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가 무섭다고 아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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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가 무섭다고 아들도….

요즈음 시어머니들이 며느리가 무섭다고들 한다. 무서운 것은 두렵다는 것도 포함되는 말이 아닐까 한다. 대다수 노인들은 나이가 자꾸 먹어가니 몸도 마음도 약해지고 혹시나 아이들에게 부담 주는 일이 일어날까 봐 염려도 되고 조심하며 산다.

내경우는 아이들에게 내 집에 생활하는 방식 또는 음식 등으로 잔소리를 들을 때가자주 있다. 늙은이 둘이 사는데 먹는 양이 적으나 우선 편할려고 또 평생을 검소하게살아서 그게 습관이 되어 가능하면 버리지 않고 쓰고 절약하면서 살아서 마트에서 사온 것들이 보관기한이 다된 것도 있고 조리하면서 고기를 굽고 나면 구운 냄세가 날 때도 간혹 있다.

한번은 전에 지들이 사와서 먹던 소주를 냉장고에 두었더니 어머니 이 소주 언제 거예요 하였다 그때 너희들과 먹던 것 내가 음식 조리할 때 쓸려고 두었다 했더니 버리세요 하였다. 소주도 날자가 넘은 것 조리 할때 쓰면 안 된단다. 또 그 다음에 한번은 들어오자마자 문을 마구 열어 제친다. 야야 추운데 왜? 했더니 고등어 구웠지요? 한다.

그래 구웠다 했더니 싱크대 환풍기를 반드시 오래 쓰세요 하였다. 아내는 그것이 시끄러워서 잘켜지 않는데 하지만 그까짓거 냄세 좀 나면 어떤데 하면서 가고 난다음 언짠아 하며 항상 자기보다 시원시원하게 모든 것 잘하는 며느리에게 지는 기분이었는데 그날은 많이 불쾌해하면서 내게 바가지 아닌 불평을 했다. 나는 그래~ “하면서도 그 조리 냄세 때문에 몇 번을 잔소리해도 잘 안되더니 속으로는 잘했다 싶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며느리가 온다고 하면 나 모르게 이런 것 저런 것 점검을 하는 것 같다. 자기보다 더 많이 배우고 지 차로 아이들 학교로 어린이집으로 보내고 가정의 크고 작은 일들 머든지 시원시원하게 잘하는 며느리이다 또 간혹은 우리 태우고 창고형마트 코스트코에 가서 필요한 물건도 무더기로 사준다.

그러므로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좀 버겁어 하는 것 같다 가뜩이나 요즈음 며느리를 모두 껄끄러운 존재라고 하기도 하는데 아내도 그런 것 같다. 그런데 나도 며느리도 그렇지만 아들도 그리 만만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한번은 전화로 아버지 저들 오늘 대구 같다가 모래 오겠습니다 하였다. 나는 좀 자주 처가에 가는 것 같아서 얼마 전에 휴가로 그쪽으로 가더니 또 가느냐 요즈음 혼잡한 길을 가족모두 싣고 다니는 것이 염려되어 ktx 타고 가라 했더니 안 된다고 하였다.가서 여기저기 다니고 친구도 만나고 한다나.

그리고 늙었다고 아버지를 무시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간혹 있다. 내가 아버지에게 한 것을 대입해보면 이거는 말이 안된다. 내가 아버지에게 한 것은 그저 아버지마음상하게 하지 않을려고 말 한마디도 조심해서 하고 모든 것 애를 쓰고 노력했는데 얘는 그게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복종시키지는 못하니 버겁고 혹시나 내가 체면 구기는 일이나 생길까 봐 느을 조심을 하며 지난다. 그것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아들을 두려워하는 것이고 겁내는 것이다.

요즈음은 아내도 버겁다. 마음에 조금 안 들면 그래요 그러지 말고 이렇게 이렇게…. 하면 어떨가요 하면 나도 생각해보고 그래에~ 그것도 좋겠네할 것인데 당장 안돼요!” 하며 윽박지르는 것이 보통이다. 그 소리를 들으면 나도 당장 알았다!….” 또는 머라꼬?….” 하면서 서로 시끄러워지고 그 후는 며칠 서로 말없는 기간이 되고 그러면서 산다.

아마 이렇게 여기는 아버지이고 남편이 요즈음 나뿐이 아니고 많을 것이다. 손자들이 더 커서 세상물정 알면 그때는 또 손자에게도 그렇게 조심하여야 할거고 이래저래 조심하며 지나야 될 것들이 자꾸 늘어나고 그 기간도, 죽을 나이도 길어진다고 하는데 건강 조심해야 하고, 자식들에게 조심 해야 하고, 세상 조심 해야하고, 조심하고 살아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이래저래 늙어서 오래사는 것은 즐겁지 않다, 느을 병원에도 자주가야 하고, 맨날 약먹으며 지나야하고, 행동도 가볍게 마음대로 잘못하고, 아이들도 무서워지는 것 같고…., 세상모두가 겁난다.

*이상해요. 내글은 블로그홈에 제목이 뜨지도 않고 다른분 뎃글 답글 쓸려고가서 쓸려니 특수입력창이라나 그런게 떠서 이름, 이메일, 주소 다 써야한다는데 이제 위블에서 쫓아내는 것인가요?

 

 

중은 떠나면 되는데 그게 쉽지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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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은 떠나면 되는데 그게 쉽지않네.

조선일보에 블로그를 가진지 벌써 13년이 되었다. 중국 상해에서 살 때 한국 신문도 tv도 보기가 어려울 때 고국소식 들을려고 매일로 연락하고 컴퓨터로 소식들보고 할 때 연 것이다.

그때 조선일보에 블로그명을 ‘산고수장’이라고 지어서 블로그를 오픈하고 중국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우리와는 너무 다른 모습들을 보고 글도 쓰고 이국에서의 고독하고 서러운 삶을 달래고 산 것이 귀국 하고도 계속하면서 벌써 7년이 되었다.

