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의 추억

어김없이6월이면찾아오는북괴의남침으로발발한6.25개전일.

올해는끔찍한6.25전쟁의참상의현장기록대신전쟁의와중에잊혀진

농촌과피난민들의사진들을찾아감색을했다.

아래사진들은미육군역사기록물을수집하기위해한국에미군과함께

참전한미육군역사기록물수집파견대원들이촬영한역사기록중에

전쟁의와중에도평호로운산하와사람들을촬영한사진들을골라서

올렸다.

HistoricalDetachmentcommanders(fromleft)PierceW.Briscoe,WilliamJ.Fox,andBevinAlexander,

withdriverPrivateDonaldL.RubyandclerkCorporalHarryL.KnappatEighthArmyRearinTaeguas

theyareabouttoleaveforthefrontinearlyJune1951.한국에파견된역사기록물수집파견대원들.

한국전중총6개의역사기록물수집파견대가한국에파견되여역사자료가치가있는공식비공식의모든

자료를수집했다.

1952년부산에도착해인도위에서쉬고있는피난민들

1952년,부산에피난온한가족이지친몸을한장의가마니위에몸을의지하고누워있다.

1952년,6월중부지방의이름모르는평화로운농촌의평화로운풍경.피난길에지나간이름모르는

농촌풍경처럼,낮설지않은풍경에이련한향수가느껴진다.나를따듯하게반겨줄것같은초가집

마당으로들어서자,누런삽살개기나를보고꼬리를흔들고짓을때,마음씨좋게생긴아낙이나와

반겨맞을때,물한모금부탁하는피난길에나서나에게우물에서손이시리게시원한물힌바가지

퍼담이내밀어주어피난길의지친나의목을시원하게적셔줄것같은착각을느끼게하는사진속의

초가집마을은이제특정지역을뻬놓고는다시는볼수없어안타갑다.

초가집에서태어나서유년시절을보내고,고향을떠나늙고병든이노병의영혼은이한장의사진으로

마음의평화를얻어이사진들을남긴미육군역사자료수집파견대원들에게무한한감사를드린디.

짚신을신고흰옷에등에는담뱃대를끼고시골길을걸어가는

이촌노는50년대나와너의할아버지모습이다.

미군이세워놓은이정표옆에는한문으로제차정지입간판이서있다.이정표의거리로계산해보면

중부지방에세워놓은것으로보인다.

격전중철로의파괴로탈선한증기기관차

81mm미군의박격포탄이작열하는적군의밀집지역

1951년수복후중앙청(현재광화문)앞대로를찝차가달리고있다.

의정부를지나북쪽에서있는38선표시

1951년,피난길종종걸음으로걸어갔든시골길을닮은길을체값으로

받았을것같은곡식보따리를이고체를지고체장수아줌마가시골

동네를향해걸어가고있다.

1945년,8.15일태평양전쟁에서패한일본왕이무조건항복을하자

분노를이기지못한한일본인이영등포에있는수수밭에들어가일본도로

수수를자르는광경이목격된후,왜인들이분을풀기위해일본도로사람을

죽인다는소문이나돌아갑자기공포분위기가조성되였다.

2살6개월이었든나는사촌형님들과함께그날밤마차를타고시골로피난을

갔다.5년후,북괴의남침으로4촌형님들과함께다시피난길에올라사진의

황톳길을닮은길을하루종일종종걸음으로다시피난길에올라사촌형님들을

따라걸어가며지나쳤든농촌의모습을닮은위사진은피난길에서지친내모습을

다시떠오르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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