라는 사람들이 논문으로 발표해서 겁나게 하고 우리차 마시기 하자고 하면서 록차, 영지차, 쌍화차, 생강차, 둥굴레차 하면서 장려 한때도 있었는데 요즈음은 그게 아니고 마셔도 좋다는 쪽으로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나 같이 어리버리한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배운 사람들이 그 지식으로 세상을 바르게 인도 해야지 그게 맞는지 저게 맞는지 햇 갈리게 한다.

그런데 어떤분이 쓴 글을 읽으니 우리나라 커피 관련 시장 규모가년 5조3천억원 (2014년 기준)이고 우리나라의 주식인 쌀매출 보다 규모가 더 크다고 하는 것을 읽었다 하기사 한잔에 5, 6천원 계산하고 커피잔 거리에 들고 나니며 그것을 하루에 5, 6회씩을 마셔대니 그럴 것 같다.

나쁘다고 하는 쪽의 말을 간추려 보면 독성이 있는 향 정신성 물질이 있으므로 해롭다. 또 발암 물질이 들어있다 하루에 3잔 이상은 안 먹는게 좋다 고 한다. 또 다른 쪽의 말을 들어보면 만병 통치의 음료가 아닌가 한다 그 향을 맡으면 참 좋다 고소하기도 하고 표현하기 어려운 그 맛 누룽지 먹는맛 같기도 하고 표현하기 어려운 기분 좋은 맛 카페인이 들어서 피곤한 두뇌를 맑게해서 상쾌하게 해주고 암 발생을 예방해주고 심장질환 치매예방 등등 너무 좋은 것이다고 한다.

어느것이 맞는 말인지 누구가 정직하게 알려준 것 인지 확신을 하기는 어렵다. 그러면 향과 맛이 취향에 맞고 마시고 싶으면 약간의 무게감도 있는 고풍스러운 커피잔으로 바로 뽑은 커피한잔 탁자에 놓고 창밖을 내다보며 오늘같이 시야가 멀리보이는 저 먼곳 내다 보면서 마시자 하루에 2 .3 잔만 그렇게 아침식후 낮 중에 퇴근하고 또 한잔씩 즐겁게 마시면 좋은 음료라고 여겨진다.

아랍 쪽의 사람들에게 처음 알려져서 유럽으로 전해질 때 기독교인들이 사람을 흥분시키는 사탄의 음료라고 하면서 교황에게 못마시게 건의했으나 교황은 오히려 아주 좋은 음료라고 하면서 기독교인들이 많이 마셔서 이교도인 회교도들의 콧대를 꺽어주라고 했다더니 그 교황님은 수세기를 내다보신 통찰력이 있는 분이셨다.ㅎ

나는 그 교황님의 말씀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 잘 만나서 많이 배운 지식이 많다는 그 사람들이 제 나름대로 말하는 것 이랬다 저랬다 하거나 말거나 마시고 싶을 때 마시며 살리라.

세상에 의사들도 지식인들도 지금 이나이 되어보니 일찍이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던 마카 나쁜 놈들 이라고 하시더니 지 자신이 자기를 가장 잘 알지 믿을 사람 없다. 요즈음 시국이 이토록 복잡해서 보니 법도 믿을 수 없고 그것 때문에 때돈 벌고 사는 변호사는 허가 받은 도둑놈이라고 하시더니 그 말씀이 자꾸 생각이 난다.

세상에 제명대로 살다가 큰 병이 들리면 그로 인해 죽는 것이 사람 한평생이고 자연의 섭리다. 살려고 애쓰고 또 더 살릴려고 해서 더 산다고 별로 즐거울 것도 없는 것 같고, 법이란 것이 갑이나 을이나 병, 정, 무에게도 같이 적용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도 갑에게는 솜방망이로 적용되고 변호사라는 사람들 모두다는 아니지만 그중에는 저것도 배운 놈이고 사람인가 싶은 행위를 하는 늙은 놈도 있다.

더러운 세상이다.

 

 

이제는 옛날이야기. 4) 금기시 했던 이상한 관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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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옛날이야기. 4) 금기시 했던 이상한 관습들.

어릴 때 어른들에게 듣고 무슨 이유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하여라고 하여 지키고 살았던 금기시하는 관습들을 써봅니다. 이런 것은 충효사상으로 이렇게 하여라 또는 하면 않된다 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는 것들입니다.

