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넘버3’ 산악인 한왕용 *-
‘넘버3’산악인韓王龍씨

2003년7월15일오전11시30분(파키스탄현지시각)산악인한왕용(韓王龍·37·에델바이스소속)씨가히말라야의난봉브로드피크봉(8047m)을등정,‘8000m급봉우리14좌완등’이라는대기록달성에성공했다.이는세계적으로는11번째이며,한국인으로서는2000년엄홍길(嚴弘吉),2001년박영석(朴英碩)씨에이어세번째다.이로써한국은8000m급14좌를완등한산악인을3명배출한세계최초의국가가되었다.한왕용씨의완등소식을전해들은산악인들은“정치·경제적으로어려운상황에서한국인이얼마든지역경을헤쳐나갈저력을갖고있음을안팎으로일깨워준쾌거”라고기뻐했다.

2002년까지12개봉등정을마친한씨는남은2개봉인가셔브룸2봉과브로드피크봉동시등정을노리고5명의대원과함께출국했다.먼저지난6월26일가셔브룸2봉(8035m)등정을무난히마친데이어곧바로브로드피크봉로향했다.한왕용씨는김웅식·나관주대원,셰르파2명과더불어203년7월12일1차시도에서정상밑까지갔다가악천후로후퇴했고,15일오전1시쯤재차도전해10시간30분에걸친분투끝에감격의14좌고봉의완등을이뤄냈다.등정후본지와의위성전화에서한왕용대장은“감격스러워잠시울었지만조금허탈하기도하다”고등정소감을밝혔다.

먼저14좌완등을이룬엄홍길과박영석은아직도도전을멈추지않고있다.새로운기록을위해히말라야의위성봉우리얄룽캉봉(8505m)을올랐거나혹은남극점으로걸어갔다.그런데이‘세번째’산악인한왕용은좀태평이다.그를충동질했을때“삶에서는멈출줄도알아야한다”고반응했다.“14좌완등은내가좋아서했고스스로에게할수있음을보여줬으니몇번째든상관없다.그러나이제는사회속으로돌아갈때라고생각했다.내가좋아하는것만계속하려면결혼은왜했고,아이는왜낳았는가.시간이좀지나면나는잊혀진산악인이되고싶다.”고말하였다.

그런그가2006년히말라야의K2봉(8611m)을다시찾아갔다.하지만기록경쟁의도전과무관하다.쓰레기청소를위한’클린마운틴원정대’등반이다.그는“내가히말라야의등반과정에서저지른흔적을지우기위해서”라고했다.“2002년K2봉의베이스캠프에있는일본원정대의텐트로놀러갔을때였다.식사대접을받았는데,한국산깻잎·마늘·장아찌통조림이나왔다.일본팀은‘캠프1에서다른원정대가버리고간것을주워왔다’고했다.그내용물은한국원정대들이버린것이었다.나도내게짐이되는것을그렇게버렸다.

그리고우리는산을떠나왔지만산은남아있다.나는과거의흔적을지우는마지막원정을하고싶은것이다.”14좌완등을추구한선배산악인들이명성에힘입어기업체의후원을받을때,그는직장에다니며후배들과원정경비를모았다.그의원정대는2~3명으로늘빠듯했다.그는“산을타는것은누구에게고용돼하는게아니라내가좋아서하는행위인데남에게도움을바라는것이싫었다”고했다.그렇게해서10년에걸쳐14좌완등을이뤄냈다.그과정에서단한명의동료도잃지않았다.이는10여명의대원을잃은다른완등자들과는비교되는점이다.

그는“가장능력이떨어지는대원과보조를맞추었고그에게문제가발생하면그냥내려왔다.정상을바로눈앞에두고도포기했다”고말했다.“산악인에게등정(登頂)의욕심은강렬한것이지만산은늘그자리에있다.내가살아있는한올라갈기회는언제든지있다.이번에실패하면원정경비를벌어다시오면된다고생각했다.설령못올라간들어떤가.산정상에올라간다고인생이바뀐적이있었는가.꼭정상을밟아야겠다는욕심이화를불렀다.우리가사는세상에서도그렇지않은가.”그는이렇게삶을이야기하였다.

한씨는전주개척산악회원으로서1994년초오유봉(8201m)을오른이후매년한두개씩8000m급고봉을등정,남다른고산체질을과시했다.그는등반과정에서여러희생적일화로도유명한산악인이다.1995년10월14일오후2시30분쯤에베레스트정상에오른그는촬영을마치고동료대원,셰르파와서로연결한로프를풀었다.모든산악인들이늘그랬듯한명의실수가전원추락으로이어지지않게끔‘각자살기’로하산을시작한것이다.얼마후무전기에서다급한목소리가들렸다.그의뒤를이어하산하고있던한대학산악부원이8750m지점에서탈진해주저앉았다는전갈이었다.

