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의철인박영석
히말라야의산군(山群)에는수천개의산이있지만그중에서8000m가넘는산은14개뿐이다.가장높은에베레스트(8848m)를비롯,K2(8611m)칸첸중가(8586m)로체(8516m)마칼루(8463m)초오유(8201m)다울라기리(8167m)마나슬루(8163m)낭가파르바트(8125m)안나푸르나(8091m)가셔브룸Ⅰ(8068m)브로드피크(8047m)시샤팡마(8046m)가셔브룸Ⅱ(8035)가그것이다.14개자이언트봉의완등이세계적인관심을끌게된것은이탈리아가낳은철인라인홀트메스너와폴란드의예지쿠크츠카의선의의경쟁에서시작되었다.
1970년낭가파르바트등정을시작으로히말라야에서정력적인등반을시도했던메스너는쿠크츠카의막판추격을몇개월차이로뿌리치고1986년로체를등정함으로써전인미답의기록을세웠다.8000m급하나만등정해도대단한평가를받던시절에14개를모두완등했다는소식은산악인은물론,문외한들까지경악시키기에충분했다.수많은산악인이인간한계에도전하다가목숨을잃는판국에14개를등정하고도살아남았다는것은신의축복으로까지여겨졌다.
그후지금까지14개봉완등에성공한산악인은95년에스위스의에라르로레탕이메스너와쿠크츠카의뒤를이었고,96년폴란드의크리스토프비엘리츠키,같은해멕시코의카를로스카르솔리오,그리고99년4월에스페인의후아니토오야르자발이,그리고이탈리아의세르지오마르티니,한국인엄홍길,이어서박영석대원이철인대열에합류했다.그후한완용대원이14좌를완등하여한국인의기상을높혔다.
세계산악계의흐름은‘등로주의’에집중되고있어쉽게정상에오르는것보다는‘더어렵고더힘들게’오르는것을추구한다.박영석대원이93년에한국인으로는최초로에베레스트무산소등정에성공한것이나,91년과93년두차례에걸친에베레스트남서벽등반,95년에베레스트북동릉등반에도전한것이이를말해준다.“쉽게오르면아무래도성취욕이떨어지고,가장쉬운루트인노멀코스로정상에오르는것은보편화되어있어정상에오르기보다는어떻게오르느냐에관심이더집중되고있다.
키175cm에73kg인박영석씨는등반이끝나면그체중에서10kg이상빠져나간다고한다.프로산악인체질에도몸무게가그렇게빠질만큼등반이고통스럽다는얘기다.그는회복이빠른편이어서남들은한달이지나도원래몸무게로돌아오지않는데,그는보름만지나면회복이된다고한다.그는산악인들에게는극약이라고불리는술과담배를등반중에도마다하지않는다.술은베이스캠프에서틈틈이마시고담배는7000m지점까지도피운다고한다.
그가산악인이되기로한것은‘우연’때문이었다.2남4녀가운데장남인그는딸넷을낳고본장손이라어려서부터부모의극진한보호아래자랐다.누나들을‘언니’라고부르며응석받이로자라던그를남자답게만든이는산을좋아했던아버지였다.아버지는일요일이면어린영석의손을잡고동네뒷산과북한산등지로끌고다녔다.하지만그에게산이란공부를하지않으려는핑계에지나지않았다.고교시절까지공부와담을쌓고지내던그에게산은별의미가없었다.
오산고교2학년때인80년여름에우연히시내에나갔다가시청앞에서카퍼레이드를보았는데,마나슬루등정에성공하고돌아온동국대원정대를보는순간‘아,저게내가할일이다’고마음이움직여동국대산악부에들어가겠다고마음먹게되었다.그는동국대산악부에들어가기위해대학입시를준비했다.공부엔취미가없는그였지만동국대산악부의멋들어진카퍼레이드를생각하며머리띠를동여맸다.재수까지하면서마침내동국대체육교육학과에입학했다.
그때제겐동국대가하버드나옥스퍼드못지않았어요.산악부로는국내최강이니까요.그자부심은지금도변함이없어요.동국대산악부는군대보다더기강이심하다.호랑이새끼를키우는이곳에서는선배들로부터기합을받아도좋았고,훈련산행에들어가무거운장비를메고깔딱고개를오르내려도힘든줄을몰랐다.그흔한미팅한번,데이트한번안해봤을정도로산에미쳤다.주말이면산에들어가살았으니여자와만날시간조차없었다.
그에게고산해외원정이란목표가마음속에자리잡은것은2학년겨울,일본으로북알프스등반을갔을때였다.그해북알프스에는눈이엄청많이내렸다.조난자도많이생겼을만큼코스가위험하였다.수많은산행을했지만그때처음으로위험한산행을하면서묘하게도그런고비를넘기면서내가앞으로무엇을해야할것인지를결심하였다.군대에갔다와서복학한그는공부는제쳐놓고알프스3대북벽원정을계획했다.
하지만경비를조달하는것보다더어려운문제에봉착했다.부모의반대가엄청났던것이다.아들을남자답게키우려던아버지도아들이취미로산에가는것은말리지않았지만본격적인산악인으로나서려는것은극력반대했다.하지만양친의눈물어린호소도한번마음을잡은아들에게는한치도먹혀들지않았다.“이번한번만…”하면서나가기시작한아들은지금까지이약속을한번도지킨적이없다.