요즈음이야 전국이 일일 생활권이고 연일 각종 정보 매체에서 분초를 다투어 알려주고 있는 시대니 전국이 별로 다르지 않고 차이가 있었던 것들도 같아지고 있지만 교통이 불편하여 지방에서 서울에 가자면 몇날 며칠을 걸어서 가기도 하고 내가 어릴 때만해도 서울에 가는 것은 지금 먼 아프리카에 가는 정도로 어려웠던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것들은 경상도 내륙 지방에 내가 겪은 것들이나 전라도 쪽이나 바닷가 쪽 또 제주도 같은 섬 지방은 또 다른 것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오랜 관습에서 얻은 금기를 하면 살아가는데 삶이 부드러워지고 남을 배려하고 자기마음도 행복해지고 또 더 위생적이다 고 여겨지는 것들입니다.

이런 사항들을 지키는 것은 좀 불편하기도 하였지만 지키고 살았는 조상님들의 슬기를 느끼게 합니다. 좀 토템적이다고 여겨 지는 것도 있으나 아무리 바쁘게 살더라도 지금도 지키면 손해 볼 것은 없을 것 같고 각박한 우리생활이 좀더 여유로워 질 것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아래 지키느라고 약간의 인내가 필요했던 것들 지금 잊지 않았는 것들 적어봅니다. 순서는 별 의미가 없고 생각나는 대로 적은 것입니다.

1 손톱 발톱을 밤에 깍지 않는다.

2 아플 때 국수를 먹지 않는다.

3 여자들 바느질 할 때 반드시 실을 잘라서 바늘에 꾄다.

4 문전을 딛거나 위에는 앉지 않는다.

5 해질 무렵 문을 고치거나 창호지를 바르거나 하기 위해서 손 대지 않는다.

6 생일에는 국수를 먹어라.

7 아이를 낳으면 대문에 금줄을 친다.

8 아침 일찍 여자는 남의 집에 가지 말아라.

9 오전에 상점에 갔을 때는 물건 안 사면 안 된다.

10 다리를 떨지 말아라 복이 나간다.

11 큰 일을 시작 할 때 고사는 반드시 지낸다 그때 돼지 머리는 중앙에 두고

12 붉은 팥은 귀신을 물리친다.

13 절에 갔다가 올때는 중간에 다른 곳에 들리지 않고 집으로 곧 바로 온다.

14 미운 사람이 다녀가면 소금을 확 뿌린다.

15 집안 사람이 멀리 외출하면 그날은 집 청소를 하지 않는다.

16 중요한 일을 하러 갈때는 미역국을 먹지 말아라.

17 이사 갈 때는 삼살 대장군의 방향을 알아서 그쪽으로 가지 말아라.

18 이사는 좋은 날을 받아서 가거라 아무 때나 가면 큰 재앙이 올 것으로 여긴다.

19 잠잘 때 동쪽으로 머리를 두면 오래 살고 남쪽은 부자가 되고 서쪽 북쪽은 그 반대이다고 여기고 반드시 지키고 살았다.

20 길 가다가 어른이 가는 길은 먼저 지나가지 않는다 특히 여자는 남자 앞의 길을 끊어 지나가면 재수 없다고 하였다.

21 윗 사람과 같이하는 술 자리에서 술잔은 머리 돌려서 마신다.

22 어른 앞에서 담배는 피우면 안 된다.

23 며느리는 어른들 앞에서 아이를 업으면 안 된다.

24 어른 앞에서 눈이 나빠도 안경은 끼면 안 된다.

25 부부가 외출 시에는 여자는 남자보다 2.3보 뒤 처져서 간다.

26 여자가 술을 마시는 것은 상것들이나 마신다.

27 여자들 아기를 배면 오리고기 닭고기 문어 등을 먹지 말고 상모서리에 앉지 말아라. 등등 생각 나는대로 적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중에 이해가 되는 것들도 있지만 아직도 그 이유가 궁금한 것도 있으나 가능한 한 지키며 불편하게 사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와 아내는 어릴 때 어른들이 위의 것들을 지키며 지나시는 것을 보아서 될 수 있으면 그렇게 지키며 살고 있으나 간혹 위반하면 마음이 편하지를 않았습니다. 부부는 끼리끼리 만난다더니 제보다 제 아내가 좀더 잘지킵니다.ㅎ

사람사는 세상 이야기 좀 무식한 이야기입니다.ㅎㅎ

오늘은 하부지 기분이 너무 좋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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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부지 기분이 너무 좋은날.

30개월된 손자가 지 엄마가 데리러 온다는 전화를 할머니가 받는 것을 빠안히 쳐다보더니 벗어둔 양말과 윗옷을 안고 오더니 할머니 앞에 놓는다 입혀주니 내게로 오더니 내 손을 꼭 잡고 일어서라고 끈다. 아마 같이 가자는 것 같다. 그렇게 끌려서 현관문을 열고 아내와 셋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그래도 손을 놓지 않는다 그렇게 끌고 가더니 지가먼저 어미에게 안겨서 타고는 나도 타라고 “타 타” 하였다.ㅎ

보통은 할머니와 함께 내려가면 며느리가 받아 뒷좌석의 아기 카시트에 앉힌다 내가 집에서 내려다 보면 아내는 서서 지켜보다가 며느리차가 안보이면 올라오는데 오늘은 나도 그 놈에게 끌려 내려갔다가 왔다.

