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백교교주 전용해와 구원파교주 유병언의 닮은점

1937년4월13,일제식민지치하경성부(서울)에서백백교와교주전용해의살인행각이조선일보호외로

알려지면서조선8도는큰충격에휩싸였다.전용해를체포하라,경성부왜경은경찰병력을총동원해

전용해를추격하기시작했다.그러나전용해는경찰의추적을받으면서도경찰을비웃기라도하듯

몇일간시내에서여유있게도피자금을마련해경성부(서울)를탈출해경기도양평으로향했다.

악명높은왜경을따돌리고유유히경성부를빠져나간전용해는양평지역책임자이한영의집으로갔다.

경찰이전용해를추적하는사실을모르는이한영은전영해를극진히대접했다.막대한재산을전영해에게

바친이한영은전용해로부터3명의첩을하사받았다.

전용해는하사한3명의첩을방으로들게한후이한영을내보냈다.이한영이다음날아침인기척이없어

방문을열고들어가자전용해는사라지고세여인은실오라기하나걸치지않은채목이졸려죽어있었다.

경찰의추적은그동안에도계속되어양평의단월면까지형사대가내려와수사에나섰다.백백교지역책

임자들이계속채포되자전용해는이삼득의집으로도주했으나그이후에전용해의행방이묘연해졌다.

경성부형사대의추적에도신출귀몰하듯전영해는자취도없이바람처럼사라졌다.

1937년4월6일,양평군단월면행소리의비솔고개라고불리는산봉우리부근에서나무를하던마을주민이

끔찍한시신을하나발견했다.나무꾼은단월면주재소에달려가신고를했다.주재소순사들이달려가시체

를확인하자,시체는오른손에칼을쥐고있었고오른쪽뇌가반쯤손상되어있었다.사진을남기지

않은전용해의시신을확인하기위해경찰은그의아들을불렀다.현장에도착한그의아들은시신을

보자마자아버님하고울부짓어경찰은전용해의죽음을확인할수있었다.

부검의의부겸결과전용해는칼로뇌동맥을끊어서죽은것으로밝혀졌다.왜경은이시체를희대의살인마

전용해가자살한시체라고결론짓고사건을종결했다.

전용해의죽음에는여러가지의문이남아있다.전용해와같은희대의살인마가스스로뇌동맥을끊어

자살했다는것에민중은수긍할수없는것이었다.일부에서는장자봉,장손희,장해순등세명의첩을

잃은이한영의복수에의해전용해가살해당했을가능성이더크다고추정하고있으나당사자인전용해가

죽었기때문에그진실은영원히묻혀버렸다.

경찰이채포한백백교간부들의재판과정에서밝혀진확인된살인이314건,백백교간부와교주자신이

자행한총살인은1,000-2,000건으로추산하고있다.

50-60년대월간지에자주등장했든일제치하식민지시절백백교교주의죽음과구원파교주유벙언의

죽음은짝퉁처럼너무나닮은꼴이다.경찰이확인한백백교간부와교주의살인314건과유병언이

자신과는관계가없다고주장한1987년오대양32명자살사건과세월호참사사망자294명을합치면

320명으로사망자까지비슷하다.두교주의시신발견도닮았고,죽음도의문이남아있는것도너무닮았다.

백백교교주전용해의끊임없는살인,자신의잘못으로세월호참사로294명의희생자가발생했어도

자신이무슨짓을했는지에대해반성이나사과한마디없는유병언은전형적인사이코패시(Psychopathy)

로분류되는범죄자들이다.마지막으로두사이비교주가닮은점은이들이사라지기전여인들과성관계를

가졌다는점도닮았다.

미국에서세월호같은사건이발생했다면아마수많은심리사들이등원되여유병언이라는한인간에대해서

그가어떤인간인지에대해대대적인심층심리분석을내놓았을것이다.그러나안타깝게도한국에서는어느

방송매체에서도유병언에대한심리사들의분석이없어그가어떤인간인지도알수가없다..필자가보는

유병언은과대망상증환자로,자신이대통령과동급의거물이라고착각하며행동한다.10만의종교잡단

지도자가주한외교사절을초청해놓고벌인행사에서연설을하며,자신을세상사람들에게과시한유병언

의행위를보면그는심각한수준의중중과대망상증환자가틀림없다.

이와함께유병언은Little(Short)mansyndrom(키작은사람증후군)과학력콤프렉스로고통받고있는

환자다.미국에서흔히사용되는키작은사람증후군이란,키작은사람이자신의키는작아도나는이렇게

큰사람이라고여러가지방법으로자신의부와능력을많은사람들앞에서과시하는행위를하는사람을

일컷는말이다.