이분은 여행, 이분은 살아가는 삶의 글, 이분은 정겹고 아름다운 글 쓰는 분, 그런 분들과 함께 또 조블에 운영자분들 조선일보독자님들 등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도 받으며 글도 즐겁게 쓰고 때로는 소재가 궁하면 짬내어 전시회도, 시장도, 고궁도, 여행도 다니며, 그런 기행담도, 견문 이야기도 쓰고, 보고 역겨운 꼬라지도 쓰면서, 정말 귀여운 모습도 함께 볼려고 옮겨오고 하였다.

그 후 조선일보의 블로그 개편으로 많은 회원이 줄어들어 지금은 위블로그라고 명칭변경도 하고 또 다른 모습으로 운영자분들이 잘 다듬어 가꾸고 하고 있었는데 요즈음 무슨 문제가 있는 모양세인데 알수도 없고 지난번처럼 또 괄씨 받는 것 같은 기분이다.

절에 주지가 돼지처럼 욕심 체우기만 하면 중은 떠나고 신도도 그런 절 미워서 떠나면 된다. 오랫동안 쌓인 내공들인 탑이 아깝지만 미운 곳에서 인내심으로 그탑 지킬려고 하지 말고 시주한걸로 여기고 훌훌 떠나고 그절 있는 쪽으로 얼굴도 돌리지 않고 살면 되는데 그래도 미련이남아 오늘 또 포스팅을 한다.

얼마 전에 무슨 이유인지 갑자기 내블로그는 로그인이 안되어 들어 갈수도 없어서 참 황당했는데 그후 일주일쯤 되어 다행히 로그인이 되었다 그러나 추석연휴고해서 한 반달을 쉰 기분이다.

저지난해 이맘때 조블을 없애겠다고 하더니 이런저런 곡절 끝에 지하주차장 맨 끌에 입구도 잘 찾지못하는 쪽방 같은 곳에 위불로그라고 이름지어 만들어주어서 그래도 감지덕지로 여기고 적응할려고 버벅거리고 이거 좀 도와주세요 하면서 운영 자님들에게 귀찮게 하며 지도를 받아가면서 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거의 떠나고 여나믄 사람이 남아서 남의 블로그 글 잘 읽지도 않고 외부인들은 조선일보 블로그가 있는지도 모르는 곳, 눈 씼고 보아야 보일 정도로 해두고 괄씨가 말이 아니었다.. 세상에 서러운 것도 많지만 괄씨 받는 것은 괴로움의 상위급이다.

내자신도 이제는 모든게 우둔해져서 때로는 이제 그만 접을까 싶을때도 있으나 안 하는 것 보다는 하면서 지나는 것이 내 건강 그리고 일상에 더 도움이 되고 그래 하면서 지나야 밥을 먹어야 살고 내 마음의 이야기를 하여야 살수 있드시 이것도 이제는 그와 같은 내게는 안 하면 안될 일상으로 습관화된 것이다.

또 이것을 하면서 많은 지식도 얻고 그래서 내 자신을 돌아보는 지혜도, 남을 용서하는 아량도, 또 무엇을 어떻게 하면 바람직한 삶일까? 또 건강상식도 그리고 좀더 보람되게 살아가는 방법도, 추하지 않게 늙어가는 것 터득도 하며, 때로는 내 나름대로 쌓인 스트레스도, 또 무료한 하루하루 일상을 여기에서 적어도 너 뎃시간은 쓰면서 지나고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인간관계로 일어나는 잡다한 것들 친척, 부모, 자식들로 일어나는 일상의 고민들은 노력하여도 안 풀어지는 것들이 많다. 그런 것 지금까지 살면서 얻은 온갖경험으로 쌓아진 지혜 미천하나마 나누어주는 보시(布施)로 여기기도 하여 즐겁게 하였다.

돈이야 별거아니다 우리나이의 늙은이들은 다산 정약용님이 자식에게 물려준다고 하였던 근검절약이라는 그 좋은 재산을 가졌으니 절약해서 쓰고 일찍 일찍이 준비해서 다니고 소득에 맞추어서 쓰면 별 불편이 없다. 오래 하면서 수양을 더 많이 하고 모든 것 다 내려 놓을 수 있는 날까지 노력 할 것인데 계속해서 하도록 되었으면 하는데 그 쉬운 중 떠나는 것 쉽지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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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달라지는 세상에 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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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달라지는 세상에 살면서.

인생은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이있다 그러나 요즈음보면 예술 작품은 아름답고 정성이 많이든 것이라고 그 수명이 길고 값이 많이 나가지도 않고 기술도 일년 전에 알아주었던 기술은 바로 고물상으로 넘어가버리는 시대가 되었다.

내 어릴 때만해도 세계명작이라고 알려진 문학작품들 그리고 영화들이 오랫동안 사람들이 볼려고 애쓰고 명작이라고 하였고, 증기기관이 개발되어 수세기 동안 그 수명이 길었는데 요즘은 엊그제 나왔던 예술품도 일회용이고 기술 또한 길어봐야 일 이년이면  고물상으로 들어가버리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곁들어 볼 것은 정말 예술성이 있는 작품은 알아주지 않고, 살면서 세상에 이름이 많이 알려진 사람이 자기 전공과 또는 살아온 것과는 동떨어진 분이 만든 것들이 유명한 것처럼 여겨져서 각광을 받고 돈도 엄청 비싸게 받는다.

쉽게 이야기하면 어느 전직 대통령이 남긴 아마추어급의 그림이나 서예가 그것이 유명하다고 이름이 있는 어느 작가보다 더 값나간다 말이다. 건물도 정말 튼튼하게 경관도 좋고 사람이 살기 좋게 지었다고 반드시 값나가고 선호하지 않고 유명인이 지은 집이다고 하면 무조건 비싸고, 작품의 수명 디자인의 수명도 무척 짧다 말이다.