손자는 나를 부를 때 “하부지”라고 한다 ‘할’ 발음이 어려운 것 같다.ㅎ 아직 나는 몸이 덜 나아서 몸이 가볍지 못한데 갑자기 끌려 내려가서 추운데 벌을 섰다. 그래도 어린 것이 할아버지를 좋아해서 제집에 함께 가자고하는 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참 좋다.

할미는 느을 그놈 자식 나는 지가 오는 날이면 먼저 내려가서 기다리다가 어린이집 차에서 내리면 추울가봐 보듬어 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와서는 손 씼기고 지가 좋아하는 치즈, 요플레, 쵸콜렛도 챙겨 먹이고 티비 어린이프로 켜놓고, 컴켜서 딩동뎅도 열어서 함께 놀아주고 하는데 할아버지만 좋아한다고 불평을 한다.

손자는 일주일에 두번 어린이 집에서 우리 집으로 와서 두어 시간 있다가 가는데 어쩌다가 감기라도 걸려서 어린이집을 가지 않는 날은 그 주일에는 만날 수가 없다 가서 보고 올때도 있지만 며느리가 불편해 할까봐 그것도 염려가 되어 참고 있으면 10일 만에 볼때도 있다. 그럴 때면 많이 보고싶다

며칠 전에는 집에 갈 때 먹던 포도쥬스병을 가지고 가야 한단다 2 리터 반병도 먹지 않아 무거울건데 할머니가 안된다고 두고 가라고 하는데 기어코 지가 안고 갔다. 아범은 욕심이 너무 없는데 이아이 욕심이 있을려나 조금 컷는가 싶어 기분이 좋다. 그후 어느날은 장난감버스를 또 그렇게 가지고 가더니 오늘은 내가 필요해서 사둔 시트지를 가지고 가겠다고 하여 안 된다고 하나 기어코 가져간다고 하여 빼았겨 버렸다. 한 장을 말아둔 것인데… 집에 가면 이런저런 장난감이 진열장에 가득한데 참 히한한 놈이다.

할머니에게 안겨서 집에 들어오면 바로 나를 끌고 내방으로 가서 컴을 켜라고 한다. 켜주면 바탕화면에 저장된 딩동댕(아이들프로) 아이콘을 고사리 같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딩딩딩” 하며 켜라고 한다. 켜주면 거기서 또 몇 종류가 뜨는데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나에게 “이거 이거”하며 지시를 하고 이 하부지는 지가 시키는데로 해주면 된다.

그렇게 나를 끌고 다니며 이런거 저런 것 하라고 하는 것 돌봐주고 두 세시간을 하고 돌아가고 나면 좀 힘겨울 때도 있다 그러나 재롱스럽게 놀았던 귀여운 모습들을 생각하면서 아내와 둘이는 즐겁다.

두 늙은이가 사니 별로 웃을 일도 없고 조용한 일상으로 지나는데 그놈이 오는 날에는 먹을 것 챙겨주고 놀아주고 하느라고 바쁘고 통통걸음으로 다니는 모습, 어린이 집에서 배운 어린이 프로를 보고 팔을 어설프게 벌리고 옆으로 아래로 움직이며 율동도 하고, 먹는것도 지가 싫으면 절대로 안 먹는것, 문 뒤에 숨어서 숨바꼭질도 하자고 하고, 내가 보이지 않으면 “하부지!” 하면서 좀 큰소리로 오라고 명령도 한다.

이제는 많이 컷다 가고난 후에도 그런 것 아내와 이야기하면서 웃기도 하며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도, 아직은 채워주는 하기스 기져귀도 이뻐서 가끔 끄집어내어 보면서 둘이는 즐겁다. 어린이 집에서는 지난 여름부터 선생님이 화장실에 대려가기도 하고 혼자 화장실의 소변기에 바지를 내리고 한다는데 집에서는 절대로 안한다.ㅎ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고 힘나게 하는 너무나 귀여운 늦둥이 손자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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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럼깨기는 오랑캐들 머리를 부수자는 것.

정월대보름, '부럼' 깨기 준비하세요

부럼깨기는 오랑캐들 머리를 부수자는 것.