그는동행한셰르파와더불어그대원을앞뒤로로프연결을한뒤20여시간에걸친탈출을감행했다.주저앉으면달래기도하고피켈로엉덩이를후려치기도하며다음날오전3시가넘어서야그자신도초주검이된상태로캠프까지하산할수있었다.2000년K2봉(8611m)등정때는‘나이든선배가언제또이런고산등정할기회를가질수있겠나싶어서’선배에게산소마스크를벗어준일이있다.그는산소마스크를넘기고도세계제2위고봉이자‘마(魔)의산’이란별명을가진K2봉정상을오르는데성공했다.그러나하산중안개속에서길을잃고헤매다가탈진,눈밭에주저앉았다.

그는눈물을흘리며울다가돌도채지나지않은아들얼굴을떠올리며다시용기를냈고,결국무사히살아돌아왔다.그러나귀국직후네차례에걸친뇌혈관수술을받아야했다.8000m급14좌완등자들은그과정에서누구든여러명의동료와셰르파를잃는아픔을겪었다.그러나한왕용씨는놀랍게도등반도중동료가목숨을잃은경우가단한차례도없었다.정상을코앞에두었더라도날씨가나빠지면단호히되돌아서는뛰어난자제력덕분이다.지구상에는8000m가넘는거대한산봉이모두14개있으며,1986년이탈리아의라인홀트메스너가최초로14좌고봉의완등에성공했다.

―정상에섰을때의감흥은있지않는가?

“정상에서있으면어떻게살아내려갈지를걱정했다.히말라야14좌에서마지막으로남겨놓은브로드피크봉(8047m)의정상에올랐을때,베이스캠프에서무전기를통해소감을물었다.내가말주변이없어그런가,‘아무생각없다’고답했다.물론기뻤다.앞으로더이상높이올라가지않아도되니까.”그는2000년K2봉의정상에서내려오면서죽음의순간을맞은적이있었다.한치앞을내다보기어려운눈보라로하산과정에서길을잃었다.올라오면서남긴발자국은지워졌다.언제라도낭떠러지를향해발을잘못디딜지모른다.결국7000m쯤에서하산을포기하고주저앉았다.

드디어죽는구나.의식을잃어갈즈음바로앞에노란오줌자국이보였다.하산하던누군가가오줌을누었던모양이다.그걸이정표로삼았다.방향을놓치지않으려고왼쪽대각선으로50발자국다시반대쪽으로50발자국씩걸으며더듬더듬내려왔다.삶과죽음의갈림길에서한발헛디딤은곧죽음의길로이어지는길이므로그는추위와싸우며긴장을멈추지않고한치앞이보이지않는눈과눈속을걸으며한발자국옮길때마다발디딤을확인하면서진정으로삶이얼마나소중한것인지가족을생각하면서죽음의길을넘어서돌아올수있었다.

―그럼에도왜히말라야14좌완등을했는가?

“자기가좋아해마음먹은것을한것에대해어떻게설명할수있을까.20년간취미로그림을그려온사람에게왜그리는지를따질수없지않은가.다만14좌완등의영광이내게만집중돼대원들에게미안했다.혼자였다면그걸못했을것이다.나는동료들의힘을많이빌렸다.쉬운산도혼자가면어렵고,어려운산도함께가면오를수있는것이다.”그에게묻기를“산을안탔다면무엇을했을까”라고하자,“식당주인이됐을것”이라고했다.대학에서식품영양학을전공한그는요즘한등산장비업체의부장으로근무하고있다.

―산과사회,어느쪽이더힘든가?

“산소가희박한고산을오르는것보다사회생활적응이더힘들다.사람들은온통무엇인가잡으려고날뛰는것같다.눈이어지러울정도다.파벌을짓고거짓말하고,무엇보다자기에게손해보는일은절대안하려고한다.처음산을다닐때는나도급했다.시간이흐르면서여유로워졌다.오늘어려우면내일을기다리고,정녕안되는것의한계를받아들일줄도알게됐다.”“앞으로아내에게내인생을투자하려한다.아내는노인복지시설을하려고요즘공부중이다.섬진강변에복지시설을지을장소도봐놓았다.거기서아내의일을도우면서보낼작정이다."

출처:조선일보(2003.07.17)安重局기자와[최보식의인물기행](2004.05.07)에서-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