그런데 사람의 수명은 달이 가고 해가 갈수록 자꾸 길어진다. 평상시에 건강하게 살려고 무진 노력을 많이 하고 어쩌다가 많이 나빠진 부분이 있으면 집중적으로 소생시킬 수 있는 처방을 하여 좋게 만들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갈아 끼우고 해서 보통 80살은 살게 되어있고 길게는 100세도 별거 아니게 살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이제는 인생은 길고 예술 즉 인간이 만들어놓은 것들은 그 수명이 짧다. 집도 예전의 집들은 수 백년을 가는 건물이 있었으나 요즈음 40년 정도 되면 재개발이니 리모델링이니 하며 부셔버리고 있어도 모양도 기본도 바꾸어진다.

우리 관습도 자식은 많으면 좋고 돈도 많을수록 좋다고 여기며 산지 수 천년이 되었다. 그런 것이 어느 날 그게 아니다로 바꾸어지더니 요즈음은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도 종종 들리는데 국가에서 그러면 안된다 나라가 망한다 하지만 예전처럼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돈은 다다익선이라고 여기더니 그것도 요즈음 보면 죽기 살기로 욕먹어가면서 벌려고 애 쓸만큼 중요한 것도 아닌 것으로 되어가고 있다. 한때는 몸 상할 것 모르고 돈 생기는 것이라면 죽기 살기로 살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모았던 돈도 적어도 삼대는 갔는데 요즈음은 자기 당대에도 유지 못하고 다 털어먹는 것 자주 본다.

세상은 변하였고 앞으로도 자꾸 변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소홀히 되고 있다. 길어진 사람 일생 전보다 배 가까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 늘어난 인생을 어찌하면 효율성 있게 살 것인가 하는 데는 소홀한 것 같다. 길어진 기간에는 마냥 즐겁게 놀고 먹고 사는 것이 바람직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정신이 건강하지 못하고 육체가 움직이는데 어렵고 하면서 사는 기간이 긴 사람은 10년도 넘게 살아야 하는 즉 숨만 쉬면 사는 것으로 여기고 그 기간이 자꾸 길다는 것이다. 길어진 기간을 보람 있게 살지 못하고 숨만 쉬고 남에게 짐이 되어 살고 있는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서 각자는 고민해야 할 것이다.

요즈음 우리나라는 흔히들 70이 넘어도 일해야 되는 나라라고 한탄하는데 그게 머 어떻다는 것일가? 능력이 허용하는 날까지 일이 있으면 하는 것이 나쁠 것이 있을까 일하는 것이 가장 즐거운 시간이 아닐까? 독일의 괴테는 늙어서 그 유명한 파우스트를 썼고 피카소는 76세에 ‘작업실의 자클린’ 을 남겼고 1968년 그의 나이 87세에 ‘누드모델과 파이프 담배 피우는사람’ 이라는 작품을 그렸다. 우리나라 허준은 67세 죽기 4년전에 동의보감을 완성 하였다.

그런데 할일 없는데 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 찾아 할려고 하면 있다. 조블에 보면 늙은이들이 많은데 블로그를 하는 것도 일하는 것이다 그게 머… 하지 말자, 평생을 산 모든 경험을 사회에 토해내는 일종의 보시(布施)다. 그렇게 알고 블로그를 해야 값지게 무게있게 할 것이고 그리 알아 주면 한다.

길어진 생명 보람 있게 살자.

 

 

 

투병생활 3. 병실에 모기 한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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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생활 3. 병실에 모기 한마리.

목 경추수술은 하고 난 다음날 전신이 많이 아팠다 무기력한 것이 누워도 편하지 않고 앉아도 짜증스럽고 그런데 건너편 방에서 시장판처럼 시끄러웠다. 아마 문병온 친구들인가 본데 목소리와 주고받는 말들을 들어보니 60이넘은 노인들 너댓명인 것 같았다. 그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신경질이나 있었는데 천장에 보니 모기 한놈이 붙어있었다.

아니 병원 병실에 모기는 그냥 보고 넘길 것이 아니다 온갖 병으로 입원한 사람들이 있는데 저놈이 어디에서 무슨 짓을하고 여기 와서 있는지 또 무슨 병균을 지니고 와서 쉬고 있다가 옮길려고 하는지 저놈은 아프더라도 죽이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보고 있으면서 연구를 해보아도 나로서는 뾰족한 묘책이 없다 천장이 의자위에 올라가야 처리할만큼 높고 모기 죽이는 약이 있어도 잘못하면 달아날 것이고… 나는 연구끝에 좀 큰소리로 천장에 모기가 있는데 저걸 잡아야 하는데 하였으나 옆에 환자들 그래요 하고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옆에 환자보호자들 여자가 한명 있고 내 아내 그리고 젊은이 한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제사 저놈이 어느 방에서 어떤 환자를 물었고 무슨균을 묻혀서 왔는지 잡아야 하는데 하였으나 그래도 젊은이도 와서 보더니 가버린다. 곧 안 보이는 곳으로 날아갈 것 같기도 하고 내 딴에는 애가 탄다.

아내에게 간호원실에 가서 킬라가 있는지 그리고 모기 잡아 달라고 이야기 해라고 했다. 그런데 예 약 찾아서 가지요 한다더니 오지 않았다. 드디어 옆방을 지나 복도에 있는 간호원실에 아픈 몸을 추스리며 가서 방에 모기가 있는데 약가지고 와서 잡아라고 하였다. 예 하더니 돌아와서 보니 그놈은 아직 그자리에 붙어있었는데 그리고 10분을 기다려도 오지 않고 감감소식이다. 그리고 조금있으니 간호사가 왔는데 수시로 그들이 하는 혈압재고 약물들 들어가는 것 검사하고 하는 일상일하러 왔다.