한국에서학력콤프렉스에비교될만한말로,유병언은자신의고졸콤프렉스를커버하기위해아마추어

사진작가수준에불과한자신의사진작품들을대가의수준으로인정받기위해많은돈을썼으나그결과가

어떻게되였는지는독자들이모두잘알고있다.

마지막으로,유병언의시신이발견된후그의죽음이타살이냐,자살이냐아니면자연사냐로의견이

분분한데,필자가보기에유병언의사인은타살되였을가능성이크다.타살로보는이유는송치재별장을

나오면서육포와스쿠알렌,검은콩을챙겨가지고나왔는데쫏기는자에게생명과도같은10억원이넘는많은

돈을그대로두고별장에서빈몸으로나왔을리가없다.그의시신에서그가소유했을만한

신분증이나돈이나귀중품이발견되지않은것과시신이똑바로누워있는자세도타인에의해연출된

흔적으로볼수있다.아니면그가지병으로사망한후그의시신을누군가가뒤져귀중품을훔친후그의

시신의자세를발견당시처럼자살처럼보이게연출햇을수도있다.유병언이홀로남겨진이유는그를

호위하든자들의배신이있을가능성도배제할수없다.

공산주의이론을정립한칼마르크스(KarlMarx)는‘종교는민중의아편’이라고외침과동시에기독교를

박멸하려든그의노력은와해한공산주의국가와북한을통해서너무나잘알려져있다.종교를빙자해

개인의재산을갈취하며가정을파괴하는사이비종교야말로이지구상에서옜날에없어졌어야했으나

IT시대에도사교가번창하고있다.이에대해정부가사교에빠져재산을잃고가정이파괴된국민을

보호할의무가있는지없는지는법에대해문외한인필자가알수없으나정부는당연히이들을보호할

의무가있다고믿고싶다.

아래자료는백백교에대해서모르는독자들을위해퍼온자료들입니다.

참고가되기를바랍니다.

일제점령기1937년4월13일.조선일보는사교백백교의사건을

알리는호외.

백백교주살인마전용해가경기양평산중에서자살을알리는조선일보기사

“일제는가고새세상이온다”

경성앵정정에있던전용해의본가와‘김두선’이라는가명문패.

이렇듯이른바‘금화사건’이발생했을당시만해도전용해와표면상교주인차병간은가까스로검거망을벗어났다.전용해와차병간은지방을전전하며비밀리에교단을재건했다.이후전용해는서울로잠입해앵정정에본부를마련하고,지방에있는심복교도들을서울로불러모았다.백백교간부들은평안도,황해도,강원도등을순회하며무지몽매하여세상물정에어둡지만다소자산이있는사람들을은밀히포섭했다.

“우리백백교교주님은신비한힘을가지고있는분이다.머지않은장래에천위(天位)에등극할인물이다.지금일본의통치아래있지만,가까운장래에반드시백백교교주의통솔하에독립이될것이다.그때각교도는헌성금(獻誠金)의다소와인물의능력에따라대신,참의,도지사,군수,경찰서장등에임명될것이다.”

“오래지않아큰전쟁이날터이니교도들은자산을팔아가지고상경하라.교주는신통력을가지고계신분이므로반드시그대들의생명을보장할것이다.”

“3년내조선에서른자이상의큰홍수가날것이다.일반백성은모두물에빠져죽더라도헌금한우리백백교도는금강산피신궁(避身宮)에들어가목숨을구할수있다.홍수이후교주전용해가등극하여천위에오르면헌금액에따라관직을제수할것이다.”(‘백백교사건의정체’,‘조광’1937년6월호)

백백교간부들은정감록의예언을자의적으로해석하여정도령과소리가비슷한교주‘전도령’이후천개벽세상의주인이될것이라호언했다.관존민비의봉건적인습에사로잡힌사람에게는관직을주겠다는말로,투기심이강한사람에게는‘불로장생,부귀영화’라는말로입교를권유했다.

일단백백교에입교하면교주의명령에따라토지,가옥,가재도구일체를정리해서울본부로올라왔다.교주는신입교도가가지고온현금을헌납하게했다.데리고온가솔중미모의처녀가있으면‘시녀’로바치게했다.교주는앵정정본부로불려온시녀에게‘신의행사’를빙자해욕정을채웠다.‘믿음이약해’교주에게만족을주지못하는여성은심복간부에게넘겨줬다.간부가거느린첩은모두이러한‘절차’를거친여성이었다.교주는수십명의첩을거느렸다.7~8명의첩을거느린간부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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