정월보름 아침 부럼 깨자고도 하고 부스럼 깨자고 하기도하며 좀 딱딱한 과일을 깨물어 먹는 이런 풍속이 있는데 어느 자료에 보면 조선 인조 임금 때 병자호란이 있은 후에 생긴 것이다고 한다. 우리 어릴 때 까지도 정월 보름날아침 잠에서 깨어나자 부럼 깬다고 하면서 좀 딱딱한 과일이나 곡식을 깨물고 그러면 일년 동안 몸에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부럼 깨는데 쓰이는 것으로는 호두, 밤, 땅콩, 볶은 콩, 등이 쓰이는데 처음에는 호두가 쓰였다. 그러나 그 호두가 많이 생산이 안 되니 아마 대용으로 밤도 쓰고 땅콩도 쓰고 한 것 같다. 요즈음은 세계화가 되어 각국들의 먹을 거리들이 수입되어 아몬드도 캐슈넛도 쓰이고 있다.

병자호란때(1636) 오랑캐 청 태종은 10만대군으로 쳐들어 왔을 때 온 나라는 쑥대밭이 되었다 무자비한 그 놈들에게 당한 치욕은 온 백성은 물론 인조도 삼배구고두라는 치욕스러운 모습으로 청태종에게 꿇어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항복을 하였다. 놈들에게 소를 비롯한 가축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 먹히고 재물은 물론 먹을거리도 강탈당하고 여인들이 겪은 수모는 말로 형언할 수 없었다.

보이는 대로 능욕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그 당시에 조선의 여인들은 그 놈들이 보기에는 천사처럼 아릿다워서 수천명을 데리고 가기도 하였다. 아내를 잃은 남편이 딸을 잃은 어머니 아버지들이 한 맻힌 분노로 만들어진 풍습인 것 같다. 그래서 호두를 그 해의 벽두에 깨물어 바수어먹는다.

호두는 발음으로 호두(胡頭) 즉 오랑캐 놈들의 대가리다 그것을 깨물어 먹는다는 뜻이다. 어느 정도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것이 믿을 수 있는 것 같다.

온 백성들의 분노심으로 이런 풍속이 만들어진 것 아닌가 한다. 겪어보지 않아서 이해하기 어렵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요즈음과 달리 창 칼로 사람을 찌르고 자르고 하여 많은 피를 흘리고 죽어가는 너무나 끔직스러운 행위이다. 무지막지한 병사들이 농업위주의 농경시대에 겨우 마련 하였으나 일년 먹기도 모자라는 양식을 빼았길 때 심정 그리고 조금이라도 걸그치는 것은 노인이건 어린아이이건 칼로 베어 죽여 버리고 여자는 닥치는 대로 능욕하고는 성이 차지 않으면 목숨조차 죽여버리는 행위를 당하였던 힘없는 나라의 서글픔을 상기시키게 하는 풍습이다.

여자가 흉악스러운 놈에게 몸을 바쳤을 때의 심정을 상기해보라, 그 당시는 정조가 회손되면 죽어야 하는 시대이고 혹여나 그 놈의 씨가 뱃속에서 자라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그 마음이 어떻 하겠나 이런 치욕으로 인해서 생긴 풍습이라고 여길 때 우리의 생각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해마다 정월초 보름 경에는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에서는 부럼 깨는데 쓰일 과일을 나름대로 소비자들의 구매의욕을 일으키게 해서 팔고 있고 우리는 위와 같은 사연으로 만들어진 것도 모르고 무슨 축제인양 그냥 즐기고 있었다.

마음으로만 호두를 오랑캐 대가리로 여기고 그해 벽두에 깨물어 먹기만하면 나라가 강해지나? 죽기살기로 군사장비도 준비하고 강한 군대를 만드는 강병정책을 하였다면 그후 여려 수난은 없었을 것이나 조정에서는 당파 싸움이나 하고 중국만 섬기는 사대주의로 다스린 나라의 말로는 결국 일본의 식민지경험까지 하였는 나라가 되었다.

그때 병조판서 김시양은 그 낌세를 알고 인조에게 군비와 군사를 길러 준비하여야 한다고 하였으나 김자점은 아닙니다 이 평화로운 시대에 그럴 필요 없다고 오히려 그를 모함하여 김시양은 벼슬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그리고난 후 1636년 병자년 12월에 그 곤욕을 치렀다.

지금 우리 주변정세와 정치권이 하고 있는 모습이 그당시와 별로 다르지않다. 가장 슬픈 것이 무엇이냐? 남에게 무시당하는 것이고 그보다 더 치욕스러운 것은 짓밟히는 것이다. 이런 행위를 당하지 않으려면 내가 힘을 길러야 한다 지금 시대에 국가의 힘은 경제력도 큰 힘이지만 그에 상응하는 군사적인 힘이 더 중요하다.

지금 강대국들이 첨단무기 개발에 열중하고 있는 것도 또 일본 같은 나라는 강한 군사시설을 하고있는 것 그것도 부족해서 지금 미국과 과거사도 모두 잊고 동맹이니 하면서 결속하는 것을 보고있고, 국민들 먹고 살기가 어려운데도 무기개발에만 힘 쓰고있는 북한도 모두가 그런 맥락이 아닐까? 이런 틈세에서 치욕을 당하지 않을려면 하루속히 이정국이 끝나고 안정되어 국방을 개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쭈그러진 이화여대를 보면서.