나는 그제사 열이 올라 오라고하고 분풀이를 하듯이 시장판 처럼 시끄러운 것, 또 지난밤에 조선족 간병사들이 병실앞 복도에서 북한말 같은 저속스런 말로 목소리는 어찌 그리 큰지 지껄이고 하하하 하며웃고 하였는 것, 그리고 모기가 병실에 있어서는 않되지 않느냐 하며 조목조목 이야기를 했다. 시작할 때 지금 책임 간호사 좀 불러달라고 하였더니 지가 책임자라고하여 그래 그렇면 당해 봐라는 심산으로 약 5분동안 설교를 했더니 죄송합니다 내일 알아보고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며 나를 설득시켰다.

그러다가 보니 처음 시작할 때는 모기가 있었는데 그러는 동안 달아나고 없었다. 병실에는 모기가 있어서는 절대로 안되는 것 아니냐. 그러나 모기는 많은 엘리베이터에 수시로 다니는 그많은 사람들 따라서 들어올수도 있다 그러나 그후 발견되면 즉시 죽여하는 약이라도 있어야 하고 죽여야 하는데 킬라가 있는데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니 없다고 하였다. 이것이 한국의 대학병원의 민낯이냐고 나는 다음날 정말 간호실 책임자에게 어제 저녁에 사건을 이야기했더니 들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죄송하단다.

그후 나는 까달스럽고 편한 환자가 아니다는 낙인이 찍혀서 내 나름대로 좀 불편한 병실생활로 이틀 있다가 퇴원했다. 좀 윗쪽에 가서 지난 사실들 이야기하고 기분도 풀 겸 할려다가 아내가 말려서 참고 왔다. 아내의 말 “당신이 이병원에 오래도록 있지도 않는데 또 그렇게 한들 습관화 된 관행들이 쉽게 고쳐 지겠소?” 하였다. 그래 알았다 이만 참자.

3D업종이라고 하며 어렵고 힘든 일 우리국민들이 안하니 그자리에 중국조선족이 그후에는 베트남 필리핀인 등 와서 하는데 그러면 교육은 철저히 시켜서 해야 하는데 그 병원에도 많이 있다 그런데 어떤 때는 시장판 같기도 하였다. 할 사람없어 고통스러운 것 도움주고 해결해주는 그들이 조금은 고맙지만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늘어서 사회적인 문제가 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간혹 끔직스러운 범죄사건에는 그들이 종종 섞여있는 것을 보고있다.

그리고 간호사도 한 사람이 일반병실 3방을 혼자 담당하니 12,3명이 수시로 불편을 들어 줄려니 너무 바쁘고 어떤 때는 급한 일이 생겼으나 제때 처리가 안되는 경우도 있다. 이래도 저래도 아프지는 말아야 하는데…

 

 

많이 놀면 경제가 좋아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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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놀면 경제가 좋아진다고?

다음달2일만 놀게 해주면 추석연휴, 토 일요일 등으로 내리 10일을 논다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 2일날을 놀게 해달라고 하더니 며칠전 국무회의에서 그렇게 합시다고 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사사건건 생색나는 것은 자기가 발표하기 좋아하는 대통령은 “내수진작과 경제 활성화를 촉진할 기회가 되길 바란다.” 또 “사상 유례없는 10일간의 긴 연휴를 보내게 되고 모처럼 휴식과 위안의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고 하였다.

과연 그렇게 많은 국민들이 긴 휴일로 휴식과 위안의 시간이 되어 즐거울까, 또 경제가 활성화되어 촉진되는 기회가 될까? 국세청에서 발표한 2015년 년말정산 근로자는1733만명이고 평균소득은 년 3249만원이라고 하고 1억원이 넘는자는 59만6천명 약 60만명이다 전체의3.4%다고 하는 기사를 본적이있다.

3249만원 평균소득에는 소득 1억이 넘는자들의 것이 다 포함된 금액이다, 그러면 실지 소액봉급자들의 년봉은 그보다 많이 적다. 그중에 하위 년봉자는 2천만원도 안 된자도 많이 있다. 이렇게 소득이 하늘과 땅 그런자들의 수가 1733만명에서 1억넘는고액자 약60만명을 빼면 1670여만명정도가 소액 년봉자 들이다. 이런 구조인데 머라고 많이 놀아서 즐겁다고?

소득 불균형으로 상대적 빈곤감으로 국민행복지수가 하위급이고 대기업 년봉 반이 안 되는 소액년봉자와 자영업자가 국민수 반이 넘는 나라에서 그런 봉급자와 영세 자영업자들이 10일을 논다면 경제가 활성화되고 촉진될까? 싶으고 또 긴 휴가를 고소득자들이 국내에 돌아다니며 경제가 활성화되게 돈을 쓸까? 서민들은 쓸레야 쓸돈 없어 못쓰고 많이 가진자들이 써야 하는데 그들은 국내에서 쓰지 않고 외국으로 날아간다. 겹쳐지는 연휴 첫날 매번 보면 인천공항이 미어 터진다는 뉴스를 자주보고, 맨위에 사진처럼 사상 유례없는 출국장인원 하는 것 자주보고 있었는데 그 때마다 저소득의 근로자들과 자영업자들 남들처럼 그런 여행 못해서 열 받고 문열어 놓고 있어도 파리만 날려 속상하고 그 긴 기간 동안 죽을 맛이다.

그렇게 연휴를 보내는 국민의수가 즐거운 국민보다 배도 넘는다 그런데 이나라 정부는 굼꾸는 정부가 아니면 이런 조치를 국무회의에서 결의하고, 머라고 경제가 활성화되고…, 세상에 많이 놀아야 소득이 늘고 잘 살게 된다는 그런 경제학 논리가 어디있노?

