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등산사[1-3]
한국에서의등산역사는분명하지않다.다만불교가전래되기전에는토속적인신앙의대상을주로산에서찾았고,불교전래이후는크고작은사찰이심산에자리잡게되면서부터승려는물론,신도들의신앙적수양,수도의목적을위한산행이있었다.그밖에군사적인목적과훈련을위하여산에오른자취도더러찾아볼수있는데,백두산의정계비(定界碑),신라의황초령(黃草嶺),마운령(摩雲嶺)의유적,북한산의순수비(巡狩碑),화랑의무예터등이그것이다.
한국에서근대적인등산활동이시작된것은1920년대에조선산악회가조직되어일본인과함께백두산,금강산,집선봉등을오르기시작한데서비롯된다.역시산악동호인의모임인은령회(銀嶺會)도등산과학술조사에많은업적을남겼다.8·15광복후1950년대후반현대적인등산기술이도입되면서낙후된등산장비와전근대적인기술에서탈피하기시작하였고,이와동시에전개되기시작한등산활동은처음으로한국알피니즘의문을열어놓았다.
그리고국내의산만으로만족하지않는산악인들은더높은곳을찾아원정대를조직하여외국의산,특히히말라야쪽으로발길을뻗기시작하였다.1962년다울라기리II봉을정찰한것을필두로,1970년에추렌히말,1971년에로체샤르,1972년과1976년에마나슬루등을오르는동안많은희생을치르기도하였다.국내의산에서해외원정을목표로훈련하던중에1969년2월에는설악산에서한밤중에눈사태를만나이희성(李熙成)대장등10명의희생자를내기도하었다.
1976년2월에는같은설악산의설악골상단부에서에베레스트훈련대의최수남(崔秀男)등3명이설벽을횡단하던도중눈사태를만나매몰되었다.국외에서는1971년마나슬루원정때김기섭대원이전락사하였고,1972년에는히말라야제2차마나슬루원정대의눈사태로인한조난이가장큰사고로김호섭등대원5명과펨바,린지등셰르파10명을합쳐15명이눈속에매몰되는아픔을겪기도하었다.
한국등산사에서가장획기적인기록은1977년의에베레스트등정이다.1962년에전국적인조직을갖추어결성된대한산악연맹이주관하여김영도대장등18명으로구성된원정대는등반을시작한지59일만인9월15일에한국인으로는처음으로고상돈(高相敦)대원과셰르파펨바노루부는에베레스트등정에성공하였다.
그이듬해1978년3월6일에는한국산악회의전병구(全炳九)대장등6명이안나푸르나IV봉을겨냥하여유동옥(兪東玉)대원이등정에성공하였고,다시1979년에는알래스카의매킨리를한국일보대와고령산악회대,고려대학교산악부등3개대(隊)가등정하였다.그러나한국일보대의고상돈대장과이일교대원은하산길에추락사하였다.
한국원정대에의한8,000m급등정의두번째성공은1980년4월28일동국대학교산악반에의한마나슬루(8,163m)등정이었다.이인정(李仁楨)대장등7명의대원중서동환(徐東煥)대원이정상에올랐다.한편,악우회(岳友會)는1979년에아이거북벽을오르는데성공하였고,이듬해에는유럽알프스의3대북벽중나머지그랑드조라스(4,208m)와마터호른산도등반하였다.
한국산악인의발길은더욱폭을넓혀1981년에는남아메리카의아콩카과(6,960m)를서울대학교자연대팀이등정하였고,에베레스트대원이었던장문삼(張文三)과도창호(都昌鎬)는뉴질랜드의쿡산과아콩카과를실험등반하였다.1982년11월2일에는대한산악연맹산하대전자일클럽의회원김영한(金英漢)이네팔북동쪽에자리한처녀봉고준바캉(7,806m)에무산소로등반하였다.
암벽등반은물론설벽과빙벽등반기술도자체훈련외에프랑스의샤모니와스위스체르마트의등산학교등지에서실력을기른한국의등산인들은세계적인난코스에도전하여성공하였다.1982년9월2일에외국어대학교산악회회원장준택(張俊澤)등3명은난코스로이름난북아메리카최고의바위산엘캐피탄의900m수직벽을완등하였다.
한편1981년1월아콩카과에서있었던김용환대장의고소장애(高所障碍)로인한실족사,또한7월의아이거북벽미텔라기능선에서의신건호대장과주동규대원의낙뢰감전사,그리고같은달히말라야카라코람의바인타브락정상부근에서의악우회이정대대원의추락사등많은희생도치렀다.
한편,8,000m급고봉등정이계속되어1883년허영호가마나슬루단독등정에성공하였고,1986년K2,1987~1988년에베레스트동계(8,611m)등정,1990년가셔브롬1봉(8,068m),1991년시샤팡마(8,028m)남벽등정,1992년낭가파르바트,1993년에는한국여성원정대를비롯한3개원정대가에베레스트등정,그리고8,000m급고봉중미등봉이었던브로드피크(8,047m)를1995년7월12일에스파냐의합동원정대로등정에성공하였다.또한1995년10월2일엄홍길이세계4위봉로체(8,516m)등정에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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