쭈그러진 이화여대를 보면서.

구한말 1886년에 설립된 130년의역사를 가진 명문 이화여대가 몇 여인들의 농간에 휘말려 쭈구러진 것을 보니 참 안 됬다. 자주 듣던말 정경유착이라더니 정교유착인가? 그래서 무엇을 얻을려고 하였는지는 모르나 역사와 전통 그리고 고고한 배꽃 청순한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학교가 너무 우그러졌다.

이화여대는 내 생각을 그대로 옮기자면 조선시대에 순결 잃은 여인의 모습이다. 참 안타깝고 애처롭다. 조선시대에 순결 잃은 여인은 여인으로서 구실은 끝이었다. 따라서 명문가의 규수가 아니더라도 그래 되면 동내 뒤 계곡에 있는 못에 가서 물에 몸을 던지기도하였다.

요즈음 이야 여자의 순결이니 하는 소리하면 “이 미친놈아 너는 어느시대 사람이냐?” 고 하겠지만 나는 구시대 사람이어서인지 이화여대는 130년전 구시대 즉 조선시대에 개교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교육 기관으로 그 오랜 역사 동안 거쳐간 운영자 및 교수들 그리고 수많은 선배 졸업생을 배출한 그들과 대한민국 국가가 이루어놓은 우리모두의 자존심이었다.

학교명예도 오늘의 세계에서 드문 여자만의 대학 거대한 ‘이화여자대학교’라는 명예를 가지게 하는데 애쓴 결과로 한국의 자랑스러운 학교가 되었다. 나는 그방향에 세밀한 지식이 없어 잘은 모르겠으나 세계 어디에 이처럼 여자만의 이런대학이 있다는 것 듣지 못했다.

중국에 살 때 친구가 “너희 나라에 이화여대라는게 있다면서?” 하였다. 나는 그래있다 했더니 “그 대학이 그리 유명하다면서?” 하였다. 그때만해도 요즈음처럼 유커(遊客)라는 사람들이 드물던 지금부터 13년정도 된 시기였다. 나는 신이나서 그래 한국에서 제일 역사가 오래되었고 중국의 청화대학 만큼 유명한 대학이고 거기 출신이 퍼스트레이디가 5명이나 있었고 교육계, 정치, 의학, 문화계 등에 유명한 사람이 많다고 했더니 그 친구는 아 그렇구나 나는 단순히 이화라는 명칭이 리이 화(利發)라는 중국의 발음과 비슷하고 여자만 다니는 대학, 어찌 여자만 다니는 대학이 있나고 여겼더니 하였다.

그 후 귀국할 무렵 한 여인이 너희 나라에 ‘리후아 뉘즈 다 쒸에’(이화여자대학교)를 가보았는데 정말 역사 깊은 대단한 대학이더라 고하면서 찍어온 사진을 보여주었다.

요즈음 그런 이화여대가 연일 온갖 더러운 뉴스들로 도배가 되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 안타까워서 하는 소린데 오늘의 한국을 만들어지게 하는데 국내 어느 유명하다는 대학보다 크게 기여한 명문이화여대 였다.

자고로 여자는 안방에서 남자들 보좌나 하는 것 같지만 남자들의 욕망을 북돋우어주고 목적한 일을 이루어내도록 기를 끓임 없이 북돋우어지게 하는 힘을 가진 것이 여자다. 조선을 창업하는데 큰 기여를 한 이방원이 그의 아내 민부인이 없었으면 그가 태종으로 되었을까 싶으며, 또 효종때 이완대장 또한 지혜로운 부인 때문에 유명한 이완장군으로 우리가 기억하게되었다.

그런데 이화여대는 이 나라 엘리트남자들의 안방에는 잘은 모르겠으나 추측컨데 반 이상이 이화 출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따라서 이화여대의 쭈그러짐은 우리자존심이 우그러지는 것이고 아울러 국가의 자존심도 따라서 찌그러지는 것이고 크나큰 손상이다

지금 특검에서 조사하는 과정에서 몇 사람 금수저들이 구속되어 구치소에서 죽기만큼 싫은 고달픈 생활을 할 것이다. 이런 명문 대학을 사람 몇 사람이 쭈그려뜨린 것이 너무나 안타까워서 이 글을 쓴다. 그렇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그렇게 여기기에는 너무나 찜찜하다.

나야 별관심도 없이산 사람인데도 이런 마음인데 전현직 교직원들과 졸업생들 그리고 재학생들은 얼마나 분통터지고 안타깝고 그렇게 만든자들이 미울까. 정직과 법과 도덕이 가장 중요시되는 교육의 전당이 어찌이래까지되는 나라가 되었을까?