국가경제를 떠받치고있는 제조업 쪽에서 보면 이거는 미친 짓거리다. 요즈음 보면 노조에 욕먹고, 투자 안한다고 정부에 욕먹고, 별거아닌 거로 떼스는 시민단체들에게 시달림 받고 온갖 욕먹으며 그래도 국내에서 열심히 하고 있는 크고 작은 제조업 쪽 기업가들 보면 불만스런 말도 과거 고약한 정부 때문에 말도 못하고 울면서 겨자국 먹기로 지나고 있는데 정 놀리고 싶으면 대체근무를 해주어야 할것이다. 다음번 토,일요 일에 대체근무를 하면 서로 별 불만이 없을 것 아닐까?

일용직시급을 올려라, 최저임금을 올려라, 휴업수당을 올린다, 육아휴가를 해주어라, 그때 수당도 올려주어라, 등등 자기가 주는 돈아니고 자기일 아닌데 권력 잡았는 권세로 마구 기업들에게 강요해도 되나?

이나라가 어찌될까 많이 염려된다 우리세대는 배골아 가면서 많이 일하고 많이 만들어야 잘살고 아껴 써야 잘산다고 믿고 그렇게 살았다. 그 결과 전쟁의 폐허에서 세계인들 모두가 거들떠 보지 않았는 불쌍한 나라를 60년이지난 당대에 세계에서 20몇번째 잘사는 나라로 만들었는 우리세대가 볼때는 너무나 불안하다.

게다가 지금이 태평성대냐 북쪽 놈들은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만들었고 수소폭탄을 만들어서 잘못하면 그들이 주장하는 공산통일을 할려고 안 한다는 보장이 있나 그런데 이나라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소리만으로 전쟁은 안 일어날까 하는 걱정도 된다.

제발 정신 차리시요. 세상만사는 겸허하게 신중하게 그리고 노력하는 자에게 좋은 결과가 얻어지게 된다는 그 진리는 만고불변의 진리고 그래야만 됩니다.

놀아야 되고 많이 써야된다는 정책이 나라 살리고 부강해지지는 않습니다.

 

 

쇼펜하우어가 남긴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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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가 남긴 말들.

독일의 허무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Arther Schopenhauer,1788-1860)생전에 아래와 같은 유명한 말들을 남겼다. 150여년 전에 남긴 말들인데 지금 이 시대에도 너무나 지키고 싶은 말씀들이다.

– 젊은 여자는 연인을 구하고 늙은 여자는 속내를 털어놓을 남자를 구 한다.

– 패배가 따르는 고통을 자발적으로 겪어보라 그러면서 인품이 형성 되는 것이다.

– 평범한 능력밖에 없는 사람에게 겸손은 순수한 마음의 표상이지만 훌륭한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겸손은 위선일 뿐이다.

– 돈을 빌려달라고 해서 거절하여 친구를 잃는 것은 적지만 빌려주고 친구를 잃기는 쉽다.

– 돈이란 바다 물과 같다 그것을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말라진다.

– 명성은 획득해야 하는 것 이지만 명예는 잃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명성을 잃는 것은 이름을 잃는 소극적인 것 이지만 명예를 잃는 것은 치욕적이며 적극적이다, 명예를 잃는 것은 곧 생명을 잃는 것이다, 명예 잃은 것은 곧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 진정한 천국은 쾌락이 있는 곳이 아니다 불행이 없는 곳이다.

– 행복이라는 것은 건강이라는 나무에 피어나는 꽃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 단련하라. 등등 많이 있다.

어느 것 하나도 수세기를 지난 지금 읽어보아도 그게 아닌데 싶은 말이없다.

이와 비슷한 말들이 각자 나름대로 한 말들을 여러 사람들 위인이라고 알려진 이들이 많이 하였고 지금도 그런 좋은 말들을 바꾸고 현실에 어필하게 각색해서 하고 다니는 사람도 많이 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의 강연을 더러 가서 듣고 찌들어진 정서를 딱고 갈고 할려고 노력도 한다. 그러나 사는데 시달리다가 보면 언제 그런 것 읽었느냐 또 들었느냐 할 정도로 까맣게 잊어 버리고 살기도 하고 더 고달픈 사람들은 머라고 내가 그런 소리 들으려 다닐 만큼 한가한 사람도 아니고 그거 들으나 마나 다 아는 소리 그럴 시간에 잠이나 자겠다 또는 평상시에 시간 없어 못했던 것 그것 해보겠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자식에게는 야 그런 거 들을 필요 없고 잠이나 자라고 하지는 않는다.그런 마음 그리고 그런 위인들의 말씀이 삶의 기둥이 되어 이 세상이 허물어지지 않고 유지되어 가는 것 아닌가 한다.

아무리 힘 들더라도 하루에 잠시만이라도 좋은 생각 하면서 살아보자.

그렇게 하면 자기 생활이 여유로워지고 더 좋은 세상이 될 것인데….

 

 

투병생활 2. 현대의술.

병원수술실

투병생활 2. 현대의술.

70년이넘도록 살면서 발전되어가는 의술을 타인으로 또 내가 직접 체험해서 보고 겪을 기회가 여러번 있었다. 초등하교 다닐 때 아버지 도와드린다고 보리베기를 하다가 낫에 손을 베어서 된장을 발라서 낫게 하느라고 그 흉터가 지금도 보면 많이 보기 싫다.