알프스3대북벽을다녀온박영석씨는89년동국대랑시사리원정대의대장이되어처음으로히말라야원정길에나섰다.당시네팔에서그의원정대는‘기레하시(‘자투리’란뜻의일본어)원정대’라불렸다.워낙경비가부족했던터라다른대학팀의찢어진텐트를얻어이리저리기워쓴것이놀림감이됐던것이다.하지만이원정에서그는적은예산으로등반할수있는지혜를터득했고,2년후동계랑탕리봉초등에성공해세계산악계의주목을받았다.
미친듯이산에만다니느라데이트할시간조차없었던그에게시집을오겠다는참한규수가있었다.오산고다닐때알게된후배가있었는데,그아이집이오색에서기념품점을한다기에설악산에놀러갔을때들렀는데,누나라고소개해주었다.마침동갑내기로서울에서사는데다가같은이태원이어서그때부터집안끼리도왕래하면서아주친하게지냈다.둘다한우물만파는성격이라다른사람을사귄다는것은생각지도않았다.두사람은나이가들자자연스럽게결혼을했다.
부인홍경희씨는“남편이산에미친사람인것은알았지만결혼하면처자식먹여살리느라산을포기할줄알았다”고한다.그런데믿었던남편은집안일은아내에게죄다떠맡기고오히려더신이나서산을탔다.한번한다면하는남편의성격을잘알기에말린다고들을사람도아니고오히려부부사이만나빠질것같아마음대로하라고내버려뒀다고하였다.
91년박씨는선배산악인이경영하던네팔카트만두의‘빌라에베레스트’를인수했다.빌라에베레스트는침대가30개정도있는음식점겸여관으로히말라야를등반하는한국산악인들이등반전후에들렀다가는곳이다.이걸로큰돈을벌지는못하겠지만,앞으로히말라야를오르는데도움이된다는판단에서1년이면6개월을가족과함께이곳에서생활하며운영해왔다.
“저때문에가족들의희생이컸다고하였다.그게제일마음에걸려요.아내에게는단한번도생활비를줘본적이없어요.서울에오면부모님집에얹혀지냈다.아이들과도제대로놀아준적이없었다.그런데도아이들과친밀한정을나눌수있었던것은목욕탕나들이덕분이라고하였다.모처럼집에머물때는두아들과목욕탕에서놀기를즐긴다.다행인것은지난3월부터처음으로아내에게생활비를주게되었다.영원무역에서과장직함을받아비록근무는하지않지만월급이나왔다.
지금까지산을오르며가장슬픈순간은함께등반하던동료가사고로죽었을때라고말한다.93년에베레스트를무산소로등정하고대학후배두사람과함께힐러리스텝을내려왔는데,뒤따라오던후배진섭이가내려오질못하고있었다.나중에알고보니진섭이산소통에이상이생겨호흡이곤란해저죽을지경이었다.무산소등정이라거의탈진상태였지만기를쓰고힐러리스텝을도로올라가진섭이를데리고내려왔다.캠프가있는사우스콜이저만치보여‘이제다왔다’싶어서진섭이와묶은줄을풀었다.
기력을좀회복한진섭이가오히려탈진한저때문에위험을느끼고있었다.간신히내려와서텐트속으로들어가뻗어버렸다.아침에눈을뜨니옆텐트에서자던후배가‘진섭이가안보인다’고한다.서로옆텐트에서자는줄알고신경을안썼다.나중에낭떠러지에떨어진진섭이시체를찾아서화장을하는데…정말내가죽는게낫지그날은잊을수가없다.그는에베레스트무산소등정의영향으로지금도기침을자주할만큼기관지를많이상했다.
그때얼마나고생이심했던지다시는무산소등반을하지않겠다고맹세했다.몇년전까지만해도위험을무릅쓰고서라도등반을감행하는무모함이있었지만산은오를수록더욱힘들고조심스러워진다.그래서요즘은살아서돌아오기위해서신중에신중을기한다고말한다.박영석씨의돌파력과배짱은국내일류산악인들도혀를내두를정도이다.그는91년봄에베레스트남서벽등반중150m를추락해얼굴이으깨지는중상을입은적이있다.
캠프2까지후송된그의얼굴을,당시같은루트를등반중이던미국원정대의팀닥터가마취도없이‘쌩으로’수십바늘을꿰맸다.지금도얼굴에핀이3개나박혀있다.95년북동릉등반때는눈사태에휩쓸려셰르파와함께700m를떠내려가다셰르파는죽고그는갈비뼈가부러진채살아남았다.베이스캠프로돌아온그는후배들이악전고투하는것이안쓰러워깁스를한채7000m까지올라가북릉으로루트를바꿔후배들의정상등정을돕기도하였다.
사람들은‘어차피내려올건데왜그리기를쓰고올라가느냐’고묻곤한다.“산을오른다는것은탐험과개척정신의발로라고생각한다고그는말한다.때문에어린시절부터산행의좋은점을가르치고자주산행을하면서심신을단련시키고자연과더불어인생을배우고고산산행에서인간의한계에도전하면서성취감과감동을경험하는탐험문화와개척정신을길러야한다고그는강조한다.돈이있다면초등학생들에게진취적인개척정신을심어주기위해탐험학교를운영하고싶다고한다.
대자연앞에서한없이무기력하고보잘것없는존재가인간이지만그렇기때문에나는늘최선을다했다.지금까지내몸처럼아끼던동료일곱을산에서잃었고,나역시죽을고비를수도없이넘겨왔다.목숨을건위험한등반,그속에서나는삶을생각하고신의존재와인간의한계를절실히느꼈다.산은내게있어피할수없는운명이었다.지금이순간이어쩌면기적일지모른다.그래서나는행복하다.살아있기때문이다.어린시절꿈을이루었기때문이다.내가하고싶은일을하고,내가제일잘하는일을업으로삼고살수있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