이화여대를 이렇게 만든 책임을 이화여대에게만 물을수는 없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돈은 잃으면 벌면 되고 시험에 떨어지면 또 열심히 노력하면 합격 할수도 있으나 명예는 잃으면 회복하기 어렵다. 우그러지고 찢어진 이화여대가 종전의 위상을 회복하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모두 또다시 이런 수치스러운 일이 없도록 해야 할것이고 이화여대의 빠른회복을 바란다.

 

 

 

근검하지 말아라는 세상에 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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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검하지 말아라는 세상에 살면서….

조선시대 다산 정약용은 정조의 총애를 받고 장래가 촉망 되었으나 갑자기 정조가 죽고 순조초 신유사옥으로 귀양살이가 시작된다. 형은 사약을 받고 자기와 둘째 형은 귀양살이를 하는 폐족이 되었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아들에게 수시로 편지를 보내서 교육을 시켰다 그가 자식에게 보낸 편지 글에 보면 아래와 같은 글이 있다.

‘큰 흉년에 굶어 죽는 백성이 수 만명이나 되어 하늘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으나 굶어 죽은 사람 들을 살펴보니 모두가 개을러서이다. 하늘은 개으른자를 미워하며 벌을 주어서 죽인다.

내가 벼슬을 했으나 너희들에게 물려줄 재산은 없고 오직 두 글자 부적이 있으니 이는 삶을 넉넉히 하고 가난을 구제 할수 있기에 너희들에게 주노니 야박하다 생각지 말거라. 한 글자는 근(勤)자요 또 한글자는 검(儉)자다. 이 두글자는 좋은 전답이나 비옥한 토지보다 나은 것이어서 일생 동안 수용해도 다 쓰지 못할 것이다.’ 이하 략.

1810년 경오년 9월 다산은 동암에서 이런 글을 써서 아들에게 전해줄 때 그는 전라도 외진곳 강경에서 구걸하며 귀양살이를 하였고 귀양살이 5년만에 아들은 마늘농사가 잘되어서 그것을 팔아서 귀양살이 하시는 아버지를 보러 왔을 때 며칠 먹고 자게 할 곳이 없어 절에 가서 며칠만 아들이 먹고 자게 해달라고 구걸을 하였던 때였다.

다산은 부지런하면 먹고 살 방도는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하여 쓴 글이다. ‘머 쾌쾌 묵은 조선시대 이야기를 지금 시대에 하는가?’ 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다.

다산이 말한 ‘근’자를 광의로 해석해보면 남보다 더많이 노력하고 쉬지 말고 일 하라는 것이고 ‘검’자는 효용성 있게 쓰라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보면 휴일을 많이 가지고 많이 놀아라 빚내어서 쓸것도 많이 써라 그래야만 돈이돌고 돈이돌면 내가 하는 일도 혜택을 보아서 잘살게 된다 즉 소득이 높아진다고 국가에서 그렇게 권장한다.

부지런하고 절약하라는 근검은 구시대 적인 말이다. 따라서 정 다산도 고약한 사람이었고 지금은 촌부보다 못한 사람이다.

설이라고 내리4일을 놀았다. 내 집앞 200m쯤 시에서 시민 체육 휴식공원을 만들고 있다. 토목 공사하는 차들이 오락가락하고 포크레인은 연신 흙을 퍼담고 하는데 토 일요일은 반드시 놀고 붉은 동그라미 날 다 놀고 비오고 눈오면 또 놀고 하면서 2년이 넘도록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일년 365일동안 반은 논다 거기에 장비 인원 등 많이 동원되어 있는데 저만큼 놀고도 그 곳에 일하는 사람들이 먹고 살고 돈 벌수가 있을까 싶으다.

간혹 OECD국가중에 한국이 노동시간이 아직 가장 길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그것에 연연할 것 없다 남이 내 살림 살아주지 않고 내 빚 갚아주지 않는다 너도 나도 대기업이나 공무원 철 밥통속에 가고 싶으나 내가 갖추어진 것이 그만 못하면 이제 아무리 노력해도 않된다.

소위 스카이 대학 못 나온 내가 되기 어렵다 현 시대를 원망하지 말고 빨리 잊어야 할 것이다. 오늘이라도 ‘잡 코리아’라는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중소기업들 사원모집 광고가 수없이 많다.

괜챤은 중소 기업들도 인재난에 허덕이고 있다 그곳에서 마음에는 좀 미흡 하지만 들어가서 정약용님이 자식에게 보낸 ‘근’자의 뜻을 새기고 부지런히 남보다 열심히 하면 대기업에 가서 과장 될 때 부장 되고 부장 될 때 이사가 될 것이다 그러면 기업 커지고 나의 보람도 커질 것이다.