그때 시골농촌에 의원은 없고 몇 동내에 하나 한약방이 있었고 가서 보면 방 천장에 나무뿌리 풀뿌리 봉지가 주룽주룽 매달려 있었다. 병의 증세를 이야기하면 듣고 한문으로 쓰여진 너덜너덜한 책을 들여다보고 이것저것 조금씩 준비된 약초들을 한지종이에 싸서 몇봉지 주면 그것 달여먹으며 끙끙 앓으면서 낫기를 기다리고 그러다가 죽기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외상 즉 상처가나면 면소재지에 있는 약방이라는 신약파는 곳에 아까징키라는 빨간약을 사서 바르고, 부어있으면 옥도정기를 발라서 부기를 가라안치고 종기가나면 됴 고약이라고 고약을 환부크기에 알맞게 약을펴서 붙였다. 하루에 한번씩 갈아붙이는데 그러기를 몇날 며칠 계속하면 종기에 고름이 빨려나오고 속에서 새살이 돋아나와서 나았다.

그런데 그때 그 방식은 환부에 나쁜 불순물을 고약이 빨아내어서 속에서 새살이 차올라서 낫게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번에 내가 낙상으로 이마가 찢어져서 치료하는 것을 보니 먼저 흉터가 될수있는한 적게 꿰메어 버리고 항생제등으로 낫게 했는데 그후 일년동안 이마 땀구멍에서 불순물이 나왔다. 즉 나쁜 균들과 내몸에서 나온 균들이 약의 도움을 받아 싸워서 이기고 그때 죽은 균들의 시체가 몸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목경추를 다쳤는데 일년이지나도 차도가 없어서 수술을 받았는데 그 다음날 목에 달린 핏주머니 그리고 오줌 주머니, 팔로 들어가는 약물 등 모든 것을 다 떼어버려도 되겠다고 하면서 떼어버렸다.

나는 허전한 것이 다른거는 몰라도 약물은 흘러 들어가게 두었으면 싶었으나 의사가 하는데 그냥 두고 생각하니 그러면 어제 몸을 째고 속을 파드배고 해놓고 이제부터는 내몸이 스스로 그 아픔을 해결 하고 회복도 내 몸이 스스로 하라는 것인가 이래도 되는 것인가 하며 궁금했으나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한번 걸어보니 전보다 다리가 가볍고 훨씬 좋아진 것 같아서 다음날 회진 왔을때 좋다고 했더니 그럴 것이다 수술하면서 신경검사기를 들여다보니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좋더라고 하였다. 그랬는데 그후 다음날 퇴원을 하고 날이 지날수록 확 달라지지 않고 전에 보다는 좋지만 아직은 걷기가 버겁다. 현대의술이 참 놀랍게 발전되었다 싶었지만 신경쪽에는 길만 잡아주지 내가스스로 찾아가야 하는 것인가 싶으다.

병실에 있을 때 보니 머리를 수술하고 칭칭붕대로 감고 누워있는데 아침 회진시에 담당의사가 와서 “이름이 머예요,” “여기가 어디에요,” “내가 누군지알아요,” 하면서 묻는데 들릭락 말락한 소리로 무슨 대답을 하는데 알수는 없으나 뇌수술하고 낳아서 퇴원하는 사람은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그 어려운 뇌수술도 하는 것을 보고 현대의술이 대단히 발전했다고 무식하나마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80살까지는 이제 보통이고 90살사는 사람이 많은 것이고 예전 같으면 모진 병 걸리면 바로 큰 고통을 느끼다가 죽는데 발달된 현대의술로 장기도 갈아 끼우고 하면서 전보다 수명은 많이 연장 되었지만 장애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갈수록 그런 현상은 늘어날 것 같다. 따라서 나이 많은 노인들은 사는것이 좋다고 하지만 살아가는 고통도 만만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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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생활 1. 수술한지 두달 되어 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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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생활 1. 수술한지 두달 되어 가는데…

작년 2월 낙상으로 목을 다쳤는데 그냥 두어도 좋아 질거다고 의사가 말했고 나도 수술 안 했으면 싶어서 일년을 약을 먹고 회복을 기다렸으나 별 진전이 없어서 결국은 지난달 초에 수술을 했다.

투병생활이 어렵다는 말 들어도 그거는 남의 일이라고 여기며 나이에 비해서 젊게 살았는데 이제는 내가 그눔의 투병생활 하느라고 폭삭 늙었고 행동거지가 불편하니 매사가 짜증스럽고 사는게 즐겁지는 않다. 또 일년을 수술후 회복을 기다리면서 지나야 한다.

목은 우리몸의 감각을 느끼게하고 움직이게 하는 신경이 지나는 곳이여서 건드리기도 껄끄러운 곳 그곳을 건드려서 그런지 조금 좋아 지긴 해도 시원하게 달라진건 없다. 대학병원의사도 일년 넘게 다니다가 보니 친구가 되어 많이 친하다. 별 진전이 없어 MRI 검사를 해보자고 해서 해보았더니 어찌된 일인지 작년 두번째 찍은 것과 별차이가 없어서 의사도 나도 바로 수술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수술직전 인턴이 병실에 와서 수술 동의서를 보여주면서 목뒤가 아니고 앞쪽을 째서 하는데 숨 쉬는 관, 음식물 먹는 관, 또 무슨관, 각 신경줄 핏줄 등을 밀치고 하다가 보면 목소리가 쉰 소리하는 사람이 될수도 있고 갑상선이 손상 될수도 있고 음식물을 구멍을 뚫어서 먹을 수도… 등등하며 겁을 주어서 그만 하지 말고 휠체어를 타고 다닐 정도로 나빠지더라도 그냥 지날까 곧 80이될것인데 이것 잘 하는 짓인가 하는 회의도 가졌고 당장… 하는 나쁜 생각도 들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한 수술이었다. 지금 보니 인턴의 그 말은 기우였고 별일 없고 다만 신경계이니 그런지 전신에 힘이 없고 다리가 근육통을 앓는 것 같다. 훌륭한 교수님이 정성들여서 했다고 하시면서 지금 좀 괴롭더라도 잘 참고 수칙 잘 지키고 지나보라고 하였다.