또 다산이 말한 ‘검’자 실천해 보면 처음에는 어렵지만 소득 생각하고 거기에 맞추어 씀씀이를 숙달 시키면 얼마든지 잘 살수있다. 요즈음 세상에 먹고 살고 적당한 문화생활 하면서 사는 것 충분하다.

대기업 연봉 높지만 그대신 받는 스트레스 그리고 수명이 짧다 물론 대기업에 들어가면 좋겠지만 능력이 안되는 것 마냥 바라보고 허송세월 하는 것은 바보스러운 짓이다. 그리고 받는 돈 검소하 게 안쓰면 그게 그거다. 사람 사는 것 예전이나 지금이나 모습만 달랐지 근본은 다른 것 없다 근과 검은 지금도 그 효능이 좋은 것이다.

많이 놀고 돈 많이 쓰라는 국가정책은 정권잡은 이들이 좋아하는 국가 총매출 늘릴려고 그래서 그것이 2또는 3%늘었다고 업적 뻥튀기 하려고 하는 그 소리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 보잘것없는 시골 노인이 하는 소리지만 귀담아 듣고 따라 해 보면 먼 훗날 잘 했다고 여겨질 것이다. 사람 사는데 가장 지켜야 될 것은 근과 검이다.

 

 

상속세를 법대로 냈다는 오뚜기회장 이야기.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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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를 법대로 냈다는 오뚜기회장 이야기.

우리 서민생활에 친근한 기업 오뚜기, 그 회사는 케챱, 마요네스, 라면, 등등을 값싸게 맛있게 만들어 온 나라 서민들이 즐겨 먹게 해 주는 우리나라 서민생활을 편하게 도와주는 회사 이지요. 그런데 창업주인 함태호 명예 회장님이 작년에 작고 했다고 합니다.

그 분이 남긴 주식이 46만5543주 금액으로 3천5백여억원을 아들인 현 회장이 물려 받게 되어 법에 따라 상속세를 천여억원으로 추산되는 상속세를 5년간 나누어 내기로 했답니다.

이것을 한 상속세 전문가는 왜 그랬을까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또 어느 신문에는 “지극히 당연한 것 했고 그래야만 하는 일을 한 오뚜기그룹 함회장의 상속이 특별히 느껴지는 이유” 라고 쓴 글이 있었습니다.

법대로 당연히 낼 세금을 낸 것인데 별소리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부모재산을 상속받으려고 온갖 편법을 동원해서 세금을 더 적게 아예 안낼려고 하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거대기업으로 알려진 기업들이 머리 좋은 법조인을 고용해서 어린 자식 또는 손자까지 동원해서 상속할려는 것을 공공연히 하면서도 이것은 탈세가 아니다 절세지 하며 하는 것을 보고 그외 유수기업들도 기업합병이니 또는 작은 기업 만들어서 불공정 하도급을 주어 키워 공개해서 상속세 수천억원의 세금을 안 내도 되게 하는 것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기사를 읽고 한 중견기업이 한 일도 아니고 몇 개의 기업을 거느린 오뚜기가 낸 상속세 일천여억원이 기사를 쓴 기자의 말과 같이 너무 생소롭고 신선해 보여서 이 글을 씁니다.

그것 말고도 고 함태호 명예 회장은 1992년부터 심장 재단을 통해 4242명의 어린이를 제 2의 생명을 얻을수 있도록 도와 주었고 또 2015년 11월에는 3백억원이 넘는 규모의 주식을 장애인 복지 재단에 남 몰래 기부도 했답니다 이 기부도 아무도 모르게 한 것이었으나 알려 지기는 금융 감독원 공시에서 지분이 줄어든 것 때문에 알려 졌답니다.

떠나는 길이 정말 아름답군요. 지난해 그분의 빈소에는 새 생명을 얻은 어린이들이 찾아와서 “대학 합격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찾아 뵐려 했는데…” 하면서 목놓아 울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소비자들의 힘이 대단하지요. 그리고 생필품 주 거래자는 거의가 여성 주부들인데 나쁜 마음가진 기업은 법보다 가혹한 응징을하고 위와 같이 아름다운 기업주가경영하는 기업의 제품은 많이 사주어서 힘나게해서 더 크게 되게 해지도록 또 더 잘하도록 해주었으면 합니다.

서민들이 응징이래야 별거 있나요 그 회사물건 안 사는 것이지요 더 할려면 소비자단체에서 불매운동을 하면 그것이 큰 징벌이 되겠지요.

 

나라의 국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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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국격.

사람이 품위가 있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는 것처럼 나라도 그 품격이 있다. 국가의 국격은 국민소득이 높다고 품격도 높은 것은 아니고 국민들 학력이 높은 사람이 많다고 이루었다는 것도 아니다.