회복이 되고 얼마나 잘 될런지는 모르나 지난 세월 아무 거리낌없이 가고 싶은 곳 마음대로 다니던 그 시절이 너무나 그립고 지금 내게 어찌 이런일이 싶으며 또래 잘 다니는 이들 보면 많이 부럽기도하다.

나는 젊을 때 사람은 먹고 싶은 것 잘못 먹고, 하고 싶은 것 몸 때문에 못하고, 가고 싶은곳 또한 마음대로 가지 못하게 되면 죽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하며 살았는데 그런 날이 올 즈음은 65세에서 70정도쯤으로 생각하고 하였는데 다행히 그 시기는 한참 지나서 이제 곧 80이 될 나이가 되었다.

그렇지만 인력으로 자기생명을 마음대로 못하는 현실이니 앞으로 얼마나 고생을 더하며 살지 걱정도 많이된다. 나이를 먹을수록 크고 작은 병치례를 더 많이 할 것을 목전에 번히 보면서 지금의 이 고생을 참으며 회복되기를 기다리며 지나고 있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것도 내게 주어진 운명인지 업본지 내 삶이 겪어야 하는 과정으로 여기고 그르려니 하고 살아야 한다. 세상에는 평생을 불편한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많은데 그런 것 생각하면서 느긋하게 지날것이다. 내게는 아직 이렇게 블로그에 글이라도 긁적일 기력도 쓸능력있으니….

그런데 조선닷컴 위블로그 요즈음 왜 이런지….

 

 

 

 

생리대와 아기기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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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대와 아기기저귀.

오늘은 늙은 영감탱이가 이 무슨 괴상한 소리를 하나 할 것 같은 글을 쓴다. 요즈음 여자들 생리대로 온통 시끌벅적하다.

가뜩이나 여자들에게는 조금이라도 마음상하게 하면 많이 시끄러운데 그 중요한 생리대로 마음상하고 건강에 이상이 생기게 했으니 이거는 대단한 사건이다. 그럴듯한 회사들이 요즈음 보면 이런 저런 것으로 말썽을 일으켜 곤죽이 되다싶이 되는 것 자주 보는데 실수를 해도 그런 실수는 해서는 바로 초 죽음이 된다.

화장실에 가서 일볼 때 여자들은 변기에 앉는 것을 껄끄러워한다는 것을 아내를 통해서 알았다. 내 아내는 자주 다니는 곳에는 전철역에도 병원에도 식당에도 공원에도 어느 곳에는 와변기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 그런 곳에 지날 때는 그렇게 절박한 상황이 아닌대도 가서 볼일을 보고 온다. 아무 곳에나 가서 좌변기에 앉기 싫어서 그렇게 한다.

나는 그럴거 머있나 화장지 조금 가져가서 엉덩이가 닿을 곳을 닦고 앉으면 되지 해보는데 그래도 그것이 성에 안차는 모양이다. 그렇게 여기는 여자들에게 문제 있는 생리대를 사서 쓰게 했다니 죽을라고 작정 했는거다.

그리고 며느리가 늦둥이를 낳아서 키우느라고 우리도 함께했는데 우리집에도 아기기저귀를 다발로 두고 올 때 마다 썼는데 나는 그것 쓸 때 마다 저것이 과연 저어린 것 순수하고 연한피부에 무해하게 만들어졌을까 하는 생각으로 느을 찜찜하였다.

그러나 아직 기저귀 그것으로는 큰 별말은 없는데 간혹 설탕같은 가루가 있는것도있고 아기엉덩이가 빨갛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걱정하는 엄마들의 불평을 인터넷에서 보았다.

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으나 한시절 미국에 FDA라는곳에서 인정되었다는 것으로 우리나라 여자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미국제라면 무조건 좋아하였다. 그런데 그FDA가 업체들이 개발해서 이러이러한 제품입니다고 자료를 제출하면 시험을 거치지 않고 바로 승인을 해준다 그런데 미국소비자들은 그것을 믿고 쓴다 그러나 그렇게 믿어서는 안된다고 하며 FDA에서 검사하는 곳에 근무했던 사람이 쓴 글을 본적이 있다.

그래서 그것을 보고 나는 바로 이블로그에 공산품 그 중에도 먹는 것 입는 것 주택에 쓰이는 물건들 그리 믿어서는 안된다, 그많은 제품들 관계당국에서 검사가 안되고 시중에 팔고 있는데 당장은 몰라도 허구한날 쓰고 그것으로 만든 주거공간에서 살면 문제가 불거진다. 지금 아토피가 바로 그것 때문이다고 쓴 적이 있는데 이번에 생리대사건도 그런 맥락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그것 말고도 다양한 각종 많은 제품들 일일이 수거해서 검사다 할 수는 없다 또 시제품은 돈 많이 들여서 합격하도록 했지만 생산 과정에서 또 동종 제품들과 경쟁관계로 달라 질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어릴 때 보면 어머니는 지금 기억에 꺼즈 같은 것인데 그것을 빨랫줄에 자주 널려있는 것을 보았고 속옷은 반드시 삶아서 깨끗하게 말리는 것을 보았다. 어린 동생들 기저귀도 그렇게 정성 들여서 빨고 삶아서 착용시키는 것을 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방법이다. 세제로 빨고 삶아서 여러 번 깨끗한 물로 행궈서 잘 말려서 한 것은 내가 만든 신선하고 모든 균 멸균한 제품 이것 보다 더 깨끗하고 믿고 쓸수있는 물건이 어디에도 없다. 바쁘다 어렵다 하지만 지금 모두 할머니가 된 그 세대보다 더 바쁘고 힘들지는 않다.

걸핏하면 스트레스 많이 받고 살고 너무 바쁘고 어쩌고 하지만 그때보다는 지상낙원에 살고있다. 문에 창호지 한장 바른집에서 시자 붙은 어머니의 등살에 삼시세끼 밥해 대며 도맡아 하는 밭매기 그리고 남정내들 농사바라지 거기에 아이들 임신만 되면 낳아야 하니 보통 4,5명을 키우고 그러는데 지금보다 스트레스도 힘겨움도 적었겠나, 그래도 내 몸간수하는 생리대 내 아이 기저귀 속옷 빨래는 건강 위해서 반드시 삶아서 사용하고 입었다.

자기생리대 아기기저귀 반드시 삶아서 말려 착용하고 지금 여러가지 내가 하고 있는 것 잘하고 있나 한번쯤 생각해보고 좀 현명하게 살자. 먹는 것 좋아서 마구먹어 디룩디룩 살쪄서 그것 뺀다고 헬슨지 먼지 하지말고.

 

 

 

 

한고조의 부인 여후의 악날한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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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고조의 부인 여후의 악날한질투.

여자의 한은 오뉴월에 서리를 내리게 한다고 하더니 중국한나라고조 유방의 부인 여후(呂后)는 말년에 자기를 멀리하고 총애했던 후궁 척부인(戚夫人)에게 유방이 죽은 후 보복한 질투는 세상이 많이 바뀐 지금도 있을 수 없는 사람으로서는 할짓이 아닌 악독한 복수를 하였다고 한다.

척부인은 고조의 사랑을 독차지하여 낳은 아들 여의(如意)를 태자로 봉해달라고 고조에게 졸랐던 모양이다. 고조도 이미 책봉되어있는 여후의 아들 영(盈)이 너무 유약해서 그리하고 싶었다. 그러나 중신들 이견이 서로 갈려서 결정을 못하다가 전쟁터에서 화살에 맞은 상처가 덧나 태자문제를 매듭짓지 못하고 갑자기 죽었다.

여후의 아들 영(혜제 惠帝)이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나이도 어리고 성격이 유약하여 실권은 여후가 장악하게 되었다. 드디어 이전에 뒤로 밀려 허구한날 독기를 품고 지났던 복수가 시작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세계란 반대파에서 정권을 잡으면 전정권의 실세는 물론 가솔들에게는 이긴자의 학대가 시작된다.

척부인은 천하의 권력자 황제인 고조 한 사람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죽었다. 드디어 여태후는 척부인 모자를 용서 할수 없다고 복수가 시작되었다 죽이기로 결심하고 잡아들였다. 그러나 그냥 죽이는 것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아 잔인하게 분풀이를 한다.

후궁들이 거처하는 곳에 가두고 머리를 깍기고 입에 재갈을 물려 그곳에서 빨간옷을 입고 방아를 찧는 일을 하게한다. 다음 그의 아들 이미 조왕으로 봉해져 있는 여의를 불러들인다 그때 혜제는 이복동생 여의가 불려오면 어머니 여후에게 죽임을 당할 줄알고 여의와 침식을 같이하며 돌봐주었다. 어느날 혜제는 사냥을 하고 돌아오니 여의는 여후에게 독살당했다.

그리고 그후 여후는 척부인의 다리와 두손을 자르고 눈을 도려내어 장님으로 만들고 그것도 성에차지 안아서 귀먹어리로 만들고 약을 먹여 벙어리로 만들어서 변소에 넣어서 돼지와 함께 두고 똥을 먹고 지나게 했다. 며칠후 그런 광경을 혜제가 보았다.

혜제는 척부인의 그런 처참한 광경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 병석에 눕게된다. 여태후에게 “이것은 사람으로서 할짓이 아닙니다 어찌 이래까지 할 수가 있나요, 저는 어머니의 아들로서 양심상 도저히 천하를 다스릴수 없습니다.” 고 하였다. 그러나 여후는 듣지 않았다.

그후 혜제는 정치를 포기하고 술과 여자를 가까이하면서 정사를 보지 않았다. 따라서 모든 권력이 여태후에게 주어지고 결국 당초부터 유약했던 혜제는 곧 죽는다. 그후 나이 어린 세자가 그 뒤를이어 황제가 되니 그가 소제(少帝) 공(恭)이다. 그러나 소제를 마음에 안든다고 곧 폐하고 죽이고 또 나이 어린 홍(弘)을 황제로해서 실질적인 황제는 여태후였다.

그리고 유씨외에는 왕으로 세우지 말라는 고조의 유명도어기고 여씨를 여러왕으로 임명하고 그 중 조왕 여륵을 상장군으로 삼아 북군의 지휘를 맡기고, 양왕 여산에게 남군을 맡겨 한나라군대를 장악했으며 여태후의 집권은 혜제 재위8년을포함 15년이었다. 이시기를 후세 사가들은 고후몇 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똑똑한 여자는 예쁜 여자를 못 당하고 예쁜 여자는 또 젊고 싱싱한 여자를 못 당한다고 하더니 젊은 여자에게 못 당하여 수년을 이를 갈던 여후는 결국은 이긴 것 같지만 그게 아닌 것이다. 금쪽 같은 아들 손자 줄줄이 제명에 못살고 한조각 구름 같은 권력을 산 동안은 놓치지 않을려고 바둥거렸지만 한줌 흙이 되었다.

후세인들은 세상에 어쩌면 사람이 그토록 잔인할 수가 있을까 하는 악독한 짐승 같은 여인으로 기록되어있고 나라도 다른 한국의 하잘것없는 나 같은 늙은이도 그것을 보고 이런 글을 쓴다. 정치세계의 더럽고 추한 모습들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크게 또는 작게 계속 되것을 보면서 권력이란 권불10년이란 말처럼 영원하지는 안는다는 것 다 알것인데 계속 반복되는데 이해가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