상당한 기간의 역사도 있어야 하고 세계 각 곳에서 내 국민들이 다니며 존경할만한 언행과 그리고 경제적인 부와 국방, 국가간에 기여도도 고려되며 독특한 아름다운 문화를 가진 나라, 국제상호간에 제 규정을 잘 준수 하는 것 등등에서 국가의 품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요즈음 보면 세계각국에서 와서 살고있는 사람 또 여행목적으로 온 사람 등 외국인들이 많다 그런데 그 각국의 사람들을 보면 잠시 지나치면서 보아도 지성미가 있어 보이는 사람도 그렇지 못한 사람 등을 느낄수있다.

그런데 어느 나라라고 하면 아, 그나라 국민이구나 하게 존경심 또는 그저그런 나라에서 왔구나 하는 선입견으로 보게 된다. 그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것들을 보면서 한국을 그들의 잣대로 평가할 것이다는 것도 알아야한다.

지난 한때 6,25전쟁이 끝나고 미국사람들이 많이 왔고 그 나라 물건들을 원조로 받고 할 때 미국이라면 대통령부터 미국에 취해있을 당시 양식 있는 사람들이 미국이라면 그 사람들 똥도 조아 한다고 하며 개탄하였다. 그런 것은 그 당시에 우리가보기에 미국이라는 국가의 국격이 너무 좋게 보여서 그렇게 여겼다.

외국인들이 쓴 책들을 번역한 글들을 읽으면서 보면 일본에 대해서 참 좋게 국격을 평 하는 것을 자주 보는데 그것을 볼 때마다 우리는 일본을 가장 미운 나라로 여기고 못난 사람들이 사는 우리보다는 야만스럽게 여기고 세계사람들이 인정하는 일본의 국격을 깔아뭉개기만 하지만 아시아에서는 가장 교양 있고 지금 잘살고 있으며 강국으로 유럽의 프랑스나 영국, 독일, 이딸리아 같이 그런 나라와 버금가는 나라로 평가하는 것을 자주 볼수 있다. 그때마다 우리는? 하게 되는데 우리 국격은 어느 정도일까?

우리는 경제적으로는 못사는 나라에서는 벗어나서 약간의 대우를 받으나 일본수준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고 우리국민의 의식수준은 품위 있는 나라로 대우를 받을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자주 가지게 한다. 국민들은 조금 살만하게 되었다고 마치 시골에 아무짝에도 못쓸 산비탈의 공지가 중요한 시설을 할 계획부지가 되어서 토지 보상금을 많이 받아서 어찌할 줄 몰라서 건방 떠는 모습처럼 보인다.

외국에서 여인들 희롱 했다는 기사를 심심찮게 보며 각국 사람들이 타고가는 비행기에서 승무원 그리고 승객들 공포 속으로 떨게하고, 유명한 고궁이나 유적지에서 낙서나 하고, 때와 장소 안가리고 등산복 같은 복장으로 활보하고 등등의 행위들을 하는 나라가 국격이니 머니 하는 소리를 할수 있겠나 싶으다. 따라서 많이 부끄럽게 여겼는데 이번에 대통령이 한 여인과 저지른 국정 농단으로 하나씩 하나씩 밝혀지고 있는 것을 보고 외국의 언론매체가 평하는 것을 보면 더 부끄럽다.

한국의 여자대통령은 사이비 미신에 빠진 것 같은 행위를 하였다고 영국의 어느 매체가 보도했다. 대통령도 사람이기에 실정을 할수도 있다고 치자 그러나 그것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하루빨리 국민을 불편치 않게 해야 하는데 비공식적인 채널로 자기변명만 하고 있는 지금의 모습은 국민들 분통 터지게하며 자기가 여생을 살아가는데도 더 어렵게 할 행위를 하고있는 것이다.

이런 우리나라 한국은 선진국이 아니고 우리는 존경 받을 수 있고 품격 있는 국민이 아니다. 최근에 보면 국가간에 선임자가 맺은 조약도 그게 아니고 하면서 파기 할려고 하는 소리도 나오고, 이거는 좋은 것이다 싶은 것도 내게 해가 된다 싶으면 죽기로 덤비고, 나와 다른 의견은 절대로 용납 할줄 모르고 내가 한 행위가 잘못된 것 알면서도 그것 숨길려고 부인하는 공직자들도 많이 보는데 참으로 걱정스럽고 안타깝다.

나라의 국격은 중요하다. 내국민이 존경 받을려면 남의 나라 국격도 인정해주어야 하고 국가공직자들은 물론 온 국민들이 정직해야 되고 존경 받을 행위를 해야 한다. 지금 코리안의 여러 모습들은 국격을 한 세대 전으로 돌려놓는 행위들을 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